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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렌드가 파워앰프에 스트리밍 DAC 프리앰프를 세트로 구성하는 것이다. 최근 리뷰했던 에소테릭의 스트리밍 프리앰프 N-05XD와 클래스 A 스테레오 파워앰프 S-05가 그러했고, NAD의 스트리밍 프리앰프 M66과 클래스 D(아이겐탁트) 스테레오 파워앰프 M23이 그러했다.

이는 확실히 같은 2박스 세트 구성이라도 인티앰프에 소스기기 앞단을 붙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강력한 전자파 노이즈와 진동 노이즈를 발산하는 파워앰프를 독립시키고, 나머지 파트를 한 섀시에 몰아넣어 음질적 이득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DAC의 프리앰프 성능이 크게 올라온 영향도 크다.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자존심 볼더(Boulder)도 이러한 스트리밍 DAC 프리앰프 + 파워앰프 트렌드에 올라탔다. 이번 시청기인 812 스트리밍 DAC 프리앰프에 861 스테레오 파워앰프 조합이다. 드러난 특징만 보면 스트리밍 인티앰프 866과 비슷하지만 실상을 보면 1+1 비밀병기에 가깝다. 무엇보다 812는 잭을 4개나 갖춘 강력한 헤드폰 앰프이기도 하다.

볼더와 800 시리즈

볼더는 스튜디오 엔지니어 제프 넬슨(Jeff Nelson)이 1984년에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 설립했다. 처음에는 프로 오디오 앰프를 만들다 1995년에 내놓은 2000 시리즈를 기점으로 홈 오디오로 전향했다. 1999년에 주니어 1000 시리즈, 2005년에 엔트리 800 시리즈, 2011년에 플래그십 3000 시리즈를 선보였다. 2016년에는 콜로라도주 루이스빌로 이전했다.

• 1984 설립
• 1984 500 Power
• 1995 2010 Pre
• 1995 2020 DAC
• 1995 2050 Mono Power - 1000W Class A
• 1995 2060 Stereo Power - 600W Class A
• 1999 1060 Stereo Power - 300W
• 2000 1012 DAC Pre Phono
• 2002 2008 Phono
• 2003 1010 Pre
• 2005 850 Mono Power - 200W
• 2007 860 Stereo Power - 150W
• 2007 865 Integrated - 150W
• 2008 1021 Network Disc Player
• 2009 1008 Phono
• 2011 3050 Mono Power - 1500W Class A
• 2013 3060 Stereo Power - 900W Class A
• 2013 2110 Pre
• 2013 2150 Mono Power - 1000W Class A
• 2013 2160 Stereo Power - 600W Class A
• 2014 2120 Streaming DAC
• 2017 1160 Stereo Power - 300W
• 2017 1110 Pre
• 2017 3010 Pre
• 2018 508 Phono
• 2019 1108 Phono
• 2019 2108 Phono
• 2019 1161 Stereo Power - 150W
• 2019 866 Streaming Integrated - 200W
• 2023 812 Streaming DAC Pre Headphone Amp
• 2023 861 Stereo Power - 50W

800 시리즈는 볼더의 사실상 엔트리 라인업이다. 밑으로 508 포노앰프가 있지만 500 시리즈는 이 한 종류뿐이다. 800 시리즈 현행 라인업은 2019년에 나온 볼더 최초의 스트리밍 인티앰프 866과 이번 시청기인 812, 861, 이렇게 3종 구성. 같은 800 시리즈이지만 덩치만 놓고 비교하면 866은 자이언트급이다.

800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상급 시리즈에 비해 사이즈와 가격을 줄이고 낮췄다는 것. 812와 861의 경우 가로폭이 30.5cm에 불과하다. 가격은 일반 잣대를 들이대면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볼더 기준에서는 ‘염가' 수준. 파워앰프의 경우 출력도 낮은 편인데, 861은 8옴에서 50W를 보인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850 모노블록 파워앰프는 200W, 860 스테레오 파워앰프와 865 인티앰프는 각각 150W를 냈다.

812 살펴보기

812와 861은 그야말로 깔 맞춤 세트다. 우선 가로폭과 안길이가 모두 30.5cm로 똑같고, 전면이 살짝 뒤로 경사진 모습, 측면 히트싱크 디자인도 똑같다. 특히 히트싱크 디자인은 866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작업했다. 그는 스페인 구겐하임 박물관 등 다수의 유명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812 전면을 보면 왼쪽에 콜로라도주 산들을 그린 직사각형 자석식 덮개가 있는데 그 안에 4개의 헤드폰 잭이 숨어있다. 왼쪽부터 4핀 XLR, 펜타콘(Pentaconn), 3.5mm, 6.3mm 잭이다. 덮개를 준비한 것은 외관을 깔끔하게 가져가려는 의도도 있지만 헤드폰 잭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실용적 목적이 더 커 보인다.

4개 잭 옆에는 입력 상태를 알려주는 작은 LED와 4개의 버튼이 마련됐다. 왼쪽부터 입력 선택, 헤드폰 앰프 출력/프리아웃 선택, 뮤트, 스탠바이 버튼이다. 맨 오른쪽에는 R2R 어테뉴에이터 설계의 볼륨 노브가 있어서 100dB 레인지를 1dB씩 조절할 수 있다. 866에 있던 디스플레이는 없다.

후면은 왼쪽에 전원 인렛과 온·오프 스위치가 있고, 윗열에 디지털 입력단자, 아랫열에 아날로그 입출력 단자가 있다. 디지털 입력단자는 4개의 USB-A, 이더넷, USB-B, 광 2, 동축 1 구성. USB-A는 메모리 재생을 위한 것으로, 기본 제공되는 USB 와이파이 동글도 끼울 수 있다. 아날로그 단자는 XLR 입력 2조, XLR 출력 1조로, RCA 입출력 단자는 없다.

전면과 후면 인터페이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812는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DAC 겸 프리앰프 겸 헤드폰 앰프다. 우선 네트워크 플레이어로서 812는 룬 레디(Roon Ready) 인증을 받은 룬 렌더러이며, UPnP/DLNA와 에어플레이도 지원한다. 블루투스도 된다. 네트워크 보드는 라즈베리(Raspberry) Pi 3B를 썼다.

DAC는 채널당 1개씩 투입된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멀티비트 델타 시그마 DAC 칩인 AD1955A가 핵심. PCM은 32비트/384kHz, DSD는 DSD128까지 재생한다. 먼저 나왔던 866에도 이 칩이 활약 중이다. PCM 신호의 경우 24비트/192kHz로 업샘플링한 후 컨버팅을 하는데 이는 버브라운 SRC4392 칩이 담당한다. USB 수신 칩은 XMOS 칩을 썼다.

프리앰프는 수치상 최대 전압 게인 19.4dB, 입력 임피던스 100k옴, 출력 임피던스 100옴이 핵심. 세트로 나온 861 스테레오 앰프의 전압 게인이 26dB인 만큼 둘의 총합 게인은 스트리밍 인티앰프 866(최대 40.4dB)보다 높은 최대 45.4dB가 된다. -3dB 기준 0.02Hz~250kHz라는 광대역한 주파수응답특성도 놀랍다. 전원부는 대만 델타에서 만든 SMPS를 썼다.

헤드폰 앰프는 JFET 소자를 채널당 4페어 컴플리멘터리 회로로 구성, 32옴에서 200mW, 600옴에서 80mW를 뿜어낸다. 이같은 막강한 화력 뿐만 아니라 잭도 4.4mm 소니 펜타콘 밸런스 잭, XLR 밸런스 잭, 3.5mm 언밸런스 잭, 6.3mm 언밸런스 잭을 두루 갖췄다.

861 살펴보기

861은 8옴에서 50W, 4옴에서 90W를 내는 클래스 AB 증폭,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푸시풀 구동의 스테레오 파워앰프다. 피크 출력은 8옴에서 75W, 4옴에서 110W, 2옴에서 200W에 달한다. 전원부는 대형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앞세운 리니어 구성.

전체적인 외관은 812과 거의 쌍둥이처럼 디자인되었고, 전면에는 스탠바이 버튼밖에 없다. 후면에도 채널당 2개씩 마련된 볼더 스타일의 바인딩 포스트와 XLR 입력단자 1조만 마련됐다. 전압 게인은 26dB, 왜율(THD)은 0.01%, 입력 임피던스는 100k옴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파워앰프의 입력 임피던스가 100k옴으로 높은 점이 인상적. 이는 제 짝으로 나온 812 프리앰프는 물론 다른 프리앰프와도 적절한 임피던스 매칭을 하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812의 경우 출력 임피던스가 100옴에 그치는 만큼, 812와 861 연결 시 전압 분배 공식에 따른 에너지 손실률은 약 0.0001%에 그친다.

이 밖에 주파수응답특성 수치도 놀라워서 -3dB 기준 0.015Hz~150kHz라는 매우 광대역한 수치를 보인다. 가청 영역대(20Hz~20kHz)에서 음압 감쇄는 그냥 플랫한 수준인 -0.04dB에 그친다. 입력 노이즈 역시 20kHz에서 2.6uV에 그친다.

812 & 861 들어보기 - 스피커 출력

볼더 수입사인 케이원에이브이 시청실에서 진행한 812, 861 시청에는 윌슨 오디오의 Sabrina X 스피커를 동원했다. 사브리나 X는 1인치 실크 돔 트위터와 5.75인치 페이퍼 펄프 콘 미드, 8인치 페이퍼 펄프 콘 우퍼를 갖춘 3웨이 3유닛 스피커로, 공칭 임피던스 4옴, 감도 87dB를 보인다. 권장 최소 앰프 출력은 50W.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고백컨대, 8옴에서 50W, 4옴에서 90W를 내는 파워앰프 861이 4옴에 3유닛 스피커를 드라이빙할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이 사실. 실제로 예전 사브리나 X 리뷰 때는 8옴에서 300W, 4옴에서 500W를 내는 T+A의 대출력 파워앰프 A3000 HV를 동원했었다. 그래도 볼더 DNA가 살아있는 파워앰프라면 다윗의 반전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반 기대반으로 시청에 들어갔다. 

먼저 몸풀기(?)로 리처드 용재 오닐의 ‘Passagalia’를 들어보면 일단 음이 얇지 않고 어느 정도 밀도감이 느껴져 안도했다. DAC을 내장한 룬 레디 네트워크 플레이어로서 해상력도 합격점. 그런데 음이 아주 맑은 것은 아니어서 교묘한 착색이 있다. 야들야들하고 달콤한 쪽은 절대 아니다. 파워앰프는 은근히 남성적이며 강건한 맛이 있다. 

아티스트   김윤아
곡   Going Home
앨범   315360

본격 청음에 들어가자 메모하는 손이 빨라진다. 생각 이상으로 음이 따뜻하고 푸근한 것이 지금 마치 진공관 프리파워 조합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여기에 피아노 배음까지 잘 살려내는 것을 보면 역시 프리앰프 812가 적극적으로 전압 게인을 확보한 덕이 크다. 소스기기 직결이거나 패시브 프리 조합 수준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온기와 볼륨감, 정보량이다. 

다음으로 감탄한 것은 견고한 무대다. 들려줄 것은 다 들려주면서도 무대가 흐물흐물하다는 인상이 전혀 없다. 이는 그만큼 파워앰프 861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출력단과 리니어 전원부가 스피커를 확 틀어잡고 드라이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조합, 어쩌면 볼더의 1+1 비밀병기일 수도 있겠다, 무릎을 쳤다. 

아티스트   The Weeknd 
곡   Blinding Lights 
앨범   After Hours 

첫 음부터 시청실의 공기를 부르르 떨게 만든다. 소출력 클래스 AB 앰프가 8인치 우퍼 포함 3유닛 스피커에서 이 정도 음압을 끌어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무리 프리앰프가 드라이빙을 잘 해줬다고 해도 파워앰프 자체의 펀치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 하나 푸석하거나 물렁거리는 구석이 없다. 공개는 안됐지만 861의 출력 임피던스가 무척 낮게 설계됐음이 분명하다.

리듬과 스피드, 타이밍 감각도 발군. 그야말로 똑 부러지고 스트레이트한 음과 무대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건조한 느낌이 도는데 이는 812에 투입된 라즈베리 파이 3B 네트워크 보드 성향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리뷰했던 브라이스턴의 스트리밍 DAC BDA-3.14와 비슷하게 들렸던 것도 동일한 라즈베리 파이 3B 네트워크 보드를 채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티스트   A.R.Rahman
곡   Dacoit Duel
앨범   Between Heaven and Earth

솔로 악기 독주 때부터 클래스 AB 앰프 특유의 경쾌하고 가뿐한 풋워크가 돋보인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북의 타격이 시작되는 대목에서는 그 스피드와 파워에 다시 한번 놀랐다. 치고 빠지는 그 재빠른 모습도 대단하다. 어떻게 저 작은 파워앰프에서 이런 파워가 나올 수 있는지 이제는 의아할 따름. 펑퍼짐한 저역이 절대 아니다. 곡이 끝나니 8인치 우퍼에 묻어있던 온갖 먼지와 때가 다 떨어져 나간 것 같다. 대단한 이탈감이 아닐 수 없다.

812 들어보기 - 헤드폰 출력

812의 헤드폰 앰프 성능도 체크해 봤다. 댄 클라크 오디오의 Aeon 2 Noire 밀폐형 평판 헤드폰을 동원했는데, 이 헤드폰은 임피던스 13옴에 감도 92dB를 보인다. 헤드폰 잭은 3.5mm 언밸런스 잭을 이용했다. 음원은 계속해서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812 내장 헤드폰 앰프 성능을 체크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냥 861과 조합해 스피커 소리만 들었다면 812 실력의 반의 반도 못 봤을 것 같다. 그만큼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해상력과 파워는 물론이고 헤드폰 진동판이 필자 귀에 바싹 붙어있는데도 노이즈가 한 방울도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개운한 헤드폰 소리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No Moon At All
앨범   Turn Up The Quiet

이 곡은 861 조합으로 스피커로도 듣고, 812 단독으로 헤드폰으로 들었는데 두 경우 모두 감탄사만 나왔다. 무엇보다 이 곡은 재생 시스템의 파워가 떨어질 경우 다이애나 크롤의 치찰음이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리는데, 두 경우 모두 그렇지 않았다. 특히 헤드폰에서 치찰음이 거의 안 들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는 그만큼 812 내장 헤드폰 앰프가 평판 헤드폰을 확실하게 드라이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곡에서는 또한 다이애나 크롤의 들숨이 생생하게 전해졌는데 마치 채 20cm도 안 되는 거리에서 그녀가 노래하는 것 같다. 스피커 청음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촉감이자, 대단한 현장감, 해상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 곡이 계속 진행될수록 깊어가는 무대의 안길이, 또렷해지는 베이스와 피아노의 음상에도 크게 감탄했다. 

아티스트   Fazil Say
곡   Beethoven Piano Sonata No.23
앨범   Beethoven: Complete Piano Sonatas

파질 세이가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뭐라 중얼중얼 한다는 사실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알아챘다. 그야말로 음원의 발가벗겨진 민낯을 바로 앞에서 목도한다는 느낌. 파질 세이답게 피아노 왼손 건반음은 격정적이고 파워풀하지만, 오른손 건반음은 비할 데 없이 맑고 여리다. 댄 클라크 헤드폰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 이유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812는 그냥 구색만 갖춘 헤드폰 앰프가 절대 아니다. 812, 861 조합이 볼더의 1+1 비밀병기인 결정적 이유다.

총평

지금까지 볼더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윌슨 오디오 WAMM Master Chronosonic을 장쾌하게 울리던 볼더 프리앰프 3010과 파워앰프 3060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텐 Parker Trio를 즐겁게 춤추게 한 볼더 스트리밍 인티앰프 866이다. 특히 866의 경우 볼더 사운드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계'로 내려온 볼더 같았다.

812와 861은 866보다 더 나아갔다. 덩치는 작아졌지만 엄연한 분리형 앰프라서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힘과 무대를 입체적으로 펼쳐내는 감각이 남달랐다. 게다가 812는 영민한 룬 렌더러에 빠릿한 USB DAC, 똘똘한 헤드폰 앰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텁고 야무진 음과 무대, 특히 잘 마른 천 기저귀 같은 뽀송뽀송한 음의 감촉이 좋았다. 그렇다. 812, 861은 볼더가 작정하고 만든 1+1 비밀병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