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케이블 몬스터의 등장

오디오 시스템을 오래 튜닝해나가면 어느새 사운드 자체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정도 시스템에 자금을 투자하면 만족하며 음악에 집중할 거라는 예측은 몇몇에겐 예외다. 모처럼 음악을 들을라치면 한 시간만 즐겁고 그 이후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사운드를 자신의 취향대로 좀 더 바꾸어보려 한다. 오디오파일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 중에서도 매우 음질에 커다란 에고를 가지고 자기 뜻대로 수정해나가려는 소수의 사람이다.

때로 이런 자신의 음악적, 음질적 취향은 한 분야에 집중되고 병목현상을 낳곤 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부여잡고 있는 꼴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특별한 산업의 바위에 붙어 이젠 거대한 장르가 된 케이블 분야는 바로 나무와 같다고 얘기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케이블에 대한 요구와 맞물려 엄청나게 성장한 케이블 분야는 처음엔 그저 숲을 이루는 나무에 불과했고 적당한 스펙을 만족시키면 그만이라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에 대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접근과 튜닝, 그리고 미세한 뉘앙스에서 더 나아가 전체 다이내믹스와 음결, 사운드 스테이징에 대한 집요한 추적이 케이블에 다다랐다. 이젠 더 이상 케이블은 부속품이 아니라 시스템 구성 요소의 커다란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오디오파일 개개인의 집요한 튜닝 욕구와 케이블 산업의 만남은 여러 괴물을 탄생시키며 시스템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시너지스틱 리서치는 ‘리서치’라는 이름처럼 과학적이며 입체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케이블에 적용해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현재 가장 성공한 케이블 메이커로 우뚝 선 브랜드다.

UEF Black 파워케이블

시너지스틱 리서치의 케이블, 특히 상위 갈릴레오 등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과연 이것이 단순히 케이블에 불과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거대한 굵기와 카본으로 온몸을 감싼 실린더 모양의 스플리터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앰프와 스피커, 소스기기 등에 자신의 모든 음향, 음악적 열정을 쏟았다고 해도 이 케이블 하나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마치 ‘기묘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안에서 존재하고 있듯 말이다.

이번 UEF Black 파워케이블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우선 케이블 굵기는 상위 제품처럼 굵지 않다. 12awg 두께의 도체 총 세 개를 조합해 제작된 케이블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그리 뻣뻣하지 않아 설치도 쉬운 편이다. 상위 제품들처럼 액티브 쉴딩이나 여러 뷸렛을 통한 음질 변화 등의 기능을 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외관의 파워케이블은 그들의 핵심 기술의 많은 부분을 압축해내고 있다.

우선 절연은 에틸렌 프로필렌을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단자의 경우 C07 순동 단자 및 C07 순동 15암페어 규격을 사용하고 있다. 시너지스틱 리서치의 모든 케이블엔 UEF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이 제품도 마찬가진데 이는 ‘Uniform Energy Field’의 약자다. 쉽게 설명해 도체를 실린더 타입의 스플리터로 둘러싸 케이블 주변의 에너지 필드를 균질하게 만들어준다는 기술이다. 케이블 주변의 전자기장 등에 관한 내용으로 해석되는데 그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레벨을 나누어놓고 상위 레벨로 갈수록 크기도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UEF Black의 경우 레벨 2를 적용한 모습이다.

시너지스틱 리서치가 UEF Black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제작 노트엔 UEF 쉴딩 외에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열거하고 있다. 레벨 2 UEF 쉴딩 외에 4% 은납 사용 그리고 제작 시간은 두 시간에 걸쳐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케이블 완성 이후 ‘Quantum Tunneling’ 프로세스다. 양자역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언어인데 말 그대로 ‘양자 터널’ 효과를 노리는 것. 단자까지 모두 체결한 이후 무려 백만 볼트 전기를 흘려 전기가 케이블과 도체 사이를 매우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번인 과정이다. 또한 5일간 두 단계 번인 과정을 통과시한 후에야 출고하는 등 그들의 캘리포니아 소재 공장에선 제작뿐 아니라 번인이 매일 한창이다.

다양한 활용도

사실 시너지스틱 리서치는 UEF Black 파워케이블을 두 종류로 개발해 출시했다. 하나는 12awg 도체를 사용하며 다른 하나는 10awg 도체를 사용한다. 전자가 이번에 리뷰한 기본 버전이며 후자는 UEF Black HC, 즉 ‘High Current’ 버전으로 대전류를 흘려야 하는 파워앰프 용도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굵기도 더 굵고 가격도 좀 더 비싸다.

그래서 일단 UEF Black을 소스기기에 사용해 테스트해보았으나 이후 인티앰프에 활용했을 때도 상당히 유의미한 음질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테스트 환경은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에서 진행했으며 YG 어쿠스틱스 Hailey 스피커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이 외에 소스기기는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라우터 및 W코어 그리고 쓰랙스 Maximinus DAC를 활용해 ROON으로 재생하며 반복 청취했다. 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의 ECI6 인티앰프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사운드 퀄리티

문혜원 - Kiss Me

Kiss Me

UEF Black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스피드가 매우 빠르며 전반적인 토널 밸런스 측면에서 밝고 산뜻한 음질을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혜원의 ‘Kiss Me’를 들어보면 약간 밝은 계통의 케이블이지만 표백되어 질감이 터져버리지는 않는다. 보컬 포커싱은 매우 또렷하면서 입체적으로 눈앞에 둥실 떠오르며 피아노는 좀 더 또랑또랑하게 떨어진다.

절대 힘 자체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피력하는 과시적인 성질은 없기 때문에 억센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고 노래하는 느낌이 다분하다. 과도응답 특성을 좀 더 잘 살려주며 말 그대로 발랄한 동적 특성을 보이므로 어떤 시스템에서도 다양하게 적용하기 좋아 보인다.

Nils Lofgren - Keith don’t go

Acoustic Live

닐스 로프그린의 연주를 들어보면서 다이내믹스 특성을 파악해보려고 했지만 ‘Keith don’t go’에서 먼저 드러나는 변화는 무대의 깊이다. 무대가 한두 뼘은 더 물러나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심도를 만들어준다. 앞으로 공격하며 커다란 볼륨감을 만드는 경우 쾌감은 뛰어나지만 오히려 이런 케이블이 오래 사용하기엔 질리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UEF Black의 경우 동적 특성에선 힘을 모아 터트리는 타입이 아니라 그때그때 매우 순발력 있게 힘들이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만들어주는 스타일이다. 절대 공격적이거나 윽박지르는 느낌이 보이지 않으며 말 그대로 내추럴 스타일로 급박한 강, 약 대비를 빠르게 소화해낸다. 특히 관중들의 환호성과 연주자의 모습이 확연히 대비되며 매우 투명한 무대가 눈앞에 떠오른다.

Coldplay - Magic

Ghost Stories

저역의 경우 리듬, 페이스&타이밍 측면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 부분은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에 적용했을 때 상당히 커다란 변화 폭으로 음질적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콜드플레이의 ‘Magic’에 묵직하게 바닥을 때리는 저역을 매우 명료하게 정돈해주었다. 기존에 높은 저역부터 낮은 중역까지 약간 부풀어 올라 뭉개지던 특성이 거의 사라지면서 마치 몸이 홀가분해진 듯 스피드와 해상도가 살아났다. 과도한 저역 양감을 줄이되 비대했던 하체가 다이어트를 한 듯 날렵하고 선명해진 현상을 보인다.

박지윤 - 우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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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너무 징그러울 정도의 강, 약 대비를 통한 다이내믹스와 해상력을 경험해서인지 UEF Black을 사용했을 때 오히려 편안하고 정감 가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카오디오 페스티벌 심사 때도 수십 번을 들으며 테스트했던 박지윤의 ‘우리의 하루’ 같은 곡에서도 초반 정적을 깨는 기타와 배경음들이 지저분하지 않고 상쾌하게 귀에 감긴다. 치찰음이 거슬리기 쉬운 이 레코딩에서 그것들은 사라지고 대신 따스하고 화사하면 달콤함만 남았다. 상위 레벨 시너지스틱 리서치 케이블에 비하면 밀도감과 해상도 차이는 있으나 때로 이런 산뜻한 텍스처 표현과 리듬감, 적절한 대역 밸런스 등 중립적인 표현은 무척 매력적이다.

총평

테스트하기 전 전원 상황은 이소텍 슈퍼 타이탄과 헤밍웨이가 지배했다. 슈퍼 타이탄의 매우 중립적이며 적막한 전원 컨트롤 시스템에 헤밍웨이로 모든 기기를 연결한 상황이다. 기존엔 소스기기와 앰프 중 한 쪽에 쿠발라 소스나를 섞어 피치를 좀 더 낮추고 차분하면서 서스테인을 향상시키는 매칭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헤밍웨이로 통일한 상태였으나 UEF Black을 쓰랙스 Maximinus DAC 또는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 등에 연결했을 경우 좀 더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이처럼 케이블은 자신의 성향에 맞게 섞어서 사용할 때 좀 더 미세한 튜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특히 이 환경에서는 소스 기기보다는 오히려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 앰프에 적용했을 때 그 변화가 훨씬 더 심화하여 드러나는 현상을 목도했다. 이는 아무래도 ECI6가 전원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물론 앰프용 UEF Black HC 버전이 존재하지만 인티앰프까지는 UEF Black 기본 버전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UEF Black은 소스기기와 인티앰프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케이블로서 커다란 펀치력이나 밀도감은 레퍼런스급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상위 레벨과 가격 차이를 생각해보라. 몇몇 약점에도 불구하고 UEF Black은 이 가격대에서 보기 힘든 실력기임이 분명하다. 요컨대 시너지스틱 리서치 라인업 중에서는 라이트급 챔피언의 탄생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