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시대를 횡단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을 조금만 비틀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도 생각해볼 일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보다 다각적인 틀에 넣었을 때 동일한 사물도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또 다른 면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내게 필요 없거나 또는 또 다른 정보를 얻었을 때 그것이 일으킬 조금은 불편한 상황에 자신이 내몰리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재단하고 적당히 타협해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며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을 스스로 불식시켜버린다. 결과적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는 시야는 좁아진다.

윌슨은 내게 가정용 라우드스피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시야를 가장 크게 확장시켜준 스피커 중 하나다. 첫 번째 만남은 와트/퍼피 5.1 이었다. 와트/퍼피 5 오리지널이 1990년대 중반 즈음 출시되었고 이어서 몇 가지 업그레이드를 거쳐 태어난 5.1은 우선 디자인부터 시선을 잡아당겼다. 미드레인지와 트위터가 탑재된 상단 와트 그리고 저음을 재생하기 위한 베이스 우퍼 두 발을 담은 퍼피 모듈에 합체된 형태였다. 게다가 상단은 비스듬하게 경사를 주고 있었다. 지금은 소프트 돔 트위터를 채용하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역도 포칼 트위터를 당당히 채워 넣은 모습. 녹음에 담긴 공간 정보를 이처럼 상세하게 펼쳐놓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실제 알고 보면 이런 디자인은 그들의 복잡다단한 설계기법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며 그들의 모든 스피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윌슨 오디오는 라인업을 크게 확장하지 않으면서 각 단 몇 개의 모델만을 유지, 업그레이드 버전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와트/퍼피는 버전 8까지 출시된 후 사샤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 사샤 1, 2 그리고 DAW 버전으로 탈바꿈하면서 점진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외에 맥스라는 모델이 있었고 그랜드슬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XLF 버전으로 진화한 알렉산드리아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와트/퍼피에 대한 또 다른 대안으로서 소피아라는 일체형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윌슨 오디오의 하위 모델 / 왼쪽부터 TuneTot, Sabrina, Yvette

윌슨 오디오의 상위 모델 / 왼쪽부터 Alexandria XLF, Alexx, Sasha DAW

하지만 언제부턴가 라인업이 계속해서 확장 일로를 걷고 있다. 하위 모델로는 얼마 전 필자가 리뷰한 튠탓이 있고 그 위로 사브리나라는 모델이 위치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소피아의 후속기라고 해도 좋을 이베트라는 모델이 출시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와 사샤 중간에 알렉스라는 모델이 추가된 것도 이러한 윌슨 오디오의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에 비해 촘촘한 라인업을 설계하고 스케일을 균등하게 나눔으로써 오디오파일의 용도와 예산에 맞게 선택 가능한 윌슨 스피커는 상당히 다양해졌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윌슨의 이미지는 항상 처음 접했던 와트/퍼피에 머물러 있다. 그 어떤 모델을 보아도 그 뒤엔 마치 유령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와트/퍼피가 겹쳐 보인다. 한 시대를 횡단한 윌슨의 대표적 증표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서막 WAMM

데이빗 윌슨과 Original WAMM Series 7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원점은 WAMM으로부터 출발한다. 각 주파수를 재생하는 유닛을 별도의 인클로저에 담고 전면 수직선상의 전/후 깊기를 달리 설계하는 윌슨의 공통적인 설계기법은 모두 WAMM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시간은 1980년으로 돌아간다. 데이빗 윌슨의 최초 스피커 WAMM이 시장에 등장했다. 공식적으로 대중에 소개된 것은 1981년으로 오리지널 WAMM은 그 당시 수만 달러에 이르는 고가에도 수십 조가 팔려나갔다. 이후 몇 가지 버전이 더 만들어졌지만 알렉산드리아 등 상용 모델에 WAMM의 기술을 적용했을 뿐 WAMM은 윌슨 오디오의 전설처럼 남았다. 하지만 마치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던 작품이 21세기에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현실에 출현한 듯 WAMM Master Chronosonic이 작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WAMM은 기존에 보았던 WAMM의 모습이 아니었다. 실질적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알렉산드리아 XLF를 가뿐히 넘어서는 스케일이 눈에 띄며 모든 부분을 완벽히 혁신하고 있었다. 우선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 스피커는 보편적으로 축소된 스케일이 아닌 실연의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태어난 모습으로 높이가 214.29cm이며 전면 넓이는 53.34cm, 깊이가 94.87cm에 이른다. 어른 키 높이를 훌쩍 뛰어넘으며 일반 가정에서는 거의 천정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전설의 완성 WAMM Master Chronosonic

아홉 개의 유닛

유닛은 트위터 한 개, 미드레인지 네 발 그리고 각기 다른 사이즈의 우퍼 두 발, 후방 미드레인지와 트위터까지 합하면 총 아홉 개의 유닛을 사용했다. 요약하면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가 두 발, 중역을 담당하는 유닛이 다섯 발 그리고 저역을 담당하는 유닛이 두 발이다. 인간의 가청 영역을 넘어서 20Hz에서 33kHz 사이 구간을 무려 아홉 개의 유닛에 할당해 한 옥타브에 거의 한 개의 유닛을 담당시키는 극단적인 설계의 트랜스듀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트위터엔 윌슨이 개발한 실크 돔 트위터인 컨버전스 시너지 트위터 5세대 모델을 사용했다. 구경은 1인치. 이 유닛은 WAMM 위해 특별히 개발한 5세대 트위터로서 현재 최고 수준의 트위터 진동판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베릴륨과 다이아몬드를 모두 투입하고 있다.

중역은 높은 중역과 낮은 중역에 각각 5인치 두 발과 7인치 구경 유닛 두 발을 혼합해 사용했는데 각기 다른 페이퍼 펄프 소재 유닛을 채용한 모습이다. 우퍼는 좀 더 강도가 높은 페이퍼 펄프 소재를 진동판으로 채용한 10.5인치 및 12.5인치 유닛을 선택했다. 포트엔 여지없이 윌슨 오디오 고유의 XLF 포트 설계 기술이 적용되었다. 공간에 따라 포트를 전면 또는 후방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설계로서 ‘Cross-Load Flow’라는 이름이 이 설계를 간단히 말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후방에 위치한 유닛 두 발이다. 이 유닛은 전면에선 보이지 않으며 스피커 뒤로 가야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데 트위터는 전면 트위터와 동일하며 미드레인지는 높은 중역을 담당하는 전면 유닛과 사이즈는 동일하되 임피던스가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다. 때로 대형 스피커에서 이런 식으로 후방에 중, 고역 유닛을 숨겨놓는 경우 자연스러운 사운드 스테이징과 앰비언스 형성을 위해서인데 아마도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시간축 정렬 그리고 모듈화

한편 인클로저는 전반적으로 WAMM, 즉 ‘Wilson Audio Modular Monitor’이라는 모델명처럼 각 대역을 담당하는 유닛을 모듈화하여 탑재하고 있다. 마치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을 연상케하는 인클로저는 단순히 외형적 디자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WAMM의 설계 목적에 부합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이렇게 모듈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시간축 정렬을 위해서다. 요컨대 모든 음악 예술은 시간 위에서 그려지며 재생음은 이 시간을 그대로 다시 되돌려놓을 때 정확한 정위감을 얻을 수 있다.

시간축 위에서 행위된 음악은 다시 재생음으로 즐길 수 있도록 녹음되며 우리는 하드웨어를 통해 그것을 되돌려 재생한다. 디지털 오디오에서 클럭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윌슨은 스피커를 제조하면서 과거부터 이 시간축 정렬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정확히 되돌려줄 기술을 연구했고 그 이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극대화한 스피커가 바로 WAMM Master Chronosonic이다.

이 때문에 각 유닛을 모듈화하여 별도의 캐비닛에 설치하고 있는데 시간축, 위상 관련 가장 민감한 대역인 고역과 중역에 집중적인 기술이 투입되어있다. 기본적으로 WAMM의 중, 고역 유닛 배치는 MTM, 즉 ‘Midwoofer-Tweeter-Midwoofer’ 배열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조셉 다폴리토(Joseph D'Appolito) 박사가 정립한 스피커 설계 이론으로 두 개의 미드/베이스 우퍼 사이에 트위터를 두는 형태로 설계할 경우 시간축 정렬 부분에서 매우 우수하다는 것.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MTM 설계의 장점, 즉 정교한 정위감이 입증되었고 여러 스피커 메이커들이 MTM 설계를 바탕으로 제작해왔다.

하지만 WAMM의 경우 평편한 배플 또는 경사진 직선 배플을 넘어 각각의 유닛을 탑재한 인클로저를 설계해 플랫 배플의 약점까지도 해소하는, 극단적인 설계를 보이고 있다. 한 개의 트위터와 2웨이 미드레인지 설계로 확장시키면서 주파수 대역을 세분화하는 한편 시간축 특성까지 세밀하게 정렬하고자 하는 윌슨의 의도가 극대화된 모습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닛 세팅이다. 윌슨은 시청 공간에서 청취자의 귀로부터 유닛까지의 거리 그리고 청취자의 귀로부터 바닥까지의 거리까지 계산해 모듈을 일부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앰프에 따라 각기 다른 유닛의 반응 특성을 고려해 각 앰프에 따른 중, 고역 모듈의 세팅치를 제공하고 있다.

인클로저의 비밀

인클로저의 경우 윌슨 오디오의 스피커를 사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S Material, M Material 등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다. 최근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MDF, HDF 등의 나무 소재를 넘어 알루미늄 또는 카본 등 고강도, 저공진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윌슨은 또 다른 소재를 사용한다. 이것은 그들의 수십 년간의 소재 연구를 통한 결과물로서 여러 진동 계측기 등 첨단 도구를 활용해 나노미터(10억 분의 1인치) 레벨에서 측정한 진동 계측으로 개발된 것이다. WAMM Master Chronosonic에는 이런 수십 년간 윌슨의 평생을 바친 연구 결과가 모두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X Material이다. 이 소재는 X-1 그랜드슬램(Grand SLAMM)이라는 스피커에서 따온 것으로 이 당시부터 X Material은 윌슨의 소재 연구에 관한 독보적 결과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소재는 강성은 물론 탄성과 댐핑 등 스피커 인클로저가 갖추어야 할 여러 요건들에 상당 부분 최적화한 소재로서 인클로저로 인한 소리의 착색을 낮추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윌슨은 더 이상적인 인클로저 개발을 위해 S Material을 개발했다. 이는 스피커 사샤(Sasha) 개발을 위한 연구에서 얻어진 것. 더불어 비교적 최근의 윌슨 제품 중 하나인 알렉스(Alexx)에서 볼 수 있었던 W Material까지 어떤 착색도 거부하는 윌슨의 소재 연구는 계속해서 진화되어왔고 이 모든 것들이 WAMM Master Chronosonic에 고스란히,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이 외에 일부분엔 항공 우주 분야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알루미늄을 사용하기도 한다.

셋업

윌슨 WAMM Master Chronosonic은 위에 설명한 부분 외에도 윌슨 오디오가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온 수많은 기술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과연 이 정도까지 필요 있을까 하는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신경 써 완성한 모습은 역시 완벽주의자 데이빗 윌슨답다. 우선 이번 테스트는 공식 수입사인 케이원에이브이 시청실에서 볼더 앰프 및 dCS 소스 기기를 사용해 진행했다. 더불어 윌슨에서 제시한 세팅 수치에 따라 상단 트위터 및 미드레인지 모듈의 경사 및 전/후 거리를 세밀하게 세팅했다.

세부적인 세팅 기준은 WAMM Master Chronosonic 캘리브레이션 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WAMM Master Chronosonic를 구입할 경우 본사에서 직접 구입자의 집에 방문해 공간 및 사용 앰프에 최적화된 세팅을 해준다고 한다.

WAMM Master Chronosonic 캘리브레이션 카드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상단 4인치 미드레인지의 스파이크 단계 번호는 9번에 위치시키고 Chronosonic 세팅, 즉 전/후 거리 세팅의 경우 36.25에 맞추었다. 트위터 세팅에 있어서는 2번 스파이크를 사용하고 스파이크 단계 번호는 3번에 위치시켰다. 이때 Chronosonic 세팅은 41에서 +/-0.5가 권장치였으며 실제 세팅은 40.5로 셋업 했다. 마지막으로 맨 하단에 위치한 7인치 미드레인지의 경우엔 스파이크 단계 번호를 7번에 위치시키고 얼라인먼트 블록 세팅 수치는 15에 맞추어 셋업 했다. 실제 사용자라면 윌슨 오디오 설치 팀이 모두 설치해주겠지만 만일 청감상 조금씩 바꾸고 싶다면 미세 조정 방법 정도는 익혀두어야 할 듯하다.

테스트에 사용된 볼더 3010 프리앰프 & 3060 파워앰프와 dCS 비발디 풀 셋

참고로 이번 테스트에는 프리앰프는 볼더 3010, 파워앰프는 3060을 사용했으며 소스 기기는 룬 누클리어스 플러스를 룬 코어로 사용하고 dCS 비발디 풀 셋, 즉 트랜스포트와 DAC, 클럭, 업샘플러를 사용했다. 시청은 아이패드에서 룬 리모트 어플을 사용해 조작하며 직접 가져간 음원을 활용해 테스트했다.

퍼포먼스

이 정도 규모의 스피커라면 일단 일반적인 가정용 스피커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따라서 보편적인 환경을 고려한 일반적인 청음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아무튼 첫 음부터 WAMM이 만들어내는 음상의 크기는 공간을 압도한다. 일단 보컬과 피나노 레코딩을 들어보면 마치 잘 세팅된 소극장 무대를 눈앞에서 펼쳐내는 듯한 소리다.

Anne Bisson - Little black lake

Blue Mind

예를 들어 앤 비송의 ‘Little black lake’(16/44.1, Flac)에서 걱정했던 대역 밸런스 문제는 전혀 포착할 수 없다. 동축과 풀레인지를 지나 2웨이 이상으로 유닛 개수가 많아지면 밸런스는 물론 또렷한 음상을 구현하기 힘들어진다. 과거의 대형기들에서 빅 마우스 현상이 자주 포착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WAMM Master Chronosonic의 경우 풀레인지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에 비견할 만큼 자연스러운 대역 밸런스와 정확한 음상을 만들어낸다.

Philippe Herreweghe

Mozart: Requiem

이런 또렷한 음상 및 정위감은 윌슨은 시간축 정렬 기술에 따른 성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지 시간축 정렬로 인한 것뿐 아니라 각 옥타브가 낮은 저역부터 높은 고역까지 모두 상세하게 그려진다. 여러 음악들을 듣다 보면 우리가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스피커들이 실제 녹음의 공간 정보를 얼마나 축소된 상태로 즐기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필립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레퀴엠(CD)을 들어보면 각 성부가 전/후로 깊은 레이어링을 형성하며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뿐만 아니라 단지 좌측, 우측이 아니라 좌측에서 우측까지 사이사이의 공간에서 각 가수가 어떤 위치에서 노래하고 있는지까지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데이빗 윌슨은 항상 연주회장을 찾으며 그와 거의 동일한 소리를 자신의 리스닝 룸에서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It’s about time’이라는 WAMM Master Chronosonic의 광고 문구는 WAMM의 새로운 버전이 출시될 시간 그 이상을 넘어 시간축 정렬을 통한 최고 수준의 공간 이미지 구사 능력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윌슨의 사운드 철학 속엔 음색적인 측면의 왜곡 또한 최소화겠다는 의지가 깊게 담겨있다. 모든 사운드 왜곡의 무력화가 WAMM Master Chronosonic의 근본적 목표다.

Mark O' Connor - Tiger rag

In Full Swing

마크 오코너의 ‘Tiger rag’(16/44.1, Flac) 같은 곡에서 분면 심도는 깊고 광활하며 좌/우 스피커의 바깥쪽까지 호쾌하게 펼쳐지는 무대가 눈에 띈다. 더불어 중, 고역을 매우 다채로운 패턴으로 오가는 악기들이 눈앞에 싱싱하게 펼쳐진다. 악기의 음색은 바로 눈앞에 그 악기를 대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정확하다. 매우 복잡한 하모닉스 구조를 갖는 관악기 표현에서도 일체의 찌그러짐이나 착색 없이 매우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S.M.V. - Thunder

Thunder

사실 WAMM Master Chronosonic는 쉽게 제동할 수 있는 스피커는 아니다. 표면적으로 90dB라는 절대 낮지 않은 능률을 갖고 있으나 공칭 임피던스가 무려 3옴이며 최소 1.77옴까지 하강하는 스피커다. 다행히 볼더 파워앰프의 경우 2옴에서 3천 와트까지 출력 가능한 강력한 엔진이 되어주었다. 스탠리 클락과 마커스 밀러 그리고 빅터 우튼의 ‘Thunder’(16/44.1, Flac)처럼 무척 빠른 강, 약 조절 및 펀치력이 필요한 음악에서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해나갔다. 볼더 앰프와의 매칭에서는 바닥을 해머로 내리치는 듯한 저역 임팩트가 스피커의 스케일을 대변해주었다. 그러나 탁월한 세팅 덕분인지 걱정했던 저역 부스팅은 거의 감지할 수 없었다.

Tutti!: orchestral sampler

오디오파일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될 듯하여 선택한 [Tutti!] 샘플러(24/96, Flac) 수록곡들은 WAMM Master Chronosonic의 진면모를 확인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브루크너 9번 교향곡 ‘Scherzo’에서는 홈 오디오의 재생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란 어떤 것인지 확인시켜주었고 스트라빈스키의 ‘Firebrid’나 무소르크스키의 Picture at an exhibition‘에선 광대한 사운드 스테이징이 마치 실연의 그것을 가상 체험하는 듯했다. 마치 실연의 그것을 리스닝 룸으로 옮겨왔지만 오히려 실연보다 정숙하며 정교한 아티큘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단 스윗 스팟이 좁은 탓에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포커싱이 흐려질 정도로 예민하다. 아마도 어느 연주자나 레코딩 엔지니어를 직접 초대해 음악을 들려준다면 자신의 연주가 이토록 뛰어났는지 되레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니어 이스트 쿼텟 - 갈까부다

WAMM Master Chronosonic를 처음 보고 나의 머릿속에선 불현듯 H.R. 기거의 ‘참혹한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층층이 쌓아올린 거대한 건축물처럼 압도했다. 누구나 이런 디자인을 눈앞에서 홀로 마주하고 있으면 차가움을 넘어 싸늘한 온도감과 딱딱하고 공격적인 촉감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풍부한 음악적 촉감과 해상도에 마음을 녹이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니어 이스트 쿼텟의 ‘갈까부다’에서는 녹음 현장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듯한 체험을 했다. 마치 이른 새벽 대나무 숲속을 거니는 듯한 실체감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여러 악기들의 배경음들이 마치 유령처럼 스피커 밖과 후방을 배회하고 다녔다. 이것은 축소된 가상 음향이 아니다. 거의 진짜에 가깝다.

총평

2006년 데이빗 윌슨은 비엔나 콘서트홀에서 강력한 영감을 받았다. 그곳에서 말러의 실연을 듣는 순간 그때까지 자신이 만들었던 스피커가 그러한 커다란 음악적 감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고 이후 연구를 이어갔다. 음악을 표현하는 음질에 관해 지금까지 그가 생각했던 하모닉스와 다이내믹스 그리고 시간축 정렬 등과 관련한 많은 요소들에 관해 수정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태어난 것이 알렉산드리아 X-2 S2였다. 자신이 보지 못했던 단점을 스스로 순순히 인정할 줄 아는 대가답다. 그는 알고 있는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았으며 WAMM은 뼈를 깎는 성찰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데이빗 윌슨과 WAMM Master Chronosonic

데이빗 윌슨은 결국 단 하나의 레퍼런스 WAMM Master Chronosonic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고 그의 아들 데럴 윌슨이 대표 자리에 올랐으나 데이빗 윌슨의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 신드롬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의 업적이 바로 플래그십 WAMM Master Chronosonic에 오롯이 응축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스피커에 깊게 각인되어 지금도 전 세계 오직 75명의 공간 어딘가로 이동 중이다. 이제 그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WAMM은 여러 스피커 메이커에게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