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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학(Johnny Lee)

 

오디오 평론을 하면서 많은 기기를 섭렵했지만, 이상하게도 연이 닿지 않는 제품들이 있다. 아발론도 그 중 하나다. 솔직히 이제야 처음으로 리뷰를 하게 되었으니, 이 회사의 명성과 내용을 생각하면 좀 의외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아발론을 인식하게 된 것은 약 15년 전쯤 《스테레오 사운드》에 실린 기사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고바야시 신이치로로, 대중음악을 작곡하고 또 평하는 분이다. 나중에 보니 영상 계통도 좋아해서 AV쪽에서도 활발한 평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분은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모양으로, 처음에는 카세트 라디오를 듣다가 이윽고 고등학생 무렵 릴 데크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영어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테잎에 담긴 양질의 발음 정보를 따라하면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라는 의미였다. 이것을 갖고 각종 팝이며 록을 녹음하다가 급기야 학교에서 지급한 교육 테잎까지 손을 댄 이력이 있다. 당연히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럴 수록 음악에 대한 갈증은 심해져갔다.

이 분의 젊은 시절은 1960~70년대 시절로,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록 그룹이 쏟아지고 명반이 속출했던, 이른바 르네쌍스 시기였다. 당연히 신보가 나오면 일찍 음반 가게 앞에서 줄을 서고, 구매 리스트를 작성하고, 간단하게 평을 쓰기 시작했다. 그 취미가 발전해서 작곡과 평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풍부하게 흡수하던 열정이 어느 순간에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 CD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조금씩 아티스트와 위화감이 생긴 것이다. 왜 그럴까? 내 감각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창조력이 바닥난 것일까?

 

고민 고민하다가 CD 플레이어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하이엔드 제품을 들어본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그간 들은 CD의 음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압도적인 정보량, 윤기가 나면서 싱싱한 음 ... 울림이 깊다. 가수가 어떤 생각으로 노래하는지, 기타리스트는 어떤 기분으로 연주하는지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덕분에 앰프며 스피커를 일신하고 말았는데, 그때 선택된 스피커가 바로 아발론의 이클립스다. 참 초창기 모델로, 이번에 리뷰할 트랜센덴트(Transcendent)에 비하면 여러모로 차이가 많다. 어쨌든 대부분의 하이엔드 유저들은 클래식 중심이다. 가끔 재즈 애호가를 만난다. 그러나 이런 대중음악 애호가가 하이엔드 기종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해드폰이나 미니 컴포넌트 정도에 그치니까.

하지만 과연 이런 대중음악의 녹음 퀄리티가 그렇게 형편없을까? 실제로 양질의 록이나 팝 음악은 엄청난 경비를 투입해서 최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이런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그에 걸맞는 장비도 필요한 것이다. 어쩌다 외국의 가수나 그룹이 내한할 경우, 거기서 듣는 음의 수준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아무래도 선입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리뷰에서 특히 팝이나 가요같은 대중음악이 좋았다. 그렇다고 클래식이나 재즈에서 어색하냐면, 절대 그렇지 않고, 대중음악도 함께 좋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대중음악은 싸구려 기기로 들어야 더 맛이 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왕왕 있는데, 세계 최고의 귀와 실력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투입된 녹음을 그렇게 들어야 한다면 어딘가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사실 아발론이 만드는 제품들은 자기 개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아니, 자기 주장을 되도록 삼가고, 일체의 컬러링이나 왜곡과 같은 요소들을 없애는데 주력한다. 물론 이런 정책은 다른 메이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아발론에선 그런 중립성이 돋보인다.

그 때문에 앰프의 성격이나 실력이 너무 드러나는 단점도 있고, 그에 따른 매칭의 신중함도 요구된다. 한 두 번 우연히 들은 것 같고 아발론에 대해 평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단 잘만 세팅되면 풍부한 음장에서 비롯된 3D 사운드의 진가를 맛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뮤지션의 생각이나 감성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말하자면 무척 정밀하고, 예민하게 만들어진 기기인 것이다.

 

이번에 만난 트랜센던트는 “~을 초월한, 탁월한”이란 뜻을 갖고 있다. 외관을 보면 정통적인 아발론의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으며, 보면 볼 수록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과학적 접근과 미학적 세련미를 아울러 갖고 있다.

아발론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한 해는 1986년이지만, 처음부터 이런 포름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실은 1990년대 중반, 레퍼런스 레코딩과 협력해서 모니터용 스피커를 함께 개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모양이 완성된 것이다. 그 때 나온 에이돌론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신기술과 신소재가 더해져 본 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닛 구성을 보면 한 개의 트위터와 두 개의 미드베이스가 합쳐진 2웨이 3스피커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고역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1인치짜리 세라믹 트위터가 쓰인 바, 싱싱하고, 개방된 음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커플링되는 미드베이스는 7인치 구경. 단 노멕스(Nomex)와 케블라 소재가 적절히 믹스된 복합 물질이 투입된 바, 그 과정에서 상당한 튜닝과 연구가 행해졌다. 두 유닛 모두 아발론 특주제다.

한편 앞 뒤로 살펴보면 포트가 보이지 않아 일종의 밀폐형인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정확히는 하단에 구멍이 있기는 한데, 이것은 포트라기 보다는 벤트(vent)라 봐야한다. 즉, 포트는 일종의 베이스 리플렉스 형식으로 투입되어 하는 일이 많은 반면, 벤트는 밀폐형에 약간의 손만 댄 식이다. 즉, 강력한 베이스 음성 정보가 들어와 두 발의 미드베이스가 마구 구동될 때, 약간 숨만 쉬라는 의미에서 구멍을 낸 것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밀폐형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밀폐형은 능률면에서 좋지 않다. 본 기는 88dB에 멈춘다. 게다가 4오옴짜리다. 그간의 정황상 대출력 파워가 필요하다고 보겠지만, 의외로 구동은 쉬운 편이다. 아마도 임피던스가 급격하게 4오옴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설계한 탓이 크며, 덕분에 최소 50W로도 구동이 된다. 양질의 100W짜리 인티 앰프로도 집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담당 주파수 대역을 보면 밑으로 26Hz까지 내려가고 위로는 25KHz까지 뻗는다. 26Hz라. 아무튼 대단한 스펙이다. 제대로 구동만 된다면 대편성 오케스트라나 빅 밴드 재즈를 후련하게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전통적으로 아발론은 투웨이 포름의 스피커를 잘 만들어왔으므로, 이런 스펙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이번에는 진공관 앰프를 투입했다. 그 주인공은 에밀레로, 프리는 컨시퀀스, 파워는 랩쳐다. 랩쳐의 경우, 일종의 모노 블록으로, 채널당 6550이 무려 4개나 투입되었다. 당연히 본 기를 구동하는데 일체 무리가 없었다. 소스는 메리디언의 술루스에 MS 600 DAC 컴비를 활용했다.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피아노)
-마일스 데이비스 《On Green Dolphin Street》
-수퍼트램프 《It's Raining Again》
-롤링 스톤즈 《Don't Stop》

우선 베토벤을 듣고 약간 당황했다. 베토벤의 작품이 갖는 카리스마나 강직함을 별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바이올린군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유연하게 나오고, 영롱하고 잔향이 깊은 피아노가 전면을 가득 채운다. 음향학적으로 더 발할 나위가 없을 만큼 3D의 사운드가 화려하게 재생된다. 특히 풋워크가 무척 빨라서 치고 빠지는 속도가 대단하다. 그러면서 일체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담백하고, 솔직한 스피커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일스의 경우, 역시 그 특유의 마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정교치밀하게 전개되는 악단의 모습이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부각된다. 그간 이 곡은 여러 번 들었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음성 정보가 들어있는 줄 몰랐다. 60년대 녹음이지만, 마치 어제 새로 한 것처럼 싱싱하고, 활기차다. 무엇보다 정위감이 대단해 각 악기의 위치가 명료하게 포착된다. 참 흥미로운 재생이다.

수퍼트램프의 경우, 기본적으로 발랄한 템포지만, 그 안에 깊은 슬픔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이 일체 가감없이 표현된다. 즉,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녹음이나 연주로 말하면 약간 싸구려라고 할까? 80년대식 신디사이저 반주에 경황없이 두드려대는 드럼과 쌍티 나는 색소폰 솔로 등, 결코 유쾌하지 않는 내용인데, 여기선 별 무리없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 이 스피커가 특히 팝에 강한 이유를 알 것같은 재생이다.

마지막으로 스톤즈를 듣는다. 원래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의 아발론인지라, 이런 깡패 음악과는 위화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크게 흠 잡을 데가 없다. 다만, 스톤즈 특유의 쌍스러운 리듬감과 끈끈한 기타 음이 약간 반감되는 대신, 트윈 기타가 펼치는 화려한 앙상블이나 리듬 섹션의 박력 등이 잘 드러나, 여태 알았던 스톤즈와는 다른 의미에서 멋진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어쨌든 흥미롭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퀄리티라면, 앰프의 매칭을 달리할 경우 애호가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일 것이다. 한 마디로 잠재력이 무궁무지한 스피커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