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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과거에 사용했던 스피커들 중에 유난히 북셸프 형이 많았다. 특히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 미국에서 학생으로 살던 시절에 다양한 소형 스피커를 갖다 들어보았는데, 북셸프를 잘 구동하면 플로어형 고급 대형기 못지않은 양질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오디오가 반드시 큰 사이즈일 필요가 없다는 오디오 평론가의 소신과 철학(?)을 갖게 해준 것도 따지고 보면 북셸프 스피커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용했던 스피커 중에서 다시 한 번 가져다 구동해보고 싶은 스피커를 꼽는다면? 우선 셀레스천 SL700을 들겠다. 소형 스피커 디자인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획을 그은 중요한 제품이다. 그 다음으로는 ATC SCM10인데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스피커이기도 하다. 그 자그마한 몸집에서 나오는 풍윤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필자가 꼽는 또 하나의 소형 스피커는 바로 에포스 ES11이다. 90년대 초 미국에서 한동안 들었는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구입해서 들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제품이다. 미국에서는 크릭 인티앰프, 한국에서는 네임 오디오 70/140/하이캡 조합과 매칭해서 수년간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그래서 다시 접하는 에포스 스피커가 매우 반갑다. 이번에 소개하는 에포스 엘란 15는 과거 에포스 북셸프 스피커 기본 디자인에서 많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단순하게 설계된 크로스오버, 우수한 드라이브 유닛,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디자인 등이다. 폴리프로필렌으로 제작된 드라이브 유닛과 소프트돔 트위터는 과거 에포스 스피커와 동일하게 보인다. 내부 크로스오버에도 고급의 부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모든 배선은 단심(solid core) 케이블로 이루어져 있다. 4옴 임피던스에 90db 감도라서 구동하기 어렵지 않고 바이와이어링이 가능하다.

 

에포스 엘란 15 스피커 시청에 사용된 기기는 프라이메어 A32, P32 세트, 플레이백 MPS3 CDP, 그리고 스피커 케이블은 헤밍웨이 제품을 사용하였다. 오디오피직 Tempo 25와 비교 시청하는 형식으로 리뷰를 진행하는데 두 스피커의 서로 다른 개성을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다. 중립적인 성격의 프라이메어 앰프세트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모범생“ 사운드를 만들어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에포스 사운드, 엘란 15 모델의 첫인상은 과거 ES11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PRT, 즉 페이스, 리듬, 타이밍이 좋은 에포스 특유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음악을 신나게 들려주는 “활발함”이 좋았는데, 소형 스피커 특유의 “대담함”도 인상적이었다. 치음이 다소 강조되는 성향을 보여주었는데 아마도 트위터의 에이징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에포스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라우드니스(loudness)도 좋았는데 용감하게 악음을 뱉어내는 과감함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솔티가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한 말러 부활 교향곡 (DECCA 419 292) 3악장 서두 드럼 연주에서 그 어택(attack)의 폭발력과 함께 가죽의 질감 같은 것도 나와 주는 대목이 좋았고, 관악의 두께도 소형기답지 않게 잘 연출되고 있었다. 스케일이 크고 낙폭이 큰 재생을 하고 있는데 공간감도 여유 있게 묘사되고 있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앨범 (EMI 582136)에서 “Money" 도 매우 재미있게 들었다. 도입부의 동전소리가 ”싸구려“처럼 들리는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도 가사가 주는 메시지, 그리고 프로듀서 알란 파슨스의 의도에 부합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 시청한 오디오피직 스피커가 들려주는 동전소리는, 상대적으로 왠지 금은보화와 같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칠리아 바르톨리가 정명훈 선생의 피아노 반주로 레코딩한 불란서 가곡집 (DECCA 452 667)을 들어보니 디테일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대목이나 음악의 수려한 흐름을 들려준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개성 있는 소리를 내어준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데 바르톨리의 개성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대목은 매우 흥미로웠다. 바르톨리의 캐리커처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재미있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 아마도 낙폭이 큰 소리를 만들어내는 에포스 스피커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에포스 스피커는 시청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하는 스피커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시청한 엘란 15 모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의 청취환경은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실제로 사용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스피커 스탠드의 재질, 위치선정, 그리고 토인 (toe-in) 각도 등을 갖고 여러 가지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 몇몇 오디오파일은 에포스 스피커의 크로스오버 부품을 직접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드라이브 유닛이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 세계 네임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업그레이드 방법인데 용기 있는(?) 오디오파일은 한번 직접 시도해보시길.

 

가격은 만만할지 모르지만 그 성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스피커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주장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람을 위한 제품으로서 오디오 마니아의 도전정신을 북돋는 스피커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