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 21
몽세라 피구에라스. 조르디 사발의 마누라이다. 고음악 전문 소프라노이다. 사발의 충실한 조력자이며, 뛰어난 음악학자이다. 중세 이베리아 고유 전례를 복원한 무녀의 노래 시리즈나, 르네상스 시대의 성악곡들은 물론 고전 시대 스페인 가곡들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대한 피구에라스의 진지한 애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 예쁜 딸아이가 노래하고 연주할 때, 아들놈이 티오르바라고 하는 옛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할 때, 남편인 사발이 활로 감바를 묵직하게 그어댈 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해리 포터 영화에 거대한 몸집에 엄청난 털보 아저씨 루베우스 해그리드가 나온다. 에스페리옹 21은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그 중 퍼커션을 담당한 페드로 에스테반에 눈이 갔다. 그를 보면서 해리포터의 해그리드가 떠올랐다. 대단한 턱수염 때문에... 외모만이 독특한 것은 아니다. 연주하면서 그의 주머니에서는 과연 몇 개의 악기가 나오는가? 두들겨대는 악기는 모두 그가 담당한다. 우선 무대 위에 보이는 큰북, 다부카(darbuka, 모래시계처럼 생긴 퍼커션으로 팔 아래쪽이나 다리 사이에 수평으로 놓고 양손으로 연주한다), (크고, 작은) 탬버린 등을 비롯하여 필요할 때마다 어느 사이에 나타나는 똑딱이, 캐스타너치, 작은 종 등등 헤아려보니 7개가 꼽힌다.
고음악을 연주하는 에스프레옹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해리포토의 옛날 마법의 세계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연결되어 그려진다.
4. 악기의 배치
늘 음반으로만 들어왔고, 실제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악기의 배치를 눈여겨보았다. 오케스트라도 독일식, 러시아식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고, 지휘자마다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등등 그 배치도 조금은 달리할 수 있다고 보기에... 과연 옛날 음악의 연주는?
그려보았다. 옛날 16～17세기... 어스름한 저녁, 마을 사람들이 저녁을 먹기 전에 혹은 먹은 후에 삼삼오오 마을의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서 비올, 기타, 북을 귿고 뜯고 두드리며서 선율을 그려내면, 동네 처녀는 아낙은 선율에 취해 흥얼거리다 일어서서 노래하리다.
에스프레옹 21은 의도된 것이지만, 무대를 바라보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르디 사발, 아들, 마누라, 딸아이, 동료 페드로 에스테반이 앉아 연주했다. 악기별로 보면 감바, 티오르바와 성악, 성악, 알파 도피아(옛날 하프)와 성악, 다부카를 비롯한 다양한 퍼커션이 놓여진 것이다.
다부카와 큰북(?)이 두둥거릴 때 낮게 깔리는 그 음이 저음이라 할 때, 조르디 사발의 감바의 저음과 대응을 이루고 있었고, 엄마 보컬을 중심으로 아들의 목소리 딸아이의 봄처녀 같은 목소리가 서로 자웅을 이루도록 배치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조화로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오랜 역사가 베어있고, 딸아이의 목소리에는 풋풋함, 싱그러움이 묻어났고, 아들의 목소리는 팝페라 가수의 느낌이 전해왔다. 고음악에서의 발성과 슈베르트 등의 가곡에서 이야기되는 발성과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5. 시간과 순간의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 <시간과 순간의 음악>을 주제로 펼쳐지는 공연은 중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음악, 그리스 로드섬 지역 거주 망명 유대인들의 자장가, 모로코 기악음악, 작자 미상의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기악곡 등 13～18세기에 걸치는 고음악의 향연을 펼쳐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바흐나 베토벤, 슈베르트 공연과는 달리 아무리 들어도 그 생소함에 뭐가 뭔 곡인지 연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생소하기는 하지만 흔히 아는 고전음악은 물론 바로크 음악에 비해서도 훨씬 단순한 음률과 형태를 가졌기 때문인지 그 순수함, 청아한 음향에서 소리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더욱이 부러울 만큼 가족으로 이루어진 에스페리옹21 음악은 더욱 긴밀한 호흡으로 섬세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정말 놀랍도록 사랑스런 소리였으며, 시간을 초월한 음악으로의 매혹적인 여행, 아름다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