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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텔(Rotel)이 지난해 설립 60주년을 맞아 미치(Michi)를 부활시킨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1993년에 선보인 플래그십 미치 시리즈는 1999년 단종될 때까지 수많은 팬들을 양산시키며 소위 ‘어워드 위닝’ 제품이 되었다.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돼온 로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회심의 역작이었던 셈. ‘길’이라는 뜻 그대로 미치 앰프는 하이엔드로 가는 로텔의 하이웨이였다. 

왼쪽부터 로텔 Michi P5 프리앰프, S5 스테레오 파워앰프

로텔 Michi M8 모노블록 파워앰프

왼쪽부터 로텔 Michi X5 인티앰프, X3 인티앰프

부활한 미치는 현재 5개 제품이 포진해있다. 프리앰프 P5, 스테레오 파워앰프 S5, 모노블럭 파워앰프 M8, 그리고 인티앰프 X3, X5다. 플래그십인 만큼 가격대와 디자인적 완성도 역시 기존 로텔 상위 제품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중 X5를 집중해서 들어봤다. 덩치도 크고 무게도 43.8kg이나 나가는 거구의 인티앰프다. 출력은 8옴에서 350W, 4옴에서 600W다. 

로텔과 오리지널 미치 시리즈 

왼쪽부터 로텔의 설립자 토모키 타치카(Tomoki Tachikawa)와, 현 CEO 피터 카오(Peter Kao)

로텔은 1961년 대만인 토모키 타치카와(Tomoki Tachikawa)가 일본 도쿄에 설립했다. 토모키 타치카와는 일본에서 유학하다 1950년대 초 오디오 업계에 뛰어들며 일본에 정착했다. 로텔은 이후 그의 아들 밥 타치카와(Bob Tachikawa)를 거쳐 밥의 조카 피터 카오(Peter Kao)가 현 CEO로 일하고 있다. 공장은 중국 주해(Zhuhai)에 있다.

로텔은 1960년대에는 주로 타 브랜드에 완성품을 공급하는 OEM 제작사였고, 70년대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자사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73년에는 컨슈머리포트로부터 리시버 RX-402가 ‘베스트 바이’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최종 경합을 벌였던 두 제품도 로텔이 OEM한 모델이었던 만큼 로텔의 기술력은 이미 초창기에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에는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자’(Back-to-basics Product Plan)라는 로텔의 설계 이념이 완성됐다. 핵심은 1) 좋은 소리는 웰메이드 엔지니어링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값비싼 부품 투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2) 그렇다고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부품만 사용해서는 성능과 음질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로텔이 부품 선별과 회로 구성, 자체 품질관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로텔 제품에 투입되는 부품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포머를 자사 공장에서 일일이 제작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산 슬릿 포일(Slit Foil) 전해 커패시터, 일본산 루비콘(Rubycon) 전해 커패시터, 영국 웨일스산 LCR 폴리스티렌 커패시터, 영국산 메탈필름 저항, 미국산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s)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IC 등을 선별해 사용한다. 
 
최단 경로, 그리고 좌우대칭으로 회로를 짜는 것도 특징. 물론 각각 음악 신호의 미세한 뉘앙스 손실 방지와, 정교한 이미지 및 사운드스테이지 구축을 위해서다. 로텔의 모든 클래스AB 앰프가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트랜스에 들어가는 코일이 음질을 저하시킨다고 봤기 때문이다. 로텔은 또한 자사 공장에 표면실장(Surface Mount) 전용설비를 갖춘 몇 안 되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위에서부터 RHQ-10 포노스테이지, RHC-10 패시브 프리앰프, RHB-10 스테레오 파워앰프

미치(Michi) 시리즈는 1993년에 등장했다. 그때까지 로텔이 쌓아온 기술력과 음질 튜닝 능력을 선별한 최고의 부품과 검증된 회로에 담은 플래그십 패키지였다. 실제로 이때 나온 미치 시리즈를 보면 1990년대 제품이 맞나 싶을 만큼 세련된 디자인과 압도적인 물량 투입에 깜짝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 클래스AB 증폭으로 8옴에서 200W, 4옴에서 330W를 내는 파워앰프 RHB-10은 1000kVA 전원 트랜스 2개, 총 정전용량 8만 8000uF 파워 커패시터 4개, 6N 순동 배선, 듀얼 모노 디자인, 산켄(Sanken) 바이폴라 트랜지스터의 달링턴 출력단 구성 등 진격의 물량과 정통 회로 구성이 돋보인다. 섀시 양 사이드에 붙은 나무 패널 역시 미치 시리즈의 강렬한 상징이다. 

오리지널 미치 모델은 다음과 같다. 

• RHB-10 스테레오 파워앰프 : 애칭 ‘코코로’(Kokoro. 심장). 8옴 200W, 4옴 330W
• RHC-10 패시브 프리앰프 : 애칭 ‘타쿠미’(Takumi. 장인). 입력 레벨 어테뉴에이터
• RHQ-10 포노스테이지 : 애칭 ‘시’(Shih. 시). MM/MC 포노스테이지

미치 시리즈는 이후에도 소출력 파워앰프 RHB-5, FM 튜너 RHT-10, CD 플레이어 RHCD-10 등 다섯 모델이 더 나왔고, 1999년에 단종됐다. 이후 바통은 2000년에 등장한 로텔의 10 시리즈가 넘겨받았다. 

미치 X5 집중탐구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처음 실물을 본 미치 X5는 크고 육중했다. 알루미늄 섀시의 가로폭은 485mm로 풀사이즈이고, 높이는 195mm, 안길이는 452mm에 달한다. 무게는 43.8kg. 강화유리가 붙은 전면에는 TFT 표시창을 가운데에 두고 왼쪽에 입력 선택 노브, 오른쪽에 볼륨 노브와 6.3mm 헤드폰 잭이 있고, 후면에는 로듐 도금 바이와이어링 스피커 커넥터를 비롯해 각종 입출력 단자가 가득하다. 근사한 메탈 재질의 리모컨도 제공된다. 

X5는 기본적으로 클래스AB 증폭, 푸시풀 구동으로 8옴에서 350W, 4옴에서 600W를 내는 솔리드 인티앰프다. 아날로그 라인 입력(XLR, RCA) 뿐만 아니라 디지털 입력(광, 동축, USB)도 가능하다. AKM의 32비트 AK4495SEQ 칩을 장착해서 최대 32비트/384kHz PCM, DSD128 음원까지 재생할 수 있다. USB 입력 시에는 MQA 음원도 풀로 재생할 수 있다. 또한 MM/MC 포노스테이지와 헤드폰 앰프를 갖췄고, 블루투스(aptX)도 된다. 베이스 및 트레블 톤 컨트롤도 할 수 있다. 

일단 유저 인터페이스와 스펙부터 정리해봤다. 

• 아날로그 입력 : XRL 1조, RCA 4조, 포노 1조, 프리아웃 1조, 모노서브 아웃 2개
• 디지털 입력 : 광 3(24/192), 동축 3(24/192), USB-B(32/384, DSD128), USB-A(메모리 플레이어 재생 및 충전용), RJ45(소프트웨어 업데이트용)
• 스피커케이블 커넥터 : 좌우채널 각각 2조(바이와이어링 지원)

아날로그 입력 감도는 RCA가 380mV, XLR이 580mV, MM 카트리지 입력이 5.7mV, MC 카트리지 입력이 0.57mV다. 아날로그 입력 임피던스는 RCA/XLR 모두 100k옴, MM 입력이 47k옴, MC 입력이 100옴이다. 톤 컨트롤은 베이스(저역)는 100Hz에서 -10~+10dB, 트레블(고역)은 10kHz에서 -10~+10dB 사이에서 조절할 수 있다. 이는 표준 RIAA가 아닌 다른 EQ 커브 LP 재생 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이 밖에 전고조파왜율(THD)은 0.009% 미만, 인터모듈레이션 왜율(IMD)은 0.03% 미만, 댐핑팩터는 8옴 기준 350을 보인다. 따라서 출력 임피던스는 최소 0.02옴 미만일 것으로 짐작된다. 라인 레벨 입력 시 주파수응답특성은 -0.6/0dB 기준 10Hz~100kHz, 신호대잡음비(SNR)는 102dB를 보인다.

내부를 보면, X5의 실체를 좀 더 자세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일단 가운데에 ‘MICHI’라고 쓰인 네모난 박스가 채널별로 1개씩 보이는데 이 안에 로텔이 직접 감은 1.525kVA 용량의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가 들어가 있다. 그 뒤에 자리 잡은 커다란 슬릿 포일 전해 커패시터 4개는 평활(soothing) 및 정전(storaging) 역할. 총 정전용량은 8만 8000 uF이다. 

그 뒤 기판은 입력 및 전압 증폭, 양 사이드 기판은 전력 증폭(출력단)을 담당한다. 전압 증폭은 버브라운의 OPA1641 OP 앰프가 담당하며, 출력단에는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채널당 6페어씩 투입돼 푸시풀 구동한다. 산켄(Sanken)의 MN 1526 NPN 바이폴라 트랜지스터와 MP 1526 PNP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페어를 이룬다. 볼륨은 뉴저팬라디오의 디지털 볼륨칩 MUSES 72320을 써서 0.25dB씩 작동한다. 

시청

로텔의 미치 X5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린의 Selekt DSM(XLR 출력), 스피커로 골든이어의 Triton Reference를 동원했다. 트라이톤 레퍼런스 스피커는 공칭 임피던스 8옴, 감도 93.25dB를 보이며 1800W 클래스D 앰프로 작동하는 3개의 서브우퍼가 포함됐다. 음원은 룬으로 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Jack Johnson - Staple It Together
In Between Dreams

일단 음이 얇거나 묽지 않아서 좋다. 물론 트라이톤 레퍼런스가 액티브 서브우퍼 3발을 갖고 있긴 하지만 다른 유닛들이 제대로 울리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음의 두께가 잘 느껴진다. 특히 고음역대 음들이 잘 들리는데 이는 배경이 조용하고 무대가 투명한 덕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플랫한 주파수응답특성을 가진 앰프라는 인상. 고운 입자로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담백한 소릿결과 파워풀한 구동력을 전면에 내세운 인티앰프다. 전면 표시창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주파수 스펙트럼도 보는 맛이 쏠쏠하다. 

Drake - One Dance
Views

푸시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8옴 350W 출력은 역시 대단하다. 음 하나하나에 대전류가 흐른다는 인상이 씻어지지 않는다. 음이 묵직하고 날리지 않는 것, 입자가 촘촘해서 휑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스테레오 이미징이 정교한 것을 보면 좌우 채널 분리도도 상당하다. 듀얼 모노 설계의 장점이다.

이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Take The Power Back’을 들어보면 기타 핑거링에 잔뜩 힘이 들어갔고 보컬 목소리의 음끝은 충분히 매끄럽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
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이 곡 특유의 강건하고 스트레이트하게 음들을 몰고 가는 기백과 기세가 제대로 전해진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것이 바로 미치 앰프의 기본 성향이 아닐까 싶다.

이 가격대 인티앰프에서 이 정도로 쇼스타코비치 5번을 수월하게 드라이빙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음의 정보량이 쏟아져 들어올 때도 허둥지둥하는 그런 앰프도 아니다. 4악장 3분 20초 무렵의 팀파니 연타 대목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Anne-Sofie Von Otter - Baby Plays Around
For The Stars

지금까지 센 곡들과 대편성곡만 체크하다 여성 보컬 곡을 들어서였을까.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목소리가 이날따라 봄날 꽃향기처럼 달콤하다. 디테일, 투명도, 배음, 여기에 무대가 갑갑하다는 느낌도 없다. 목소리의 온기도 잘 전해진다.

이어 야신타의 ‘Moon River’를 들어보면 칠흑 배경에서 훅 불어오는 그녀의 호흡이 아찔하다. 피아노 오른손 타건음에서는 한 치의 색 번짐도 없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강처럼 맑고 투명하며 깨끗하다. 

Kronos Quartet - String Quartet No.5
Kronos Quartet Performs Philip Glass

미치 X5를 그림에 비유하면 물감도 많고 팔레트도 깨끗한 그런 상태다. 캔버스에 칠해진 색이 저마다 선도가 높다. 현악기의 풍성한 배음, 사골을 우려낸 듯한 악기들이 통울림, 결과적으로 마치 싱글 구동의 3극 진공관 앰프를 듣는 것 같다.

이는 X5 전압 증폭단에 투입돼 클래스A로 작동하고 THD+N이 0.00005%에 불과한 OP 앰프 덕분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곡을 안 들어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고 크로스토크는 적은, 그야말로 앰프 기본에 충실한 미치 X5다. 

총평

내부를 보기가 즐거운 앰프가 있다. 회로가 분명하고, 투입 부품도 확실해서 앞으로 그려질 음이 쉽게 연상되는 그런 앰프다. 여기에 전원부까지 좌우 대칭, 듀얼 모노라면 그 입체적인 무대와 핀 포인트로 맺히는 정교한 악기들의 모습까지 예상할 수 있다. 두터운 섀시와 육중한 무게는 일종의 흥행 보증수표다. 

이번에 만난 미치 X5가 그러했다. 로텔 기존 제품들의 경우, 내부를 보고 소리를 들어보면 ‘가성비’에 저절로 엄지 척이 됐는데, 이번 미치 X5는 ‘가격 대비’ 이런 단서를 달지 않고도 누구나 인정할 만한 소릿결과 구동력을 과시했다. 환골탈태한 겉모습도 멋지다. 맞다. X5는 로텔이 작정하고 준비한 ‘미치 매직’인 것이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