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코히어런트 소스, 페이즈 테크놀로지, 타임 도메인, 그리고 레이어링과 콤플라이언스 등 지금은 ‘국산말’로 번역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 이 ‘난해한’ 표현들은 모두 필자가 아발론 스피커를 처음 접하면서 닥쳐 온 생경한 세계였다. 더욱이 대부분의 부문에서 풍성함으로 상징되던 80년대에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채식주의자 풍의 사운드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했다. 몇 가지 사안을 고찰하다 보면 아발론은 꽤나 앞서간 브랜드 중의 하나였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예컨대 패션으로 비유하자면, 신경향의 과감한 색감과 스타일을 선보이며 이해 못하는 다수의 사용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아발론 풍(風)’을 시장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고집스러운 디자이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들에게서는 일종의 멋이 풍겨 나온다.

사실, 아발론 만큼 취미성이 강하다거나 개성을 앞세운 스피커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의욕적으로 독특한 세계를 시도했다가도 시장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급선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자켓에 아티스트 이름 하나 없이 민짜로 발매한 앨범처럼 고유의 사운드컨셉에 대한 아발론의 자존감은 꽤나 높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제품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아발론 제품의 복각을 직간접적으로 시도해 본 오디오파일들이라면 많은 좌절을 겪었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아발론과 무관한 사운드의 재생을 제외하고). 소리를 못 만들어서라기 보다는 방향 자체가 분명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음향 지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무지 헛것이나 허공 속 환상 같은 이름의 이 스피커들을 이해하기는 불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아발론은 사운드 적으로는 신기원이요, 그 구현을 위한 기술에서 앞서갔던 80년대의 신화와 같은 존재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소 높은 가격정책과 공간의 문제가 관여된 제품 구사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사운드 컨셉에 대한 사용자의 교감 등으로 인해 유행처럼 번지거나 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아발론은 아더왕의 전설과 함께 신비로운 존재감으로 재 넘어 큰 바위 얼굴처럼 남아 있던 브랜드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90년대를 지나면서 유사 컨셉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출현함에 따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그 위상이 다소 애매해진 시간들이 있었으나, 아발론은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는 신제품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시장에서 멀어져 있던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이유로 국내 시장에서 또한 존재감이 다소 희박해져 있었던 감이 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술과 보다 설득력, 혹은 포용력 있는 사운드의 기치를 올리며 권토중래, 중원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는 인상이다.

콤파스 다이아몬드는 아발론의 한 가운데 위치하는 제품으로 바로 아래 모델인 콤팩트 모델 인드라와 더불어 신제품 라인업의 사실상의 주력 모델이 된다. 뒷 패널 하단 패널에 반듯이 새겨진 제품명 ‘콤파스(Compas)’는 제도용 도구의 이름이 아니라, 스페인 무곡인 ‘플라멩고’의 한 박자를 의미하는 어려운 단어인데, 본 제품은 제작자 ‘닐 퍼텔’이 플라멩고 리듬에서 영감을 얻어 의욕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찰스 한센의 바톤을 이어받은 닐 퍼텔의 과제는 아발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찰스 한센과는 다른 사운드 스타일을 제창해야 하는 많은 부담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건, 그간의 아발론 제품들이 이전보다 한 등급 위의 하이엔드 지향을 해온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제품 – 콤파스, 인드라 – 를 보고 있으려니, 이제 계단을 만들어 포트폴리오로의 에스컬레이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콤파스는 이런 배경 속에서 아발론 고유의 성향으로서의 전 대역에 걸친 정확한 위상 특성의 구현과 일체의 부스팅을 허용하지 않는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필자가 아는 기존의 아발론에서는 다소 적극적이지 않던 감성 표현을 도입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자사의 설명에 따르면, Q값을 0.5로 고정해서 반응하도록 제작된 설계는 공진에 완벽히 대응하고 트랜지언트 직후의 지저분한 부수적 울림을 댐핑시키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오디오파일들이 알고 있듯이, 이상적으로 제작되었다고 가정할 때 이런 설계로 인한 효과는 전 대역에 걸쳐 의혹이 없는 단정한 사운드에 있다. 

다른 신제품 라인업에도 공통적인 사항일 것으로 보이는데, 참고로 본 제품에는 ‘Apex Couplers’라 불리는 정밀 가공 알루미늄 스파이크를 사용해서 3점 지지 구조로 되어 있다. 시청시에 바닥면에 오석 같은 재질을 사용하는 게 권장사항이라는 수입사의 설명이 있었는데, 베이스 리플렉스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특수 가공한 스파이크의 성능발휘에는 다소 감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생겨났다. 필자의 경우라면 매끈한 PU, 혹은 나무 바닥 면에 스파이크를 그대로 박히게 해서 시청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제품의 구성을 살펴보면, 트윈으로 구성한 두 개의 우퍼를 포함해서 전 유닛을 세라믹으로 구성한 3웨이 4스피커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잘 알려진 바, 틸 앤 파트너의 세라믹 유닛을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본 제품에 사용된 유닛들은 모두 블랙 마감으로 각 유닛이 그릴로 덮여 있어서 중후하기도 하거니와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우퍼는 별도로 내부 구조를 벌집 모양의 하니콤 구조로 설계해서 공진에 대응하고 있다. 

사실상 본 제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1인치 트위터에는 네오디뮴 자석을 사용한 드라이브를 사용한 원래 버전에 더해서 다이아몬드로 표면마감을 한 스페셜 버전이다. 다른 유닛과 마찬가지로 본 트위터 또한 역돔형으로 제작되어 있다.  전 유닛은 각각의 체임버에 수납되어 있다. 전면 패널을 덮는 그릴은 회절방지를 위해 항상 부착하고 시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드레인지에는 펠트 재질의 어퓨저를 부착시킨 것이 다른 유닛과 다른데, 제품 데이터 상으로 확인해 보지는 못했으나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위쪽 대역을 넓게 편성하고 미드레인지를 3K 정도까지 끊어 설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하지만, 펠트의 역량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시청으로는 미드레인지의 에너지가 도드라진다던가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콤파스 다이아몬드의 사운드를 일괄하자면, 투티나 대음량에서도 크고 작은 수많은 음표들의 필터링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처리해서 대단히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을 우선 얘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게 이전의 아발론의 특징이든 아니든 본 제품의 첫 번째 정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아이돌론보다 다소 호리호리한 모양새와는 위화감이 있을 정도로 안정된 다이나믹스를 선사한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Dance Of Tumbler’는 이런 성향을 잘 드러내주는 곡인데, 무엇보다 무대 뒤쪽 깊이까지 자리를 잡는 깊은 스테이징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다. 깊이감이 좋은 시스템에서 종종 듣게 되는 본 곡의 일반적인 홀로그램 이미지와 약간 다른 뉘앙스인데, 얇은 천들을 양쪽 끝에서 팽팽하게 당겨 만든 필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밋밋한 표면의 레이어링이 아닌 감촉있는 레이어들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래비를 서서 펼쳐지는 광경은 실로 일품이다. 고역은 뭐랄까… 다이아몬드 코팅을 한 노틸러스 등과 비교를 하자면, 밝고 끝없이 뻗친다는 느낌보다는 질감표현으로 인한 미세한 굴곡의 묘사가 뛰어난 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본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실력은 시청을 거듭할수록 위력을 발휘하는데, 슬램 직후의 여운에도 가려지지 않는 중역 이상의 대역은 마치 비 갠 이후의 아스팔트 같은 청명함을 선사한다. 하니콤 구조의 두 발의 베이스 우퍼는 정평난 대로 뛰어난 다이나믹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트랜지언트 순간에도 자체 공진이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슬림한 콤파스의 모습이 다소 이채로울 정도이다. 다만, 디자인 앤 오디오 시청실의 특성상 어쿠스틱에서 돌아 나오는 잔향만이 울림으로 들렸는데, 본 제품의 이상적인 구사를 위해서는 약간의 손질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아발론의 제품이라면 뛰어난 녹음에서(물론 그럴수록 더 잘 부각되겠지만) 최상의 퍼포먼스가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포용력’이라는 점에서 콤파스는 다른 모니터 스피커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카펜터스의 ‘Superstar’ 같은 곡의 경우, 오리지널 녹음의 품질은 높으나 리마스터가 아니라면 시스템에 따라서는 둔탁한 저역의 덩어리를 만들어 내거나 빅마우스가 생겨 포커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하는 곡이다. 콤파스에서는 도입부의 베이스에 두터움이 남아 있으나 음상이 부풀거나 흔들리지 않아 무대를 가득 채울지언정 상당히 안정적인 스테이징을 만들어 낸다. 평면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외곽선을 묘사하고 정확한 사이즈로 카렌 카펜터를 그려준다. 시청 앰프에 따른 편차가 있긴 한데, 디자인 앤 오디오 시청실의 경우 콤파스에는 솔리드 앰프의 경우 300와트를 넘지 않는 기종이었을 때 이상적인 포커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필자가 감지했던 콤파스의 차별화된 영역은 소편성 클래식에서 더욱 돋보였다. 김영욱, 요요 마,액스가 연주하는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에서 특히 원 소스만을 채로 쳐서 들려주는 듯한 첼로의 질감은 시종 실제 연주의 느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순간, 미드레인지에 부착한 펠트가 생각났는데, 트랜지언트의 순간에 트위터 및 우퍼와의 뛰어난 일체감은 저역에서의 에너지와는 또 다른 의미의 안정감을 만들어 주었다. 

미세한 하모닉스를 곡선운동으로 전해주는 트위터의 텍스춰 표현은 이 부문만을 떼어놓고 보면 이채롭게도 소너스 파베르의 패브릭 돔에서 듣던 질감의 느낌과도 유사했다. 음의 윤곽을 강조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음을 처리해서 들려준다. 본 곡이 이색적이었던 건, 단정한 울림 속에 정감 넘치는 운행으로 시종 진지하고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재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필자가 본 제품에서 이전의 아발론 스피커들과 다소 다른 기조라고 생각된 부분은 감성적인 부분이다. 이질감이 아니고 본원적 아발론 사운드를 기반으로 생겨난 신경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소출력 앰프를 들이대고 룸 어쿠스틱에 투자를 해서 아발론의 플로어 스탠딩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이번 만큼 강렬한 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청 후에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 보면 극단적으로는 ‘사무적’이라고 까지 해야 했던 이전의 아발론에 정서적 교감과 친화력이라는 게 생겨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피커가 사라지는 것은 시청자와 인사를 나눈 이후에 진행되었을 때 진정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알게 된 자리였다. 다만, 이런 포용력과 감성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사용자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스피커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알려진 바 공간에 대한 우려가 될 것이다. 

포커스 다이아몬드의 경우 스피커와의 거리가 3미터 이상이 될수록 오소독스한 저역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피커의 측면을 시청실 벽에 가깝게 두고 토우인을 많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스피커와의 거리는 확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건을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콤파스는 아발론에 오디오파일들이 알고 있는 영국계의 정감을 패치한 기종으로 적극 추천할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