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1965년으로 가보자. 이 해에 다낭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이 시작되었고, 흑인 지도자 말콤 X가 피살되는 등, 정치적인 격변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한편 비틀즈는 전설적인 쉐어 스타디움 공연을 치른 바, 여기에 롤링 스톤즈와 밥 딜런이 방문해서 이들과 우정을 돈독하게 나누기도 했다. 비틀즈 음악에 큰 전환점이 되는 ＜루버 소울＞ 앨범이 이 즈음에 나왔다.

이 해 월드 시리즈의 주인공은 LA 다저스. 역사상 최고의 원투 펀치로 평가받는 샌디 쿠팩스와 돈 드라이스데일 컴비를 앞세운 성과였다. 특히, 두 투수를 차례로 낸 1, 2차전을 모두 놓친 가운데 기어이 7차전까지 끌고 가서 우승한 터라, 인구에 회자할 만한 재미를 톡톡히 선사했다. 영화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큰 인기를 얻었고, 무하마드 알리는 소니 리스턴과의 재대결을 1회 KO로 끝내는 등, 참 흥미로운 시기였다.

바로 이때 영국의 시골에 소재한 작은 스피커 메이커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스피커를 내놨다. 린톤(Linton)이 그 주인공. 북셀프치고는 꽤 큰 모습이었는데, 내놓은 음이 당당하고 또 매력적이어서 1980년대까지 생산되었다. 롱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제품이 최근에 리바이벌되었다. 와피데일의 창립 85주년을 기념해서, 헤리티지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단순 복각에 그치지 않고, 최신의 테크놀로지와 소재를 총동원해서 현대적인 스피커의 내용을 당당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외모 자체는 전혀 바뀐 게 없다.

Wharfedale LINTON Heritage

시청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린톤을 보고 한참 멍해지고 말았다. 전형적인 박스형 스피커. 뭐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제품은 뭔가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부속된 스탠드가 압권. 제대로 된 스탠드에 받쳐진 북셀프는 그냥 놔뒀을 때와 천양지차. 어떤 면에서 북셀프의 완성은 스탠드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본 스탠드는 단순 철제에 그치지 않고, 스피커의 인클로저 재질과 같은 목재 베니어를 적절히 덧대고 또 컬러까지 일체화시켜서, 하나의 멋진 완성품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여기에 LP나 아트 북을 수납하기도 했는데, 뭐, 그런 기능을 아예 무시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아무튼 본 기를 구매하려면 스탠드는 필수. 단순히 보는 재미만으로도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여기서 잠시 본 기 린톤의 스펙을 보자. 북셀프는 이례적인 본격파 3웨이 타입으로, 1인치 구경의 소프트 돔 트위터에 5인치 미드와 8인치 우퍼는 블랙 케블라를 동원하고 있다. 케블라 섬유를 교묘하게 직조해서 진동판으로서의 성능을 한껏 높인 부분이 눈에 띈다.

이로써 담당 주파수 대역은 40Hz~20KHz에 이른다. 실제로는 35Hz 부근까지도 내려간다. 6옴에 90dB의 감도를 갖추고 있는데, 실제로 구동해보면 3.5옴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네트웍을 설계했다. 그러므로 소출력 앰프도 충분히 매칭이 가능하다. 메이커에선 25~200W를 권장하고 있다.

Synthesis Soprano

한데 이번에 커플링이 된 신세시스의 소프라노는 불과 12W에 불과하다. 출력 부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단, 12W라고 해도 순 클래스 A 방식의 설계라 실제로는 20~30W 급이라 해도 좋다. 직접 물려보니 출력의 부족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한편 이번에 매칭한 신세시스의 소프라노는 몸체 자체가 그리 크지 않다. 인티 앰프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경쟁작들과 비교하면, 다소 왜소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신세시스의 만듦새를 감안하면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모든 가치 척도는 어쨌든 상대성이 있는 법이다.

본 기는 한때 대히트했던 니미스의 후속작이다. 니미스 역시 무척 작았던 제품이다. 한데 그에 비해 덩치가 좀 커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DAC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되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다양한 디지털 입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일단 광 및 동축 케이블을 걸 수 있다. 또 USB를 통해 PC에 담긴 음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무척 쓰임새가 좋다. DAC 칩은 정평이 있는 AKM 제로 24/192 사양이다. 이 정도면 꽤 준수한 스펙이라 하겠다. 또 입력단 중에 포노도 보인다. MM 타입을 커버하고 있다. 과연 요즘의 시장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제품이라 하겠다.

기본적인 증폭단이나 컨셉은 니미스의 혈통을 따르고 있다. 출력관은 EL84. 흔히 6BQ5로 알려진 관이다. 그리 크지 않고, 출력도 높지 않지만, 중립적이면서 밀도감이 좋은 관이다. 이것을 푸시풀 방식으로 쓰되, 철저하게 클래스 A를 추구했다. 덕분에 출력은 12W에 불과하지만, 매우 고품위한 음을 즐길 수 있다.

원가 절감을 이루기 위한 조치가 곳곳에 눈에 띈다. 초단관은 전통적인 진공관이 아닌 OP 앰프로 처리했다. JRC 4580이라는 모델이다. 아마도 가격이라던가 제품 사이즈를 고려한 선택이라 하겠다. 단, 드라이브관은 별도로 동원했는데, 바로 MJD 340이다. 널리 알려진 관은 아니지만, 아마도 EL84에 적합해서 선택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제품의 공통점은 일단 높은 가성비다. 요즘 가성비라는 말을 자주 써서 뭐 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 매칭에도 이 말을 쓸 수밖에 없다. 소스기로는 웨이버사의 WNAS 3를 동원한 가운데, NAS에 담긴 음원을 룬을 이용해서 감상에 임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 안네 소피 무터(바이올린)

-베토벤 ＜교향곡 4번 2악장＞ 파보 예르비(지휘)

-에릭 클랩튼 ＜Wonderful Tonight＞(Live)

-마일스 데이비스 ＜Bye Bye Blackbird＞

Anne Sophie Mutter

Sarasate - Zigeunerweisen

CARMEN-FANTASIE

우선 사라사테부터. 초반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이 꽤 당차다. 시청실이 그리 작은 편이 아닌데도 공간 자체를 꽉 채우는 느낌이다. 이게 12W가 맞나 싶었다. 또 저역의 임팩트나 양감도 적절해서, 40Hz 이하로 확실히 떨어진다고 감이 왔다. 바이올린으로 말하면, 배경 악단과 구분이 되어, 날렵하고, 매끈하게 부각된다. 너무 감정에 복받치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단호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낱낱이 포착된다. 출력 부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음이다.

Paavo Järvi

Beethoven Symphony No.4 mvt 2

이어서 베토벤. 과연 신세대 지휘자답게, 정통적인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 보다 투명하고, 중립적이며, 차분하다고 할까? 그러나 이런 연주는 또 이런 대로 맛이 있다. 전망이 좋고, 악기들의 다양한 개성이 포착되며, 럭셔리한 맛도 포착이 된다. 확실히 클래스 A 증폭 방식의 장점이 잘 부각되고 있다. 특히, 목관 악기의 질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현은 결이 곱고, 물결치듯 꿈틀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잘 조율된 교향악단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Eric Clapton - Wonderful Tonight

24 Nights

실황 연주로 듣는 에릭 클랩튼. 여기서는 매우 차분하고, 느긋하며,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베이스는 매우 깊고, 드럼의 어택감도 확실히 느껴진다. 가끔 바닥을 툭툭 치는데, 도무지 12W의 출력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스피커가 앰프 친화적이라는 뜻이다. 악단 전체가 쫄깃쫄깃하게 어우러져, 정확한 콤비네이션을 자랑하고, 중앙에 포진한 기타의 솔로는 감칠맛이 있다. 느긋하게 소파에 파묻혀 눈을 감고 감상에 몰두하게 한다.

Miles Davis - Bye Bye Blackbird

'ROUND ABOUT MIDNIGHT

마지막으로 마일스 데이비스. 갑자기 분위기가 싹 일변한다. 모던 재즈 시대의 녹음은 약간 거칠면서 야성적인 데가 있다. 이런 면모가 깔축없이 나온다. 더블 베이스의 깊고, 또렷한 라인이 인상적이고, 심벌즈를 두드리는 모습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전면에 부각되는 뮤트 트럼펫의 존재감이 상당해서, 바로 요 앞에서 연주하는 듯하다. 녹음 자체는 모노지만, 전혀 답답함이 없다. 악기 하나하나의 개성과 기세가 잘 살아있어, 피가 통하는 음이 나온다. 브리티쉬 스피커 계열은 아무래도 재즈나 록에서 좀 야성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본 기는 전혀 다르다. 혼 타입과도 상통하는 면모가 있다. 린톤의 귀환을 두 손들어 환영한다.

총평

좋은 매칭이라는 것은, 결국 스피커가 갖고 있는 개성과 매력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리는가로 귀결되지 않는가 싶다.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라는 개념으로 볼 때, 신세시스의 신작 소프라노의 선전은 놀랍기만 하다. 처음에 가격표를 듣고 잘못 들었나 싶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질감이 풍부하고, 정보량도 많으며, 어딘지 모르게 노스탤직한 느낌도 난다. 디자인 역시 잘 어울리는 매칭이라 하겠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