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1993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독립했을 때, 류크 맨리(Luke Manley)의 상황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인해 그간 전념해오던 회사에서 나와야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최대 경쟁자가 하필이면 그의 부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프로 음향 쪽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진공관 방식으로 만든 채널 디바이더와 같은 제품은 지금도 전설로 남을 정도다. 세계 최고의 설계자와 팀이 되어 오디오계를 호령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달랑 혼자 남아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는 아예 발상부터 전환한다. 부친이 해오던 방식과는 철저히 다르게 제작해보겠다는 결심 하나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진공관 앰프가 가진 문제점들을 진단했다. 확실히 소자 면에서 볼 때 진공관이 TR보다 소리가 나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각종 험이라던가 잔고장, 바이어스 문제, 편의성 등 여러 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았다. 그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재야의 고수들을 불러 모아 자신만의 발상을 실현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돌이켜보면 당시 류크가 목표로 하던 음은 최상의 퀄리티를 뽑아내던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조용하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고, 안정성이 높으며, 스피커 구동력이 막강한 제품들 말이다. 이를 어떻게 하든 진공관으로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광대역의 트랜스포머를 채택한다거나, 파워 서플라이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오토 바이어스 기능을 추가하며, 무엇보다 다이내믹스와 스피드 면에서 탁월한 성능을 요구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사내에 세 명의 엔지니어를 두기에 이르는데 그 면면이 대단하다. 우선 모스 페트 (MOS-FET)를 중심으로 솔리드 스테이트 전문가와 밸런스 설계 담당자 그리고 서킷 설계자를 각각 고용했다. 그 외에 프리랜서로 PC 보드 제작과 소프트 웨어 구성에 능한 사람들을 골랐다. 이들의 협력 플레이에 의해 프리 및 파워에서 타사들을 압도하는 정숙성, 와이드 레인지. 내구성 등을 고루 갖춘 VTL의 걸작들이 탄생했다.

 

필자는 사실 류크와 여러 모로 친분이 깊다. 몇 년 전 홍콩 오디오 쇼에서 알게 되어 오디오 쇼가 있을 때마다 마주친 덕분이다. 그의 품성이나 인상은 VTL처럼 정숙하면서 사려 깊은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말수가 적고, 늘 미소를 띠고 있으며, 항상 상대편부터 배려하는 편이다. 만난 자리에서도 절대 자신의 제품을 먼저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어떤 부분을 더 개량하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말부터 꺼낸다. 그의 온후한 인덕과 일에 대한 추진력에 감동받아 틈만 나면 VTL의 제품을 들어두는 편인데, 이번에 아주 좋은 제품을 만나게 해주었다.

 

2년 전에 만났을 때 류크가 소개한 것은 본 기의 전신인 TL-5.5 시그너처였다. 여기서 그는 상급기 6.5의 절반 정도 가격이면서 퀄리티는 상당히 근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완전 진공관식 프리로 만들었으며, 특히 볼륨 스위치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일절 릴레이를 사용하지 않고, J-FET 소자를 이용해서 저노이즈를 실현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 만난 버전은 가히 탄복할 만큼 개량과 발전이 이뤄져서 깜짝 놀랐다. 그 단초는 동사의 플래그쉽 프리인 TL-7.5를 버전 업 하면서 얻어진 노하우를 듬뿍 담은 데에 있다. 채 6.5의 개량이 이뤄지기도 전에 먼저 5.5에 손을 댄 것을 보면, 그만큼 이 제품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편의상 라인 스테이지부를 살펴본 후, 옵션으로 제공되는 포노 스테이지부를 점검하고, 그 밖의 것들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라인 스테이지부터 살펴보면 네거티브 피드백을 최소화한 풀 진공관 설계가 돋보인다. 사실 네거티브 피드백이란 앰프 설계에서 일종의 필요악과 같은 존재로, 많이 쓰면 스펙이 좋아지지만 그만큼 음의 순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진공관 방식의 강점은 솔리드 스테이트보다 네거티브 피드백의 의존도를 더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그 점을 확실히 살려냈다. 

볼륨단도 이전보다 정밀해졌다. 칩을 이용해 117 단계의 미세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자의 방법론에서 훨씬 진화한 내용이다. 프리앰프에서 볼륨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만큼, 이를 통해 얻어진 정숙성과 디테일 향상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한 세밀한 조정 장치 덕분에 디스토션이 대폭 줄어들었고, 잡음도 확실히 낮아졌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조정이 가능해졌다. 스테레오/모노 선택이 간편해졌으며, 출력 게인도 표준뿐 아니라 낮은 게인까지 지원한다. 연결되는 파워 앰프의 성격에 따라 선택이 용이해진 것이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포노단도 그 내용이 상당히 충실해서 군침을 흘리게 한다. 간단한 점퍼를 통해 MM/MC 전환이 되며, MC의 경우 다양한 게인 설정이 눈에 띤다. 각 6dB씩 조절이 가능해서, 이를 통해 68dB, 62dB, 56dB 등을 제공한다. 또, RIAA 필터의 성능을 향상시켜 점퍼를 통해 원하는 형태를 선택하게 했다. 그 밖에 정밀 가공한 알루미늄 외장의 섀시는 상급기에 준하는 것으로 상당히 견고해서 앰프를 켜도 적막강산 그 자체다.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 조용히 필라멘트가 기지개를 켜고 조심스럽게 다른 기능을 일깨우는 바, 이를 통해 진공관의 수명이 최대한 보장된다. 때문에 작동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음악을 최상의 상태로 듣기 위한 일종의 기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본 기의 음을 들어보면, 과연 이게 진공관인지 최첨단 솔리드 스테이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와이드 레인지, 빅 다이내믹스, 고해상도 등 최상의 TR 앰프들이 자랑하는 덕목을 골고루 갖췄을 뿐 아니라, 그 음에 있어서 일체의 가식이나 억지가 없어 과연 진공관이란 소재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한다. 게다가 풀 진공관 방식으로 설계되어 그 장점을 온전히 드러낸 만큼, 이번 제품에 대한 기대는 높게 잡아도 무방할 것 같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무척 감도가 높은 G.I.P.의 제품으로 했고, 파워는 에어 타이트의 ATM 211, 소스는 올리브의 4HD다. 시청 트랙은 필자가 편집한 《Music for Audiophile》의 재즈 및 클래식 음반에서 골고루 골랐다.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바이올린)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중 March》 정명훈(지휘)

-오스카 피터슨 《You Look Good to Me》

-투츠 틸레망 《Canto de Ossanha》

 

우선 얀센을 들으면, 바이올린의 음에 일체의 거친 음이 없이 말쑥하게 울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약간 기름지고, 싱싱하며, 와이드 레인지한 느낌이 우러난다. 마치 4기통 승용차가 6기통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파워 앰프의 드라이빙 능력이 배가되어,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훨씬 웅장하고 또 탄탄하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의 찰기나 온기가 뛰어나 음에 집중하게 만든다. 탁월한 분해 능력과 디테일은 왜 이 시대에도 뛰어난 프리앰프가 필요한지 강하게 웅변한다 하겠다.

 

베를리오즈의 경우, 안길이가 상당해서 놀랐다. 서서히 기지개를 켜듯 팀파니의 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혼이며 현악기들이 달려드는 기세가 대단하고, 튜바와 같은 저역 악기의 존재감도 강하게 부각시킨다. 무엇보다 탁월한 스피드를 자랑해서, 시청에 동원된 모 프리앰프과 비교해보면 140Km 대의 직구에서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변신한 듯하다.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에너지는 확실히 발군이다.

 

오스카 피터슨은 처음에 오른쪽 채널에서 길고 또 깊게 더블 베이스를 활로 긋고, 왼쪽 채널에서 드럼이 기지개를 켜며 화답하고, 이윽고 중앙에 놓인 피아노가 질주하는 식이다. 그 스토리가 일목요연할 뿐 아니라, 각 악기들의 위치며 음색 등이 멋지게 묘사된다. 특히 약간 똘망똘망하면서 예쁜 피아노 터치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며, 점차 템포가 빨라지고 클라이맥스로 올라갈 때의 기세도 놀랍다. 드럼의 경우 브러쉬와 스틱을 번갈아 가며 치는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 과연 고분해능을 갖춘 기기임을 실감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틸레만의 곡은, 실은 그 주인공이 엘리스 레지나라는 가수. 약간 거친 듯 하면서 기백이 출중한 이 여장부의 탁월한 고음 처리 능력은 《나가수》에 등장한 대부분의 소리꾼들을 무색케 한다. 그 힘이 여기서 강하게 느껴진다. 오래된 음원인 만큼 약간 촌스런 녹음이 시스템에 따라 신경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매우 능숙하고, 노련한 재생이 이어진다. 확실히 내공이 깊은 메이커라는 인상이다.

 

 

진공관 구성	2 x 12AU7, 4 x 12AT7 (라인 스테이지)
입력부	밸런스드/XLR 또는 RCA 싱글 엔디드 2쌍 싱글 앤디드/RCA 6쌍
출력부	밸런스드 출력부 1쌍 싱글 엔디드 RCA 출력부 1쌍 싱글 엔디드 RCA 버퍼 녹음 출력부 1쌍
리모트 콘트롤 기능	전원 소스 선택 음량 증가/감소 기능 음소거, 점검 작게 좌우 밸런스 조정, 위상 반전
게인	정상 게인 -11 dB 싱글 엔디드, 17dB 밸런스드 낮은 게인으로 전환 가능 – 6 dB SE,11 dB 밸런스드
출력 임피던스	150 Ohms (10Hz 에서 최대 400 ohms)
입력 임피던스	35K Ohms
주파수 응답 + 0 - 1 dB	1 Hz - 200KHz +0 –1dB
최대출력 전압 < 1% THD	1%THD(왜율)일때 30V 10Hz ~ 200kHz, 1.75V, 600ohms
채널 분리	> 100 dB @ 1KHz (>80 dB @ 20kHz)
전력 소모량	60 Watts (라인 스테이지 앰프인 경우) 130 Watts (포노 스테이지 앰프인 경우)
무게 및 치수	40 lbs (18.12 Kg) : 한개의 박스에 완전 포장 되었때 포장을 제외한 무게: 30 lbs (13.6 Kg) 장치 치수 : 44.45 x 43.18 x 12.0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