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노르웨이, 피요르드로부터

처음 일렉트로콤파니에를 만난 것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색창연한 클래스 A 증폭 앰프로부터였다. 검은색의 투박한 섀시에 마치 크렐이나 마크 레빈슨의 1980년대 제품들을 꿈꾸며 만들었을 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음질은 그 결이 달랐다. 투박한 모양새와 달리 전혀 건조하지 않고 매끈했으며 푸르스름한 물결이 음표에 흘러내렸다. 이런 리퀴드 사운드에 고운 입자감의 고급스러운 소리를 이런 형편없는 섀시에 숨겨놓다니!

이후에 만난 일렉트로콤파니에는 소리에 어울리는 멋진 섀시 안에 회로를 담아 나오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에 이런 보석 같은 브랜드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다. 그들의 능력은 가정용 오디오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인정받았다. 1990년대 마이클 잭슨의 [History], [Invincible] 등의 앨범 크레딧에서 일렉트로콤파니에 이름을 볼 수 있었고 여기엔 일렉트로콤파니에의 Per Abrahamsen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었다. 명문 탐페레 공대 교수 Matti Otala 박사가 고안한 TIM(Transient Inter Modulation) 기술을 적용한 일렉트로콤파니에 앰프를 마이클 잭슨 앨범 제작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노르웨이 피오르 계곡으로 유명한 스타방에르 외곽의 타우 지역에 위치한 일렉트로콤파니에는 2007년부터 새로운 소유주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지 시작했다. 새로운 소유주는 전자 제품 관련 연구, 조립, 생산 기지인 웨스트콘트롤을 운영하고 있었고 일렉트로콤파니에는 바로 이곳의 플랫폼을 통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시작해 프로토타입 제작 등에서 힘을 얻은 일렉트로콤파니에는 라인업 확장에 나서며 레퍼런스급 분리형 제품은 물론 디지털 영역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새로운 물결

일렉트로콤파니에가 새로운 제품군을 만들기 시작한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마도 DAC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유니버설 블루레이 플레이어,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이었다. 무척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아날로그 회로 위주의 제품만 생산했고 디지털 관련 라인업은 시디피에 불과했던 그들을 보는 시선이 변화하기 시작한 계기다. 아마도 이 시절 일렉트로 콤파니에는 노르웨이의 네임오디오 같은 브랜드가 되려는 것 같았다. 전통적 라인업을 뒤로하고 유니티 시리즈를 필두로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전격 도입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흔치 않게 요즘에도 탑로딩 방식의 레퍼런스급 시디피를 생산하고 있지만 한 편에선 ECM 1 같은 스트리밍 DAC를 출시 후 MKII로 진화시켜나갔다. 한 술 더 떠서 EC Living 라인업을 통해 무선 스트리밍 앰프 및 무선 스피커 등 이전 일렉트로콤파니에 브랜드에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군을 속속 출시해냈다. 노르웨이 하이파이 오디오의 새로운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앰프 ECI 6 DX MKII

본격적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랫폼을 만들어 제품군을 출시한 일렉트로콤파니에는 두 번째 스텝을 밟아나갔다. 바로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장 적용이다. 마치 최근 BluOS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블루사운드는 물론이며 NAD, 사이러스 같은 브랜드가 파트너십을 통해 확장하듯 말이다. 하지만 일렉트로콤파니에는 제 3 지대의 회사와 협업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적인 플랫폼을 만들고 리모트 앱까지 배포 중이다. 그리고 하드웨어는 인티앰프에 스트리밍 보드 탑재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ECI 6 MKII 라는 인티앰프에 디지털 입력단 및 네트워크 스티리밍 보드를 탑재한 ECI 6 DX MKII다.

긴 이름만큼이나 이 제품은 기존 ECI 6 인티앰프에 더해 다양한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제품의 본령은 누가 뭐래도 인티앰프 기반이다. 이 제품은 ECI 6가 뿌리로서 ECI 6에 디지털 입력단이 추가된 모델인 ECI 6D며 여기서 더 나아가 네트워크 스트리밍 모듈이 추가되면 ECI 6 DX가 된다. 후면을 보면 RCA 입력 세 조가 마련되어 있고 그중 하나는 HT, 즉 AV 리시버와 연동시켜 프로트 재널 파워로 활용할 수 있는 바이패스 입력단이다. 더불어 XLR 입력단도 한 조 마련해놓고 있다. 출력 또한 갖추고 있는데 RCA 및 XLR 각 한 조씩 지원하므로 별도의 파워앰프와 혼용 가능하다.

내부는 일렉트로콤파니에서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순수 클래스 AB 증폭 앰프의 회로가 그대로 설계되어 있다. 전면에 커다란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사용하고 있으며 500VA 대용량이다. 더불어 80,000㎌ 규모의 커패시터 뱅크를 마련해 언제든 충분한 전류를 가져다 쓸 수 있는 저수지를 마련해놓았다. 출력단은 좌측에 별도로 몰아넣은 모습으로 채널당 네 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다. 아마도 바이폴라로 보이며 푸쉬풀 증폭 설계로 보인다. 방열판을 내부에 설계해놓아 겉으로 노출시키지 않으므로 외부는 깔끔한 편이다.

이 앰프의 출력은 8옴 기준 125와트, 4옴에선 200와트다. 더불어 2옴에서 370와트까지 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꽤 선정적인 앰프다. 더불어 클래스 AB 증폭이지만 음질적인 이득을 위해 입력단은 디스크리트 클래스 A 방식 설계를 적용하고 있는 모습. 그뿐만 아니라 피드백도 출력단에서 아주 약간만 걸어주는 방식으로 음질적으로 어느 정도 예상되는 특성들이 설계에 숨어 있다. THD+D는 0.004%, 채널 분리도는 120dB, 프리앰프 노이즈 플로어가 –135dB 정도로 꽤 우수한 특성을 가진 앰프다.

다음으로 최근 오디오파일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디지털 입력단은 우선 SPDIF 동축, 광 입력단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PCM 24/192까지 입력, 처리 가능하다. 더불어 사용 빈도가 높은 USB의 경우엔 비동기 방식 설계며 역시 24/192까지 지원한다. 대응 포맷은 WAV부터 FLAC, ALAC, APE 등 무손실 압축 포맷부터 AAC, MP3 등 손실 압축 포맷까지 다양하다.

다음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 부문은 최근 플레이어들의 요구 조건에 거의 모두 부합한다. 블루투스, 에어플레이 2는 물론이며, DLNA도 당연히 대응한다. 타이달, 코부즈는 물론이며 타이달 커넥트 및 스포티파이 커넥트 등에 모두 대응하므로 회원이라면 다양한 전 세계 고음질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이 외에 외부 USB 스토리지를 연결 활용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 제품을 요약하자면 이른바 ‘스트리밍 앰프’다. 하지만 많은 스트리밍 앰프들이 풀 디지털 혹은 클래스 D, 하이브리드 디지털 앰프를 표방하고 있는 현재 굳건히 클래스 AB 증폭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되레 돋보인다.

셋업 & 청음

시청은 아발론 Precision Monitor 2를 사용해 진행했다. 이 외에 음원 재생은 ROON의 누클리어스에 담긴 음원을 활용했고 ROON을 통해 재생했다. 일렉트로콤파니에 자체 앱을 통해서도 재생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필자에게 익숙한 ROON이 편했다. 케이블은 텔루륨 Q를 사용했고 종종 방문하는 청담동 하이파이클럽 1 시청실에서 청취했다.

나윤선 - Eraly Rain
Lento

첫 음부터 윤기가 흐르는 음결이 음악 전체를 지배한다. 기본적으로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ECI6의 음질을 기반으로 하지만 여기에 자체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사용해 더욱더 그들의 음질 특성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스튜디오 모니터처럼 정직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착색이 심하진 않다.

악기와 보컬 특징을 명확히 손에 잡힐 듯 표현해 주는데 예를 들어 나윤선의 ‘Eraly Rain’을 들어보면 충만한 밀도감과 적당한 음상의 크기로 인해 부드러우면서도 명료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심하게 당겨지지 않은 적당한 탄력이 기분 좋다.

Fausto Mesolella
Live At Alcatraz

평균적으로 맑은 사운드지만 조금은 자신의 빛깔을 녹여놓은 소리다. 예를 들어 파우스토 메소렐라의 라이브 실황을 들어보면 작은 홀의 잔향 특성이 충분하게 펼쳐지며 건조하지 않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너무 냉정하거나 차디찬 청정수 같은 소리가 아니라 온기가 일정 부분 스며들어 있어 순간적인 짜릿함보단 친근한 느낌으로 장시간 시청에도 피로감이 적은 편이다. 아마 최신 기기들의 너무 밝은 토널 밸런스에 익숙해졌다면 약간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덕분에 차분하면서도 고해상도를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표면 텍스처가 곱고 푸르스름한 광채가 흐른다. 이런 능력은 아마도 피드백과 특유의 튜닝 덕분인 듯한데 끈기, 찰기가 느껴지는 소리다. 덕분에 여러 악기들이 뭔가 달콤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The Chemical Brothers - Das Spiegel
We Are The Night

케미컬 브라더스의 ‘Das Spiegel’ 같은 강력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녹음에서 이 앰프는 아발론 스피커의 우퍼 두 발을 휘어잡는다. 그 양을 부풀리거나 그렇다고 너무 부여잡아 얇게 압축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야무지게 제어하면서 탄력감 등 물리적 움직임과 다이내믹스 폭을 그대로 유지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쿠션이 좋은 저역이다. 좀 더 펀치력이 컸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지만 그럼 음악적 뉘앙스를 헤칠까 염려된다. 아주 절묘한 저역과 스피드, 리듬감이 이 자극적인 음악을 좀 더 길게 듣게 해주었다.

Carlos Kalmar, The Oregon Symphony
Aaron Copland: Symphony No. 3
Molto Deliberato (Fanfare) - Allegro Risoluto
Spirit Of The American Range

함께 매칭한 아발론 스피커는 3D 홀로그래픽 음장 구현 능력이 탁월한 스피커다. 그리고 여기에 일렉트로콤파니에는 달콤한 중고역과 풍부한 중역 디테일을 얹는다. 어떤 면에선 상호 보완적 매칭이라고 볼 수 있다.

칼마르 지휘, 오레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어본 아론 코플랜드 교향곡 3번, 4악장에선 거대한 스케일을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 준다. 자칫 저역에 서 딜레이, 부스트 될 수 있는 구간에서도 넉살 좋게 헤쳐 나가는 노련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첨예한 고해상도의 짜릿함보단 확실히 텍스처 표현에 능한 사운드를 보여주었다.

총평

1972년 이래 일렉트로콤파니에는 노르웨이 하이파이 오디오를 선두에서 이끈 브랜드다. 그리고 현재도 그들은 노르웨이 현지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능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이는 2천 년대 후반부터 충분한 투자와 함께 커다란 공장과 자동화 공정의 혜택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일부는 인공지능으로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영국의 B&W 등 유수의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 같은 첨단 생산 공정을 갖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이전 트렌드에 뒤처져 있었던 디지털 관련 연구, 개발에 속도를 붙이면서 ECI 6 같은 인티앰프를 스트리밍 앰프로 재탄생시켰다. 자체 앱은 좀 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DAC를 내장한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내장한 ECI 6는 이제 ECI 6 DX MKII까지 진화하면서 특유의 음악성에 확실히 디지털 트렌드까지 등에 업은 모습이다. 본 작은 스트리밍 진영으로 진입한 노르웨이의 자존심 일렉트로콤파니에의 쾌작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