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경남 사천에서 오됴계에 뜻한 바 있어 깃발을 세우고 말발굽 먼지를 보얗게 일으키며 일사천리로 서울로 입성하시더니 마침내 '방장' 옥새를 인수받고 '서울방 활성'이라는 중책을 맡으셨군요. ^^ 일단 하례드리옵나이다.
흠... 이선훈 방장님에 대한 기억 하나.
작년 말 티알 앰프를 모두 내치고 진공관 앰프로 일대 교체를 감행하던 시기...당시 같잖은 누옥 한채를 짓다 반 사기꾼들에 걸려 고생을 심하게 겪은 직후였고 새 직장으로 말을 갈아탄 뒤 적응에 애를 먹던 나날을 거치다보니 얼라? 가뭄에 논바닥처럼 내 맴이 저억쩍 갈라지던 때여서인가...인생 고진풍파가 소리 취향도 바꾸더라...직진성이 강한 소리보다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소리가 귀에 차기 시작하더라 이겁니다.
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던(실은 쩐 문제로 ^^) 아날로그를 단행하게 되었고(물론 전 방장인 조용로 님 같은 뽐뿌 악다귀(?)들의 삐끼 행위에 걸려든 탓도 크지만...) 그때 애타게 찾던 프리앰프가 EAR864였는데...글씨 이것이 장터에다 아무리 "집나갈 EAR864를 애타게 찾습니다!"라고 사발통지를 띄워도 어디 발뒤꿈치조차 뵈알할 수 있나...
목이 쉬어라 고 가스나를 찾던 게 보기 안타까웠던지 그 무렵 어느 으슥한 심야에 조용로 님이 슬쩍 전화로 귀뜀하기를, "저어기 아리대 지방에 사는 이선훈이라는 양반이 고 가스나를 데불고 사는디...워낙 애지중지하는 애첩이라 내놓을지...절대 안내놓을낀데..."
귀가 번쩍 뜨입디다. 뭣보다 이선훈 님이라면 이전에 내게 메리디안588 씨디피를 넘겼던 분이고...그때 멀리 사천에서 씨디피를 서울로 가지고 올라와 손수 우리집까지 방문해 넘기면서도 과감히 돈 10만냥을 깎아줌은 물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아주 인상 깊게 들은 음악"이라며 씨디 한 장까지 선물로 주고간 그때 그 사람 아닌가. 아...이날 입때까지 중고장터 거래를 하면서 마음의 징표로 씨디 선물까지 덤으로 준 인간을 보덜 못했건만...오냐...이런 호인이라면 과부가 과부의 처지를 안다고, 그도 오됴파일이니까 오됴파일의 맴을 알아주지 않을까...
"이선훈 님...저 정용진입니다."
"(눈을 비비는 목소리로) 네...그란디 이 시간에 우짠 일이십니꺼?"
"마...책임지소!"
"뭘...다짜고짜 뭘 책임지라는 야그이신지..."
"왜 전에 588 제게 넘겼잖습니까?"
"그랬지요."
"그때 참 좋은 놈을 싸게 주신 데 대해서는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요...문제는 내 시스템에 너무 과분한 체급을 넘기신 바람에 오늘 이날 입때까정 소리방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신세랍니다. 이젠 저도 심신이 너무나 지쳐 고마 이쯤에서 방황을 끝내고 싶군요."
"……?"
"요지인 즉, 소문에 듣자하니 EAR864를 갖고 계신다면서요?"
"...네...헉! 그러니까 그게 필요하시다?"
"필요 정도가 아니라 절실한 처집지요. 본의는 아니셨겠지만 우야튼 그때 588 인수로 인해 틈만나면 청량리 근처를 배회하는 청소년마냥 오랜 세월 방황을 거듭했으니...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으으...그거 지금 제 시스템에 핵심인디..."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어디 답변해 보세요? ^^"
"으으..."
고백컨대 그날 심야의 통화는 이선훈 님의 이 단발마의 비명을 끝으로 쫑쳤다. 보라...어디 단 한마디의 협박이나 회유가 있었던가? 그냥 "그날 이후 난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는 내 절박하고 피폐한 처지를 하소연했을 뿐이다. 안그런가?
그런데 다음날 새벽 댓바람에 붐붐으로부터 전화가 날아왔다. 마침 붐붐도 EAR864를 애타게 찾고 있을 때였고 이선훈 님과 절친한 그였지만 차마 운을 떼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는 소리로 왈,
"아니 엉아? 간밤에 사람을 어떻게 겁을 주었길래 지금 장터에 이선훈 님이 모 프리앰프를 급하게 구한다는 광고가 올라왔수?"
아아...이선훈 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진정한 오됴파일이다. 급히 대타로 찾아나선 자기의 새 프리앰프를 미처 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EAR864를 곱게 포장해서 경기도 화성까지 예쁜 아내와 함께 들고올라온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