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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의 나라에서 온 앰프

처음 아우리스의 제품을 만난 것은 오래전 뮌헨 쇼에서다. 첫눈에 반할 만큼 디자인이 수려했다. 고급스러운 가죽에 마무리가 좋은 목재를 동원해, 기품이 있으면서 럭셔리한 느낌이 좋았다. 만일 이런 제품이 스위스나 독일에서 나왔다고 하면, 바로 히트를 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 기의 몇 배 가격은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다행히 세르비아산이라 거의 실비 수준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 하겠다.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의 중심에 있다. 그 인근에 크로아티아라던가, 보스니아 등이 있다. 이 나라들이 한때 유고 연방으로 뭉쳐서 오랜 기간 함께 한 적도 있다. 미국과 소련의 극심한 냉전 상황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 것은, 그 나름대로 국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르비아는 연방의 중심적인 존재로, 방위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숱한 전투기와 탱크와 첨단 무기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연방을 해체하자는 움직임에 맞서 세르비아는 연방의 존속을 주장했고, 그 결과 끔찍한 전쟁도 터졌다. 지금은 각자 독립해서 과거의 아픔을 묻어두는 단계에 왔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르비아 하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이 있다. 바로 니콜라이 테슬라다. 혹, 테슬라 자동차의 창업자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관계없다. 단, 19세기 말 전기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에디슨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직류와 교류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전기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에너지원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 점도 흥미롭다. 시대를 100년 이상 앞선 발상이었다. 그 유지를 받아들여 과감하게 전기차 상표로 테슬라를 쓴 것이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꼽자면 전설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아내 밀레바. 워낙 남편의 이름과 학문적 성과가 높아서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지만, 상대성 원리를 비롯한 여러 착상에 그녀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고 한다. 

한편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 등과 더불어 미녀의 산실이다. 나는 세르비아까지는 가보지 못했고, 두브로브니크에서 꿈같은 1주일을 보낸 바 있다. 내친김에 그 밑의 몬테네그로까지 방문해봤다. 코로나가 풀리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도시 1순위가 바로 두브로브니크다.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역사적 유적 외에 정말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다. 따라서 아우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 일단 발칸반도의 미녀를 떠올린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실물을 보면 그런 미녀들이 연상될 만큼 아름답다. 지금부터 포르티노 6550에 대해 말해보겠다.

아우리스의 모회사 HCP 컴퍼니

일단 진공관 앰프라고 하면, 대부분 아무나 달려들어도 되는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전자 공학을 배우고, 납땜 기술을 익히면 아무튼 진공관 앰프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제대로 만들려면 절대로 만만치 않다. 따라서 세르비아에서 만든 진공관 앰프라고 하면, 대부분 소수의 장인이 그냥 시간 나는 대로 취미 생활을 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회사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아우리스는 다르다.

이 회사는 HCP 컴퍼니라는 모회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데이터 전송을 기본으로 하는 IT 산업체다. 세르비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큰 회사다. 그 오너인 밀로미르 트로시치(Milomir Trosic)씨가, 이런 회사를 키우면서 틈틈이 개인적으로 주재했던 오디오 회사를 정식으로 전 세계 런칭한 것이 바로 아우리스인 것이다. 따라서 이 회사에서 내놓은 DAC의 품질은 신뢰해도 좋다. 아무튼 이런 탄탄한 기업이 뒤에 있기 때문에, 아우리스는 누구보다 빨리 세계 시장에 런칭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지 꽤 되었다. 이번에 포르티노 6550을 소개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하다.

아우리스는 라틴어로 “귀”(Ear)를 뜻한다. 오디오 회사로서는 정말 적절하게 작명을 했다고 본다. 또 발음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한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최근 이 회사는 HCP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미니 오디오 쪽도 만들고 있다. 별도로 만들어진 회사의 이름이 바로 “이어맨”(Earmen). 아우리스의 귀에서 연장된 작명이라 하겠다.

한편 아우리스의 전신으로 모바일 사운드라는 회사가 있다. 1987년에 창업했다. 이 당시에는 스피커 중심이었다. 이렇게 따져보면, 벌써 회사 연혁이 30년이 넘는다. 그러다 2005년에 설립한 HCP가 성장함에 따라, 그 후광을 입고 2013년에 아우리스가 탄생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어맨을 런칭했다. 그 중심에는 창업자 트로시치 씨가 존재한다. 모바일 사운드-HCP-아우리스-이어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조금 정리가 필요할 듯한데, 이 대목에서 아무래도 창업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우리스 창업자 밀로미르 트로시치

아우리스 오디오의 CEO 밀로미르 트로시치(Milomir Trosic)

사실 트로시치 씨와는 개인적으로 꽤 친한 편이다. 처음 뮌헨에 출품했을 때, 나와 친분이 생겨 가끔 커피도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 아우리스가 CES에 진출했을 때엔, 정말 우리 둘이 즐겁게 포옹한 적도 있다. 그는 한국 사정에 꽤 정통했다.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나 교육 시스템, 역사 등에서 세르비아와 통하는 게 많다는 입장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꽤 일리가 있다고 본다. 당시 한국에 별다른 수입상이 없어서 직접 리뷰나 인터뷰를 할 일이 없어서 좀 아쉽기는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어, 우리 둘은 좀 더 돈돈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2018년에는 별도의 인터뷰도 진행해서 구글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이 분의 이력을 알게 되었다.

트로시치씨는 1967년 세르비아의 크랄레보(Kraljevo)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13살 생일 때 두 장의 LP를 선물 받으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그 주인공은 각각 비틀즈와 딥 퍼플. 나 또한 처음 산 음반이 비틀즈라 당연히 동질감을 느꼈다. 이후 테크닉스 턴테이블을 들이고, 앰프를 사고 하면서 오디오에 몰두하게 된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 전자 쪽을 공부한 것은 당연한 수순. 늘 스피커에 불만을 품다가, 고교생이 되던 16세 때부터 스피커 자작에 들어간다. 그 내공이 모바일 사운드로 연결되고, 현행 아우리스의 라인업에 스피커가 포함되어 있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음악과 오디오에 몰두해서, DJ로 알바를 뛰었던 모양이다. 지방 방송국이나 클럽 등에서 활동하며 꽤 많은 돈을 모았고, 그게 고스란히 음반과 오디오로 투자되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이 아닌 마케팅을 전공하게 된다. 본격적인 비즈니스맨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선택이 결국 HCP의 창업과 아우리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멋진 승부수를 띄웠다고 해도 좋다.

현재 HCP의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DAC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어맨을 런칭하고 있다. 반면 아날로그 쪽은 트로시치씨 개인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단, 그냥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결코 아니다. 그 안에 탄탄한 이론적 바탕과 기술이 응축되어 있다. 본 기를 소개하면서 이 부분은 좀 설명하도록 하겠다.

큐브 오디오 마구스의 위력

이번 시청을 위해 동원한 스피커는 큐브 오디오의 마구스다. 같은 동구권 출신이다. 아우리스는 세르비아에서, 큐브는 폴란드에서 각각 만들어진다. 사실 폴란드 역시 오디오 강국이다. 이미 폴리시 오디오 쇼를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고, 100여 개가 넘는 자국의 업체가 존재한다. 쇼팽의 나라다운 위상이다. 특히, 스피커 쪽에 강세를 보이며, 풀레인지 쪽도 밝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큐브다.

사실 이상적인 스피커를 논할 때 늘 등장하는 것이 바로 풀레인지다. 이런 형태의 드라이버는 따로 대역을 나눌 필요도 없고, 크로스오버도 생략한다. 말 그대로 파워 앰프에 직결된다. 효율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감도가 좋으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표현에 유리하다. 단, 좁은 대역이 늘 문제시되었다.

F8 Magus 드라이버

한데 마구스로 말하면, 8인치 구경을 자랑하며, 36Hz~22KHz라는 광대역을 자랑한다. 종래의 풀레인지가 6.5인치를 기준으로, 간신히 50Hz 대역에 턱걸이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거의 충격적인 수치다. 또 실제로 청취를 하면 저역에 별 무리가 없고, 심지어는 바닥을 탕탕 치기도 한다. 어디 한구석에 서브 우퍼를 숨겨놓은 듯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두 제품을 각각 다른 조합으로만 들었다. 두 제품의 강점을 알면서도, 막상 함께 연결해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말 그대로 “심봤다!”라고 외쳐도 좋다. 풀레인지의 장점과 진공관 방식의 장점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빠르면서 심대하고 또 드라마틱한 음이 재생된다. 당연히 아름다운 감촉이나 온화한 음색도 갖추고 있지만, 현대 하이엔드가 요구하는 미덕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본 6550을 구입하고자 한다면, 과감히 마구스도 생각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스펙 둘러보기

본 기는 철저한 아날로그 진공관 앰프다. 따라서 DAC나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일체 부속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한번 사두면 오랫동안 아날로그 전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포노단도 없다. 오로지 인티 앰프의 기능에만 충실하다고 보면 된다.

전면을 보면 세 개의 큼지막한 노브가 보인다. 왼쪽부터 전원, 볼륨 그리고 셀렉터다. 셀렉터쪽은 총 4개의 RCA 입력이 제공된다. 심플한 외관은 매우 고급스럽고 또 질리지 않는다. 만일 리스닝 룸에 설치하면, 단박에 시선을 끌어모을 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할 것이다.

본 기의 입력단은 순수한 클래스 A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음질 중시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은 ECC82라는 초단관이다. 한편 이것은 드라이브단에도 투입되어, 총 4개의 ECC82가 쓰이고 있다.

출력단은 클래스 AB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즉, 푸시풀 방식인 것이다. 사용된 관은 6550. 이 관은 안정적인 드라이브 능력을 자랑하고, 특별한 착색이 없다. 장르를 가리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진공관을 찾는다고 하면, 추천할 만하다.

여기서 제품명 “포르티노”(Fortino)는 라틴어로 “강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6550을 푸시풀 방식으로 사용해서 강력한 드라이빙 능력을 확보했다고 해석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 음을 들어보면 마치 3극관 싱글처럼 디테일하고 또 감촉이 좋다. 이게 바로 아우리스가 갖고 있는 미학이다.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아름다운 음을 자랑한다. 제품 무게는 약 20Kg 정도. 혼자서 들기에는 좀 무겁지만, 그만큼 트랜스포머라던가 캐패시터, 저항 등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또 우드와 레더의 보기 좋은 컴비네이션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블랙뿐 아니라 화이트 버전도 있어서, 이 또한 선택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나 같으면 흰색이 탐나기는 하다.

본격적인 시청

전술했든 이번에 동원한 큐브 오디오의 마구스와는 정말 궁합이 좋았다. 이전에 다른 스피커로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이번 조합이 제일 좋았다고 본다. 한편 소스기는 W-Core를 동원해서 브라이스턴의 3.14 DAC를 연결했다. 음원은 타이달에서 가져왔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드보르작〈교향곡 9번 1악장〉. 쿠벨릭(지휘)
• 말러〈교향곡 5번 1악장〉사이몬 볼리바르(지휘)
• 다이애나 크롤〈The Look Of Love〉
• 롤링 스톤즈〈Angie〉

Antonín Dvořák, Berliner Philharmoniker, Rafael Kubelik ‎– Aus Der Neuen Welt / From The New World

드보르작부터 보자. 일단 스케일이 광대하다. 풀레인지 한 발에서 나오는 음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 광대한 공간 안에 다양한 악기가 가득 채워져 있다. 6550 푸시풀이 뿜어내는 힘은 과연 믿음직스럽다. 스피커에 터보 엔진을 장착한 듯, 뒤에서 강력하게 밀어준다. 투티에서 압도적으로 뿜어내는 광폭한 음에는 힘과 기백이 가득하다. 하지만 로 레벨에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대목도 정겹다. 특히, 바이올린의 음색은 기품이 있으면서, 매력적이다.

Mahler / Gustavo Dudamel, Simón Bolí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 ‎– Mahler 5

이어서 말러. 연달아 대편성을 듣게 만든다. 여기서도 역시 발군의 다이내믹스와 해상도를 선물하고 있다. 마치 LP를 듣는 듯, 음 자체가 두툼하면서 골격이 튼튼하다. 그렇다고 빅 마우스라는 뜻은 아니다. 호방하면서, 장대하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묘사할 때 필요한 뭔가 에로틱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세기말의 탐미주의와 통하는 바도 있다. 워낙 매칭이 좋아, 거의 넋을 잃고 듣게 만든다.

Diana Krall - The Look Of Love
The Look Of Love

다이애나 크롤의 노래는 익히 들었다. 여기서도 스케일, 포지셔닝, 음색 등에서 하등 흠잡을 데가 없다. 목소리는 촉촉하면서 호소력이 높고, 존재감도 탁월하다. 바로 요 앞에서 노래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리듬감이 탁월하다. 바닥을 치는 킥 드럼과 신명 난 심벌즈 레가토. 전 대역이 고르게, 정확한 시간 축을 갖고 움직인다. 피아노 솔로는 거의 백미.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포착된다.

The Rolling Stones - Angie
Angie

마지막으로 롤링 스톤즈. 중앙에 보컬이 포진한 가운데, 오른쪽에 피아노, 왼쪽에 어쿠스틱 기타라는 기본 편성이 정확하게 포착된다. 보컬은 기운이 넘치며, 약간 달콤한 느낌도 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연주가 시작될 때, 아련한 스트링스의 움직임이 더욱 멜랑꼴리한 기운을 자극한다. 대역이 넓고, 무대도 크며, 각 악기들의 포지션도 명료하다. 정교 치밀하게 재생하면서도 록 특유의 활력을 잃지 않는다. 매우 인상적인 퍼포먼스다.

결론

만듦새, 퍼포먼스, 퀄리티 등 여러 면에서 포르티노 6550은 잘 만들어진 진공관 인티 앰프다. 가격적인 메리트도 상당하다고 본다. 일부 애호가들은 세르비아라는 태생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제품의 만듦새나 음 매무새를 경험하면, 전혀 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해상도, 다이내믹스 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면서도, 진공관 앰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럭셔리한 감촉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본 기의 미덕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