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이 땅의 오디오파일이라면, 어느 누구든 쾌적하고 널직한 리스닝 공간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협소한 리스닝 공간을 룸튜닝재로 겨우 달래가며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오디오파일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손바닥만하나마 전용 리스닝룸이라도 마련한 이는 그래도 행복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앰프이건 소스기기이건 넓은 공간에 세팅하면 보기에도 시원하고 아울러 기분도 고조되어 듣는 맛이 남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현실이 문제다. 앰프나 소스기기는 닭이 알을 품듯 속으로 소리를 만들기는 하여도(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입으로 소리를 내지르는 것은 스피커이므로, 당연히 스피커는 리스닝룸의 공간적인 환경에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고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이 대체적으로 비좁은 탓에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공간의 제약을 가장 많이 받는 스피커를 소형기(Bookshelf)로 택하여 시스템을 매칭하는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형스피커는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각 스피커 제조사마다 고성능을 지향해 왔다. 그 결과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일반적인 소형 스피커들의 성능이 출중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성능의 상승에 발맞추어 소형스피커의 가격도 1천만원을 상회하는 제품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피커들은 운용의 묘를 제대로 살리고 지닌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할 앰프의 능력이 더욱 요구되기도 한다. 스피커의 가격에 비해 몇 배의 값어치를 지닌 대형 사이즈의 고출력 앰프나 성능 좋은 소스기기가 연결된 시스템. 흔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들 하지만, 좋은 소리를 빚는 데 있어 과연 어디가 배이고 배꼽일 수 있을까!

이번 매니어 탐방은 오랜만에 '고성능 소형스피커'를 떡 주무르듯 다루어 놓았다는 천호성 님 댁을 찾았다. 강남의 모 오피스텔 한켠에 리스닝룸을 마련하여 운용중이라는 한 동호인의 첩보를 접하고 취재에 나서게 되었다.

울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과르네리 오마주(Guarneri Homage) 스피커를 만족할 만하게 구축하여 음악을 즐긴다는 얘기를 사전에 들었던 터라 내심 기대가 컸을 뿐만 아니라 평소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스피커와 앰프들이기에 호감이 더욱 컸다. 그동안 매니어 탐방란을 채워왔던 커다란 스피커들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소형스피커 얘기를 간만에 쓸 수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느즈막한 저녁무렵, 일부러 혼잡한 강남역까지 손수 마중나와 주신 천호성 님을 반갑게 대면하면서 곱상한 생김새만큼이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의 뒤를 좇아 다다른 곳은 엘리베이터의 숫자 맨 위를 가르키는 꼭대기 끝층이었다.
비교적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한켠에 마련한 리스닝 공간은 원룸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여 만든 듯하였다. 다른 한켠에는 침대와 소파가 있었다. 룸의 절반 정도를 활용하여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여 놓았는데, 음악을 듣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주위가 매우 조용했다.

오디오 입문동기는, 일본유학 때 구입한 미니 콤포넌트를 사용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재생하기에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것을 느껴서라고 한다.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나 귀국 후 싱크로나이즈드 음악을 편곡하는 등 음악에 관심이 깊었고, 자연히 재생장치인 오디오 기기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면서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시스템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Guarneri Homage 스피커에 매칭을 고려하여 만든 시스템으로, 하이파이클럽 동호인의 권유와 조언을 곁들여 완성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시스템 Line-up은 다음과 같다.

System Line-up

Sonus Faber의 Guarneri Homage 스피커

과연 소문대로 용모가 매우 수려하고 육감적인 볼륨까지 갖춘 듯한 이 스피커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이목구비가 단정한 미인을 연상케 했다. 그 특유의 예쁜 디자인으로 전세계 오디오파일들의 잠자리를 뒤숭생숭하게 만든 데 그쳤다면 결코 명품 대열에 오를 수 없었을 터. 당연히 소리로도 발매 당시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스피커였다.

특히 옆 동네인 일본에서의 반응이 대단하여 오디오파일들의 눈길을 자극했던 이 스피커는 제작자 Giuseppe Guarnieri가 만든 악기인 'Guarneri del Gesu'의 음색을 구현하기 위해 42조각의 목재를 사용하여 만든 목각예술품으로, 함께 제공되는 커다란 대리석의 스탠드 역시 디자인이나 마감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화려한 마감을 받쳐주는 유닛 또한 모두가 특주품으로, 다인의 에소타 트위터와 오디오 테크놀로지 스쿼커를 우퍼로 구성하였다. 이들 유닛은 일부 하이엔드 스피커 제조회사들이 선택하는 고가의 제품들로, 그야말로 '물량투입'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Pass Aleph 'O'와 Linn 'Ikemi'

스피커를 구동할 앰프는 Pass Aleph 'O'이다. 열이 많이 나는 것만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예쁜 파워앰프로 비록 작은 체구이지만 당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전원을 넣고 30분 정도 지나야 몸체가 뜨거워지면서 좋은 소리를 내어 준다는 주인장의 설명이다. 전원을 넣었다. 파란색의 발광소자가 빛을 발하면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마치 한쪽 눈을 징긋 감으며 연거푸 윙크를 해대면서 '나 이제 음악 들려 줄 수 있으니까 맘껏 즐기라고…' 속삭이는 듯 보였다.

Pass Aleph O는 MOSFET라는 소자를 사용하여 모노 블럭형으로 만든 것으로, 발산하는 열을 감당하기 위하여 앰프 전체가 모두 방열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외관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순 A급 Single Ended방식인 Aleph O는 앰프 동작시 일정 수준의 출력범위를 벗어나면 A급 Push-Pull방식으로 동작하는 독특한 설계기법을 적용하여 화제를 불러모았다. 차별화된 설계만큼이나 음질 역시 진공관 소리에 가까운 중·고역이 따뜻하고도 질감 있는 매력적인 사운드로 수많은 오디오 파일에게 아직까지도 인기 높은 기종이다.

BAT VK-5i 프리앰프와 Powertek

Pass Aleph와의 짝을 이룬 프리앰프는, 진공관으로 Balanced단을 구현하여 인지도를 얻고 있는 BAT사의 VK-5i로 선택하였다. 진공관을 사용한 프리앰프 이지만, 진공관 답지 않은 호방한 스케일과 폭 넓은 대역, 눈에 보일듯한 음상의 전개등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CDP는 요즘 동호회에서 인기가 많은 Linn의 Ikemi였다. 과르네리 스피커에서 현의 질감을 살려주고 작은 체구답지 않게 밝고 차분한 소리를 내어 주어 매우 만족하며 통 알루미늄으로 깍아 만든 트레이의 조작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스피커 케이블은 Nirvana사의 S-L 시리즈중 Shotgun 이라는 바이와이어링 케이블이었고, 인터 커넥터는 모두가 Kimber의 Hero였다. 물론 XLR이다.

인터케이블이 전체 시스템을 볼 때, 약간 처지는 것 같다는 필자의 질문에 '업그레이드 1호 대상!' 이라고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서 꽤 괜찮은 품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업그레이드는 천천히 고려할 것이라는 덧붙임 말과 함께.

랙을 이용하여 배치한 기기들

위에 소개된 이들 기기는 모두가 나무랙(Rack)에 수납되거나 랙 위에 올려져 있었고, 각 기기마다 진동을 차단할 목적으로 방진고무가 붙은 대리석을 받쳐 놓았다. 대리석을 받친 것만으로도 소리의 변화폭이 커서 진동이 기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낀다고 하는데, 추후에 구입할 IBS, 오리어스, 심포지엄 롤러블럭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룸튜닝재는 몇일 전에 들어왔다는 RPG사의 Abbfusor 단 두개 뿐이지만, 아무것도 없었을 때 보다 효과가 좋아져, 보다 다양한 튜닝재도 추가 구입대상이라고 한다.

시스템의 전면을 바라볼 때 왼쪽의 측면벽은 대부분이 두꺼운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커튼이 설치된 상태이다. 리스너의 위치에서 거리는 약 3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소파와 침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맞은편인 오른쪽 측면벽은 절반 이상이 랙에 꼽혀진 수많은 CD들과 책장이 거리를 두지 않고 자리를 잡고 있기에, 시스템이 룸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치우쳐진 좌우 비대칭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좌우 측면벽이 거리상으로는 비대칭이었지만 세팅이 잘 되어서인지 음상이중앙에 모이면서 흐트러짐이 없는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첫번째로 들려주시는 음반이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Rachel Podger가 솔로로 연주한 Bach의 Violin Sonata & Partitas였다. 취재 후 이 음반을 구입하여 지금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음질이나 연주 모두 훌륭하여 테스트 음반 만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감이 든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과르네리 오마주가 현악의 재생을 위해 태어난 스피커라 그런지 몰라도 바이올린을 참으로 진솔하고 담백하게 표현해 주었다. 활과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울려 퍼지는 따스하면서도 유연한 현소리는 현재까지 들어 보았던 과르네리 오마주를 위시한 조합 중에 최고라 칭할만하다.

솔로 연주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 필자의 마음을 읽은 듯, CDP의 Tray에 얹은 그 다음 음반은 이미 명반으로 널리 알려진 David Oistrakh(Violin)와 Lev Oborin(Piano)이 연주한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Spring" Op.24였다.
좌중간의 Violin과 우중간의 Piano의 밸런스가 좋았다. 의외로 바이올린의 현소리도 좋았지만 맑고 따뜻하게 울리는 피아노의 영롱한 느낌은 빼놓을 수 없는 백미였다. Ikemi 특유의 음색이 약간 따뜻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Sharp한 것으로, 이와 만난 Pass Aleph의 일조도 크겠지만, 아무래도 스피커와 앰프의 조합이 예사롭지 않음을 이날 동석했던 오디오평론가 조용로 님도 인정하였다.

두 악기에서 울려퍼지는 듀엣의 조화로움을 감상하고 난 뒤 필자의 욕심이 늘어났는지… 인원수를 더욱 보강(?)한 4중주를 청하였다. 4중주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있을까? 네 개의 Part를 담당하는 각 악기들의 고유한 음색이 섞이지 않고 둥근 원을 그리면서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정확한 위치 선정(Focusing)과 Layering이 동시 만족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Airy한 Hall Tone까지 신경쓰자면…
이러한 재생을 위하여 값비싼 고급기기만을 매칭했다고 완성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음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절묘한 세팅과 매칭의 성패 여부에 따라 위에 열거한 부분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Alban Berg Quartet이 연주한 Beethoven String Quartet Opp. 131을 걸었다. 첫 악장의 도입부부터 진행되는 현의 미묘한 움직임은 거의 모두 파악이 되었다. 네 명의 주자들 중 제 1과 2 바이얼린이 약간 뭉치는 경향이 있는 듯하나 첼로의 통울림과 비올라의 음색과 바이올린의 음색의 분리도가 비교적 괜찮았다.

현악도 많이 듣지만 기분 전환용으로 테크노 댄스음악을 가끔 듣는 편이라고 하시면서 직접 편곡한 국가대표팀 싱크로나이즈드에 쓰인 음악을 들려 주셨는데, 클래식 재생을 위한 시스템에서 괜찮은 수준의 소리를 내어 주는 것이 아닌가! 클래식에 어울릴 만한 이들 조합이 강렬한 음악을 만났음에도 소화를 잘해냈다. 일렉 베이스와 드럼의 강렬함 퍼커션류의 두드림 소리가 실제음보다 약간 부드러운 듯한 것만 제외하고는 들어 줄만 하지 않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필자도 어느덧 경쾌한 음악에 빠져 있었다. 통울림이 없는 단정한 저음도 한몫했다.

필자가 가지고 온 Jordi Savall 지휘의 Monteverdi 'Vespro Della Beata Vergine, 1610'을 걸어보았다.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Gardiner 경이 지휘한 Live음반(Archiv, 1989)도 상당히 좋지만, 필자는 원전연주에 가까운 호르디 사발의 침착하면서도 느긋한 연주를 선호한다.
소형스피커의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성부의 음성이 비교적 부드럽고 위치 파악도 괜찮았다. 총추 부분에서는 스케일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나 작은 공간에서 울리는 세부적인 디테일의 표현이 좋았다. 다성부와 어우러진 각 악기의 파트가 홀톤에 묻혀 생성되는 현장음 특유의 재생이 요구되는 만큼 어려운 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조합을 거머쥐기까지 적지 않은 바꿈질과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답변은 의외로 "NO!"였다. 주변 오디오 선배들의 충고를 귀담아들은 것이 돈과 시간낭비를 면하게 해줄 수 있었단다.

-처음에 입문하였던 때를 떠올리자면…,
"여러 가지로 상당히 어려웠던 부분은 주위에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인이 없어 홀로 오디오 매칭에 힘을 기울여야만 했던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혼자서 소리를 만들자니 너무 쓸쓸하기도 했거니와 주변의 도움이나 정보를 손쉽게 나누지 못하였는데, 우연히 하이파이클럽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하루에 두 세번을 접속하여 꼬박꼬박 정보를 접하다 보니 실력이 조금씩 나아짐을 느꼈고, 가까운 동호인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애지중지 모아온 음악 소스들

현재 거센 바람이 일고 있는 Analog의 독특한 매력을 모 동회인 댁에서 느꼈던 소리의 변화가 가슴 저편에 일고 있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꼭 도전해 볼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몇몇 동호인들과는 친분이 두터워져 지금도 문제점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인데, 언젠가 매칭 사례나 몸소 겪었던 자신의 문제들을 다른 동호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누겠다는 뜻을 겸허하게 밝혔다.

-마지막으로 하이파이클럽에 바라는 사항은?
"동호회가 더욱 활성화되어 수많은 오디오파일들의 보금자리 역할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좋겠지만 오프라인의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는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떠올린다는 천호성 님!
조만간 옮길 거처에서는 더욱 넓은 리스닝룸 공간을 갖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앞으로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으며, 현재의 좋은 조합을 만들 수 있기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은 오디오 선배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는 말을 뒤로 한채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