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잠깐 사이에 맨발의 서늘함을 느끼는 계절이 되었다. 슬리퍼 없이 맨발로 거실을 걷기가 어색해졌다. 찬 물에 발을 담그느라 계곡을 찾아 나서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말이다. 계절의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평해 보이는 건, 원하든 원치 않든 거의 일정한 시점에 누구에게나 똑같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온 몸을 아무리 따뜻하게 할 지라도 이 ‘발’ 한 곳이 부실하게 방치되면 전신의 체온시스템은 쉽게 평정이 무너지기도 한다.

 

장마철에 종종 일어나는 감전사고 또한 발의 지면접촉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인체의 말단과 지표면과의 관계만으로 보자면, 전류와 자기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꽤나 뚜렷하게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현상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 같다.

 

션야타 리서치(Shunyata 는 ‘禪’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는 이미 국내에서도 다수의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는 전원장치 전문 제조사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다수의 평론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급 레퍼런스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 부문에는 전통의 강호들을 비롯해서 유사 레퍼런스급 제품들이 다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션야타가 차별화되는 영역은 당초의 가청 효과와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 그리고 신비감이 감도는 브랜드 이미지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션야타는 이런 사안들을 포인트로 해서 비교적 짧은 히스토리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약 10년 전 시청용으로 사용했던 전원장치 ‘하이드라’는 PS 오디오의 파워플랜트와 더불어 꽤나 획기적인 효과를 보여준 제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에 따라 션야타의 이름은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포트폴리오는 전기가 흐르는 경로를 따라가듯 액티브 전원 장치 이외에도 케이블과 단자들, 그리고 케이블 주변 액세서리까지 차례로 이어지고 있다. 본 ‘다크 필드 V2’는 기존 ‘다크 필드’에서 거의 다른 제품으로의 변신을 시도한 제품이자, 션야타 리서치의 2012년 판 최신 제품이 된다.

 

이런 류의 케이블 행어, 서스펜더는 종종 있어왔다. 플로우팅의 방식과 제품의 재질, 디자인 등은 각양각색이지만, 공통점은 바닥의 자기장에서 최대한 떨어뜨려서 신호의 충실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바닥에서 케이블을 떨어뜨리는 작업 자체는 사실 사용자가 주변의 소품을 이용해서, 혹은 좀더 ‘극성스러운’ 사용자라면 직접 제작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무, 플라스틱, 옷걸이, 두루말이 휴지 등등 다양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이 투입된 커스터마이징 서스펜더들을 보아왔다. 각자 얼마나 소기의 성과를 얻어냈는 지 확인은 불가하지만 자기장과 케이블의 관계에 대한 체험 수준을 넘는 효과는 어렵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필자가 보는 이런 패시브 액세서리의 관건은 이론과 실제가 명쾌하게 맞아 떨어져서 그 변화가 귀로 쉽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뭔가 애매하거나 사용자의 복잡한 세팅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던가 하는 경우라면 사양하라고 하고 싶다. 가뜩이나 복잡한 하이파이 콤포넌트의 조합에 짐을 하나 더 얹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션야타의 제품은 대부분의 오디오파일들에 의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제품으로 보인다.
 
시청 이전에 필자가 이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포인트는 바로 ‘카본’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함량을 투입시켰는 지 데이터는 확인 못했지만, 시청결과로 판단컨대 제품의 비중 대비 최소 10%~20% 이상을 함침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카본’이나 ‘숯’ 등의 탄소 화합물 소재를 고분자 속에 전체 질량의 30% 이상 투입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아마 작업장이 온통 검정으로 도배가 되고, 작업자는 몸의 안팎으로 카본 가루를 뒤집어써야 할 지도 모른다.

 

미세한 입자를 사출기에 투입시키는 과정에서 가루가 날리고 또한 균일하게 분포시키려면 제작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을 피할 수 있는 필자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용액 속에 가루를 투입시켜 젤타입으로 컴파운딩을 하는 방법이지만, 이 또한 비용이 많이 상승하게 된다.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카본을 가루 형태로 플라스틱 속에 넣어서 제작하는 방식은 ‘돈이 든다’는 점이다. 흰 색 제품과 검은 색 제품 간에는 실은 이런 큰 차이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오디오 케이블이 갖는 문제로서, 바닥과 케이블 사이의 자기장 편차(electrical field differential)를 갖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케이블 내에서는 한 쪽 방향으로 직선운동을 하려하고 바닥의 자기장은 그 크기와 영역에 따라 이 신호의 진행을 왜곡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케이블은 바닥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허공에 떠있을수록 바람직하며, 이상적으로는 아예 케이블 없이 대용량의 전류 신호가 허공을 날아서 전달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케이블의 구조를 잠시 떠올려 본다면 선재를 중심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외부와 격리시키려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케이블의 굵기를 늘리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역시 효율을 따져 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케이블 서스펜더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그 다음 좀더 핵심사안으로서 ‘카본’의 효과에 대한 부분이다. 탄소 화합물로서 ‘카본’의 자기장 차단 효과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데가 있다. 구조가 조금 다른, 정확히는 식물성 탄소 분자구조를 하고 있는 ‘숯’의 경우를 예를 들면 꽤나 재미있고 다양한 효과를 보여준다. 자체적으로는 음이온과 항균 등의 효과, 그리고 부착면의 표면 온도를 낮추기도 하지만, 자기장과 전자파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숯으로 사방을 마감한 방에서 핸드폰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전화송수신이 되지 않았다.

 

‘카본’의 이런 다양한 효과에 대해서는 검증된 자료가 많지만, 아직은 민생용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지는 못하다. 제작물들의 단가가 만만치 않다는 게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만 오디오 파일들의 경우에는 그다지 개의치 않을 만한 수준의 제품들의 제작이 가능해 보이며, 본 제품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크 필드 엘리베이터 V.2에 사용된 카본은 자기 저항력과 동시에 전도성이 있는 특성을 갖는다.

 

상단은 V자 모양으로 케이블을 받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고, 케이블이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접촉면은 다시 가늘게 돌출되어 있다. 내부는 비워진 구조를 하고 있는데, 외형으로 보아 제품 좌우를 접합시킨 구조가 아니라서 대략 4~8개의 캐비티로 높은 압력을 가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제품의 크기는 작을 지 몰라도 이런 구조의 제품을 사출하려면 높은 압력이 걸려야 하는 관계로 금형의 크기가 꽤나 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형의 표면은 그다지 매끄럽게 미광처리를 하지는 않고 있어서 고급스러움을 논할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제품이 아닌 관계로 그다지 중요한 포인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 제품을 사용한 시청은 상당히 명쾌한 결과를 보여준다. 요약하면, 첫 째 케이블의 굵기가 굵은 부분일수록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둘 째, 녹음이 좋은 소스일수록 원래 녹음 속의 정보량을 충실히 부각시킨다. 셋 째, 미세한 신호일수록 차이가 도드라진다 등을 들 수 있다. 헤레베헤 지휘의 모차르트 레퀴엠 중에서 ‘라 크리모사’를 들어보면 칠흑 같은 배경이 좀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뭐랄까… 좀더 먹의 표현이 짙은 색채가 되었다고 해야할 것 같은 그런 배경이다. 정적의 느낌도 이와 비례해서 배가되어 있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보면 마치 좋은 전원장치를 연결했을 때의 변화와 일치한다. 노이즈가 줄어들고 깨끗하고 까만 배경 효과가 배가되어 긴장감이 강화되었다.

 

이런 효과에 부가되는 이득은 사실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단, 배경이 깨끗해지면 스테이징이 좀더 정교해진다. 미세 신호의 표현이 좀더 적극적으로 들려오며 마이크로 다이나믹스가 증가한다. 그 다음으로 고역쪽으로 갈수록 맑은 느낌이 고조되고 있다. 하모닉스도 좀더 정교해지고 또렷하게 감싸오는 느낌이다.

 

보첼리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은 그의 모습 주변을 잘 도려내며 DFE V2를 사용하기 이전에 비해 3D 효과가 늘어난 입체의 모습을 띄워 올린다. 약간 놀라울 정도의 순간이다. 입김이 나올 듯한 찬 공기의 느낌도 잘 전해진다. 고역이 가늘게 뻗어 올라가는 짧은 순간, 긴 패세지에서도 가수가 노래를 안정감 있게 잘 부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끔은 거칠고 에너지 과잉이 느껴지는 투티 부분에서도 뭔가 매끄러운 기운이 도는 고역으로 들린다. 특이한 경험이다.

 

한편 대편성에서의 경우에서 가장 큰 효과는 레이어링에 있었다. 특히 전체 악기가 자리잡고 동시에 약음으로 시작하는 곡의 경우 무대의 입체감은 좀더 분명해져 있다. 다만, 에너지가 증가하거나 다이나믹스의 상하 폭이 큰 합주 부분에서는 사용 전후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음량이 큰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효과의 폭이 부각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환상교향곡 1악장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마치 불을 지펴서 올라오는 미세한 연기 같은 기운이 전후간의 미세한 거리를 감지할 수 있도록 앵글에 따라 투과되는 모습으로 무대의 상황을 서서히 비추어 준다. 투티에 오면서 그 효과는 다이나믹스 속에 일체화되어 다채로운 색깔의 굵고 가는 선들로 뭉쳐진 괴가 되었다가 다시 선으로 돌아왔다가 하는 모습이 반복되는 장면은 오케스트라가 줄 수 있는 현란함을 만끽하게 해준다.
 

사실 고가의 케이블 중에서 인슐레이팅이 부실하거나 외부 전류에 쉽게 영향을 받는 제품을 아쉬움을 호소하며 사용중이라면 본 제품을 우선 사용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스테이징 꽤나 따지고 실내악과 독주곡에 선수급인 오디오파일이라면 만족감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에 무심한 경우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종류별로 케이블의 차이를 잘 느끼며 까다롭게 선별하는 사용자, 그리고 전원장치의 효과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경우라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