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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일 빈 슈타츠오퍼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실황 공연을 담고 있는 수입 DVD(블루레이 동시발매)가 한글자막을 포함하여 출시되었다. 아마도 작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살바토레 리치트라를 기념하기 위해 서둘러 발매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찌되었던 이 공연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테너인 리치트라가 남긴 많지 않은 녹음물(영상과 음반 통틀어) 가운데 최고 수준의 연주임은 물론이거니와 환상의 드림팀이 만들어낸 최상의 프로덕션으로 널리 칭송할 만하다.

 

연주 수준도 최상일 뿐만 아니라 화질도 HD 소스로서 역대 빈 슈타츠오퍼 실황 가운데 가장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AV 매니아라면 이 영상물을 조건 없이 구매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발매되는 빈 슈타츠오퍼의 실황은 빈 필하모닉이 뿜어내는 그 투명하고 강력한 사운드가 매력적으로서 그 어떤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실황영상보다 레코딩 퀄리티가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빈 필하모닉에 비견할 만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바이로이트나 드레스덴, 라 스칼라 정도일 텐데, 최근에는 이들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실황 발매 영상들에 비하여 빈 슈타츠오퍼의 프로덕션이 훨씬 많은 양과 다양한 레퍼토리가 발매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금은 은퇴한 극장장인 이온 홀란더의 오랜 노력에 의한 훌륭한 가수들과 연출, 기획 등등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발매된 빈 슈타츠오퍼 실황인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네트렙코 주연, DG) 또한 최상의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레코딩 컨디션을 담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제 빈 슈타츠오퍼 또한 현재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AV붐을 위한 완벽한 컨디션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실황은 단순히 공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편집과정에서 추가적인 기획을 하여 효과적인 연출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역전의 노장 주빈 메타가 클로즈 업되는 서곡에서는 지휘 모습과 분장실에서 동분서주하는 가수들의 모습을 편집하여 캐스팅 소개로 활용하는 한편, 007영화의 시작 부분의 그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그래픽 영상이 등장한다. 운명을 상징하는 커다란 운명의 풍차와 교회 십자가가 등장하고 여기에 권총이 등장하여 발사된 총알이 가슴을 관통(아마도 칼라트라바 가문의 남자들을 상징하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대단히 현대적이면서도 극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상징하는 효과적인 인트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전장의 막사를 배경으로 한 3막에서는 기존 실황 필름 위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전쟁 기록 필름을 오버랩시켜 전쟁을 하고 있는 극의 설정에 현실감과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영국 출신의 연출자인 데이비드 파운트니는 이 오페라의 무대를 가상의 공간으로 연출하여 역사적인 고증에서 탈피하고자 했는데, 이렇게 2차대전시의 비행기나 군복, 탱크(어느 나라의 병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를 후편집 과정에서 등장시킴으로서 연출가의 의도와 가벼운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던 영상물 제작에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보여주고자 노력한 신선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첫 서곡 곡부터 이 작품의 베테랑 지휘자인 메타와 빈 필하모닉의 수준 높은 연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더 없이 적절한 템포와 극적인 대비도 훌륭하거니와, 앞서 언급한 영상물의 수준 높은 레코딩 퀄리티를 증명하듯 바이올린 파트의 트랜스페어런트한 사운드와 감각적인 호소력은 물론이려니와 위엄을 더하는 베이스 라인의 입체감, 여기에 피콜로의 상승하는 일갈과 금관 파트의 정력적인 대쉬 모두가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스테레오 하이파이를 위한 CD으로 내놓는다 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파운트니의 연출의 핵심은 십자가로 상징되는 신을 대하는 속세와 교회의 극단적인 대비로서 이를 위한 무대 장치들의 스펙타클하면서도 효율적인 사용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특히 전쟁과 술집 장면에서 군중들은 성경책을 앞세우거나 팔에 십자가가 그려진 상의를 입은 채 주색과 환락을 즐기며 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특히 3막에서 수도사 멜리토네는 대사로는 신을 두려워하라는 경고를 하지만 실제 연기는 간호사들의 유혹을 즐기며 성욕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통해 성직자의 이중성을 드러내고자 하기도 했다. 또한 프레지오질라는 카우보이 모자와 핫팬츠를 입고 가슴을 노출하여 일종의 군대를 돌며 쇼를 하는 직업여성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출 탓에 한결 단순한 형태로 경건한 이미지를 주는 2막 마지막과 4막의 수도원 장면보다는 화려한 쇼와 살인이 난무하는 세속적인 장면들에 무게중심이 많이 쏠려있다.

 

무대 장치 또한 파운트니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기본적으로 니은자 모양으로 한 쪽이 들려있는, 입구와 실내가 이어져 있는 흰색 통로를 중심으로 여기에 각 마다의 특징적인 배경들이 첨가된다. 특히 이 통로는 1막과 4막에서 핵심적인 무대장치로 등장하는데, 이는 칼라트라바 가문의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사람에게 죽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부여되는 동시에 시작과 끝이 같은 시각적인 구조를 강조한다. 2막과 3막에는 통나무로 지은 높은 구조물을 둘러 술집과 막사를 만들어냈는데, 무대 전체가 바로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각도에 따라 각 장면마다의 무대를 제공한다. 일체의 지루함 없이 신속한 변환을 통해 놀라운 효과를 주면서도 합창단과 주인공들이 일체의 동선의 어긋남 없이 혼열일체되어 움직일 수 있는 이 다면체적인 회전무대는 이 프로덕션의 가장 성공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가상의 세계인 탓에 연출가의 자유로운 해석과 극적인 대비가 마음껏 허용된 개연성과 완결성 높은 훌륭한 무대이지만, 한 가지 불만인 점은 의상이다. 어딘지 독일적인 느낌이 드는 장교복은 검은색, 나머지 군인들은 빨간색으로 시각적인 대비를 주고자 했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야전이라는 공간에서는 몹시 위험한 이들 색깔이기에 일말의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남장을 하고 등장한 레오노라가 수녀원에 들어갈 때 왜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입고 들어가는지도 조금은 의문이다. 한편 프레지오질라의 쇼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의상을 입었지만, 하필 왜 카우보이 모자와 서부 홀스터를 착용하여 현실의 특정 국가를 상징했는지도 아쉽다. 인트로 영상에 등장하는 권총에 리볼버 마크가 찍혀 있는 것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다.

 

성악진은 최고 수준이다. 강력한 드라마틱 소프라노를 요구하는 레오노라 역으로 등장한 스웨덴 출신의 니나 슈템메는 바이로이트 스타답게 최고 수준의 기량을 펼쳐보인다. 특히 2005년 도밍고와 함께 한 빈 슈타츠오퍼에서의 이졸데 역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은 그녀는 이 ‘운명의 힘’에서도 레오노라를 완벽히 자신의 배역으로 만들었다. 카를로스 알바레제의 완벽한 연기와 울분에 찬 가창 또한 훌륭하다.

 

 

 

특히 리치트라와 함께 우정과 복수의 기로를 걷는 3막에서의 모습은 전시대 벨칸토 바리톤들의 업적에 필적할 만한, 전형적인 베르디 가수로서의 기품을 보여준다. 한편 후작과 수도원장역을 동시에 맡은 영국 베이스 알라스테어 마일스는 레오노레를 보호하는 아버지와 수도원장의 모습을 일관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불가리아 태생의 메조 소프라노인 나디아 크라스테바가 부르는 프레지오질라가 압권이다. 강력한 포스를 머금은 목소리와 매혹적인 외모로 자칫 홀대받기 쉬운 이 배역의 중요성(작곡가 및 연출자의 의도 모두)을 부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오페라의 주인공인 돈 알바로 역의 리치트라에게 모든 찬사가 돌아가야 할 듯하다. 이 돈 알바로 역은 1999년 이 역으로 라 스칼라에 데뷔한 이후 그의 가장 중요한 배역인 동시에 이 빈에서의 공연이 그의 생의 마지막 배역이기도 한 것이다. 마드리드와 런던에서의 공연을 한 다음 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서, 그의 감각적이고도 아름다운 프레이징과 완벽한 딕션은 이탈리아 테너로서의 현재 거의 유일한 정통성을 갖고 있었던 그의 위대한 예술성을 반증한다.

 

 

 

 

특히 아름다운 호소력과 애절한 마음이 빛을 발하는 3막의 아리아 “불행한 자에게 삶은 지옥 같은 것”은 다시는 보기 힘들 정도의 절창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4막의 돈 카를로와의 2중창 ‘알바로, 숨어도 소용없다’에서의 흐느낌과 분노를 오가는 극한적인 표현력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탈리아 테너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던 리치트라의 마지막 무대는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게끔 하는 잊을 수 없는 영상물이다. “O, Dio, Pieta, pieta!(하느님, 자비를)”

 

 

 

 

 

Giuseppe Verdi La forza del destino
노래 : Salvatore Licitra
노래 : Carlos Alvarez
노래 : Alastair Miles
노래 : Nina Stemme
지휘 : Zubin Mehta
오케스트라 : Wiener Staatsoper

베르디 : 운명의 힘
수입사 : 아울로스미디어
수입사 전화번호 : 02) 922-0100
수입사 홈페이지 : http://www.aulosmusic.co.kr
구입처 : YES24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