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헤아려 보니, 올해로 필자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2년째에 접어 들었다. 대기업과 외국법인, 중소기업 등을 전전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하는 내용 중의 하나는 회사의 인원대비 경쟁력에 대한 부분이다. 100명의 조직과 300명의 조직이 3배에 해당하는 그 숫자 만큼에 비례하는 퍼포먼스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 인물의 뛰어난 업무 수완이 아닌 조직력, 즉 업무 편성의 적절성과 그 효율에 대한 문제는 항상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대표적인 업무 테마가 된다.

 

전공자가 아닌 채로, 그 복잡 미묘한 경영에 대한 얘기는 차치하고, 요컨대 세 배가 넘는 조직이 그보다 작은 조직보다 우세한 효율을 거두기 위한 관건은 업무의 적절한 분할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100명의 조직에서 한 명이 하는 일을 300명 조직에서는 3명이 직렬이든 병렬이든 분리시켜 수행할 때 비로소 큰 조직의 운용의 묘가 살아나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업무규칙이 기반되어 있어야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일관된 한 명의 움직임보다 둔하고 착오가 발생하는 등 많은 갈등을 겪게 되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컨버전스(Convergence)와 세그먼트(Segment)가 병행되고 있는 최근의 문화 추세는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추월하고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밀레니엄 이후 좀더 선명하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의미 없이 분산되어 있는, 통합할 수 있는 기능들은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고, 영역이 확장되어 효율과 분산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장르 세분화와 전문화가 진행되어왔다. 디지털의 선단에 위치하며, 문화 트렌드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하이파이 오디오의 경우도 그런 현상의 한 복판에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된다. 이에 따라 컨버전스 차원에서는 굳이 성능을 타협하지 않고도 여러 기능을 통합한 일체형 기기들이 확산되어 왔고, 그와 반대로 세그먼트 차원에서는 원래의 기능을 분산시켜 극한으로 전문화시킨 기기들이 출현해 왔다.

 

DAC와 트랜스포트로 가지치기를 시작한 디지털 부문을 예를 들면, 유선과 무선, 리더기와 라이터, 단순 저장장치와 스트리밍 플레이어, 리핑 머쉰, 지터 감쇄기, 클록 제너레이터, 그리고 모니터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는 양쪽의 모든 것들이 원래는 한 몸체에 있었다고 보아도 될 만큼, 마치 세포분열과도 같이 세세한 기능별로 잔가지를 쳐 나가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트, 음악 파일 재생장치로 구분되어온 뮤직 서버 기기들은 이제 좀더 전문화를 심화시켜 파일을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본 기능만을 수행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는데, 폭을 좁힌 본 파일 저장-전송 시스템을 두고 얼마나 고급의 음질향상 기능을 집중시키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영상 전문 그룹 티비 로직에 편입된 위디어랩의 건곤일척 프로젝트인 ‘오렌더’는 이런 전문화된 디지털 플레이어의 선단을 확인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중의 하나이다.

 

이전에 시청한 S10은 여전히 뛰어난 플레이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W20을 2회에 걸쳐 접하고 시청을 하는 동안 들게 된 생각은 S10은 W20을 위한 서막의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유사한 외관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핵심적인 부문에서 거의 다른 제품으로 변혁을 위한 물량이 투입되어 있다.

사이즈는 S10에 비해 높이와 뒷길이가 미세하게 늘어나 있고, 상기와 같은 설계방식으로 중량도 약 5kg 정도 늘어나 있다. W20이 가장 큰 차별화를 가져온 부분은 우선, 듀얼 와이어링 방식으로 설계한 DSD 전송인데 AES/EBU 출력으로 이런 방식으로 설계한 네트워크 플레이어로는 최초가 된다. 실제 음질로 확인된 본 재생방식은 S10과의 거리를 멀찍이 떼어놓는 실질적 혁신이었다. 다이나믹이 증가하고 극히 자연스러운 음의 연결이 모니터로 확인되는 장면은 기존의 CD 플레이어에서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다음으로 본 제품은 기본적으로 밧데리 전원으로 가동되는 설계인데, 자동차용 연료대체 밧데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리튬인산철 밧데리(LiFePO4) 2개의 뱅크가 메인 전원을 공급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갑작스런 전원 다운으로 생길 수 있는 기기 트러블을 방지하는 제 3의 뱅크가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리눅스 기반 OS로 가동되는 W20은 스위칭 전원을 사용하고 있으며, 본 전원을 공급받는 컴퓨팅 서킷, 오디오 보드 등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부품들은 TV로직의 기술진들이 동사 고유의 노하우와 공력을 투입해서 제작되어 있는데, 컴퓨터 회로와 콤포넌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라고 해도 본 제품의 상판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 본다면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어떤 등급의 제품인지 이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많은 기기 내부의 사진과 실물을 보아온 오디오파일들이라면 그 단정한 레이아웃과 시각적 이미지까지 염두에 둔 듯한 부품의 배치 등에 매료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Master Word Clock 과 같은 클록 제너레이터 전용의 BNC 입력과 더불어, dCS의 비발디 클록과 같은 정밀 클록 제너레이터와 자동으로 연동되도록 설계한 전용 USB 데이터 포트를 두고 있다. S10에는 없던 기능으로 소스 신호의 정확한 위상 표현을 좀더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드 디스크는 3테라 바이트 짜리 두 개를 사용해서 6테라 바이트(비압축 파일 기준으로 CD 15,000개 분량), SSD는 256기가 용량으로 확장되어 있다. 메모리 또한 4기가 바이트로 두 배로 늘어나 있다. 하드 디스크의 회전에 대해서도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데, S10과 마찬가지로 고무 재질 댐퍼로 일차 처리를 한 다음 별도 제작한 인클로저에 수납시켰다. 알루미늄으로 파티션을 구분했던 S10과 달리 차폐를 통한 기능향상에 좀더 많은 물량이 투입되어 있다.

현재 표준인 USB 2.0 출력과 전용 버퍼회로(노이즈와 지터 억제를 위한), 금속 쉴딩처리한 기판 등도 특기할 만한 사항들이다. 재생 포맷은 모든 비압축 및 압축 파일을 대상하고 하고 있으며, 24비트-192KHz의 재생력을 갖고 있다. 오렌더 제품에 대한 기술적 설명을 위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지터를 최소한으로 제거하고 PLL(Phase Locked Loop)시스템을 최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S10과 마찬가지로 자사 고유의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와 OCXO 오실레이터를 사용한 클록 및 리클록 모듈을 사용하고 있다.

 

W20여기까지 보면 이 제품은 테크놀로지가 주도하는 제품으로 비추어질 수 있을 것 같다. S10의 레이아웃과 제작 품질, 사양 등도 동 부분에서 뛰어났었지만, 당연하게도, W20을 앞에 두고서는 어쩔 수 없는 열세를 보이고 있으며, 실제 음질적으로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W20의 경우에도 S10의 경우와 유사하게 두 곳 – 하이파이클럽 시청실, 오렌더 시청실 – 에서 2회에 걸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시청을 했으며, 그런 입체적인 시청의 결과는 상당히 뚜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하이파이클럽에서의 시청은 브라이스턴 풀 시스템으로 시청을 했는데, BDA-2 & BDP-2, 28BSST, 모델 T 등으로 구성된 조합이었으며, 티비로직 시청실의 경우는 이전과 동일하게 마지코 S5, 콘스텔레이션 오디오 버고&센토, 그리고 지난 번의 파가니니에서 변경된 DCS 비발디를 조합해서 시청했다.

 

두 곳에서의 시청 공히 W20이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유연함이 생겨났다는 점과 다소 길어진 여운으로 하모닉스가 풍성해져 있다는 점인데, 정확히 필자가 S10에서 보강되었으면 했던 부분이다. 이로 인해 동일한 곡에서도 공간이 다소 넓어진 듯한 스테이징의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이전 S10 에서 시청했던 예루살렘 콰르텟의 하이든 현악 사중주는 넓어진 스테이징(정확히는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생긴 안정적 공간의 느낌)과 이를 태우려는 듯한 하모닉스의 증가로 인해 음악 자체의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성향 자체가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확장된 듯한 이런 느낌은 이 둘이 상하 기종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전달하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대역의 폭 또한 넓어진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DSD 마스터링 된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re Here’는 여러 모로 압권이었다. 늘어난 정보량이 안정적인 음의 연결에 실려서 실로 호쾌한 다이나믹의 콘트라스트를 선사한다. 도입부에서 진행되는 이동간의 미세한 효과음들이 자극적이지 않은 채 번득이는 느낌은 상당히 환상적이었는데, 수백 번을 들었을 이 곡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약간의 허무함이 일기도 한다. ‘로저 워터스’의 보컬은 콤팩트하고 분명한 음상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필자가 알고 있는 원 소스와 다소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S10과 같은 음색을 유지하면서 전반적인 다이나믹스가 향상되어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왁스의 ‘지하철을 타고’는 상하 슬램의 폭이 늘어나 있다고나 할까? 임팩트의 강렬함은 유사하게 들리지만 이 단타성 슬램에도 중간 부분에 두어 단계가 생겨나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움직임이 감지되는 듯한, 그리고 입체적인 느낌이 증가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곡에서 또한 무대의 물리적 공간이 늘어나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런 부분은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서 특히 세세하게 느껴지는데, 길렌이 지휘한 5번 4악장 Sehr Langsam의 현악에서 좀더 구체적인 질감이 호소력 짙게 흐른다. 컨트라스트도 다소 강렬해져 있지만 길렌 연주 특유의 색채감과 핵 깊은 스트록이 유연함 속에 강렬하게 드리운다. 특히 이 곡에서 발견되는 특기사항은 잔향의 표현이 확실히 구체적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도 차분한 기조를 유지하는 독특한 길렌을 들을 수 있었다.

 

본 시청을 위한 티비로직의 준비 작업 또한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지난 번에 시청한 곡목들을 그대로 모니터해서 아이패드 앱 상에 준비해 놓아서 시청에 많은 편리와 더불어 분명한 판단에 근거한 비교시청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부분은 자사제품을 시청하기 위한 이벤트라 해도 그리 흔치 않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오렌더 W20을 시청하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생각은 이것은 일종의 ‘디지털이 가야할’ 길이라는 사실이다. 그 세련된 음색과 소스를 그대로 들려주는 화려하고 정밀한 메커니즘, 매력적인 만듦새 등에서 오렌더가 의도했던 지향점을 재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요컨대 오렌더 W20의 성능 발휘는 제반 기기가 얼마나 갖춰지느냐가 관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