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현대의 하이엔드 파워 앰프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소리에서 가장 높은 소리까지 가장 순수한 상태로 표현해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밀성 ? 순도 ? 순발력 등을 보장하는 최고의 설계 능력? 우리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에서 큰 소리까지 가장 순수한 상태로 담아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숙성 ? 폭발력 ? 안정성 등을 이끌어 내는 강력한 출력과 전원부? 우리 인간의 귀로 식별할 수 있는 음악의 가장 미세한 표정에서 광활한 음향 풍경까지 한눈에 투명하게 그려낼 수 있는 치밀하게 음향을 다듬어 내는 음향 조정 능력?

호블랜드의 플래그십 파워 앰프인 스트라토스를 시청하면서 필자는 파워 앰프의 정의와 기능에 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 조건에 덧붙여야 할, 파워 앰프가 갖추어야 할 제3의 능력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시청 과정 내내 스트라토스와 필자 사이에서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숨바꼭질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패토스의 앤돌핀 CD 플레이어, 다질의 NHB-18NS 프리앰프, JM 랩의 알토 유토피아 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과 짝을 이룬 스트라토스는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감추는 꾀돌이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경험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스트라토스 자신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고향, 즉 성층권을 뜻하는 ‘stratosphere’를 형상화한 듯한, 대기권 말단의 창공을 연상케 하는 푸른 빛깔과 크롬 도금으로 연출한 은빛 투명함이 세련된 조화를 이룬 파워 앰프가 필자 앞에 자리를 잡고, 패토스 ? 다질 ? JM 랩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움직이는 심장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에서 파워 앰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걸 믿을 바보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번 시청에서 필자가 플레이어에 가장 먼저 올린 음반은 안드레아스 슈타이어가 포르테피아노 독주를 맡고, 고트르피트 폰 데어 골츠가 지휘하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7번 녹음(아르모니아 문디 HMC 901980)이었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몸이 덜 풀린 듯한 나른한 느낌을 안겨 주는 음향이 알토 유토피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체로 보면 원전악기에서 살아나야 할 독특한 음색은 그런 대로 살아나는 듯하지만, 이만한 수준이라면 굳이 하이엔드 시스템을 찾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음향, 특필할 것을 찾아보기 힘든 평범한 음향,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 부족한 듯한 음향― 그게 대체 뭘까? ―이 알토 유토피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케스트라의 도입부가 끝나고 슈타이어가 연주하는 포르테피아노가 등장한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대류권 바로 위층에 존재하는 대기의 상층’인 성층권에서 바라본 음악의 모습일까? 그것은 희박함일까? 창백함일까? 지구를 벗어나 영원과 고요의 우주를 향한 음악의 고향에 대한 영원한 동경일까? 슈타이어의 모차르트를 감상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왜 이처럼 창백할까? 그저 차분할 뿐…’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음향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넋 놓고 앉아서 슈타이어의 모차르트를 듬성듬성 감상하고, 로렌초 코폴라가 클라리넷을 연주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아연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스트라토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필자가 알아듣기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한데,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음악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였다.

그렇다. 그 어떤 것도 넘치는 것이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모자란 것이 없었다. 언뜻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없는 것이 없는 음향’, 그러니까 언뜻 고음역의 직선성과 광채가 부족한 듯싶어서, 정신을 집중하고 고음역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하면, 필자가 원하는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 이게 대체 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음향이 알토 유토피아에서 흘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이뿐일까? 음악의 표정이 당당하지 못한 듯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중음역을 탐사해 보면, 단단하지는 않지만 실체감이 살아 있는 음향 몸체와 윤곽, 강렬하지는 않지만 손쉽게 정상까지 도달하는 유연한 다이내믹, 프레스토의 빠르기에서도 명료하게 살아나는 음표 하나하나의 표정― 보통 과도특성이라고 정의하는 ―, 그리고 음악의 흐름을 느긋하게 따라잡는 선율선 등이 혼연일체를 이룬 음향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앰프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면서, 그와 동시에 취향에 따라 호오(好惡)가 분명하게 갈릴 수 있는 저음역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예를 들어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브루크너의 제5번 교향곡(DG 415 985-2) 첫째 악장 도입부에서 살아나야 할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를 호블랜드와 JM 랩 조합은 어떻게 연출하는가? 저음역의 강력한 파장을 몸으로 느끼게 하기보다는, 절제된 발성 속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그리 두텁지 않은 텍스추어로, 음악을 강박하지 않는 정연한 표정으로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를 사뿐하게 표현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음색과 섬세한 확산감이 조화를 이룬 중후함 등을 놓치지 않는 독특한 음향이 호블랜드와 JM 랩 조합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이럴 때 궁금해지는 것은 호블랜드의 스트라토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스러움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자연 음향에 대한 동경! 인위적 조작을 배제한 음향! 분석을 초월하여 부분과 전체의 완벽한 조화를 지향하는 음향! 그리하여 고전주의 미학에서 주장하는 대 이론(Great Theory), 균형 ? 절제 ? 조화의 원리에 충실한 음향을 구현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스트라토스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호블랜드가 주장하는, 하이엔드 파워 앰프가 갖추어야 할 제3의 조건이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하이엔드 파워 앰프는 자연 음향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파워 앰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치밀한 계산에 기초를 둔 회로 설계, 설계 이념에 적합한 음향을 구현하기 위하여 최적의 부품을 선별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음향에 대한 예리한 감수성, 음악의 실상을 고스란히 담아 내는 물량 등은 하이엔드 파워 앰프가 갖추어야 할 당연한 조건이지만, 진정한 하이엔드 파워 앰프라면 이들 기초 조건을 뛰어넘는 제3의 조건, 즉 자연 음향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앰프가 호블랜드의 스트라토스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스트라토스에 대한 오해와 비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좀 더 다양한 기기들과 조합하는― 호블랜드의 프리앰프인 HP-200과 조합하는 것과 같은 ― 다면평가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이처럼 자연스러운 음향 조형을 지향하는 기기들은 자칫 ‘교과서 같은 음향’, 다시 말하면 이슈가 부족한 음향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쉬운 것이다. 스트라토스처럼 유연성과 정묘함의 삼삼한 통합을 추구하는 앰프들이 흔히 보여 주는 특성, 즉 적극성이 부족한 듯한 절제된 발성, 화려함과 예리함을 결여한 듯한 고음역, 다소 무른 듯한 음향 몸체와 윤곽, 당당함과 입체감이 약한 듯한 중음역, 중량감이 부족한 듯한 소극적인 저음역 등이 비판의 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혀 둘 것이 있다. 그것은 음악의 특정 국면을 과장하거나 강조하면서 애호가의 마음을 홀리는 앰프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음악 그 자체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담고 있는 앰프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 음향이란 그 자체로서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표현하며, 냉철한 분석 그 자체보다는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제시하는 것을 지향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세계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호블랜드의 스트라토스는 음악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동경하는 하이엔드 앰프라면 모름지기 음악의 성층권이라도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