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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최고의 앰프나 스피커 혹은 스트리머를 만든다고 자부하는 회사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된 것을 내세우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 만난 그림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독특하다.

지난 5월 중순에 열린 코바(KOBA) 쇼는 PA라던가 스튜디오, 방송 장비 등을 주로 다루는 이벤트다. 하이파이쪽을 전념해온 내게 생소한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스튜디오쪽은 이제 하이파이쪽과 꽤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실제로 다인오디오, ATC, B&W, 탄노이, JBL 등 하이파이의 유명 브랜드가 스튜디오 장비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고, 역으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다 하이파이로 건너온 브랜드도 많다. 이번에 만난 그림(Grimm)의 경우,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사실 예전만 해도 스튜디오용 스피커라고 하면, 정확성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홈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나 역시 아무리 좋은 장비라고 해서 들어봐도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고, 기계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간격이 무척 좁아져서, 오히려 홈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스튜디오용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그림이라는 브랜드는 스튜디오와 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오디오 시스템으로 제안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한편 이번에 만난 켄트 J. 푼(Kent J. Poon)이라는 분은 그림의 아시아쪽 영업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 무척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녹음에 주력하지만, 그림뿐 아니라 바이스(Weiss)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고, 그밖에 여러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다. 1년에 절반 이상은 출장에 할애하는, 무척이나 바쁜 분이다. 참고로 그의 영문 이니셜 KP로 표기해서,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인터뷰어 : 이 종학 (Jognny Lee)

인터뷰이 : 켄트 J. 푼 (Kent J. Poon)

-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부터 해주시죠.

KP : 저는 1976년,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에서 공부한 후, 음향쪽에 관심이 생겨서 캐나다에서 레코딩쪽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그 지역의 스피커 제조업체와 인연이 되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포커스 오디오입니다. 여기서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20년전의 일이죠. 이후 2003년에 홍콩에 귀국해서, 여러 수입업체와 PA 관련 업체에 컨설팅 일을 했습니다. 2010년부터 바이스와 일을 시작했고요. 이후 AVA Asia를 조인트 벤처로 설립합니다. 여기엔 비투스 오디오를 주재하는 분의 아들이 만든 알룩시티(Alluxity)의 배급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스퀘어 웨이브가 있습니다. 스퀘어 웨이브는 드비알레, 망거 등의 로컬 배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홍콩, 중국, 타이, 일본, 대만 등을 커버하고 있죠. 현재 홍콩, 나고야, 상하이 등에 지점이 있답니다.

- 정말 다양한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군요.

KP : 또 마스터링, 레코딩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W 사운드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음악부문의 공식 CD를 제조하기도 했습니다. 그 한편으로 30 IPS라는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주로 재즈를 녹음하지만, 사운드트랙 믹싱도 하고, 프로 오디오용 오디오를 판매하거나, 교육을 하고,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합니다. 해당 기기가 있으면, 그 제품의 기술적 배경이나 특징 등을 자세히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죠.

-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군요.

KP : 바이스와 그림은 연구 배경이 탄탄한 브랜드들입니다. 바이스만 해도, 스위스 정부에서 연구비를 보조할 정도니까요. 3D 사운드가 미래에 널리 보급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쪽 부문을 집중적으로 리서치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1년에 몇 개 정도의 오디오 쇼를 방문하고 있습니까?

KP : 약 20개 정도 됩니다. 매달 2개 정도의 페이스라고 할까요? 사실 이제는 프로와 홈 오디오간의 갭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쪽 부문에 모두 정통합니다. 이런 쪽에 특화된 전문가는 저 이외에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구글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그간 제가 녹음한 음반들의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 잘 알겠습니다. 그럼 그림 오디오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우선 이 회사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십시오.

KP : 이 회사는 4명의 인재가 모여서 만들었습니다. 그중 엘코 그림씨가 리더인데, 그는 원래 사운드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페어리테잎이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했죠. 또 유트레흐트에 소재한 HKU 대학에서 음악과 테크놀로지에 관련된 강의를 쭉 했고요. 한편으로 “프로 오디오 & 비디오”의 편집장을 오랜 기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 푼씨처럼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군요.

KP : 맞습니다. 이 4명의 인재 중 한 명으로 피터 판 빌렌스바르트라는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은퇴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원래 전기쪽 엔지니어고, 진공관 앰프에도 밝지만, 그 한편으로는 디지털쪽에서 상당한 전문 지식과 식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미국의 <스테레오파일>과 같은 잡지에 테크니컬한 쪽의 자문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 CD가 개발되고, 음질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을 때, 그 원인을 피터가 밝혀냈습니다. 실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죠. “왜 CDP마다 소리가 다르냐?” 그 원인이 지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터라는 말을 처음 발명한 것이 바로 피터입니다.

- 아하, 그렇군요.

KP : 그림 오디오는 2004년에 아인트호벤에서 창업했습니다. 필립스가 소재한 바로 그 아인트호벤입니다. 그때 이런 지터 문제라던가 디지털 오디오의 발전 가능성을 추구하기로 하고, 처음 개발한 것이 AD1이라는 AD 컨버터입니다. 1비트 방식으로 지금도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특히, 채널 클래식스에서 채용해 크게 주목을 받았죠. 바로 여기에 장착된 클락을 보다 발전시켜 만든 것이 바로 저 유명한 CC1 마스터 클락입니다. 이후 CC2가 나왔고요. 지금까지 나온 것중 가장 지터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디지털로 DSP를 구축하고, 디지털 앰프를 연구하는 등, 다양한 성과가 뒷받침되어 이번에 LS1에 이른 것이죠.

- 웹 페이지를 보니 LS1에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더군요.

▲ 왼쪽부터 LS1, LS1be, LS1a

KP : 맞습니다. LS1 자체는 표준형 2웨이 스튜디오 모니터입니다. 여기에 서브우퍼를 더하면 광대역을 너끈히 커버하는 제품이 됩니다. LS1 단품으로 니어필드 모니터로 써도 되고, 서브우퍼를 더해 강력한 저역이 뒷받침된 스피커로 써도 됩니다. 여기에 LS1be란 모델이 있는데. 이것은 트위터에 베릴륨을 삽입한 버전입니다. 또 LS1a라는 것도 있습니다. LS1의 염가형 모델이라 봐도 좋습니다. 퍼포먼스는 거의 동일합니다.

- 서브우퍼도 두 가지 모델이 있죠?

▲ 왼쪽부터 LS1s, LS1s-dmf

KP : 맞습니다. 기본형은 LS1s이고, 보다 광범위한 쓰임새를 위해 별도로 LS1s-dmf가 개발되었습니다. 전자는 피어리스사의 우퍼를 동원해, 400W의 D 클래스 앰프를 붙였습니다. 주로 LS1 시리즈를 겨냥하고 만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시어스사의 우퍼를 쓰고, 무려 700W 사양의 클래스 D 앰프를 붙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환경에서도 잘 어우러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범용성이 높은 모델이라 하겠습니다.

- 서브우퍼를 보니, 드라이버가 위로 향해 있더군요. 이런 방식은 처음 봅니다.

KP : 사실 70Hz 이하를 재생하는 서브우퍼는 주파수의 진폭이 크기 때문에 특별한 방향성이 없습니다. 설계를 하다 보니, LS1과의 접속을 위해선 위쪽으로 진동판이 향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제작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 부분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죠. 저희만의 독자적인 기술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 LS1에 대해 알아볼까요?

KP : 사실 이것은 단순한 스피커가 아닙니다. 일종의 오디오 시스템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 안에 DSP, DAC, 디지털 앰프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디지털 및 아날로그 입력도 가능합니다. 소스기만 따로 투입하면 LS1 자체에서 나머지 모든 과정을 다 처리합니다. 세계 최고의 오디오 시스템이라 자부합니다. 악기의 음색이나 정보량뿐 아니라, 공간의 구성, 음악성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꼭 스튜디오가 아니라 일반 홈용으로도 널리 추천할 수 있답니다.

- 그럼 어떤 기술이 들어있는지 설명해주시죠.

KP : 우선 DSP를 통해 전체 주파수 대역을 완벽하게 컨트롤합니다. 룸의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리니어한 재생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디지털 및 아날로그 인풋이 가능한데, 특히 USB를 통하면 PC나 맥에 담긴 64/128 DSD 및 DXD의 음성 신호를 처리합니다. 투입한 앰프는 NCore의 클래스 D 방식 제품입니다.

- 서브우퍼를 붙이면 저역은 어느 선까지 재생이 됩니까?

KP : 서브우퍼를 붙일 때,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70Hz로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경우, 20Hz까지 평탄하게 내려갑니다. 실제로 18Hz까지 가능합니다. 

- 역시 디지털 기술과 서브우퍼 등의 장점이 잘 결합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몸체인데, 리니어하게 20Hz까지 재생한다는 것은 대단한 미덕입니다.

KP : 저희는 마스터 클락에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고, DSP에 대한 노하우도 많습니다. 특히, DSP를 통해 주파수뿐 아니라 위상, 파워 리스폰스 등 여러 부분을 통합해서 최상의 솔루션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가장 완벽한 오디오 시스템이라 해도 좋을 정도랍니다.

- DAC는 어떤가요?

KP : 모든 유닛에 각각 DAC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도메인상에 음성 신호가 들어와서 증폭된 후, 최종적으로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드라이버를 구동하는 방식입니다.

- 이 스피커의 개발 동기는 뭔가요?

KP : 사실 저희는 세계적인 스튜디오에 장비를 많이 납품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암스테르담 콘체르토헤보에서 의뢰가 왔습니다. 공연을 녹음해서 플레이백할 수 있는 완벽한 스피커 시스템을 원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저희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제작에 임했습니다. 첫째는 크로스오버를 전통적인 패시브나 액티브 타입이 아닌, 저희가 개발한 독자적인 디지털 방식의 DSP로 처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DSP를 쓰면 여러 기능을 담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들이 다 컨트롤되는 것이죠.

- 그렇죠.

KP : 둘째는 타이밍 문제. 모든 대역이 똑같은 시간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시간축의 일치라고도 말하죠. 이런 위상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셋째는 주파수 대응 부분. 특정 대역에 피크가 생기거나 딥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실제로 LS1과 서브우퍼를 결합한 음을 체크해보면, 20Hz~20KHz 사이가 매우 리니어합니다. 위상도 완벽하고요. 이게 다 저희가 개발한 DSP와 관련이 있는 것이죠.

- LS1 시스템을 납품했을 때, 암스테르담에선 매우 만족했겠군요.

KP : 물론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 3대 클래식 콘서트 홀이라 칭송받는 암스테르담 콘체르토헤보, 비엔나 무지크페어라인, 보스턴 심포니 홀에 모두 납품하게 되었답니다. 이 세 곳에서 매년 열리는 콘서트만 900회가 넘습니다. 그 공연을 모두 플레이백하거나 방송으로 내보낼 때 저희 그림의 스피커가 쓰이고 있는 것이죠.

- 대단하군요. 현재 회사엔 몇 분이 있습니까?

KP : 15명입니다. 모두 엔지니어입니다. 레코딩쪽 전문가도 꽤 됩니다. 영업은 저 혼자 한다고 할까요? 오로지 제품의 퀄리티로 말하는 회사랍니다.

- 아무튼 그간 간간히 오디오 쇼에서 접한 그림 오디오의 실제 실력이랄까 가능성을 엿본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수확입니다. 스튜디오용 기기지만, 까다로운 하이파이 유저들에게도 어필할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KP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