HIFICLUB, High-end Internet

레조네이터의 선구자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첨단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는 여전히 단 일부만 이러한 트렌드에 편입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전통적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때로 집 안의 주파수 특성을 직접 측정하고 문제가 드러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음향 관련 제품을 투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귀로 확인해서 좋은 쪽을 택한다. 결국은 사람마다 다른 인지 능력과 취향이 곁들여지면서 하이파이 오디오는 무어라 정의 내리고 기준을 세우는 것이 종종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액세서리의 출현과 적용은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욱더 풍성한 재밋거리를 선사했다. 그리고 반대 급부로 이런 오디오 파일을 대상으로 우후죽순 만들어져 돈벌이에 악용된 사례도 많다. 그중 하나 생각나는 것이 다름 아닌 공명 종이라는 물건이다. 손바닥만 한 종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는 오디오 위에 설치해놓고 음악이 더 좋아졌다니 혀를 찰 수밖에. 그리고 실제로 국내에서 만들었다는 공명종을 테스트해보고는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진짜배기를 만나고 내 생각을 고쳐먹은 것은 나중 일이었다. 바로 어쿠스틱 시스템이 만든 레조네이터였다. 이 제품을 만든 사람은 프생크 창은 오디오 제작자라기보다는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해야 옳다. 프랑스에 두 개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의 여러 연주회장의 음향 설계 및 컨설팅을 해온 사람이다. 그의 진동에 관한 고찰은 매우 깊고 다양해서 한때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의 의뢰로 자동차의 진동 제어나 연료 절약에 관한 연구와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마이클 창의 새로운 도전 

그는 오디오용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이 직업은 아니다. 그저 아주 가끔씩 레조네이터 같은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긴 하지만 여러 음향 관련 컨설팅이 그의 직업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선 쉽게 나오지 못하는 창조적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스피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파리의 여러 레코딩 스튜디오 그리고 공연장을 오가면서 콜라보 작업을 해온 그. 바로 그 현장에서의 경험이 그를 자연스럽게 스피커 제작의 길로 인도했다. 

César

결과적으로 그가 도달한 종착역은 César였다. 이 스피커는 키가 1260mm로 훤칠한 키를 자랑하며 너비는 350mm 지만 뒤로 570mm나 긴 길이를 자랑한다. 위에서 보면 원형이 아닌 타원 비슷한 모양을 가진다. 완전한 곡선은 아니지만 최대한 곡선을 살려 디자인했다. 그리고 하단에서 상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마치 그가 살고 있는 파리의 에펠탑 구조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다. 더불어 매우 단단하고 한쪽에 40kg 정도 무게를 가진다. 이런 모든 것들은 마이클 창의 공진과 정재파 등 음향적 이론과 경험에 근거해 철저히 계산된 설계 결과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심플하고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지만 수십 조각으로 정교하게 커팅 된 나무들을 조합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중요한 유닛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스피커들이 청취자를 향해 유닛을 배치하는 반면 César의 경우엔 유닛을 모두 천정이나 바닥을 향해 배치하고 방사 렌즈를 배치해 반사한 후에 360도 음이 퍼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바로 무지향 스피커의 기본적인 방사 패턴으로 마이클 창은 이런 방식이 우리가 콘서트홀 등 현장에서 즐기는 소리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저역은 담당하는 베이스 우퍼는 10인치 구경으로 바닥을 향해 있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진동판으로 사용하며 새햐얀 표면 색상을 가지고 있지만 스피커를 뉘여야 볼 수 있다. 매우 커다란 보이스 코일을 사용해 최대한 커다란 진폭을 가지도록 만든 우퍼다. César의 저역 한계가 25Hz로 낮은 저역까지 자연스럽게 재생할 수 있는 이유다.

배플을 타고 한참 올라가면 그제야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중/고역 드라이버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 가야 볼 수 있는데 중간에 얇고 넓은 음향 렌즈를 중심으로 위와 아래에 하나씩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UFO 비행접시 같은 방사 렌즈는 상당히 정교하게 깍은 모습인데 360도 전방향으로 음을 방사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 부품이다. CNC 머신으로는 원하는 커브와 마감을 얻을 수 없어 직접 손으로 깎고 섬세하게 마감한 것으로 여러 테스트를 거쳐 완벽에 가까운 커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이 두 개의 유닛은 풀 레인지 타입으로서 5인치 페이퍼 소재 진동판을 채택했다. 게다가 마그넷은 알니코. 마이클 창은 자신이 원하는 유닛을 시중에서 구할 수 없어 약 5년 동안 개발 과정으로 통해 만들었다고 한다. 더불어 중앙에 위치한 페이즈플러그는 견고한 물성을 자랑하는 단풍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이번에 테스트한 제품은 스탠더드 버전 슈퍼 트위터를 장착한 버전이다. 따라서 고역을 35kHz까지 재생 가능했다. 참고로 하이패스 필터 세팅은 15kHz로 세팅해서 테스트했음을 밝힌다. César의 공칭 임피던스는 4옴으로 낮지만 능률은 90dB로 충분히 높다. 따라서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도 추분히 제어가 가능한 스피커다. 하지만 이번엔 자주 테스트에 사용했던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 인티앰프를 사용했다. 더불어 소스 기기는 린 Selekt DSM을 사용해 매우 심플한 시스템을 꾸렸다.

PATRICIA BARBER - My girl
A Distotion of Love

보편적인 스피커를 듣다가 이 스피커의 소리와 마주치면 아마도 굉장히 놀랄지도 모른다. 일단 스피커의 위치가 가늠이 전혀 안될 정도로 음악이 공간에서 흘러나온다. 예를 들어 파트리샤 바버의 ‘My girl’에서 핑거 스냅이 스피커의 후방 벽에서 흘러나온다. 마치 벽에서 파트리샤가 홀연히 손가락을 튕기며 걸어 나오는 듯하다. 음정은 꽤 선명하게 맺히지만 청취 위치를 옮겨도 그 자리에 풍선이 떠있는 듯 스윗스팟이 넓다. 스피커 자체에서 나오는 직접음보다 반사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스피커와 소리를 재생하는 근간이 다른 스피커다.

MARIANNE THORSEN  - Violin Concerto's
MOZART

마리안느 토르센과 트론트하임 졸리스텐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에선 음색 부분이 귀에 걸린다. 마치 솜사탕 같은 중, 고역 잔향이 청취 공간을 자신만의 색상으로 채색한다. 음원 자체의 배음 이외에 잔향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진 소리로서 아마도 청취 공간에 따라서 소리가 상당히 많이 바뀔 것이 분명하다. 자체 인클로저의 통 울림 때문이기도 한데 이런 자체적인 잔향은 꽤 많은 부분 본래 음원 정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마치 풀레인지 스피커를 광대역으로 확장한 듯한 사운드로서 흥미로운 것은 무지향 방식으로 풀어낸 마이클 창의 독특한 설계 기법이 독특한 에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곱고 편안하며 기품 있는 소릿결에 예쁜 화장을 한 소리다.

Arne Domnerus -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Antiphone Blues

이런 특성 덕분에 소편성 실내악이나 또는 재즈에서 정말 매력적인 소릿결을 즐길 수 있다. 다이애나 크롤의 ‘Temptation’이나 브라이언 브롬 버그의 강력한 업라이트 베이스 현의 저역 울림은 약간 과장되고 둔한 느낌이다. 하지만 아르네 돔네러스의 색소폰은 공간을 풍부하게 애워싸며 벨벳처럼 부드럽게 귀를 적신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재생해 주는 스피커는 최근 들어 들어본 적이 없다. 정신이 번쩍 드는 짜릿함과 이성적이며 이지적인 표현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며 종종 환각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Jordi Savall - Folia Rodrigo Martinez 1490
La Folia 1490-1701

조르디 사발의 ‘La folia’에선 원전악기의 그 고풍스러운 울림이 홍수처럼 흘러넘친다. 포르투갈의 격정적 무곡의 느낌은 완전히 가시고 원전악기의 오래된 현악기의 바디감이 더욱 강조되어 들린다. 악기들이 냉정하게 분리되지 않고 약간씩 겹쳐서 배열되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데 뭉개질 정도는 아니며 듣기 좋은 정도로 화합하는 모습. 한편 전/후 거리감이 매우 깊게 형성되어 마치 고악기의 아련한 울림이 청음 공간 어느 곳에선가 실재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척 편안하고 얌전한 음색을 가졌기 때문에 풀레인지 스피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즐길만한 매력이 충분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총평

오랜만에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 모습을 드러낸 마이클 창. 과거 레조네이터로 충격을 주었던 그의 음향 그리고 음악관은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César를 통해 더욱더 구체화된 모습이다. 그의 음향 관련 풍부한 경험과 이론은 스피커 설계에 있어 독창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그 모습은 다이내믹스가 높고 재빠른 동적 움직임의 전환이 필요한 음악보단 음색적인 특성이 중요한 음악들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 소편성 실내악이나 성악, 재즈 보컬, 피아노 솔로나 고음악 등에 특화된 스피커다. 장르에 대한 편식은 있는 편이지만 만일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 어떤 스피커보다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보편적인 최신 하이엔드 스피커의 음악 재생 방법론에 조금 질렸다면 무지향의 신세계로부터 온 César가 펼쳐놓는 음악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