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음반사를 떠난 지 약 5년, 음악계의 트렌드 파악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원치 않아도 새로운 음원과 영상들을 하루 종일 모니터해서 이 소스들의 ‘시장화’를 위해 과거의 음악들이나 현재의 문화인프라들과 조합을 시키는 작업에 대한 감이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한편에서 허울 좋은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20년 가까이 달고 있으려니, 시간이 갈수록 하이파이 오디오의 존재감이 짙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이파이 오디오가 필자에게 주는 커다란 의미 중의 하나로서, ‘걸 밴드 보며 희죽거리지 말고, 이 음악 좀 들어봐!’ 라며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경각을 준다는 사실, 그리고 평론가 차원에서는 역시 하이파이 제품들에 대한 귀납적 정의가 가능할 만큼의 통사적이고 지속적인 시청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오디오평론가라는 타이틀은 시간과 집중력을 가동할 수 있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일간지나 월간지 등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오디오 트렌드’에 대한 이슈가 나오면, 필자가 거창하게 이렇게 정리했던 것 같다. ‘음악파일 재생 시스템으로의 권력이동과 국내산 오디오의 세계화 - 이 두 가지가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게 하는 수준’이라고. 특히 이 중에서 고전적인 오디오파일들의 관심은 주로 국내산 하이엔드 케이블에 집중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사용자들에게 직접 들려오는 소리를 대신할 만한 명쾌한 설명은 없다. 전세계의 오디오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듯 제품의 선택에 있어서 결국은 ‘자신의 귀를 믿어라’가 정답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독보적인 ‘변조 캐비티’ 이론을 설득력 있는 사운드로 이끌어내며 해외파 케이블들과 자연스레 혼용되는 단계에 진입한 ‘헤밍웨이’의 존재감은 실로 돋보인다. 사운드적으로 명쾌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엔드 케이블들의 끊임없이 도전들, 예컨대 머리를 땋듯이 줄을 꼬거나 심을 중심축으로 해서 선을 그물처럼 엮어서 덮거나, 네트워크 박스를 부착해서 재생 주파수 별로 개별적인 임피던스 보정을 한다거나, 별도의 제어장치를 부착해서 인위적인 바이어스를 거는 일 등은 오디오파일들의 환영을 받으며 하이엔드 시대를 수놓았다. 이제 여기에 피복으로 덮인 케이블의 쉴딩 구조에 물리적으로 구멍을 뚫는 헤밍웨이의 ‘변조캐비티’ 이론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 효과의 적합성을 논하기 이전에 귀로 들려오는 소리로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헤밍웨이의 프라임 레퍼런스 파워코드 시청을 하면서 알게 된 이 기발한 방식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전류가 흐르는 도체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서 주파수와 자기장의 진동으로 인한 불규칙 임피던스가 발생한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헤밍웨이의 방식은 전기적으로 제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쉴딩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서 해결하고 있다. ‘주파수 변조 공동 원리’ (FMFC; Frequency Modulation Cavity Fundamentals)라고 칭하는 자사특허 방식은 문제에 대한 파악이 실험적이고 그 해결방식은 명쾌하다.

 

상기한 도체내부에 발생한 불규칙 임피던스는 동일한 구경 속의 쉴딩 내부에서는 그 돌출 사이즈 만큼의 반사가 불가피한데, 이는 결국 도체에 대한 노이즈가 될 수 밖에 없다. 동사는 이런 자기장의 부작용에 대해 반사를 제거시켜야 한다고 파악했는데, 문제는 이 사이클을 주는 방식으로서 케이블에 일정한 간격으로 펀칭을 한다는 사실이 기발한 것이다. 그 결과 불규칙한 노이즈로 작용하는 임피던스가 같은 간격으로 펀칭된 구멍에 돌출되면서 내부에 노이즈로 작용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헤밍웨이 케이블의 제조사인 ‘시그마 와이어 랩’의 홈페이지에는 ‘완벽한 쉴딩은 라이브 음악에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살충제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도체와 외부 자기장의 완벽한 차단이 노이즈라는 부작용을 만들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쉴딩의 폐해에 대한 최초의 문제 제기가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 케이블이 여타의 케이블들과 차별화되는 영역을 잠시 살펴보았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무엇보다 헤밍웨이의 제품은 사운드로 구분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회사의 제품을 시청할 때마다 받게 되는 인상은 마치 프로듀싱이 잘 된 매끈한 앨범 한 편을 듣고 있는 것처럼 몰입된다는 점이다.

 

거침 없이 펼쳐내는 사운드로 보아 연예인 기질을 갖고 있다거나, 그런 포인트를 쉽게 포착하는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고, 강건한 골격 속에 음의 입자를 펼쳐 놓으면서도 분위기를 거창하다거나 심각하게 만든다기보다는 시종 쉽고 명쾌한 사운드로 일사천리 성큼성큼 내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사운드의 품질은 앞서 말한 FMFC의 효과를 적용시키고,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제작자의 귀로 튜닝해서 완성시킨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 재생 장르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 장르를 테스트해가며 튜닝을 한 거라 봐야 할까?

약 일주일 내내 인디고에 집중해서 시청할 수 있었는데, 익숙한 곡들을 우선 시청해보면 대번에 뭔가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세부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제품의 특징이 꽤나 명쾌하게 정리된다. 무엇보다 특유의 풀 바디, 감성 풍부한 소리들을 풀어 놓는다. 소위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세한 내용들을, 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그런 성향이 아닌, 적극적인 표현으로 들려준다.

 

페페 로메로가 연주하는 줄리아니의 기타 협주곡 1번 1악장은 기타 독주가 시작되자 독주자가 뒤로 주욱 물러서는데, 꽤나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독주자의 이미징은 외곽선에 약간의 그림자를 준 듯 허공에 얄쌍하게 떠올리고, 오케스트라는 일반적인 스테이징에 비해 다소 넓고 오목한 모양으로 시청자를 둘러싸는 포근하고 집중력을 갖는 모양을 갖춘다. 현이 혼합되며 만들어지는 미세한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와 하모닉스는 매우 정교한 미니어춰를 보는 듯, 음량을 크게 하면 그대로 대형의 연주가 되는 매우 세밀한 연주를 들려준다. 또한 기본적인 울림이 매우 사실적이다. 큰 음량에서는 시청실을 가득 채우면서 울림이 늘었다는 인상이 아니라 기타의 바디가 커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잠시 천만원 급의 케이블로 본 곡을 시청해보면 기본적으로 둘 중 하나 - 건조하거나 기름지거나 – 였다. 건조한 소리는 뛰어난 해상력과 깨끗한 배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인디고의 소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윤기가 부족해서 음악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긴장감이 도는 쪽이었고, 기름진 쪽은 실제 소리에서 다소 벗어나서 장식이 많은 화려한 소리로 음이 쏟아져 나온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 같다.

 

같은 보폭으로 걷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인디고의 소리는 좀 전에 포장을 마친, 아직 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위를 걷는 느낌이다. 단단하지만 발에 무리가 갈 만큼의 딱딱함이 아닌 묘한 탄력이 있다. 이 역시 천 만원대의 전형적인 케이블들과 비교해본다면, 해상력이 뛰어난 케이블은 바닥도 단단하고 표면도 평탄하지만 군데 군데 잔 풀들이 올라와서 뭔가 발에 밟히거나 가끔은 발목에 미세한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또 다른 케이블은 마치 신도시의 고분자 소재 보도블럭처럼 밟는 촉감이 유쾌하지만 오래 걷다 보니 발이 빠지고 피곤해지는 현상이 생긴다.

 

악기수를 줄여 줄리앙 브림이 연주하는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그랜드 소나타 1악장을 들어보면 템포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앞서의 비유를 들자면 같은 보폭으로 단정하고 일정한 템포와 간격으로 걷는 건강한 체구의 운동이 느껴진다. 긴장감이 돌지 않고 넉넉하다는 인상도 준다. 기타의 음 끝 진동에 잔향이 분명한 소리가 들리고, 하모닉스가 증가했으며 전후간 얕은 심도가 생겨났다. 미드레인지를 유쾌하도록 부풀리거나 기름지게 하지 않은 채 스케일이 확장되어 작을 때의 분명한 템포로 움직인다. 콘트라스트도 짙어져 있고 기타의 울림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양감이 많은 곡은 어떻게 들릴 지 궁금했는데, 간략히 말해서 스케일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정하고 정확하며 절도 있는 베이스를 들려 준다. 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의 ‘Waltz for Ruth’에서는 베이스의 그라데이션이 표현되는 장면을 느낄 수 있다. 분명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핑거링과 그로 인한 울림이 드라마틱하면서도 구체적이다. 분위기를 억제시키지 않으면서 뭔가 사려 깊고 차분한 분위기를 쉽게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대의 조명 또한 정교하게 연출해준다. 뒤쪽부터 앞으로 오면서 밝아진다는 인상을 주어, 사실적인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며 음악에 쉽게 몰입시켜준다. 종종 이 곡은 이 보다 훨씬 고가의 케이블, 그리고 필자의 시스템보다 열 배쯤 되는 잘 세팅된 공간에서도 벽을 잠시 떨게 만드는 부스팅이 순간 튀어나오곤 하는데, 현재 필자가 듣고 있는 소리는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라 맥라클란의 ‘Angel’ 또한 유사한 인상을 주는데, 마치 ISO 높은 사진의 느낌과도 같은 질감 넘치는 텍스춰가 직접 피부에 전해지는 듯 하다. 물론 음상은 매우 샤프하고 컴팩트하며, 베이스는 단정하기 이를 데 없다. 소위 품위 있고 안정감 있는 최상급의 베이스이다.

한편, 복잡한 패시지에서도 귀를 쫑긋하고 찾아내려는 노력과 반응, 혹은 총주에서의 불안감 없이 쉽게 풀어서 들려준다. 이렇듯 분해력이 좋은 인디고의 성향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미사 탱고’에서 빛이 난다. 도입부의 모래바람 같은 코러스에 윤기가 생겨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약음의 복합 코러스에서도 고해상도 세부묘사가 느껴진다. 음량이 늘어나고 움직임이 생겨나자 무대가 출렁인다. 이 장면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드라마틱한 마이크로 다이나믹스, 최근에 이 곡을 이렇게 시청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큰 소리와 스케일로 소리를 지르는 일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워낙 잘 보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색채감과 입체감을 보여주느냐에 더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이고, ‘미사 탱고’의 도입부는 이 부분을 짧은 순간 극명하게, 그리고 충분히 보여주었다. 제 4곡 ‘글로리아’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두 혼성 보컬과 코러스,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에너지로 작열하는 투티에서도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호쾌하지만 뭔가 낱낱이 가는 줄로 정리가 되어 시청자를 향해 달려든다는 느낌이다.

르네 야콥스 팀의 바하 ‘모텟’은 음이 달라붙지 않고 시종 보송보송한 촉감을 선사한다. 그로 인해서 연주자, 보컬 간 공간의 간격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미사 탱고’와는 이질적으로 이 곡의 다정다감하고 소박한 표현은 또한 이례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원래 합창은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포근한 촉감의 음 끝을 들려준다. 뭔가 능수능란함을 보여주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도록 튜닝한 듯한 절묘한 표현이 이 곡 속에 숨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몇 곡을 듣지 않아 인디고의 버라이어티를 쉽게 체험할 수 있었다. 강해야 할 때와 유연해야 할 때, 빨라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알고 있는 듯 한 이런 케이블은 실로 처음이다. 동사의 파워케이블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같은 반경 내에 있다.

 

다른 시리즈 제품을 볼 때도 느낀 바 있지만, 헤밍웨이의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는 시각적으로도 뛰어난 제품의 만듦새이다. 내부 구조를 보면 심선이 있는 안쪽부터 테플론으로 기초 절연을 한 다음, 우레탄으로 피복을 씌운 후 그 위에 고무로 쉴딩 처리를 한다. 전술한 구멍을 뚫는 작업은 바로 이 우레탄 피복에 펀칭을 하는 것이다. 그 위를 다시 실리콘으로 덮는데, 이 비싼 실리콘을 오디오 케이블에 사용하는 사례는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는 그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실리콘의 뛰어난 물성은 절연과 방자효과, 그리고 제품의 촉감 등에 걸쳐 많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실리콘 위에 최종 마무리는 나일론 매쉬를 씌워 마감하고 있다. 인디고 스피커 케이블의 단자 양쪽 끝은 우리가 아는 네트워크 박스 사이즈 보다 약간 작은 모양의 ‘괴’가 부착되어 있는데, 알루미늄 블록을 통으로 잘라 만든 본 절삭물은 별도의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닌 듯 하고 최종 터미네이션 직전 단계의 장식물로 보인다. 사실 이런 호사스러운 디자인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부분을 제외시켜 놓고 보면 꽤나 심심하고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인디고는 입출력 양쪽 끝을 모두 이렇게 디자인하고 있다. 본 제품은 기본적으로 선별 제작한 특주 구리를 사용한 동선이며 단자의 터미네이션은 자체 제작한 은 재질을 사용하고 있다.

 

절대치로 보았을 때 500만원대의 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500만원대와 1000만원대의 제품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라간 오디오파일들이 시청해 본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 본다. 이 제품은 의도적으로 싸게 출시한 프리미엄급 제품이라고. 혹시 덤핑이라고 돌이 날라온다면 문제랄까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할 밖에는 딱히 부언할 여지가 없는 제품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제품을 대신할 제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막연하나마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는 케이블들도 이 제품을 일주일 시청하면서 애착이 덜해졌다. 이 제품에게 남은 일이 있다면 ‘인디고’로 와이어링한 스피커가 출시될 날을 기다린다. 특정 스피커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그 결과 또한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