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시대를 관통한 스피커의 아이콘
JBL L100 Classic 75

김편 2022-04-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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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과 4310, L100 Century, 쿼드렉스 폼 그릴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1969년, 이색적인 그릴을 단 스피커가 미국 JBL에서 출시됐다. 무엇보다 격자 모양의 폭신폭신한 폼(foam)으로 이뤄진 그릴이 특이했는데, 그릴의 색상마저 블루와 오렌지여서 이 스피커에 대한 시각적 충격은 더 컸다. 그릴의 이름은 쿼드렉스 폼(Quadrex foam), 스피커 이름은 L100 Century였다.

왼쪽부터 JBL L100 Century, 4310, L100 Century A 스피커

L100 Century 모델이 이처럼 파격적인 그릴을 채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L100 Century는 한 해 전 출시된 프로용 모니터 스피커 4310의 홈 오디오 버전인데, 4310과의 차별화를 위해 일종의 스펀지로 된 쿼드렉스 폼 그릴을 부착한 것이다. 1.4인치 페이퍼 트위터, 5인치 페이퍼 미드레인지, 12인치 페이퍼 우퍼로 이뤄진 유닛 구성은 두 모델 모두 동일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4년, 이번에는 L100 Century A 모델이 나왔다. 3개 유닛과 쿼드렉스 폼 그릴은 동일했지만 유닛 배치 등이 달라졌다. 전작이 3개 유닛을 일렬종대로 반듯하게 배치한 데 비해, L100 Century A는 위에 미드레인지(왼쪽)와 트위터(오른쪽), 아래에 우퍼를 달았다. 크로스오버도 전작 2500Hz, 7.5kHz에서 1500Hz, 6kHz로 바뀌었다.


L100 Classic, L100 Classic 75의 탄생

JBL L100 Classic 스피커

오리지널 L100 Century 출시를 기준으로 꼭 50년이 흐른 2019년, 현행 모델인 L100 Classic이 나왔다. 모델명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듯, L100 Century와 L100 Century A 모델을 리메이크한 스피커로, 12인치 우퍼, 쿼드렉스 폼 그릴, 그리고 중역/고역 어테뉴에이터와 전면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라는 시그니처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달라진 것도 많았다. 유닛의 경우, 트위터는 1인치 티타늄 돔으로, 미드레인지는 5.25인치 폴리머 코팅 펄프 콘으로, 우퍼는 12인치 퓨어 펄프 콘으로 바뀌었다. 크로스오버 역시 450Hz, 3.5kHz로 바뀌면서 마침내 우퍼가 네트워크 회로의 영향을 받게 됐다. 이전 L100 Century 버전에서 우퍼는 사실상 앰프와 직결, 저역 상한이 자연스럽게 롤오프됐던 것이다. 

그리고 JBL 설립 75주년을 맞은 2021년, 750조 한정 생산 모델이자 이번 시청기인  L100 Classic 75가 나왔다. 유닛과 크로스오버는 L100 Classic과 동일하지만 우퍼 서스페션 구조를 바꾸고 인클로저 마감을 월넛에서 티크로 바꾸는 등 곳곳에서 손질과 업그레이드가 베풀어졌다. 기존 싱글와이어링 바인딩 포스트를 바이와이어링 단자로 바꾼 것도 큰 변화다.


L100 Classic 75 본격 탐구

L100 Classic 75는 기본적으로 3웨이, 3유닛, 베이스 리플렉스, 스탠드 마운트 스피커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90dB, 주파수 응답 특성은 -6dB 기준 40Hz~40kHz이며 크로스오버는 450Hz, 3.5kHz에서 이뤄진다. 스탠드를 포함한 높이는 636.52mm, 가로폭은 389.64mm, 안길이는 371.48mm, 무게는 스피커가 28.6kg, 철제 스탠드가 6.5kg을 보인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처음 실물을 본 L100 Classic 75는 위용이 남달랐다. 전에 리뷰를 했던 L100 Classic 그릴이 파란색이었던 데 비해 검은색이고, 무늬목 역시 보다 짙은 색상인 티크인 데 따른 차이다. 기본 제공 스탠드 위에 스피커를 올려놓은 상태인데 자연스럽게 뒤로 약간 경사가 진다. 유닛 간 타임 얼라인먼트를 위한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릴을 벗겨내니 속살이 훤히 보인다. 맨 왼쪽 위에 중역/고역 음압을 조절할 수 있는 어테뉴에이터가 있고 그 아래에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그 오른쪽 옆에 1인치(25mm) 티타늄 돔 트위터(JT025TI1-4)와 5.25인치(125mm) 폴리머 코팅 펄프 콘 미드레인지(105H-1)가 박혔다. 아래에는 12인치(300mm) 흰색 퓨어 펄프 콘 우퍼(JW300PW-8)가 자태를 뽐낸다. 

사실, 이 12인치 우퍼야말로 JBL의 빛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4310, L100 Century, L100 Classic, L100 Classic 75는 물론, JBL의 또 다른 히트 상품인 4312 시리즈도 12인치 우퍼를 목숨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1982년 오리지널 4312부터 2019년 현행 4312G까지 단 한 번도 12인치 우퍼를 버린 적이 없다. 

그런데 왜 12인치 우퍼 펄프 색깔이 흰색이고 진동판에는 왜 촘촘히 주름이 잡힌 것일까. JBL에 따르면 원래 퓨어 펄프의 색깔은 일부 천연 친환경 화장지에서 볼 수 있는 그레이 옐로우인데, 미관을 위해 색소를 첨가해 흰색이나 보다 일반적인 그레이 블루로 바꿨다고 한다. 

동심원 모양의 주름은 퓨어 펄프나 폴리프로필렌처럼 소프트한 우퍼 진동판이 낮은 주파수에서 흐물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주름이 아니라 일종의 보강재를 마치 갈비뼈처럼 여러 겹 동심원상으로 두른 것이다. 영미권에서 이 주름을 ‘동심원 립’(concentric ribs. 갈비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후면을 보면 금도금 바이와이어링 바인딩 포스트가 있고 그 위에는 엔지니어 이름(Chris Hagen)과 함께 75주년 모델임을 나타내는 명판이 있다. 크리스 하겐은 JBL 및 하만 인터내셔널의 대표 엔지니어로 1988년 데뷔작 L100T3을 비롯해, 2017년 4312SE, 2019년 L100 Classic, 2021년 L100 Classic 75 등을 설계 디자인했다. 

L100 Classic도 마찬가지이지만 L100 Classic 75는 좌우 스피커 유닛 배치가 서로 똑같다. 좌우 대칭 형태가 아니라 미드레인지-트위터 유닛이 두 채널 모두 오른쪽에 장착된 비대칭 형태인 것. 참고로 4312 시리즈 중에서는 1997년에 나온 4312C 모델이 유일한 좌우 비대칭 모델이다(두 채널 모두 왼쪽에 미드, 오른쪽에 트위터). 

끝으로 L100 Classic과 L100 Classic 75의 크로스오버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두 모델 모두 450Hz, 3.5kHz에서 크로스오버가 이뤄지는데, 이는 우퍼를 제외한 다른 유닛이 사실상 트위터-슈퍼 트위터 역할을 했던 오리지널 L100 Century(2.5kHz, 7.5kHz)나 L100 Century A(1.5kHz, 6kHz)와는 크게 달라진 면모다. 리메이크를 하면서 우퍼에도 로우패스 필터를 적용했다는 얘기다. 


L100 Classic vs L100 Classic 75

한정판 L100 Classic 75와 일반판 L100 Classic이 다른 점은 크게 5가지다. 

    •    티크 무늬목
    •    철제 스탠드(JS120) + 블랙 쿼드렉스 폼 그릴 세트
    •    엔지니어 사인이 들어간 75주년 명판
    •    우퍼 서스펜션과 모터 디자인 개선
    •    바이와이어링/바이앰핑 단자 채택 및 네트워크 회로 변경

이 중에서 특별히 살펴볼 것은 우퍼 서스펜션과 모터(보이스코일+마그넷) 디자인으로, L100 Classic이 2개의 얇은 마그넷을 사용한 것과 달리 L100 Classic 75는 한 개의 두터운 마그넷을 사용했다. 안쪽 서스펜션인 스파이더(spider)의 경우 싱글 스파이더(L100 Classic)에서 듀얼 스파이더(L100 Classic 75)로 교체, 홀수차 고조파 왜곡을 줄였다고 한다.


시청

L100 Classic 75 시청에는 매킨토시의 스트리밍 인티앰프 MA9500을 동원했고,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MA9500은 매킨토시의 오토포머 출력트랜스를 채택, 8옴과 4옴에서 모두 300W를 낸다. 앰프와 스피커 연결은 싱글 와이어링으로 했다. 

Fourplay - Tally Ho!
Heartfelt

음이 아주 시원하게 나온다. 음 자체도 탱글탱글하다. 사실, L100 Classic 75 시청 전에 5.25인치 우퍼를 장착한 L52 Classic도 리뷰를 했었는데 역시나 비할 바가 안된다. 해상력이나 기세 등은 놀라웠지만 12인치 우퍼만이 전해줄 수 있는 풍성한 저음의 양감과 가슴을 누르는 음압은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퍼 직경과 인클로저 용적이라는 물리적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다. 

계속해서 음에 집중해 보면 드럼의 펀치감은 물론 드럼 스킨이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까지 제대로 전달된다.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쉐이크와 피아노가 주도한 고음인데 매우 맑고 또렷하다. 무대가 입체적이고 그 앞이 투명하며 체감상 SN비가 높은 것은 기존 JBL 사운드와는 거리가 느껴진 부분. 이것이 바로 신세대 Classic 시리즈의 변모한 사운드로 보인다. 

Bill Evans Trio - Autumn Leaves
Portrait In Jazz

오른쪽의 베이스, 가운데의 피아노, 왼쪽의 드럼이 또렷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음상이 또렷하게 맺힌다는 것인데 이는 우퍼를 기준으로 트위터와 미드가 오프셋(offset)으로 배치된 디자인과 무관하지 않다. 배플이 일으키는 회절과 이로 인한 위상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감탄한 것은 저음의 양과 해상력. 이 곡에서 베이스가 이렇게 잘 들렸었나 싶을 만큼 저음이 잘 나온다. 다른 악기들 역시 전체적으로 똑 부러고 얇지 않은 음을 내주고 있어 악기들 바로 앞에서 실제 연주를 듣는 것 같다. 이 같은 재즈 연주곡을 들어보면 확실히 JBL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음과 무대가 있다. 깔끔하고 조용한 배경은 의외다. 

Norah Jones - Those Sweet Words
Feels Like Home

드럼 소리가 적당히 포만감을 일으킬 만큼 좋다. 노라 존스의 목소리는 온기 가득하고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이는 전적으로 450Hz~3.5kHz를 커버하는 5.25인치 미드레인지가 일등공신이다. 진동판 재질이 기본적으로 펄프인 영향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이어 콜레기움 보칼레의 바흐 B단조 미사 중 ‘Cum Sancto Spiritu’를 들어보면 합창단원들의 목소리 대역이 아주 선명하게 분간된다. 그러면서도 음수가 풍성하고 저역에 힘이 실린 것을 보면 역시 JBL 스피커답다.

Brian Bromberg -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
Wood

오디오파일 음반인 ‘저음왕' 수준으로 저음이 작렬한다. 우드 베이스가 ‘궁~~’ 하면서 밀어내는 현의 떨림소리가 필자의 가슴을 기분 좋게 찔러온다.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이 꽤 큰 공간인데도 이 현의 울림으로 인해 내부 공기가 공진한다는 인상.

이 와중에 피아노와 드럼 소리까지 살뜰히 포착해 내는 것을 보면 웰메이드 3웨이 스피커임이 분명하다. 궤짝 스타일의 인클로저와 12인치 우퍼 사이즈만 보고 음이 예리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셨다가는 큰코다치실 게 뻔하다.

Alice Sara Ott,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 Grieg Piano Concerto in A Minor
Wonderland

이 스피커의 섬세하고 예리한 구석은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에서 다시 한번 도드라졌다. 피아노가 비온 다음날 먼 산 풍경처럼 선명하고, 오케스트라 현악기들은 맑은 음을 계속해서 토해낸다.

12인치 대구경 우퍼가 윗대역을 조금도 가리지 않는다. 장엄한 표정을 짓다가도 다른 악기가 등장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준다는 인상. 이것이 바로 스피커 명문가의 튜닝 솜씨일 것이다. 음이 아주 고운 스타일은 아니지만 곡이 끝날 때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꼿꼿한 자세로 음악을 연주하는 그런 스피커다.


총평

‘볼륨을 높일 수 없다면 JBL은 결코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예전 평소보다 볼륨을 한껏 올려 들은 4312G가 그러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음의 폭주에 12인치 우퍼에 묻어있던 먼지와 잡내가 모두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스피커로 들었던 트롬본과 킥 드럼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번 L100 Classic 75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의 ‘Will You Be There’를 크게 들어보면 후반부 반주음의 타격감이 마치 현장에서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맑디 맑은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라든가 허공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쉐이커 소리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우퍼 쪽에 손을 많이 본 것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이 스피커는 보기에 멋지다. 50년 넘게 이어온 블랙 쿼드렉스 폼 그릴에서는 빈티지의 향이 폴폴 나고, 철제 스탠드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인클로저는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안긴다. 맞다. JBL L100 Classic 75를 듣는다는 것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한 스피커의 빛나는 아이콘을 듣는 것이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Specifications
Type 3-Way bookshelf loudspeaker pair with floor stands
Low Frequency Driver 12-inch (300mm) pure pulp cone woofer (JW300PW-8)
Mid Frequency Driver 5.25-inch (130mm) pure pulp cone midrange (JM125PC-8)
High Frequency Driver 1-inch (25mm) Titanium dome tweeter (JT025TI2-4)
Recommended Amplifier Power 25 – 200W RMS
Inpedance 4 Ohm
Loudspeaker Sensitivity 90 dB/1W/1m
Frequency Response
40 Hz - 40 kHz (-6 dB)
Crossover Frequencies 450 Hz, 3.5 kHz
Sensitivity 90 dB (2.83 V / 1m)
Enclosure Type Front-ported bookshelf
Controls High-frequency and Mid-frequency L-pad attenuators
Input Type Dual sets of gold-plated binding posts
Dimensions

636.52 x 389.64 x 371.48 mm

Weight

35 kg (With Stands)

JBL L100 Classic 75
수입사 HMG
수입사 홈페이지 www.hmgav.co.kr
구매문의 02-780-9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