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클럽 시청회 덕분에 탄노이를 제대로 울리게 됐습니다"
시스템 전경
대구의 한 회원님 오디오 시스템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2년 전 대구에서 열린 하이파이클럽 시청회가 회원님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이 인연으로 당시 시연에 나섰던 웨이버사의 파워앰프 V-Power Amplifier를 구매하신 분입니다. 이 앰프 덕분에 몇년 동안 속을 태웠던 탄노이 Westminster SE가 비로소 멋진 음을 들려주게 됐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가 본 시청실은 신축 3층 건물의 3층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전용 시청실이 12평, LP와 CD 등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거실이 10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20대 초반때부터 오디오에 천착해온 애호가답게 오디오 기기에는 깊은 내공이 베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이파이클럽 : 오디오를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처음 오디오를 산 것이 21살 때입니다. 로저스(Rogers) 스피커와 AR 턴테이블을 샀었는데, 당시 택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시스템을 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이파이클럽 : 당시에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오디오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나 보군요.
아니요. 하루에 18시간씩 운전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2교대로 일해야 했었는데, 교대로 일하던 사람이 나가서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택시 회사 선납금이 3만7000원이던 시절에, 5만8000원을 주고 24시간 일하라고 해서 잠만 자고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합승이 용인되던 때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93년에 한 달 아르바이트로 180만원을 벌었었으니까요.
소스와 앰프류
그때 샀던 오디오 시스템들이 지금도 중고장터에서 거래가 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중간에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오디오 시스템을 몇 번 정리하고 구매하기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결혼할 때 자금이 부족해서 오디오 세트를 판매해 결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CDP를 TV에 연결해서 시퍼런 화면을 보면서 오디오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다 2003~4년부터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다인오디오 스피커와 오디오 리서치 같은 기기들로 조금씩 오디오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Tannoy Westminster SE Speaker
이후 LAMM 파워앰프 등 여러 오디오를 사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탄노이 Westminster SE에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피커를 선택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밀도감이었는데, 저에게는 청취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대형 스피커가 필요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는 방안을 채워주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피아노가 잘 나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피아노도 무척 잘 나왔습니다. 청취 공간만 허락되면 이보다 좋은 스피커는 없다고 봅니다.
Waversa V-Power Amplifier
앰프는 LAMM을 물려 썼었는데, 하이파이클럽의 웨이버사 대구 시청회 때 제 사무실을 빌려준 것이 인연이 돼 웨이버사 제품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그때 웨스트민스터를 이렇게 잘 울려주는 앰프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그 자리에서 구매를 했습니다.
하이파이클럽 : 그렇게 바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제가 지금까지 사용해본 결과 이 스피커를 제대로 울려 줄 수 있는 앰프가 별로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구동력을 요하는 스피커이기 때문에 진공관 싱글 앰프로 몇 번 도전했다가 내보낸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클래스A TR 앰프를 사용하던 중, 솔루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Waversa MCH Phono Amplifier
하이파이클럽 : 포노앰프도 웨이버사 MCH를 2개 사용 중이십니다.
한 세트는 가라드(Garrard) 301에다 승압트랜스를 물려 사용 중입니다. 이 세트는 소편성이나 1950년대 모노 반을 들을 때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퀼라이징 커브는 50년대 유로 커브에 맞추어서 사용 중에 있습니다. 또 다른 세트는 대편성을 주로 들을 때 사용하고 있는데요, 린 Sondek(손덱) LP12에 역시 승압트랜스를 붙였습니다. 이 세트에는 1960년대 미국식 RIAA 커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라드 301 턴테이블
포노앰프는 제가 몇 개를 가지고 있는데, 가격 대비 성능비로 MCH를 이길 제품은 없다고 봅니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점은 포노 커브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저 같이 1950-60년대 LP를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는 대안이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도 유럽에서는 RIAA 커브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봐야 하거든요. 저는 웨이버사 제품 중에서 디지털쪽은 사용하지 않지만, MCH는 상당한 완성도가 있는 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Linn Sondek 턴테이블
가라드는 모노와 스테레오를 하나씩 운영 중입니다. 모노용은 FR64 암과 우든(Woden) 승압트랜스, 스테레오용은 오토폰(Ortofon) 암과 에스테틱스(Aesthetix)의 Rhea 승압트랜스를 사용합니다. 린 손덱에는 웨이버사에서 특주한 룬달(Lundahl) Silver 트랜스를 사용중에 있습니다. V-Power 앰프는 업그레이드를 한번 해서 MK2 버전입니다.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하이파이클럽 : CD플레이어도 CH프리시전의 좋은 제품을 갖고 계신데 LP 위주로 듣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CH프리시전을 떠나 CD는 절대 LP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맛이 없고 밋밋합니다. 간이 안된 음식을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1950-60년대 초반을 많이 들어보면서 내린 결론은 음원에서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의 감성과 뉘앙스를 CD가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LP 음반은 재반과 염가반이라도 음악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CD는 아무리 비싼 것을 들어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상당히 드뭅니다.
CH precision D1
하이파이클럽 : 왜 그렇다고 느끼시나요?
기술적인 점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오디오를 전혀 모르는 제 가족들에게 비교해서 들려줘도 LP가 좋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맞힙니다. 아무래도 정보량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LP는 CD보다 2배 이상 많은 정보량을 갖고 있다보니 배음을 아주 잘 표현해 줍니다. LP를 듣다가 CD를 듣게 되면 상대적으로 음질이 경질이기 때문에 잘 듣지 않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디지털 마스터링이 도입됐을 당시의 음반은 LP와 CD 음질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지만, 아날로그 마스터링 시절에 나온 음반은 LP와 CD의 음질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는 1950-60년대 아날로그로 마스터링된 음반들이 최근에 다시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하는 과정 중에 20,000Hz 이상의 정보들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CD 재생과 LP 재생에 투자한 금액만 봐도 극명한 차이가 납니다. CDP에 투입한 파워코드와 인터케이블만 해도 수천만원짜리 제품이지만, LP 재생에는 번들 케이블과 헤밍웨이 Indigo 2 정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잘 정리정돈된 LP
하이파이클럽 : LP 초반을 비롯해 희귀반을 많이 가지고 계신데 언제부터 컬렉션을 하셨나요?
10년 전부터 틈틈이 모으기 시작했고,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게 되었습니다. 사실 LP가 초반들은 너무 고가이고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컬렉션 하기가 어려웠었는데, 오디오 모임에 가입하면서 지인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공유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CD로 들었던 것 중에 좋은 것들을 LP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책장안의 클래식 관련 서적들
하이파이클럽 : 클래식과 지휘자 연주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신 것 같은데 따로 공부를 하신 건가요?
따로 책을 구입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지 않고서는 음악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인터넷을 통해 음반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작곡가 지휘자의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배제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시벨리우스 곡을 들으면 처연하고 서늘한 느낌을 즐길 수 있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그 사람의 개인사를 알게 되면 음악에 집중할 수 없고 자꾸 머릿속 잡념이 생겨 불편합니다.
분류별, 가격별로 잘 구분되어 있는 LP
하이파이클럽 : LP 커버를 보니 제품의 상태와 가격, 구입시점 등이 잘 메모되어 있습니다.
일단 음반을 사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입니다. 왜냐하면 분류가 잘 되면 사장되는 음반이 없는데, 잘못하면 사 놓고 한 번도 안 듣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류하는 습관을 카세트테이프를 살 때부터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LP의 경우에는 200장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따로 표시를 하면서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 3000장 정도를 관리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LP를 지금도 계속 사고 있지만, 장수는 계속 3000장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잘 안 듣는 음반은 주위 분들에게 판매하거나 선물로 드리고 제가 자주 듣고 좋아하는 음반들로만 재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기 보이는 음반 중에서도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게 될 것들이 있을텐데요, 이런 방식으로 LP 컬렉션을 한다면 3000장 이상 LP가 넘어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구매한 것만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장하고 있는 CD
하이파이클럽 : 최근 시스템에 큰 변화는 없고 음반들을 대거 구입하셨는데, 오디오적인 접근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것에 포인트가 더 있다고 봐야 할까요?
원래부터 그랬죠(웃음). 음악 듣기 위해서 오디오를 샀습니다. 보통 오디오파일들은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거나 소리는 좋지만 질려서 오디오를 바꾸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자에 해당됩니다. 그동안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기를 바꾸며 많은 고생을 했던 것이죠. 지금은 오디오적인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LP를 컬렉션하면서 음악 듣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깨끗하고 맑은 사운드는 제 취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지금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소리가 최고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저에게는 지금 이 소리가 편안하고 좋게 들립니다. 가끔 오디오동호회 회원 집에 가서 음악을 들어보면 소리적으로는 훨씬 나은 집이 많지만, 음악이 좋게 나온다는 느낌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기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입니다. 룸이 작은데 몇 억짜리 시스템을 넣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집도 오디오를 하고 싶어서 지은 집입니다. 집 지을 때부터 배선 하나하나, 콘센트 하나하나, 위치부터 설계까지 직접 고민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콘센트 하나당 서킷브레이커 하나씩 연결했고, 접지공사도 아주 신경써서 준비했습니다.
인터뷰 진행중 청음을 한 음반
하이파이클럽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오디오는 음악을 듣는 기계라고 보기 때문에 소리보다는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음반들은 녹음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에 실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어주지만, 이상하게 1950~60년대 음반 같은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연주자의 기량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클래식의 전성기는 1950~60년대였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당시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클래식 시장에 진출해 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하기 위해 몰렸지만, 지금은 클래식 시장이 축소되어 그만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만 봐도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들일지라도 의대나 법대 같은 곳으로 몰립니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과거에 있던 음악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보니,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음반과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연주자들이 공연장에서 억지를 너무 많이 씁니다. 경쟁자들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무리수를 자꾸 두게 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1년에 20회 정도 연주장에 가서 들어보면, 만족스러운 연주가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또한 대부분 과격하게 제스처를 취하다 보니 눈은 즐겁지만 귀는 고통스럽습니다.
이상, 제가 개인적으로 아쉬워하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린 것인데 하이파이클럽 회원분들께서 공감해 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너무 오디오적인 소리만 듣지 마시고 클래식 최전성기 때의 음반도 즐겨 듣다 보면 여러분들의 취미생활이 한층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이파이클럽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