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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고도이자 베르디와 토스카니니의 고향이기도 한 파르마는 오래 전부터 상업과 문화가 발달한 도시로서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에 못지않은 오페라 문화를 자랑한다. 비좁고 오래된 두칼레 극장 대신에 문을 연 누오보 테아트로 두칼레는 이탈리아 통일 직후인 1849년부터 테아트로 레지오(왕립극장)으로 불리고 있는데, 특히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모델로 지었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첩이자 오스트리아 여제 겸 파르마 대공인 마리 루이즈가 신축한 것이다. 성 알레산드로 수도원 자리에 들어선 이 극장은 니콜라 베톨리(Niccola Bettoli)가 설계를, 지안 바티스타 보르게시, 파올로 토스키가 인테리어 장식을 맡았다.

벨리니의 자이라(Zaira)]초연과 함께 1829년 5월 16일 문을 열었는데, 당시 개관 공연에서 초연된 자이라에 대해 관객들은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가장 먼저 로시니에게 작품 위촉을 했지만 바빠서 거절했기 때문에 황급히 벨리니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벨리니는 작품 위촉은 받아들였지만 극장 운영진 가운데 한 명이 쓴 대본을 사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음악도 그 전에 썼던 작품에서 여기저기 짜깁기한 부분이 많았다. 이런 저런 일이 겹쳐서 개막 공연은 어수선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1829년 첫 시즌에는 개막 공연을 제외하면 모두 로시니의 작품으로 꾸몄다. 모세와 파라오, 세미라미데의 죽음, 세비야의 이발사 등은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로시니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 테아트로 레지오 극장이 2011년에 올린 세비야의 이발사 영상물이 아트하우스에서 발매되었다. 음악적인 완성도 이전에 AV만의 장점인 영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추천할 만하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된 이 레지오 극장은 1853년 부르봉 왕가의 카를로 3세의 명으로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만큼 그 아름다운 장식이 압권이다. 더군다나 제1,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받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고 이후 에어컨이나 객석 정도만이 개선되었을 뿐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영상물에는 객석 천장의 리노(고대 음악의 아버지), 아리스토파네스(그리스 희극), 유리피데스(그리스 비극극), 팔라우토(라틴 희극), 세네카(라틴 비극), 시인 타스타시오, 알피에리, 골도니 등의 그림이 고스란히 앵글에 잡혀 유서 깊은 극장의 아름다움을 HD급 화질로 만끽할 수 있다.

 

지휘를 맡은 안드레아 바티스토니는 1987년 베로나에서 태어난 젊은 지휘자로서 베로나 여외 극장과 베니스의 페니체 극장,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을 비롯한 많은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11년 1월 레지오 극장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7세부터 지휘 공부를 시작한 영재출신으로서, 이 영상물에서도 정석적이면서도 디테일이 강한 지휘 모습을 보여준다. 1막 첫 부분에서는 빠른 템포 변화를 기민하게 이끌어가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서서히 그는 페이스를 찾아가며 전체적인 앙상블을 아름답게 만들어간다. 가수들 또한 개인기보다도 대화와 진행을 중심으로 휘발성 높은 코믹함보다는 진지한 유머와 앙상블 위주의 수준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스테파노 비지올리의 연출은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신고전적이다. 간결한 무대 장치와 중심되는 주제만을 부각시키며 연기자들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동선에 무척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그리하여 부파적인 떠들썩함보다는 정극으로서의 차분함과 아기자기함이 부각된다는 점이 이 프로덕션만의 강점이다. 최근 레알 마드리드 극장 버전(DECCA)이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버전(Virgin)처럼 화려한 무대 장치와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로시니 무대가 선을 보였는데, 이보다는 이 파르마 버전의 간소하면서도 극에 집중할 수 있는 연기력과 성악적 역량이 빛을 발하는 무대가 훨씬 로시니적인 설득력을 높인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파르마 영상물에는 인터내셔널용 자막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어떤 라이센스 버전보다 충실하고 정확한 내용을 자랑하고 있어 이 작품에 대한 모범적인 한글대본으로 칭찬할 만하다.

 

특히 2막 중반부의 폭풍우 장면에서 파란 바탕 화면에 흑백으로 사다리 하나만을 설치하여 간결함과 집중력 모두를 높이는데 성공했고, 바로 가운데에는 달과 양 옆으로 건물이 등장하며 세비야 밤거리의 실내와 실외 모두를 훌륭한 비율로 나누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바티스토니의 느릿한 듯 정교한 지휘와 어우러지며 극은 전체적으로 드라마적인 흐름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당연히 가수들에게는 고도의 연기력이 부여되었다. 피가로 역의 루카 살시는 첫 아리아인 ‘나는 이 거리의 일인자’ 외에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조연자의 입장임을 부각하려는 듯 항상 상대의 호흡에 자신을 맞추며 정교한 앙상블을 이끌어낸다. 피에트로 스파뇰라만큼 최고로 화려한 피가로는 아니지만 대본상 파악할 수 있는 피가로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루지아 출신으로서 로시니 전문 메조 소프라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케테반 케모클라이제의 탁월한 연기와 출중한 미모 또한 이 프로덕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휠체어 부상투혼으로 말괄량이 이미지의 로지나를 보여준 조이스 디도나토(Virgin)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섬세한 디테일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발산하는 마리아 바요(DECCA)에 비한다면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이지만, 적어도 ‘방금 들린 그대 음성’에서 베르간차를 연상케하는 풍부한 성량과 질감, 희가극의 감수성을 오버하지 않고 순수하게 연기해내는 직관 등등은 차세대 로시니 디바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듯하다. 한편 하녀인 베르타 역인 나탈리아 로만의 가창이 인상적이다. 2막 아리아에서는 로지나에 못지않은 성악적 역량을 보여주는데, 특히 1막 마지막 대푸가 장면에서 엄청난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니 이에 놀라서 바라보는 로지나를 포착한 앵글은 시청자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마도 향후 몇 십 년 동안 알마비마 백작 역에 있어서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를 능가할 테너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플로레즈와 다른 컨셉으로도 얼마든지 이 배역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성악가가 바로 러시아 출신의 리릭 테너 드미트리 코르착이다. 1막 세레나데를 부르는 장면에서 성악적으로는 유려하며 풍부한 감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조금 우유부단한 듯, 혹은 귀족 신분으로 인해 거만한 듯한 느낌을 보여주며 이 캐릭터에 대한 과장되지 않은 귀족 그대로의 감정선과 그 변화를 연기해낸다. 무엇보다도 그가 보여주는 서정적인 가창과 부드러운 선율미는 단연 일품으로서, 목소리만 들어서는 그가 러시아 출신이라고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한편 이 부파의 양대 기둥이라 말할 수 있는 두 명의 저음가수 또한 훌륭한 연기와 가창을 보여주며 로열 오페라 하우스 버전에 등장한 두 역전의 노장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돈 바질리오 역의 지오반니 푸르라네토는 또 다른 푸르라네토인 페루치오의 그 엄청난 오버연기에는 미치지 못하나, ‘중상모략은 산들바람과 같죠’에서 그는 깊고 풍부한 성량과 코믹한 표정으로 연출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정교한 디테일을 만들어냈다. 바르톨로 역의 브루노 프라티코는 아마도 코믹한 연기에 치중하느라 성악적으로 조금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준 알레산드로 코르벨리보다 나은 편이다. 특히 그 두꺼비 같은 표정과 거만한 연기는 바르톨로 성격에도 훨씬 더 잘 부합하는데, 1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나 같은 명망 높은 의사를’에서 그 속사포 같이 빠른 로시니 특유의 대사의 정확함과 감정의 정도에 따라 변화하는 풍부한 다이내믹 또한 가히 절경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면 볼수록 모든 것에 정겨움과 친숙함이 더해지는 훌륭한 영상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