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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춘추전국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서 케이블의 중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 반세기가 넘어섰다. 2천 년대 전/후 오디오를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실텍과 카다스, 오디오퀘스트와 킴버 등 단 몇 가지 케이블이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하이엔드 오디오파일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그 훨씬 전부터 해외에선 다양한 케이블이 발표되고 여러 연구 결과들이 나오며 수많은 담론이 형성되었지만 현재처럼 풍부하진 못했었던 것 같다. 또한 지금처럼 수천만 원대 케이블이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필자 또한 위에 언급한 케이블을 주로 사용했었던 정도였다.

1970년대 이후 불붙기 시작한 하이파이 오디오 케이블은 몇 명의 선구자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했다. 킴버 케이블의 레이 킴버, 오디오퀘스트의 빌 로우 그리고 몬스터를 거쳐 MIT라는 자신의 케이블 메이커를 설립했던 브루스 브리슨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카다스의 조지 카다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전부터 하이파이 산업에서 고군분투했던 다른 대표들과 달리 카다스는 전화기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언제나 신호 송수신 방식과 그 문제점에 대해 연구하던 위치에 있었던 것. 이 부분이 카다스를 여타 케이블 메이커와 다른 존재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케이블 춘추전국 시대가 열린 이후 지금까지 살아남은 케이블 메이커 중 가장 독보적인 케이블 메이커로서 굳건한 카다스는 시작부터 남달랐던 회사였다.

카다스

카다스는 기계적 그리고 전기적 공진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구적 이론을 제기한 메이커였다. 물론 소재 자체도 뛰어난 소재를 사용했고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6N 순도의 무산소 동을 사용했고 절연, 차폐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하지만 현재 무산소 동 수준의 도체는 흔하디흔하다. OCC, 싱글 크리스탈 등 훨씬 더 이론적으로 뛰어난 도체들이 나온 현재다. 하지만 카다스는 과거부터 도체뿐 아니라 가공 방식과 지오메트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일단 카다스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황금 비율 관련 내용이다. 이는 카다스의 독보적인 기술로 특허를 취득하게 된 이유다. 피보나치 수열로부터 시작하는 이 황금비율은 도체들의 꼬임방식을 통해 공진 포인트를 가청 영역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이로써 여러 노이즈로부터 케이블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연계의 생명의 탄생부터 우주의 성운 그리고 건축 등 세계를 구성하는 기저 이론 중 하나로서 황금비율이 오디오에서도 확인되고 그 음질적 연관성이 증명된 가장 대표적인 예다. B&W의 노틸러스, 윌슨 베네시의 레오나르도 트위터 디자인도 이와 연관된다.

클리어 비욘드 파워케이블

클리어 시리즈는 2천 년대 후반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시리즈는 카다스가 그동안 설파해온 과학적 이론과 음질적 이상향을 기반으로 케이블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물론 그 기저 이론들은 예전부터 꾸준히 전개해왔던 것들이지만 클리어 시리즈에 와서 더욱 치밀해졌으며 이전엔 없었던 필터 같은 것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황금 비율 꼬임 구조나 전파속도 매칭 그리고 공진 값 및 크로스필드 구조, 고순도 동선 제조법 및 리츠 구조 등 그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신호 전송 시 임피던스, 진동, 딜레이와 디스토션, 스킨 이펙트 등 가능한 모든 과학적 이론을 전제로 개발한 것들이다.

특히 클리어 라인업을 개발하면서 카다스는 와이어 드로잉 시설을 사들이기도 했다. 언제나 카다스는 모든 공정을 직접 제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도체의 생산부터 시작해 마무리에 이르는 단자 제작과 결속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이루어내던 그들이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시설을 통해 더욱 완벽에 가까운 도체 제작이 가능해졌다.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어닐링을 진행해 아주 정확한 게이지로 더욱 뛰어난 도체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어닐링은 강도와 경도 특성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내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야금술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결정화 온도 이상으로 가열된 후 냉각되는데 이때 어닐링 과정에 따라 소재의 연성, 내부 응력이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도체의 입자 구조 및 표면 상태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카다스의 경우 매우 천천히 냉각시키면서 산소를 거의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매끄러운 표면의 고품질 도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공정 중에 증기 또는 활성 질소를 사용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카다스 무산소 동은 타사의 그것과 철저히 구별되어야 옳다.

클리어 비욘드는 바로 이런 클리어 시리즈의 중급 제품으로 거의 모든 클리어 공법들이 적용된 케이블이다. 6N 고순도 동선을 사용한 것은 물론 겹겹이 에워싼 도체 레이어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비스듬히 교차하면서 꼬인 구조를 갖는다. 1미터를 만들 때 도체의 길이는 실제로 1.27미터가 되는 이유다. 절연은 PTFE, 즉 테플론을 사용했고 이중 차폐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10AWG 두께의 도체 세 개로 구성된 클리어 비욘드는 대전류를 다루는 앰프 등을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그 어떤 컴포넌트에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필터가 내장된 점이다. 이는 특별히 튜닝된 토로이달 필터로서 광대역에 걸친 필터링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벽체나 멀티탭 등에 꼽는 단자 쪽에 탑재되어 있다.

참고로 이번에 테스트한 제품은 기존에 사용해봤던 클리어 비욘드와 단자의 차이가 있다. 분명 클리어 비욘드 파워코드인데 단자의 외관이 최상위 모델인 클리어 비욘드 XL과 동일하다. 바로 카다스 E-5 커텍터로서 만일 동일한 커넥터라면 실버/로듐 도금된 동을 사용한 것이다. 외부 업체의 단자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직접 만들어내는 카다스의 단자들은 인터/스피커 케이블 등을 막론하고 무척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던 전력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사운드 퀄리티

이번 테스트엔 왕년에 이름을 날린 황금 같은 조합 아래 이루어졌다. 바로 윌슨과 볼더가 그 주인공이다. 윌슨은 소피아3 그리고 볼더는 세월을 건너 올인원으로 탄생시킨 회심작 866 올인원이다. 볼더가 올인원 앰프를 만들다니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그 열기와 염색체는 그대로였다. 윌슨의 휘몰아치는 음장감과 활기를 볼더는 후끈 달아오른 몸으로 정면 대응했다. 한순간도 타협하는 법이 없이 정면 승부하는 결기로 소피아3를 어르고 달랬다. 상당히 에지 있고 입체적인 음장감이 공간을 장악하기 때문에 쾌감이 상당히 높은 조합이다. 게다가 이전 세대 윌슨의 트레이드마크인 포칼 역돔 트위터는 시스템 튜닝에 따라 조금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Radka Toneff -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Fairytales - Original Master Edition

그러나 카다스 클리어 비욘드는 이런 걱정을 단숨에 불식시켜주었다. 일단 졸지에 구형이 되어버린 기존 클리어 비욘드 파워케이블과 신형 클리어 비욘드를 비교해보니 그 차이가 꽤 있었다. 라드카 토네프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를 들어보면 그녀의 목소리와 주변 배경의 앰비언스가 아주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안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들린다. 목소리의 두께도 충분하며 담백한 토널 밸런스를 보여주어 달콤한 느낌마저 든다. 카다스 동선의 힘 있는 중심선과 자연스러운 배음 특성이 느껴진다. 역시 이번에도 묵직하고 부드러우면 차분한 카다스의 개성이 켜켜이 물들어있다.

Nils Lofgren - Keith Don't Go
Acoustic Live

클리어 라인업이 나오기 이전, 그러니까 골든 레퍼런스 같은 모델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던 시절 카다스의 정체성은 산만한 시스템 안정화의 화신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때로 이런 특성은 일부 시스템에선 너무 어두운 경향으로 치우쳐 들리곤 했다. PAD도 그런 특성이 강했는데 둘 다 현역 모델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 진화라고 이야기해도 좋을 듯한데 닐스 로프그렌의 ‘Keith don’t go’ 같은 곡들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충분히 상쾌하게 뻗어나가며 음촉의 밝기가 끝까지 살아서 날아간다. 적당한 중, 저역 양감과 밸런스가 유지되기 때문에 가볍거나 왜소하다는 느낌은 절대 없다. 특히 탄력적인 역동감과 무게감 있는 펀치력이 실린 퍼커션 연주가 압권이다.

손성제 , 김율희 , 정수욱 , 서수진 - 갈까부다
Near East Quartet

하이엔드 파워케이블이 시스템의 사운드를 변화시키는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은 이를 더욱더 극명하게 대비시켜준다. 사실 케이블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케이블 자체보다 스피커와 주변기기 역할이 지대하다. 니어 이스트 쿼텟의 ‘갈까부다’처럼 공간의 앰비언스, 악기의 위치 등 사운드스테이징이 홀로그래픽으로 펼쳐지는 음악에서 전원 케이블 하나가 바꾸어놓은 음악적 뉘앙스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수선을 떨거나 혼잡하거나 들뜬 모습을 살짝 누그러뜨려주면서 홀연히 공간 안에 선명한 음상을 드러내는 악기들. 그리고 그 사이의 포근한 앰비언스가 실체감을 북돋으면서 음악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Jerry Junkin, Dallas Wind Symphony
Walton: Crown Imperial - finale
HRX Sampler 2011 - A Classical & Jazz High Resolution Spectacular!

댈러스 윈드 심포니의 ‘Crown Imperial’피날레에서 보여주는 클리어 비욘드의 특징 중 하나라면 무엇보다 저역 펀치력이다. 양감과 두께 그리고 밀도감 등이 적절한 비율로 조율된 느낌이다. 어떤 파워케이블보다 스피디하다고 말한 순 없지만 그 어떤 케이블보다 여러 요소가 말 그대로 ‘황금비율’처럼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꾹꾹 눌러쓴 글씨처럼 정확한 템포와 명확한 굴곡, 어택에서 릴리즈까지 굵고 명징하게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묵직한 쾌감이 일품이다. 예리하고 치밀하게 들이대는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클리어 비욘드는 대단히 훌륭한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총평

카다스 케이블은 개인적으로도 종종 경험해본 터라 꽤 친숙한 케이블이다. 15년 정도 전이었을까. 그땐 킴버를 쓰다가 조금 더 풍부하고 부드러운 중, 저역을 얻고 싶으면 카다스를 섞었다. 또 며칠 지나 좀 더 밝고 뭔가 화려한 색깔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실텍을 꺼내들곤 했다. 최고가의 플래그십이 아닌 중저가 모델에서도 이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나서 어느 상황이 되면 어떤 케이블이 필요할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케이블들이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이 세계는 너무나 다양한 개성의 제품들 사이에서 중심을 찾기가 힘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카다스는 여전히 자신만의 확고한 이론적 근거와 음향적 개성을 보여주었다. 다이내믹스, 사운드스테이징, 디테일과 스피드 등 그 어떤 한 분야에서 대단히 뛰어난 개성을 보여주는 케이블은 많다. 그러나 이 모두를 포괄적 개념 하에서 평균 이상의 성능으로 평화롭게 조화시킨 케이블은 의외로 드물다. 카다스 클리어 비욘드는 그들의 설계 이론처럼 음악적 ‘황금비율’을 선사하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