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인터뷰 “하이엔드 오디오로 들은 제 앨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최근 정규 10집 ‘Immersion’을 발표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하이파이클럽을 방문했다. 10집을 함께 들어보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다. 평소 1년에 250일 이상을 외국에서 지내기에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으로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그녀다. 메인 시청실에 있던 댄 단고스티노 모노블럭 파워앰프 Relentless, 아방가르드 어쿠스틱의 혼 스피커 Trio Luxury Edition 26 등으로 그녀가 직접 가져온 마스터 CD를 들은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어 : 하이파이클럽
인터뷰 이 : 나윤선(Youn Sun Nah)
- 반갑습니다. 오디오파일들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을 만나 영광입니다. 직접 하이엔드 오디오로 본인의 앨범을 들으니 어떠신가요.
나윤선 : 소름이 돋았어요. 제가 제 입으로 제 음반을 좋다고 할 수 없는데 대단합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정말 전부 하나의 그림 같아요.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나 뭔가 만드시는 분들은 자신의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저희는 볼 수 없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보고 만진 느낌입니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이 정도 사운드를 내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사실 지금 오디오 시스템이 호화 라인업이긴 합니다. 가운데 있는 두 덩이 앰프가 3억 5000만 원이나 하거든요.
나윤선 : 3억 5000만 원이요? 저보다 더 값어치가 있네요(웃음).
-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신가요.
나윤선 : 1년에 250일 이상을 외국에 있기 때문에 거의 없습니다. 음악은 주로 스마트폰으로 듣습니다.
- 국내 오디오파일들이 나윤선씨 곡들을 자주 듣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아리랑’과 ‘초우’(8집 Lento)라든가, ‘She Moves On’(9집 She Moves On)이라든가.
나윤선 : 그래요? 전혀 몰랐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 이제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이번 10집이 유럽에서 3월 8일에 먼저 나오고 한국에서 4월 2일에 나온 이유가 있습니까.
나윤선 : 10집부터 레이블이 워너뮤직으로 바뀌었는데, 워너에서는 앨범을 지역별로 순차 발매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투어가 시작된 유럽에서 먼저 CD와 디지털 음원, LP가 나온 것이죠. 미국에서는 8월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 10집 제작 과정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나윤선 : 원래 지난해에 음반이 나왔어야 했는데 공연 투어가 많아서 녹음을 늦게 시작했어요. 앨범 프로듀서인 클레망 듀콜(Clement Ducol)은 지난 2014년에 니나 시몬 프랑스 헌정 앨범을 하다가 처음 알게 됐는데 참 독특한 분이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제 음반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었고 지난해 4월에 마침내 기회가 왔죠. 일주일 동안 미팅을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랑 너무 잘 맞았어요. 그래서 투어가 끝난 지난해 9월부터 2개월 동안 녹음하고 믹싱, 마스터링까지 다 끝냈습니다.
- 이번 앨범을 들어보니 믹싱과 마스터링이 무척 잘 된 것 같습니다.
나윤선 : 마스터링 엔지니어 라파엘 조냉(Raphael Jonin)이 LP 마니아에요. 저도 그 친구 덕분에 LP를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었죠. 독일에서 찍은 10집 LP는 4월 12일에 나올 예정인데, 지금 들은 CD보다 5배는 더 좋다고 해서 기대가 큽니다.
- 10집 앨범은 어떤 컨셉트로 준비하셨나요.
나윤선 : 지금까지 제가 낸 모든 음반은 어쿠스틱에 재즈 음반이었습니다. 재즈는 그냥 순간의 음악이라 하루 이틀이면 녹음이 다 끝납니다. 뮤지션들이 다 모여 거의 원테이크로 녹음을 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 앨범은 제가 시간을 더 들여 찰나의 순간보다는 바탕을 잘 다진 건축물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다시 돌아보고 다시 고치고 넣고. 이런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피아노, 첼로, 베이스라도 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일렉트로닉도 첨가했죠. 클레망 듀콜이랑 둘이서 레고를 조립하듯이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사운드를 쌓고, 다른 날은 빼고. 그가 제 자작곡을 많이 좋아해 처음에는 자작곡만으로 채우려고 했었습니다.
- 클레망 듀콜의 음악적 역량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나윤선 : 클래식을 했던 친구라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잘 알아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각 소리가 어떻게 숲을 이루는지 잘 압니다. 악기 2,3개만 갖고도 큰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 이번 10집에는 나윤선씨 자작곡이 많습니다.
나윤선 : 제가 곡을 잘 쓰거나 작곡하는 능력은 없지만 이번에는 제 곡을 제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프로듀서도 원래 제 자작곡만으로 10집을 내려 했었어요. 하지만 결국 3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작사가로 참여했습니다. 3명 모두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곡이 나오게 됐죠. 특히 이탈리아 여성 로지타 케스와 함께 ‘Mystic River’를 만들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 10집에 수록된 13곡 중 몇 곡만 직접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윤선 : 제 마음대로 골라도 된다면, 6번 트랙 ‘Sans Toi’부터 얘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20년 전에 프랑스에 간 이유가 프랑스에 유럽 최초로 설립된 재즈 학교가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샹송을 좋아한 이유도 컸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매 앨범마다 샹송을 한 곡씩 꼭 집어넣죠. 이번 10집은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녹음을 했는데, 파리를 떠올리는 샹송을 리메이크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야네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미셸 르그랑이 피아니스트로 출연한 영화인데, 극중 여배우가 부른 유일한 곡이 미셸 르그랑이 작곡한 ‘Sans Toi’였습니다. 그런데 미셸 르그랑이 얼마 전에 타계(1월 26일) 해서 이 곡이 헌정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 7번 트랙 ‘Mercy Mercy Me’도 좋던데요.
나윤선 : 하하. 그렇잖아도 그 곡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제가 이 곡을 원래 댄스곡으로 알고 있었는데, 마빈 게이 원곡으로 다시 들어보니 환경에 대한 무척 심오한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지구를 못살게 구는구나’라는 가사를 잘 들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3번 트랙 ‘Isn’t It A Pity’는 처음에는 조지 해리슨 곡인지 몰랐어요. 처음 들은 것은 니나 시몬 버전이었는데 들으면서 엄청 울었죠. 이 곡을 통해 두 아티스트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 남편이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인재진씨입니다. 서로 많이 도와주는지요.
나윤선 : 제가 남편을 도와주는 것은 없어요.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웃음). 이번 경우에도 음반이 나와 며칠 전에 한국에 왔거든요. 4월 한 달 동안 음반 프로모션을 한 뒤 5월부터 다시 월드투어를 하고 12월에 귀국해 또 국내 지방 공연을 할 계획입니다. 사실 남편에게 미안해요. 제 음악을 가장 좋아해 주는 사람이거든요. 바닥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조금씩 올라온 저로서는 지금 공연 다니고 불러주시는 것이 과분하죠. 그걸 잘 아는 사람이 남편이에요. 재즈 불모지에서 페스티벌을 어렵게 해왔기 때문에 제 사정을 잘 압니다.
- 월드투어 일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혔습니까.
나윤선 : 3월에 이미 프랑스와 독일에서 했고, 5월에는 다시 독일, 6월에는 캐나다, 7~8월에는 유럽 뮤직 페스티벌, 8~9월과 11~12월에는 미국에서 할 예정입니다. 발품 팔아 돌아다니는 게 저희 일입니다(웃음)
- 레이블이 이번에 워너뮤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래미에도 도전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워너뮤직 레이블 계약 과정도 궁금합니다.
나윤선 : 어휴, 그래미 생각은 요만큼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저는 꿈이 없습니다(웃음). 그냥 매일매일 공연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워너뮤직과 레이블 계약을 맺게 된 것은 지난 9집을 끝으로 독일 재즈 전문 레이블인 액트(ACT)와 계약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레이블에서 러브콜이 왔고, 어떻게 하다 보니 워너뮤직과 계약을 맺게 됐습니다.
- 인터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윤선 : 저도 좋은 오디오로 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번 음반이 지금까지와는 색깔이 다른 만큼 어떻게 생각해주실지 궁금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