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2011년 7월 28일 비엔나의 그로서 페스티펠하우스에서 열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을 담고 있는 이 영상물은 비엔나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구스타브 말러와 이를 계승하고자 했던 알반 베르크의 음악적, 정신적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시대 최고의 말러 해석가이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단골 손님인 피에르 불레즈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는데, 그 음악적 완성도나 성악가들의 수준, HD급 화질의 선명함과 음질의 우수함으로 인해 불레즈 최고의 영상물로 손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도 수입 DVD인만큼 라이센스보다 월등한 음질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한글자막이 지원되어 조금은 난해한 성악 작품들의 이해를 돕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가장 먼저 베르크의 룰루 모음곡이 연주된다. 과연 빈 필하모닉의 해석과 음색은 베르크만의 표현력과 음향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 최고수준임이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스티나토에서의 그 기민한 순발력과 날카로운 표현력은 실로 낯설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불레즈의 냉철한 이성은 변주곡 파트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이 룰루 모음곡의 하이라이트는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의 등장일 것이다. 최근 룰루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신예 소프라노 프로하스카는 그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며 강렬한 가창으로 룰루의 퇴폐성을 발산한다.

 

이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가곡인 ‘포도주’는 실로 감동적이다. 도로테아 뢰쉬만 특유의 그 무시무시한 두성과 매끄러운 발성, 시어의 의미를 하나 하나 음악적인 표현으로 환원해내는 가창으로 보를레르의 이 애주가에 새로운 매력과 생명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유리의 감옥 속에서 봉사를 위한, 쾌락을 위한 희생을 기다리고 있는 포도주의 아름다움을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보를레르의 시적 감수성을 뢰쉬만은 너무도 절절하고 황홀하게 표현해 낸다. 참고로 말한다면, 국내 카뮈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의 ‘포도주’ 번역을 참고해 보는 것도 작품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말러가 17세인 1878년 빈 음악원 학생일 당시 작곡을 시작하여 1880년에 완성한 ‘탄식의 노래’는 그림 형제의 민화집에 수록된 “노래하는 뼈‘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루드비히 베슈타인의 동화와 마르틴 그리프의 시에서 아이디어를 인용하여 재구성한 텍스트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당시 널리 퍼진 잔혹동화답게 그 내용 또한 파격적이다. 아름다운 여왕과 결혼하기 위해 형제간에 살인이 벌어졌고,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뼈가 노래를 불러 진실을 전한 뒤 형도 수장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인과 아벨을 연상케 하는 이 내용은 어린 시절 일찍 세상을 뜬 말러의 동생에 대한 작곡가의 강박관념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상금이 걸린 베토벤상을 타고자 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말러의 개인적인 좌절감에 대한 탄식 또한 녹아 있는 불운한 작품이다.

말러의 정식적인 작품번호 1번인 이 ‘탄식의 노래’는 그 이후로 완전히 잊혀졌다가 말러의 열혈한 추종자인 알반 베르크가 1901년 2월 17일 동화를 텍스트로 한 말러의 ‘탄식의 노래’를 초연한 후에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역시 자주 연주되지는 못했지만 베르크와 더불어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알프레드 롤러 등의 노력으로 간헐적으로나마 연주되곤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선보이며 이 초기작에 담겨 있는 말러의 천재성과 그 위상을 드높인 장본인은 바로 이 영상물을 지휘한 피에르 불레즈다. 그는 70년대 뉴욕 필하모닉과 이 작품을 SONY(구 CBS)를 통해 음반으로 발매한 이후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으며 이 작품에 담긴 많은 의미를 발견해 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1898/99년 버전을 사용했고 이 영상물에서도 이 버전으로 연주한다.

본래 구상된 전체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아름답지만 거만한 한 여왕이 꿈에 그리는 왕자를 찾지 못해 숲 속에서 붉은 꽃을 찾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포고를 내린다. 한 형제가 이를 보고 꽃을 찾아나서는데, 동생이 이를 먼저 발견하고 모자에 꽂아둔 채 잠을 청한다. 욕심이 생긴 형이 동생을 죽인 뒤 꽃을 들고 여왕을 찾아간다. 한 음유시인이 동생의 뼈를 발견하고 이를 깎아 플루트를 만드는데, 여기서 동생의 억울함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말러가 텍스트를 삼은 내용은 그 다음 결혼식 장면부터다. 형과 여왕의 결혼식이 있는 날 음유시인이 성에 도착하여 플루트를 불고, 형이 자신을 죽였다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형이 이를 빼앗아 자신이 불어보는데 역시 동생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래가 나온다. 이에 하객들은 흩어지고 성은 무너진다.

이 발라드 스타일의 칸타타 버전을 수록하고 있는 이 영상물은 일반적인 콘서트 실황이라 특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받기는 힘들다. 그러나 ‘탄식의 노래’는 지금까지 영상물이 없었던만큼 이 불레즈 콘서트로부터 우리는 작품의 정확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표현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음반으로만 듣는 것보다 훨씬 작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다. 우선 음악적인 측면에 있어서 불레즈는 지난 시절 CD로 들을 수 있는 것만큼 정확하고 예리한 비팅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원체 노령이기도 하고 콘서트에서 그렇게 정확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닌 만큼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가 보여주는 디테일한 표현력들과 극적 드라마로서의 거시적인 컨셉은 다른 평범한 낭만적인 해석들과는 차원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첫 1부에서 불레즈는 빈 필하모닉의 음색과 작품의 감성을 너무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서 표현하며 안개 낀 듯 우울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낸다. 음유시인이 등장하는 대목(9번트랙)에서 오보에-베이스 클라리넷-호른으로 이어지는 음색의 블랜딩과 곧 이어지는 오보에-플루트-바이올린 솔로-호른의 유니즌은 그 뼈피리가 자아내는 구슬픈 음색과 한을 극대화시키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어 콘트랄로가 ‘음유시인이여, 나의 탄식을 들어주오’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말러 특유의 밝은 행진곡과 슬픔으로 가득 찬 비통한 멜로디가 서로 교차를 이루며 말러의 전형적인 아이러니컬한 대비 기법이 엿보인다.

2부는 결혼식을 상징하는 금관 총주의 흥겨운 행진곡풍의 유니즌으로 시작한다. 여기서는 또한 말러가 교향곡에서 특징적으로 사용한 멀리서 들려오는 관악의 원근감이 등장하며 무엇인가 다가올 불안한 기운을 예견한다. 플루트와 하프가 뼈피리의 아련함을 노래부르며 형이 수심에 가득 찬 장면을 묘사하고 곧 이어 오케스트라 총주가 이어지며 음유시인이 등장한다. 이제 콘트랄로가 부르는 뼈의 노래가 시작된다. 불레즈 특유의 분절적인 호흡과 무표정한 붓점 리듬이 강하게 드러나며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점점 무채색적인 깊이를 더해간다. 뼈피리를 입에 댄 왕이 놀라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는 더욱 힘을 더해가며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데, 이 부분에서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조금 맞지 않는 장면이 옥에 티로 남는다. 특히 1992년 잘츠부르크 실황 LD(DG)에서 만날 수 있는 불레즈의 모습에 비해 나이가 많이 든 탓인지 지휘 모션과 오케스트라 운용에서 일말의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지만, 더욱 날카로워진 눈빛으로부터 거장으로서의 위압적인 풍모가 압도적이다.

 

생각보다 이 작품에서 독창자들의 역할은 크지 않지만, 등장 성악가들의 탁월한 가창과 해석 덕분에 그 의미를 다시금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세 명의 가수들의 역할이 크다. 특히 도로테아 뢰쉬만의 탁월한 가창이 눈에 띈다. 마지막에서 “저를 왜 죽였나요”를 외치는 그녀의 표현은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띄고 있어 동생의 그 애절한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한 보타는 그 비중이 크진 않지만 중간 중간 그 영롱한 헬덴 테너적인 목소리로 장면이 바뀌어가는 대목에 힘을 실어주고, 콘트랄로 안나 라르손 또한 강한 힘과 짙은 호소력으로 텍스트에 음악적인 표현력을 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