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오디오 케이블을 제작하는 시그마 와이어랩의 헤밍웨이 케이블 제품 중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Ultimate 시리즈의 Reference 밸런스 XLR케이블을 시청해보기로 한다. 필자는 2009년에 본 회사의 중저가 케이블을 리뷰한 적이 있어서 3년 만에 다시금 헤밍웨이 케이블을 접하는 셈이다. 케이블에 붙어있는 태그를 보니 본 제품은 Mk3 버전이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아마도 제품 발표이후 지속적으로 성능 개선 및 업그레이드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본 케이블의 가장 큰 특징은 FMCF (Frequency Modulation Cavity Fundamentals),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주파수 변조 공동화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유니크한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인데, 100%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받은 회사 정보를 훑어보니 2001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2007년에 제조공법을 개발 완성하게 되었고 그 이후 해외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오디오 브랜드로 자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웹사이트의 모든 정보도 영어로 되어 있다. 2009년 당시에는 특허 출원이 진행 중이었다고 한 것 같은데 3년여가 흐른 지금은 특허 출원(제 10-1062832 호)이 완료된 것을 보니 FMCF 기술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파수 변조 공동화 (FMCF)란 과연 무엇인가? 비엔지니어인 필자가 기술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고백한다. 헤밍웨이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그 원리를 알기 쉽게 만화로 설명해놓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보시라. 쉽게 말해서 요사이 모 이동통신회사에서 모바일 데이터 통신에 사용하는 기술 플랫폼 warp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 구멍으로 들어가는 정보를 여러 구멍으로 분할해서 들여보내고 이를 통해 시그널 전송의 효율화를 이루게 되는 원리라는 것이다.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군인들이 여러 입구를 사용해 우주선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버스커버스커의 브래드가 네 개의 손가락에 모두 사인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하다.

 

시그마 와이어랩은 이 기본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노이즈를 적극적으로 제어하는 필터를 부수적으로 붙여놓은 것 같은데, 웹사이트 만화를 보면 이 필터를 비밀정보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웹사이트에서 자신들을“정치적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헤밍웨이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무한한 자유보다 적절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공화주의자인가.

 

케이블을 잘라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회사소개 사이트에 있는 사진을 보니 케이블 내부에는 수십 개의 시그널 선을 넣어놓고 이를 모아서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케이블에는 자기(magnetism)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surface effect, 혹은 skin effect라고 한다. 헤밍웨이의 제품들은 이러한 현상을 적극적으로 제어함으로서 소리를 튜닝 한다는 원리를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케이블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신호선을 서로 평행으로 가게 하면서 서로의 간섭을 극소화하는 방법도 있겠는데 이러한 목적으로 위해 고무재질의 두꺼운 인슐레이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신호선을 아예 함께 묶어놓고 둘 사이의 자력을 이용해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제품은는 후자에 속한다고 하겠다. 여러 개의 시그널선을 사용하고, 또한 이를 일정한 밀도로 꼬아서 디자인함으로서 소리를 만든다는 것인데, 이러한 튜닝의 과정은 과학이라기보다 예술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본 케이블의 시청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단 CDP와 프리앰프 사이의 연결선으로서의 성능을 보기위해 스튜더 A730과 첼로 팔레트 MIV를 연결해서 들어보았고, 두 번째로는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인터선으로 들어보기 위해 김태성 오디오 KTS 프리앰프와 쿼드 510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연결해보았다. 스피커는 ATC SCM10을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헤밍웨이 케이블의 강한 개성이다. 소리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이 케이블은 어떠한 시스템, 어떠한 시그널 체인에 연결해 놓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하는 대담함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중역대를 중심으로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전음악이나 재즈를 주로 듣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데, 전자음악이나 팝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도 매우 만족스런 결과를 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밀도가 높은 소리라서 정보량도 많다. 2009년에 들어본 헤밍웨이의 케이블은 중저역이 너무 나서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 들어보는 최고급 레퍼런스에서는 그런 아쉬움은 없다. 울림이 풍부하면서도, 매우 정교한 소리이다.

 

오랜만에 카라얀의 1982년 실황 녹음 말러 9번 교향곡을 들어본다 (DG 410 726, CD). 역사에 남을 명연주임에도 불구하고 녹음상태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레코딩이다. 애당초 디테일이 정교하다거나 투명한 소노리티를 기대하기 어려운 녹음이다. 헤밍웨이 케이블이 이 녹음을 새로운 사운드로 바꿔주는가? 물론 아니다. 그건 케이블의 역할이 아니다. 아니, 오디오 시스템의 역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 들어보면 카라얀 특유의 유연한 프레이징, 4악장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여정에서 매우 정교하게 계산되어 쌓아올리는 감정의 축적과정, 그리고 그 앙상블의 섬세함, 게다가 베를린 필하모닉이 카라얀의 지휘로 연주할 때만 들려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온기“(warmth)가 가히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악기의 앞뒤를 그려내는 능력, 사운드 스테이지의 깊이를 표현하는 재주도 있다. 더 이상 바랄나위가 없다.

 

완성도가 높은 케이블이다. 개성도 강하기에 시스템에 연결하면 금방 그 효과를 들을 수 있다.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시스템을 바꾼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게 본 케이블의 이름으로 사용된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라는 인간의 개성일까.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기막히게 표현하는 최고의 문호임과 동시에 사냥, 미식축구, 특히 권투에 미쳐 살았던 야수적 인물, 그 이중성을 갖고 살았던 헤밍웨이를 다시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허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