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Watton Audio

2020년 스위스 엔지니어드 SA(Engineered SA)에서 왓슨오디오(Wattson Audio)라는 브랜드를 출범시켰을 때 필자는 강호에 단독으로 출격한 무림고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동안 소울루션(Soulution)이나 CH 프리시전(CH Precision) 같은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에 네트워크 스트리밍 모듈을 공급하던 은둔의 고수가 마침내 직접 무림에 나선 것이다.

티에리 히브(Thierry Heeb)

필자가 이처럼 왓슨오디오에 주목한 것은 엔지니어드 SA의 화려한 이력 때문이다. 티에리 히브(Thierry Heeb)라는 이름을 들어봤는가? 훗날 플로리안 코시(Florian Cossy)와 함께 CH 프리시전을 설립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이 사람이 1998년 스위스 제네바에 애너그램(Anergram)이라는 디지털 오디오 전문 업체를 설립했다.

애너그램이 만든 ATF 24비트, 192kHz 업샘플링 모듈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다. 소울루션을 비롯해 오디오에어로(Audio Aero), 린데만(Lindemann), 나그라(Nagra) 등 스위스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채택했을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은 것이다.

애너그램은 이후 자신들이 개발한 DSP, 디지털 엔진, 앰프 모듈의 성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2001년에 오르페우스(Orpheus), 2005년에 ABC PCB를 설립했고, ABC PCB에는 새 엔지니어 알렉상드르 라방시(Alexandre Lavanchy)가 합류했다. 그리고 티에리 히브는 2008년에 따로 CH 프리시전을 설립했고, ABC PCB는 2015년 회사 이름을 현행 엔지니어드 SA로 바꿨다.

결국 애너그램, 오르페우스, ABC PCB, 엔지니어드 SA로 이어져온 셈인데, ABC PCB에서 만든 네트워크 스트리밍 모듈 MR-MOD는 CH 프리시전의 스트리밍 DAC C1에, 엔지니어드 SA에서 만든 2세대 스트리밍 모듈 eR-MOD V1은 다시 C1에 교체 투입됐다. 2세대 모듈은 또한 소울루션의 스트리밍 인티앰프 330에도 투입됐다.

왓슨오디오는 이런 역사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엔지니어드 SA가 2020년에 출범시킨 독자 브랜드이다. 타깃은 이들의 주력인 네트워크 플레이어이고, 첫 제품이 바로 이번에 살펴볼 에머슨 디지털과 에머슨 아날로그이다. 그리고 에머슨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핵심은 CH 프리시전 C1과 소울루션 330에도 사용되고 있는 eR-MOD V1 스트리밍 모듈이 되겠다.

Emerson Digital & Analog 본격탐구

에머슨 디지털

에머슨 아날로그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다. 쌍둥이처럼 닮은 에머슨 디지털과 에머슨 아날로그는 초소형 네트워크 플레이어이다. 무게가 400g이 안 된다. 두 모델 모두 입력단은 이더넷 단자뿐이고, 출력단은 에머슨 디지털이 동축과 AES/EBU, 에머슨 아날로그가 RCA 1조이다. 짐작하셨듯이, 에머슨 아날로그에는 스트리밍 디지털 음원을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DAC이 내장됐으며 그 중심에는 시러스 로직의 WM8742 칩이 자리 잡고 있다.

두 모델 모두 네트워크 플레이어인 만큼 UPnP/DLNA, 에어플레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룬(Roon) 프로토콜 RAAT를 지원한다. 따라서 동일 네트워크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그리고 스포티파이나 벅스 같은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룬의 경우 직접 테스트를 해보니 룬 레디(Roon Ready) 인증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펙을 보면, 에머슨 디지털은 최대 24비트/192kHz PCM 음원을 지원하고, 에머슨 아날로그는 PCM은 24비트/384kHz까지, DSD는 DSD64만 지원한다. 같은 eR-MOD V1 모듈을 쓰는데도 스펙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동축과 AES/EBU 디지털 출력의 한계 때문이다.

이 밖에 에머슨 디지털의 출력 임피던스는 동축이 75옴, AES/EBU가 110옴이며, 에머슨 아날로그의 출력 전압은 rms 기준 2V를 보인다. 두 모델 모두 DC 5V 전원은 기본 제공되는 의료 등급 어댑터를 통해 얻는데, 워낙 초소형 모델이다 보니 아무리 쉴딩 대책을 잘 세워도 전원부를 본체 안에 집어넣기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에머슨 디지털, 아날로그 내부

내부를 보면 붉은 오디오 보드 상단에 역시 붉은색의 작은 PCB가 또 하나 얹혀있는데 이 작은 기판이 바로 eR-MOD, 스트리밍 모듈이다. 자세히 보면 네트워크 렌더링을 위한 CPU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Sitara 프로세서, 512메가 DDR3 칩, 16기가 메모리, 그리고 이더넷 신호 송수신을 위한 트랜시버 칩 등이 보인다. 1세대에 비해 스트리밍 음원 처리의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하는데, 이는 CPU 업그레이드와 훨씬 커진 메모리 용량 덕분으로 보인다.

이 밖에 에머슨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44.1kHz와 48kHz 계열 음원에 각각 대응하는 2개의 디지털 클럭을 마련했고, 동축과 AES/EBU 출력단 모두에 트랜스포머를 마련해 커먼모드 노이즈가 뒷단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은 점이 눈길을 끈다.

시청

그러면 가장 궁금한 소리는 어떨까? 시청에는 독일 MBL의 CD 플레이어 DAC C31과 인티앰프 C51, 무지향 스피커 126을 동원했다. 먼저 룬 코부즈 음원을 이용해 Arne Domnerus 의 High Life를 에머슨 아날로그로 들어보면, 색번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음이 흘러나온다. 음들 하나하나를 타이트하게 조여주는 점이 인상적인데, DAC까지 내장한 룬 네트워크 플레이어로서는 정말 놀라운 가성비가 아닐 수 없다.

이어 에머슨 디지털에 DAC 조합으로 들어보면, 아무래도 DAC 성능이 반영된 덕분에 에너지감과 리듬감, 무대의 투명도 등이 보다 늘어난다. 당연한 얘기지만, 웰메이드 DAC이 있으면 에머슨 디지털을, 웰메이드 앰프만 있다면 에머슨 아날로그를 구매하면 될 것 같다. 어느 경우든 초간단 하이 퀄리티 스트리밍 시스템이 완성된다.

Anne-Sofie Von Otter - Baby Plays Around
For the Stars

Anne-Sofie Von Otter 가 부른 Baby Plays Around를 에머슨 아날로그로 들어보면, 따뜻하고 차분하며 조용하고 깨끗한 음이 술술 흘러나온다. 스트리밍과 디지털 음원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어 에머슨 디지털과 DAC 조합으로 바꿔보면, 역시 소릿결이 보다 매끄럽고 해상력이 늘어난다. 시각을 달리하면, 기존 갖고 계신 DAC에 에머슨 디지털을 붙여주면, 곧바로 룬 스트리밍이라는 새 날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라고 엔지니어드 SA가 왓슨오디오를 출범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Gilbert Kaplan, Weiner Philharmoniker
Mahler: Symphony No.2

Gilbert Kaplan이 Wiener Philharmoniker를 지휘한 Mahler Symphony No.2를 들어보면 이렇게나 또렷하고 선명한 스트리밍 음원을 아날로그 앰프에 던져주는 에머슨 아날로그의 솜씨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 컴팩트한 사이즈에서 이 정도의 고퀄 사운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이어 에머슨 디지털 조합으로 바꿔보면, 한 음 한 음을 보다 분명히 내주며, 총주에서 팍 터뜨려주는 맛도 크게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Nils Lofgren - Keith Don't Go
ACOUSTIC LIVE

이 밖에 Nils Lofgren의 Keith Don’t Go를 에머슨 디지털로 들어보면, 얼어붙은 대지에 봄비가 내린 듯 촉촉한 소릿결이 일품인데, 왜 그 비싼 소울루션 330 인티앰프나 CH 프리시전 C1 DAC이 eR-MOD 스트리밍 보드를 채택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총평

정리해 보면, 인티앰프 유저가 간편하게 스트리밍 음원을 즐기고 싶다면 에머슨 아날로그,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내 양질의 DAC까지 갖춘 유저라면 에머슨 디지털이 정답이라고 하겠다. 직접 소리를 들어본 결과, 에머슨 아날로그와 에머슨 디지털 모두 스트리밍과 디지털 음원에 대한 가성비 만점의 솔루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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