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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베리티 오디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제품이 바로 파르지팔이다. 가격에 비해 사이즈는 그리 크지 않으나, 실제 안에 담긴 내용과 퀄리티는 상상 이상이다. 그런데 이 제품을 사용하는 유저 여럿을 만나봤지만, 제대로 운용하는 경우는 딱 한번만 봤다.

사실 많은 애호가들은 예산을 분배할 때 스피커에 많이 투자하고, 앰프나 소스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직접 음이 나오는 스피커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시스템의 성격이나 방향을 결정할 때 스피커의 비중이 제일 큰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피커를 제대로 구동하려면, 가진 성능의 대부분을 끌어내려면 앰프와 소스, 케이블 쪽에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이런 평범한 사실을 간과하는 애호가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약 6년 전의 일인데, 막 파르지팔 오베이션이 유명세를 탈 무렵, 한 애호가가 과감하게 스피커보다 훨씬 비싼 앰프며 소스를 동원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이지만, 클래스 A로 구동되는 이 음은, 사실 그 어떤 행사장이나 애호가 집에서 들은 것보다 좋았다. 특히, 베이스의 움직임이 좋아, 스피드와 양감을 골고루 갖춘 아주 멋진 음이 나왔다. 거기에 스피커 안쪽 깊숙이 정위한 밴드의 모습이나 입체적인 음향은 이 스피커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입증하고도 남았다.

이번에 홍콩 쇼에 가서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의외로 베리티 오디오의 인기가 좋았다. 《음향 기술》이라는 잡지만 해도, 편집장을 비롯, 유명한 평론가 역시 파르지팔 오베이션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한데 여기에 수준급의 퀄리티를 가진 스피커를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홍콩 쇼를 갈 때마다 베리티의 두 창업자 중 한 명이 꼭 참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아시아에서 이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처음 파르지팔 오베이션에 관심을 갖고 또 리뷰도 쓰고 할 무렵의 베리티엔 그리 많은 라인업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 개의 기본 라인업의 중간을 채우는 제품들이 들어서서 이래저래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물론 플래그쉽인 몬살바트로 말하면, 거의 20평 이상의 큰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그 외의 제품들은 우리네 환경과 그리 위화감이 없다. 그리 크지 않으면서 하이엔드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스피커를 찾는다면, 베리티 오디오의 라인업은 아주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그럼 전체적으로 이 회사의 제품이 가진 미덕이 무엇일까 한번 따져보자.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최상급의 미드레인지를 선택해서, 여기에 대부분의 음성 신호를 투입한다는 것이다. 잘 알겠지만, 베리티에 들어가는 미드레인지는 스카닝이다. 현존하는 유닛 중 세 손가락 안에 집어넣어도 되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특히 스카닝은 구동이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밀도감이 높고, 악기나 보컬의 음이 매우 리얼하며, 일종의 끈끈하고 질긴 맛이 있어서, 오랜 기간 음악을 들어온 분들의 취향에 아주 잘 맞는다. 이런 진한 맛을 즐기다가 다른 유닛을 들어보면 약간 맹맹하다고 할까? 좀 심심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중역이 탄탄하면, 실제로 음성 신호의 주파수 대역을 따져볼 때, 중요한 악기와 목소리가 일체 끊이지 않고 나오는 느낌을 준다. 한 마디로 풀레인지 유닛을 듣는 듯한 일체감이 있는 것이다. 또 이런 설계는 고역과 저역을 자연스럽게 덧붙이는 선에서 끝나므로,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이음새를 보여준다.

 

두 번째 특징이라면, 프런트 배플의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반사파의 영향을 최대한 억제했다는 부분이다. 바로 이 점이 겉에서 보기에 이 스피커의 존재감을 약간 왜소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폭을 좁히고, 대신 안길이를 넓히면, 이른바 음장이라는 부분에서 얻는 이득이 상당하다. 생각보다 저역도 잘 나온다. 현대 스피커의 핵심 이론이 잘 구현된 디자인인 셈이다.

그러므로 베리티의 제품들은 사진으로 보면 대개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사이즈와 가격만 다를 뿐, 전체 컨셉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 집의 환경이나 예산의 한계 등을 고려해서 선택하면 그만이다.

 

 

현재 동사의 라인 업을 보면 파르지팔을 기준으로 할 때 밑으로 레오노레, 핀 등이 있고, 그 위로 아마디스, 자라스트로, 로엔그린 등이 있다. 복싱으로 치면 미들급이 파르지팔이라 할 때 수퍼 미들급 정도의 클래스로 최근에 아마디스를 런칭한 형국이다. 실제로 집안에 들이면 자라스트로가 의외로 부담스러운 현실을 감안할 때, 파르지팔보다 약간 크면서 퀄리티도 뛰어난 아마디스의 포지셔닝은 참 절묘하다 하겠다.

그럼 과연 무엇이 특필할 만한가, 몇 가지 기술적인 부분을 소개하겠다. 우선 놀란 것이 광대역의 재현이다. 아마 이 사이즈의 스피커로 20Hz까지 저역을 재생하는 제품은 여태 없었다. 20Hz! 거기에 고역은 50KHz까지 올라간다. 참 믿기 힘든 수치지만, 이 회사의 성격상 이 부분에 일체 과장이 없다 하겠다.

 

사실 이런 광대역을 우리가 실제로 다 듣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젊고 혈기 왕성한 청년도 힘들다. 그 나마도 고역을 말하면 20KHz를 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광대역이 필요한 것은, 어떤 악기든 배음을 갖고 있고, 우리의 가청 주파수 대역 밖에서 작용하고 있지만, 그 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듣는 음에 관여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넓은 주파수 대역을 보장하면 실제로 실내악이나 솔로를 듣는다고 해도 훨씬 리얼하고, 자연스런 음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바닥을 치는 저역이나 하늘 높이 치솟는 고역의 쾌감만을 추구해서 이런 스펙을 완성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렇게 광대역이다 보니 다이내믹 레인지가 우수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동사는 심혈을 기울여 빠른 응답 특성과 강음/약음의 대비를 훌륭하게 커버했다. 단순히 대역만 넓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음성 정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셈이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효율이다. 말하자면 스피커의 감도인 셈인데, 이 사이즈에 이런 광대역이면 당연히 대출력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하기 쉽다. 그 부분에서 신기술이 투입되어, 실제로 100W 내외면 충분히 구동이 된다. 이 부분은 나중에 스위스 앰프 특집에서도 확인한 데이터여서 결코 과장이 아니다.

스펙상 찾아낼 수 있는 공식 데이터는 93dB. 이런 식의 컨셉으로 만든 다른 메이커들이 85~88dB에 머무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또 공식 임피던스가 8오옴인데, 결코 3오옴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앰프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스펙이나 퀄리티 등 여러 요소를 감안했을 때 이 사이즈로 구현할 수 있는 스피커 중 최고의 제품이 아닐까 판단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바로 트위터의 존재. 물론 다른 유닛도 다 특주품이고, 새로운 기술이 투입되었지만, 트위터에 유난히 많은 고안이 이뤄졌다. 타사의 제품과 비교하면 50KHz라는 광대역은 리본이나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일반 콘 타입으로 이런 스펙을 완성한 것은 상당히 놀랍다. 이런 콘의 장점은 아무래도 컬러링이 별로 없고, 실제 악기 소리에 가장 근접한 음을 재현하며, 직진성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거기에 광대역이 합해졌으니,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살펴보니, 일반 폴리프로필렌 재질에 미네랄 성분을 섞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도를 높이고, 빠른 반응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기술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음으로 판단해보면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독자적인 캐비넷 설계, 리어 포트의 역할, 공진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조치 등 언급할 부분이 많지만, 다른 제품에도 비슷한 기술이 투입되었으므로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럼 시청평으로 들어가면서 동원된 기기의 라인 업을 소개하겠다.

우선 앰프는 골드문트의 신작 미메시스 27.8 프리와 텔로스 280 파워로 했다. 소스는 메리디언의 술루스에 818 DAC의 조합. 참고로 각종 케이블류는 헤밍웨이로 통일했다. 요즘  화제 만발인 헤밍웨이가 여기서도 시스템의 그레이드를 올리는데 상당히 일조했음을 아울러 밝힌다.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비엔나 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피아노)
-이은미 《서른 즈음에》
-레드 제플린 《Since I've Been Lovin' You》

 

우선 브람스를 듣는다. 일반 대형기에서 들을 수 있는 압도적 스케일은 아니나, 스피커 자체의 사이즈를 훨씬 능가하는 무대 연출과 광대역이 감지된다. 빈 필 특유의 멜랑콜리한 느낌에 브람스의 향기가 잘 어우러져, 이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귀 기울이면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여러 악기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이 낱낱이 포착되고, 이 부분들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리듬을 타고, 유연하게 다가온다. 일체의 과장이나 부풀림이 없는 정교치밀한 음에 새삼 브람스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베토벤의 경우, 피아노의 위치가 명확하고, 왼손 오른손의 컴비네이션이 세심하게 포착된다. 오케스트라로 말하면 잔향이 풍부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결과적으로 피아노와 주고 받는 인터플레이에 한치 오차가 없다. 특히 피아노 타건의 영롱한 맛은, 기본적으로 골드문트가 가진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만하다. 요즘 하이엔드 하면 수억원대의 제품들을 연상하지만, 이런 라인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재생이라 하겠다.

 

이은미의 곡은, 약간 녹음이 거칠고 또 서툴다. 비록 통기타 반주 하나로 부르는 노래지만, 약간 매끈함이 모자라다. 하지만 이를 아름답게 다듬으면서 여가수의 목소리가 가진 강력한 카리스마와 슬픔을 가슴 깊이 각인시키는 모습은, 확실히 음악을 알고 그 맛을 잘 뽑아내는 베리티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중간 중간 침묵하고, 가녀리게 여운을 남기는 등, 노래의 깊이를 더하는 여러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조용히 마음을 적신다. 스피커는 단순한 재생기가 아니라 일종의 악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을 들으면, 의외로 박력 넘치는 저역의 재생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어디에 따로 서브우퍼를 숨겨놨나 싶을 정도로 바닥을 쾅쾅 치는 킥 드럼과 베이스의 음이 인상적이다. 이런 음악 특유의 마성이나 거침은 약하지만, 대신 재생의 수준이라는 면만 놓고 보면 별다른 토를 달 수 없는 퀄리티가 나온다. 젊고 싱싱한 보컬의 강력함부터 디스토션을 건 기타의 처절한 포효, 나른히 배후에 깔리는 올갠 등, 곡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특별한 파탄없이 스무스하게 펼쳐진다. 클래식부터 가요, 록 등 골고루 음악을 듣는 분들에게 본 기의 성능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