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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재 산업 시장에도 일종의 발달 패턴이 있어서, 제품의 판매형태가 진화되어 있을 수록, 그래서 회사가 매크로화되고 외형이 클수록 점차 원재료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업이 확장되어 제품의 흐름상 상위의 업종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드물고, 애초부터 원재료 사업을 시작했던 경우가 일반적이다. 어느 업종이 땅을 짚고 헤엄을 칠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싶지만, 그런 원료사업으로 외형을 키운 브랜드들은 혹독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이파이 브랜드 중에서도 이런 원리가 적용되는 경우들을 종종 확인하곤 한다. 예컨대 디지털칩이나 트랜지스터, 커패시터 제작자, 스피커 유닛과 자석, 드라이버 공급자들은 그 생명력이 꽤나 긴 편이고, 직접 완제품 생산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기도 한다. 현재의 경우라면 케이블의 원료로서의 선재를 공급하는 사업은 이런 경우 중에서 가장 돋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컨대 선재 공급자가 케이블을 직접 제조하는 경우 큰 위력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아크로텍(아크로링크의 전신)은 필자가 하이파이에 입문할 무렵에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케이블 브랜드 중 하나였다. 약 한 세대에 걸쳐 케이블 시장은 새로운 트렌드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이름들로 교체되어 갔으며, 당시의 이름을 달고 여전히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브랜드는 이제 많지 않다. 선재의 특성을 유지(변화를 하더라도 기조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하는 일만 해도 그리 간단치 않아서, 주로 외형을 바꾼다거나 부가적인 장치를 추가시켜서 제품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면에서 한 세대에 걸쳐 동일한 선재(구리)를 직접 생산하는 동안 많은 품질적 노하우와 개선이 이루어지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크로링크는 소수점 이하에 9자의 숫자를 더해가면서 동선의 순도를 10의 배수 단위로 향상시켜온 매우 고무적인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오디오산업의 조류를 따라 아크로링크의 외형 또한 조금씩 예전과 다른 모습이 되어 있지만, 기조를 유지하며 발달되어 온 고유의 품질을 확인하는 일은 품질을 평가하기 이전에 매우 감동적이다.

 

케이블에 따른 수직적, 수평적 변화에 많은 오디오파일적 흥미를 느끼게 된 이후에도 인터커넥터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이유는 아마도 필자가 네임오디오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은 DIN 케이블을 사용하면서 인터커넥터라는 개념 자체가 마치 ‘붙박이’처럼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건 네임오디오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유저가 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인 지 모르겠다. 여하튼 필자에게 있어 케이블에 따른 음질적 차이의 비중은 전원 케이블, 스피커 케이블, 그리고 그 다음이 인터커넥터이다. 그나마 인터커넥터 내에서도 한동안 디지털 케이블이 테스트의 주류로 등장하다 보니 아날로그 인터커넥터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있었다.

아크로링크의 최신예 모델인 7N-2070II는 기존 8N-A2080II의 현실화 버전으로서 8N-A2080II가 단종되면서 실질적인 동사의 인터커넥터 라인업의 플래그쉽에 위치하는 제품이 된다. 참고로 아크로링크의 인터커넥터 라인업에는 심플하게 일반 ‘인터커넥트’ 라인업과 ‘프리미엄’, 두 가지 등급이 있다. 두 라인업 모두 동일한 선재를 사용하지만, 선재의 구성과 단자, 마감 방식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두고 있다.

 

본 제품의 공개되지 않는 제조원리로서 여하한의 외부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Stress Free) 고유의 크리스탈 구조를 균일하게 유지하도록 제작된 고유결정 선재에 제품의 핵심이 담겨 있다. 제품의 외경은 12.5mm – 대략 손가락 굵기의 인터커넥터이다. 내부 구성을 보면, 가장 중심에 있는 두 개의 심선은 각각 0.26mm 구경의 선재 19가닥을 꼬아서 ‘+’ 와 ‘–‘ 극성선재를 구성하고 각각 폴리올레핀 소재의 충전재로 피복 처리되어 있다.

 

본 폴리올레핀은 전술한 본 제품 고유의 고순도 동 선재와 더불어 7N-A2070II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으로서 자사에서 직접 개발한 신소재이다. 차폐효과 및 인슐레이팅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도록 제작되었는데, Au(은) 다음으로 비중이 무거운 텅스텐 및 아몰퍼스 분제와 카본을 자사 독자적인 배합비로 구성해서 중량급 고분자 소재를 얻어내었다. 방진 및 전자파 흡수 효과가 뛰어난 비자성체인 폴리올레핀은 저주파에서 고주파에 이르는 모든 노이즈를 차단하는 성능이 뛰어난 소재로 소개하고 있다. 그 바깥쪽 방향으로 동박테이프 및 UEW편조 코팅으로 2중 쉴드 처리되어 선재간 왜곡의 억제 및 전자파 흡수비자성체의 두 가지 효과를 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노이즈를 최소화시키고, 전 대역에 걸친 응답특성과 투명도를 높여서 뛰어난 스테이징을 얻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제품의 외곽 마감에는 투명 PU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외선 차단 처리된 본 마감은 다소간의 점성이 있어서 다른 마찰력이 큰 재질과의 접촉으로 제품과 연결되어 있는 단자가 꺾인다든가 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설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 거실 유리문이 자칫 케이블을 스치면서 잡아당기는 경우가 생길까 염려가 되기도 했는데, 이 등급의 제품으로서 기왕이면 메쉬를 씌워주었다면 사용하기에는 더 편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그건 제조사의 컨셉이라서 별도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품의 말단에서도 본 제품은 기조를 잊지 않고 있다. 본 XLR 제품의 단자 또한 동사의 최상위 라인업인 멕셀(Mexcel) 시리즈의 초중량급 고정밀도 커넥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내부 핀에 철 제분을 사용하지 않고 음질적으로 가장 뛰어난 특수 인 청동을 중천 파이프 구조에 가공한 후, 더블 버프(경면) 가공 처리한 최고급 로듐으로 마감해서 선재의 성능을 연장시키기 위한 최선의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다. 또한 카본 패브릭 슬리브의 핀 플러그 커버를 장착해서 진동 및 노이즈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전반적인 제품의 외관은 상당히 고급스러운데 디자인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으로서, 좌우 채널을 구분하기 위해 마치 스와롭스키의 제품처럼 각각 푸른 색과 붉은 색의 보석 풍 엘레먼트를 사용해서 구분하고 있다.

 

아크로링크의 제품을 정식으로 시청하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미리 얘기하건대,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청을 통해 본 제품은 필자에게 상당한 음질적 감동을 주었다. 다분히 동선(Cu)의 고유 특성을 극대화시킨 것일 거라는 선입관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으로서, 오히려 오디오파일들이 알고 있는 ‘쿨 앤 클리어’에 가까운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필자로서는 최근 6개월간 시청한 인터커넥터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두 가지 제품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어느 소스에서도 정돈이 잘 된 채로 음악을 또바기 들려준다. 간결하고 절도 있으면서도 메마른 느낌을 주는 경우가 없이 듣기 좋은 음의 감촉을 만들어낸다. 동작 주위로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을 원활히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스테이징에 기여하는 바 또한 크다. 페페 로메로가 연주하는 줄리아니의 기타협주곡 1번은 드라마틱하고 질감 넘치는 기타연주를 보여준다. 실제 기타 음에 가까운 소리이다. 주로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에서의 상승효과가 생동감을 더해서 생겨난 변화로 보인다.

 

사라 맥라클란의 ‘Angel’을 들어보면 베이스의 해상력과 분명해진 포커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보컬의 음색에 호소력이 짙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컨트라스트가 강해지거나 살집이 늘어났다거나 하지 않은 채로의 이런 변화는 깨끗해진 배경의 효과, 그리고 그로 인한 공기의 흐름이 원활해진 결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단순한 곡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 중역 이상의 대역은 섬세하고 구체적이며 숨을 쉬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

기본적으로 본 제품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린 데이의 ‘Boulevard Of Broken Dreams’와 같은 깊은 비트의 펑크 록 에서도 정확한 스테이징을 보여준다. 강렬하면서도 동작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드러밍과 타이트하게 그려지는 보컬의 음상은 이 곡의 열기와 깊이를 더해준다. 정교하면서도 꽉 찬 스테이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뛰어난 품질로 그려준다.

레핀과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2악장에서는 피아노의 정교한 하모닉스가 공간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바이올린은 유연하면서도 연주자의 운동 반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매우 듣기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크로링크의 제품은 에소테릭의 디지털 플레이어 내장 선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에소테릭의 사운드 컨셉과 잘 맞아 떨어지는 선택으로 보인다. 아크로링크는 최초 일본 광업주식회사(Nippon Mining Corp)에서 시작해서 1985년 일본 에너지 공사로 업종과 상호를 변경하면서 기원했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87년 양산을 시작한 이래 현재의 상호인 닛코 머티리얼즈(Nikko Materials)로 변경하면서 금속 불순물 함유가 0.1PPM이하, 좀더 구체적으로는 99.999999% 이상의 순도를 보증하는 제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제품 제조기술은 8N등급의 8N-A2080II ‘프리미엄’에 까지 진행되었지만, 상기했듯이 제작 단종되었다. 참고로 전세계적 6N 이상의 고순도 구리(Cu)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일본의 상기 2개사 – 닛코 머티리얼즈, 미츠비시 머티리얼즈 – 뿐이다.

 

요 며칠, 음악에 집중할 여유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필자에게 아크로링크의 케이블 한 도막은 음악의 즐거움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크로링크의 7N-A2070II을 시청하면서 원재료 사업에 대한 친근감 마저 생겨났다. 산업용과 소비재 사이의 거리를 오디오 산업이 매개가 되어 가깝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전술했듯이 최근에 시청한 매우 인상적인 제품의 하나로서, 아크로링크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게 되었다. 이 회사의 선재로 DIN단자처리를 하든, 이 제품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앰프로 변경을 하든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아크로링크의 제품을 시청하게 될 오디오파일이라면 누구나 필자와 유사한 감동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