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이야기 - I
케이블이 소리를 좋게 하지 않습니다. 나쁜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하다 보면 케이블이 필요합니다. 제조사는 필수적인 동작을 위한 번들 케이블을 제품에 동봉해 상품으로 공급합니다. 인류의 최초 가전기기는 오디오라 할 수 있으며 이에 사용되는 케이블은 표준화 전까지 무수히 많고 다양한 방식이 사용됐음을 빈티지 오디오 애호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RCA 방식의 단자, 케이블은 그 단자의 이름을 가진 회사가 만들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으며 그전에는 다른 방식이 사용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기기의 손쉬운 사용을 위해 표준화된 단자로 개조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오디오들의 상당수는 군용 또는 산업용(극장)에서 출발하여 가전용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가정용으로 전환되기 전 단계의 케이블은 범용이 아닌 전용 외부 배선 케이블, 전용 내부 배선 케이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그 형태나 복잡도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군용은 실전에 사용되어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모든 국가적 지원을 총동원하여 전쟁에서 이겨야 했었습니다. 무전 등 전자 정보전의 형태를 가지게 된 세계대전에서는 이러한 전자기기의 능력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었다는 부분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가전기기로서의 오디오로 넘어오면서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의 퀄리티로 급격히 하향됩니다. 수많은 병사의 목숨과 결부된 전자기기로서의 오디오와 가정에서 편하게 음악을 듣는 전자기기로서의 오디오는 그 결이 매우 다릅니다. 예를 들면 군함에서 쓰는 기기에 RCA 단자를 쓰고 RCA 케이블을 썼다면 이 케이블이 빠짐으로 인해 군함의 모든 병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음으로 어떠한 진동에도 빠지지 않도록 케이블을 설계했거나 아예 땜질했을 수 있습니다. RCA를 쓰더라도 스프링으로 커넥터를 고정하는 장치를 부가적으로 장착하는 형태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비들 사이에 존재하는 케이블은 때론 수십 가닥의 케이블이 한 번에 연결되며 신호의 특성에 따라 실드 선, 단심선, 연심선 등으로 다양한 선들의 집합체이며 그 두께도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게이지의 선재가 사용됩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군용 장비들을 적출하여 오디오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의 기기들을 보면 당시 기술력과 군사력이 비례적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40년대 초반의 웨스턴일렉트릭의 군용 무전기 내부는 예술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특히 케이블링은 예술이라 할 정도로 정확하게 배선되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가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점차 퇴행을 거치게 됩니다. 가정용 오디오의 배선을 대충한다고 누가 죽거나 하는 건 아니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군용이 아닌 분야에서도 이 케이블링이 중요한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항공기이며 이 항공기들은 MIL 스탠더드에 가까운 에어로스페이스 급 또는 익스텐디드 급을 따르고 있습니다.

군용 부품이나 어셈블리는 MIL 스탠더드를 따릅니다. 반도체 부품 등 모든 소자, 전선, 단자들도 군용을 써야 군용 제품이 됩니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부품은 오토모티브급을 쓰게 됩니다. 가전용은 등급이 따로 없고(있기는 하지만 오늘 이야기에서는 제외합니다) 특수용도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항공기, 군용은 특수한 부품, 케이블 등을 써야 합니다.

왜일까요?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그 정확도나 신뢰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전용은 조금 품질이 떨어지고 정확도가 떨어져도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자기 전원 반도체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TPS65131이라는 T1의 Split-Rail DC/DC 전원 칩으로 두 가지가 나옵니다. TPS65131-Q1이라는 부품은 자동차용으로 인증된 제품으로 자동차에 사용이 가능합니다. 물론 가전에 사용해도 잘 동작합니다.

이렇듯 용도에 따라 반도체와 부속 자재까지도 철저히 검증된 레벨이 사용됩니다. 단자를 보겠습니다.

군용으로 사용되는 단자입니다. 돌려서 잠그기 때문에 절대 빠지지 않고 방수 등 필수적인 성능이 보장됩니다. 단자 하나에 몇십만 원씩 합니다.

군용 케이블 와이어는 필수적으로 테프론 피복으로 불에 타지 않습니다.

저항 같은 경우에도 차이가 크게 있습니다. 자동차, 의료기 및 계측기 등에 사용되어 왜곡을 현저히 줄여주기 때문에 하이엔드 오디오에도 적용이 됩니다.

아주 오래전 아는 분의 부탁으로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심 보드 하나를 분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분석해 준 일이 있는데 보드 전체에 사용된 부품이 모두 MELF 타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밀도가 보장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저항인데 유리 튜브에 진공으로 밀봉되어 있습니다. 크기도 1.5cm 정도 크기입니다. 이런 류의 저항은 수백 년이 지나도 그 값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부품이 특정 그레이드를 가지고 있으며 저항 하나라도 MIL 스펙에 도달하지 못하면 군용으로 사용될 수 없으며 Automotive 스펙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동차용으로 쓰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높은 스펙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릅니다.

다시 케이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케이블은 원래 하나였어도 되는 기기를 한 개로 만들기 어려우니 기능별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분리된 기기 사이를 연결하는 데 필요하게 된 회로의 일부입니다. 원래 기기 안에서 보호받아야 했던 배선이 외부로 노출된 것입니다.

따라서 케이블의 숙명적인 역할은 내부의 배선과 동일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하도록 해야 설계된 기기 전체가 최적의 성능을 유지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30cm 길이 이내로 연결할 때 최적이었던 회로가 기기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2M로 늘어났을 때 이 2M 케이블은 30cm 내부 배선과 최대한 동급의 성능을 유지하도록 해야 최적의 결과를 내준다는 것입니다.


케이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케이블의 역할에 대해 잘못된 정의를 내려놓고 각자 다른 판단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전자제품의 내부에는 상호 이질적인 기능들이 존재합니다. 오디오파일들이 이해하기 쉬운 제품을 예로 들면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그리고 인티앰프입니다.

이름으로만 보면 인티앰프가 나중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는 회로의 이름이며 인티앰프는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회로가 모두 들어간 제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프리앰프만 넣은 제품을 프리앰프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본 글에서는 프리, 파워는 회로로 간주하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리앰프는 작은 신호를 다루고 파워앰프는 큰 신호를 다루기 때문에 두 가지 회로 사이에는 간섭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두 개의 회로를 같이 넣어서 기기를 만들 때에는 배선, 실드 등 처리할 게 많아지며 내부 연결 케이블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취미로 앰프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내부 배선 케이블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게 됩니다.

프리앰프에는 포노/마이크 앰프와 라인 앰프가 포함된 경우가 있는데 포노/마이크 앰프는 라인 앰프에 비해 100배에서 1000배 작은 신호를 증폭하므로 역시 라인 앰프가 포노/마이크 앰프에 영향을 많이 줍니다. 그래서 이 또한 배려가 필요하며 높은 수준의 설계 능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아무리 잘 만든 회로라 해도 파워앰프에서 스피커를 크게 울리는데 프리앰프 회로가 전혀 영향을 안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입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무시해도 될 수준입니다” 이 정도겠지요. 그런데 확실한 방법은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다른 하우징에 별도의 전원을 가지고 다른 기기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디지털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노이즈가 발생하는 부품들과 이에 영향을 받는 부품들이 구분되며 이를 분리하는 시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케이블이 성능을 좋게 할까요? 관점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케이블은 성능을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까지만 존재합니다. 원래 내부의 배선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최선의 상태보다 더 좋은 케이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리 법칙에 따라 없는 신호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전자공학 이론에 없는 정보를 추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케이블에 의해 성능이 좋아지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케이블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케이블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써야 하는 전투기도 아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여객기도 아닌 이상 가정에서 사용하는 케이블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래의 성능을 끌어내는 케이블 때문에 성능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단순한 물리적인 원칙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해 “케이블이 무슨 소리를 좋게 하냐”는 논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십시오.

“좋은 케이블이 소리를 좋게 합니다. 다만 기존 케이블이 성능을 무시하고 정상적인 동작만 하게 했기 때문에 본래 기기의 목적에 맞게 설계된 케이블에 의해 원래의 소리를 되찾은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집안에 쓰는 오디오가 좋을 필요가 뭐가 있냐고 항변하면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백만 원 이내의 바이올린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의 중요성이 높은 사람은 항공기 한 대 값이 들어가더라도 더 높은 수준의 사운드를 구사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들어간 오디오를 쓰는 것이고 더 높은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수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디오 기기들 사이에 연결되는 케이블은 각각의 기기들이 최적의 상태로 동작하도록 하기 위한 요소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비싸게 보이고 관점에 따라 싸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품 (국가가 관리하는) 이라는 관점에서는 번들 케이블로도 충분히 정상적으로 동작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번들 케이블로 충분히 좋게 만들려고 노력할 뿐인 것이고 최적의 전용 케이블로 만들어지는 소리는 본래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번들 케이블로 나는 소리가 너무 나쁘고 전용 케이블에서야 정상적인 소리라면 소비자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웨이버사 시스템즈에서는 늘 번들 케이블로 테스트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웨이버사에서 개발한 전용 케이블도 별도로 테스트를 합니다.

오늘은 회로를 합쳤을 때 또는 나눴을 때 발생하는 장단점과 케이블의 역할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지만, 간혹 온라인에서 케이블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마음 한켠으로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케이블이 소리를 좋게 하지 않습니다. 원래 나와야 하는 소리를 찾게 하는 좋은 케이블이 있을 뿐입니다.”

웨이버사 시스템즈 신준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