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의식과 야망이 있는 안무가로서는 현대 고전 발레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메이저급 발레단들의 레퍼토리는 19세기 낭만주의 발레나 20세기 중반의 스토리 발레에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롭고 기억할 만한 풀타임 발레 작품은 깃털이 돋는 살인마 발레리나를 연기하여 오스카상을 받는 여배우만큼이나 희귀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수 시간 동안 흥미진진한 서사와 발전적인 캐릭터를 이끌어갈 수 있는 안무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은 스토리에 적합해야 하고 주제는 캐릭터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역사적인 명장면들을 붙여넣었다는 이미지를 주어서도 안 되는 만큼 신작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로 간주되어왔다.

 

돈과 시간, 예술적인 평판 등등이 얽힌 이해관계가 치열하리만큼 복잡하다보니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을 위촉한다는 것은 발레단으로서는 재정적인 압박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로얄 발레단에게 있어서 1995년 안무가 트윌라 타프에게 약삭빠른 남자를 위촉해서 실패한 이후 처음으로 위촉한 작품이다. 더군다나 2012년 임기가 끝나는 예술감독인 모니카 메이슨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념작과 같은 성격도 띄고 있다.

 

상상력 풍부한 안무가 크리스토퍼 휠던을 선택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선택이다. 그는 로열 발레 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로열 발레단에서 무용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이후 뉴욕 시티 발레단에서 전속 안무가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 곳에서 그는 안무가로서 많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프레데릭 애쉬톤과 케네스 맥밀란으로부터 스토리 발레에 대한 많은 실전 경험을 전수받았고, 발란쉰과 로빈스의 순수 무용 전통을 연구, 계승하며 육체의 자유로움과 다이내미즘을 익힐 수 있었다.

 

휠던은 자신이 읽고 자랐던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각색하여 기이하면서도 엉뚱함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가장 영국적인 요소를 담아낸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 결과 자신만의 전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신작 발레를 보고 있노라면 화려한 극장적인 요소들, 밥 크로울리가 디자인한 현란하기 그지없는 색채와 의상, 무분별한 액션, 유동적인 무용 등등을 통해 휠던 자신이 이해하고 사랑을 쏟은 무대 구조에 몰입하고 있는 감상자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대에서 작동하는 발레 언어들 또한 훌륭하다. 하이테크 비디오 프로젝션을 통해 회전하는 토끼굴 통로, 수축팽창하는 방문, 작고 경사진 방의 홀로그래픽 효과 등등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장치들을 21세기형 발레를 위한 언어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펼쳐지는 몇몇 기억할 만한 안무가 주목할 만한데, 무엇보다도 캐릭터의 감정과 발전과정을 잘 반영하면서 욕망과 두려움을 적절하게 표현해준다.

 

특히 앨리스가 카메라 가방으로 대체한 토끼굴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에서 휠던은 그녀가 자신의 모험을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다는 묘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편 캐롤의 원작대로 유쾌하고 어리둥절하며 흥미로운 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부분이 있는 이상한 나라에서의 앨리스의 꿈이 잘 표현된 것도 특징적이다.

 

 

원전의 배경대로 빅토리아 시대의 특징을 간직한 옥스퍼드 교외의 한 별장의 잔디밭에서 발레는 시작한다. 앨리스(로렌 커트버슨 분)와 그녀의 여동생들(린 코프와 사만타 레인 분)이 루이스 캐럴(에드워드 왓슨 분)과 함께 등장한다. 앨리스를 사랑하는 정원사 아들인 잭(세르게이 폴루닌 분)이 그녀에게 장미를 선물해 주고 답례로 그녀는 소년에게 잼 타르트를 준다. 그를 위해 타르트를 훔치는 것을 잔소리 많은 어머니(제나이다 야노프스키)에게 발각되지만 곧 잊혀진다.
 
캐롤은 자신의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앨리스를 불러오고, 셔터가 눌러진 다음부터 마법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극적인 사건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장면은 어두운 보라색으로 변하고 캐롤은 하얀 토끼로 변신한다. 그는 카메라 가방으로 뛰어 들어가 사라지고 앨리스는 그를 따라간다. 그녀는 회전하는 소용돌이로 빠지는데, 이 장면은 무대에 비추어진 프로젝션 영상을 통해 대단히 화려하면서도 환각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그리고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효과가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훨씬 스펙타클한 감동을 이 발레 버전은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커트버슨은 1막이 진행되는 70여분 동안 무대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그러나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10대의 앨리스로 그 이상 그녀에 대해 알 수는 없다. 휠던은 너무도 충직하게 원작 스토리를 이어나가며 앨리스가 미친 해터, 욕심쟁이, 마치 헤어, 들쥐, 하트의 여왕(어머니 역을 맡은 제나이다 야노프스키) 등등을 빠른 속도로 만난다. 이 가운데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대목은 잔혹한 푸줏간 주인에서의 공작부인과 얼굴 없는 요리사(크리스틴 맥네일)가 등장하는 장면과 체셔 고양이 에피소드, 꼭두각시가 조정하는 큰 아기 장면이다.

 

한편 하트의 잭으로 변신하는 폴루닌씨는 1막 마지막 부분에 이상스럽게도 이끄는 사람으로 다시 등장하여 의아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 폴루닌씨 역을 맡은 무용수는 대단한 실력가로서 엄격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라인을 갖고 있지만 앨리스와 2막에서 파 드 되에서 한 번만 등장하여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한편 2막 후반부로 갈수록 휠던은 극을 일종의 코미디로 몰아가 청중들에게 웃음을 통한 극적 클라이맥스를 안겨주고자 고심한 듯하다.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대적인 음악과 이에 어울리는 무대장치로 많은 사람들을 이 고전 동화에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끔 해 준 바 있다. 이에 휠던의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필적할 만한 새로운 요소를 갖고 있는지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야 증명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대중친화적인 요소는 진은숙의 작품보다 훨씬 많이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DVD는 2011년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실황으로서 HD급 화질을 통해 조명과 무대장치의 선명한 색이 동화적인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할 뿐만 아니라, 노련한 지휘자 베리 워즈워스가 이끄는 로얄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생동감 넘치는 오케스트라 반주 또한 5.1 DTS 사운드로 명징하게 포착되어 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이 신작 발레의 명성을 널리 확산시켜주기에 충분한 최신 음향과 화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Talbot :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아티스트 : 워즈워스 (Barry Wordsworth) (Wordsworth, Barry)
아티스트 : 탈보트 (Joby Talbot) (Talbot, Joby )
아티스트 : 로얄 오페라 하우스 관현악단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아티스트 : 로열 발레단

탈보트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수입사 : 아울로스미디어
수입사 전화번호 : 02) 922-0100
수입사 홈페이지 : http://www.aulosmusic.co.kr
구입처 : YES24 , 알라딘
가격 : 43,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