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과 JBL로 음악의 진수를 추구하다. - 이승철 님
오디오라는 것은 음악을 듣는 도구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한다. 물론 음악이라는 전체 카테고리 안에서 보면, 오디오라는 것을 일종의 재생 장치로서 그 비중이 미미할 지도 모른다. 나아가서 음악을 직접 연주해서 얻는 감동이 오디오를 통해 얻는 기쁨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디오도 음악을 연주하는 일종의 악기라고 생각한다. 하이엔드 제품들 중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명품들이 있고, 그들이 갖는 가치는 심하게 말하면 스트라디바리나 스타인웨이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반발할 연주자들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음악 생활을 재생 장치를 통해서 영위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승철님은 오디오를 통한 재생의 기쁨과 색소폰 연주를 통한 실연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는 분이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분이라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전문 연주인은 아니다. 자기의 사업체를 충실히 운영하면서 이런 음악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분은 우리 주변에 흔치 않다. 연주야 개인 취미 생활이라 치더라도 오디오에 이르면 웬만한 애호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심도 깊게 추구했으므로 하이파이 클럽 독자들에게 소개해봄직해서 이번에 방문했다. 간단한 인터뷰 내용을 올린다.
인터뷰어 : 하이파이클럽
인터뷰이 : 이승철님
오랜만에 만나 뵙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잠깐 용산의 레코드 숍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참 부지런하신 것 같습니다. 해외 출장에, 사업체 운영에, 색소폰 동호회 활동에 레코드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우선 어린 시절, 음악과 관련된 추억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 :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안동에서도 한참 들어간 와룡이란 곳입니다. 채 스무 가구가 되지도 않은 작은 마을이죠. 그러니 음악을 접하거나 즐길 계기는 전혀 없다고 봐야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은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졸라 피리나 하모니카를 사달라고 했는데, 어려운 살림에도 청을 들어주셔서 혼자 마음껏 불고 놀 수 있었습니다.
세포 속에 음악을 사랑하는 DNA가 있지 않았나 싶군요. 전혀 음악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 지만 이렇게 악기를 연주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혹시, 전문 연주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이 : 고교 때 잠깐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릴 적부터 정통 교육을 받아야만 프로페셔널한 연주인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재생 장치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
이 : 고등학생이 되어 안동 시내에 하숙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그때 너무 음악을 듣고 싶은 나머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서(웃음), 화신 소니에서 나온 카세트 세트를 구했습니다. AM/FM 방송과 카세트, 스피커 등이 한데 달려 있는 세트죠.
기억이 납니다. 저도 어린 시절 그런 제품을 머리맡에 두고 음악을 즐긴 추억이 있으니까요.
이 : 안동만 해도 서울과는 거리가 있어 음악에 관한 정보가 풍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이 당시 레코드점에서 LP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1천 원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면에는 가요, B면에는 팝송 하는 식이었죠. 그런 테이프를 구해다가 음악을 즐겼습니다. 당시
이 시절에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불게 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 어릴 적부터 악기를 배우고 싶었던 차에, 학교에 밴드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응모해서 알토와 테너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겁니다.
그 즈음, 본격적인 연주가가 되려는 꿈을 꿨던 거군요.
이 : 잠깐 생각하다 그만뒀죠. 잘 아시겠지만, 학교 밴드부라는 것이 뭐 대단한 기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마칭 밴드니까, 레퍼토리라고 해봐야 겨우 20곡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저 악보를 보고 외우면 되는 수준이었죠. 또 밴드부 생활이라는 것도 단순합니다. 1학년 때엔 색소폰을 함부로 만질 수 없으니까 그저 선배 눈치를 보다 스케일 연습을 하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다 2학년 정도 되어야 본격적으로 만질 수 있는데, 레퍼토리가 빤해서 별로 실력이 늘 여지가 없었죠. 이것은 나중에 군대에 가서 문선대 생활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선대에 계셨습니까? 참, 흥미롭군요. 일단 그 이야기는 뒤에 듣기로 하고, 대학 시절로 넘어가보죠.
이 : 대학에 입학해서 상경한 것을 계기로 저에겐 음악의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일단 큰형님 댁 신세를 져야 했던 관계로 음악을 들을 형편도 못 되었고, 그렇다고 공부도 열심히 한 기억도 없습니다. 음악이니 공부니 다 시들시들 보낸 셈이죠. 단,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할 때엔 그래도 종로의 세시봉이나 명동의 셀부르 같은 곳을 이용하기는 했습니다. 이런 데에서 음악을 들으면 왠지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간 겁니다.
음대 출신이 아니면서 문선대에 들어간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 부분을 이야기해주십시오.
이 : 제 전공이 통신에 관련된 것이라, 처음 배치 받은 곳은 통신부였습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 후에 문선대가 공연을 오게 되었습니다. 정규 공연이 끝나고 몇 사람이 차례로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하는 타임이 왔는데, 저도 불려서 나갔습니다. 도무지 노래엔 자신이 없고 해서 그냥 색소폰 좀 불어보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불었더니 당장 문선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온 겁니다. 아마 그 즈음엔 혼 악기를 부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차출이 되어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아마 이 부분만 이야기를 들어도 소설 한 권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 들려주시죠.
이 : 당시 저희는 지방 공연을 다닐 때 무명 여가수들을 여섯 명 정도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실력은 있지만 지명도가 없어서 일종의 아르바이트 삼아 우리와 동행한 것이죠. 그런데 오지로 갈수록, 훈련이 엄한 곳으로 갈수록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가수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후끈 하는 열기가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 후 사회생활이 궁금합니다.
이 : 졸업 후, 처음 들어간 직장은 무역회사였습니다. 큰 형님 신세를 지기 싫어서 친구 한 명과 단칸방을 얻어놓고 일종의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당연히 오디오며 음악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그냥 친구들과 종로에 있는 몽셸통통이나 코파카바나 같은 곳에 가서 즐기는 게 전부였다고 할까요?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정신없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1995년도쯤 사업이 본 궤도에 올라가고, 집안도 안정이 되면서 슬슬 음악에 대한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간 죽어지냈던 음악 DNA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거군요. 그때 처음 산 시스템이 뭐였습니까?
이 : 앰프는 마란츠의 리시버 타입인 2285였고, 스피커는 JBL의 L166 그리고 테크닉스의 턴테이블이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오디오 하면서 현재 시스템 말고 가장 만족스런 경험을 줬던 것이 바로 이 시스템이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머리맡에 설치해놓고, 잠잘 때도 틀어놓을 정도였으니까요.
오랜 금단 끝에 온 해방이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후 늘 JBL 스피커가 곁에 있다는 겁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 : 저는 개방감이 좋고, 고역이 확 살아나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혼을 채용한 JBL만한 스피커는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꿈질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단 발을 내딛었으니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만.
이 : 제게 90년대 말은 한 마디로 충무로 시대였습니다. 직장도 가깝고, 아는 숍도 여럿 있어서 주로 이 지역을 다니며 거래를 했기 때문이죠. 참 많은 기기가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스피커는 틸의 CS6, JBL의 4425, AR의 신형 등이 기억납니다. 앰프는 주로 스펙트럴의 DMC 10과 마크 레빈슨의 20.6을 오래 썼던 것 같군요. 하지만 이 시기는 제게 그리 유쾌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기로 업그레이드했는데,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 의외로군요.
이 : 바로 잔고장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중고품과 별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뭘 틀면 찌지직거린다거나 웅 하는 소리는 기본이고, 때로는 한쪽 채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듣는 시간보다 수리점에 보낸 시간이 더 많았으니 정말 답답했죠. 그래서 다시는 중고품을 사지 않겠다 다짐하고, 2000년경에 용산으로 갑니다. 이 지역은 아무래도 신품을 많이 파니까 제가 원하는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B 음향을 만나 좋은 제품을 많이 거래할 수 있었죠.
용산 시대의 서막을 연 시스템이 뭔지 궁금합니다.
이 : 일단 스피커는 JBL 5500으로 한 가운데, 제프 롤랜드의 시너지 프리와 12 파워를 들였습니다. 참 정갈하고, 좋은 소리였습니다만, 제 취향은 좀 더 강한 소리를 원했으므로 결국 패스 쪽으로 교체하고 말았죠. XO 프리에 XA160 파워를 들였다가 곧 200으로 올렸습니다. 물론 스피커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JBL 9800으로 바꿨고요. 소스로 말하면 디지털 쪽은 와디아 860이라던가, 마크 레빈슨의 390SL 등을 썼고, 턴테이블은 가라드 301에 SPU A 타입을 물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스와 JBL 조합이 가장 제 취향에 맞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데 방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 열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거실에서 오디오를 설치해서 들었는데, 겨울에도 거실이 후끈할 만큼 열이 나왔습니다. 난방비 절약하고 좋다, 싶어서 계속 사용했습니다만, 전기세를 무시할 수 없더군요. 하루에 서 너 시간 틀고 나면 한 달에 30~40만원이 나왔으니, 어느 순간에는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현재의 리스닝 룸으로 옮겨올 수밖에 없었는데, 보다시피 5평 정도의 공간입니다. 이런 곳에 패스를 넣으니 찜질방이 따로 없더군요. 소리는 고사하고, 도무지 열 때문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골드문트의 텔로스 600으로 교체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열과의 전쟁을 피한 셈이군요. 그 즈음 제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주 고상하고 품위 있는 소리가 나와서 참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특히 JBL도 이런 소리를 낼 수 있구나 새삼 놀라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 앰프를 솔루션 세트로 교체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 사실 제가 사는 목동은 전기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220V가 제대로 들어오면 텔로스 600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12V 정도 떨어져서 208V 정도 되면 여지없이 트랜스가 우는 겁니다. 전기 테스터기를 구해다가 일일이 재보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숍과 상담해보니 리차드 그레이에서 나온 전원 장치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들여서 텔로스를 살리려고 고민한 순간 마침 솔루션이 보여서 일단 듣고 보자는 심정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랬더니 매우 시원시원한 고역에 청량감 넘치는 소리가 나와서 결국 교체하고 말았습니다.
솔루션과 JBL의 조합은 사실 저도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의아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퀄리티 높은 사운드가 나와서 역시 오디오는 매칭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참, 이 과정에서 소스 쪽에 변화가 있었죠?
이 : 네. EMT의 927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이 기기는 써보고 싶었는데 인연이 없어서 애를 태우다 일본에 아는 라인을 넣어 1년을 기다린 끝에 결국 손에 넣었습니다. 디지털 쪽은 EMM 랩스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체형을 쓰다가 한번 분리형을 들어보라고 숍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집에 들였더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더군요(웃음).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 현재 시스템에 안착해서 큰 만족을 얻고 계시다니 매우 기쁩니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리가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이 : 전 기본적으로 시원시원하게 터진 소리를 좋아합니다. 뭔가 조여지고, 깎인 소리는 질색입니다. 알다시피 저는 자주 연주도 하고, 실연을 접할 기회도 많습니다. 이런 실제음을 들으면 결코 답답하거나 조인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음은 오디오에서나 가능하죠. 그래서 개방감 넘치는 소리를 추구하는 것이죠.
요즘도 색소폰을 불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 "강서양천 색소폰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워낙 사업이 바빠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참석하고 있는데, 실은 매일 나가서 연습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죠. 회원은 한 50명 정도 되고, 정기적으로 연주회도 갖습니다. 특히 한여름 밤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무대를 여는 경우가 있는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멋진 음악을 선사할 수 있을 땐 정말 즐겁습니다. 이런 기분은 직접 연주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죠.
일전에 회현동의 클래식 전문 LP 숍에 갔더니 그곳 주인이 말하길 이 사장님이 클래식 음반 수집에도 대단한 열의를 보이신다고 하더군요. 클래식을 접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이 : 음악을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 클래식을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마침 회현동의 K숍을 알게 되어, 그곳 주인이 정기적으로 음반을 컬렉션해서 보내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민트급의 LP들입니다. 또 가끔 용산에 나가면 이제는 오디오 구경보다 음반 수집에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소리에 별 불만이 없는 데다가, 음반 모으는 재미에 빠져 정말 즐겁게 오디오 라이프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오디오에 음반에 연주에 정말 분주하고 또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부디 사업 번창하시고, 음악을 통해 활력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