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크레모나로부터

시대는 기원전 50년경 갈리아 지방.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두 아이를 가진 노르마. 그리고 폴리오네가 사랑한 또 다른 젊은 사제 아달지사. 여느 오페라에서 자주 마주치는 남녀의 사랑과 전쟁이 뒤범벅된 벨리티의 오페라 ‘노르마’. 아달지사를 로마로 데려갈 찰나 ‘가버리시오, 잔인한 이여, 무대의 무정한 신에게로’ 2중창이 기억을 가른다.

19세기 초반 로시니 또는 도니제티 등과 함께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으로 칭송받았던 벨리니의 오페라 중 노르마가 오디오 메이커로 환생했다. 당시 오페라 전반의 분위기를 장악하다시피 했던 낭만주의적 서정성과 기교는 벨리니의 오페라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중 노르마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다. 이미 이탈리아 메이커가 벨리니, 도니제티 등의 이름을 붙여 오디오를 만든 적이 있으나 벨리니의 최고작 ‘노르마’는 오디오 메이커로 환치되며 그 낭만적 음악성과 기교에서 현재 이탈리아 오디오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계를 빠른 속도로 돌려 20세기 후반으로 시선을 옮기면 노르마는 첫 작품으로 NS123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노르마는 몬테베르디 및 스트라디바리, 아마티의 고향이 그곳에서 이탈리아 오디오 역사의 혁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도시의 음악적 토양과 오디오 분야 숙련된 기술적 성과는 오묘한 화학작용 아래 이제 스멀스멀 오버그라운드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1991년 노르마가 오팔 일렉트로닉스에 인수된 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다. 탄탄한 지원에 힘입은 노르마는 이후 7년에 걸친 혹독한 준비는 드디어 로컬 메이커가 아닌 세계 시장 데뷔라는 열매로 보상받는다. 이탈리아 메인스트림 시장 진입은 물론 세계적인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아내기 시작한 시점이다.

음악적 토양과 독보적 기술력의 화학적 융합

노르마의 본격적인 시작점은 REVO 시리즈로 보아야 옳다. 특히 노르마를 이탈리아 최고급 브랜드의 반열에 올린 장본인은 REVO IPA-140. 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일렉트로닉스의 각지고 투박한 남성적 디자인에 반기를 들고 유려한 표면 마감의 면과 곡선미를 결합한 디자인, 반짝이는 노브는 여성적 미학을 온전히 투과했다. 그리고 이런 미적 감각은 음질과 음악성에 깊게 투영되어 빛났다.

나는 이탈리아 오디오 메이커들, 특히 앰프 메이커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편이다. 위와 같은 디자인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할 거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여타 이탈리아 앰프들이 미려한 디자인과 자국의 음악적, 예술적 성과를 디자인에 입히되 정밀하지 못한 내부 설계 덕분에 험과 노이즈를 유발하는 경우를 자주 목도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트랜지스터와 진공관 등 소자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노르마를 처음 접하며 나의 선입관을 속 시원하게 날려버린 건 오직 IPA-140 덕분이었다. 노르마는 확실히 달랐다. 이번에 다시 조우한 모델은 상위 분리형 모델 중 최상급이다. 프리앰프는 REVO SC-2. 우선 프리앰프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볼륨부터 정밀한 설계가 돋보인다. REVO SC-2의 볼륨은 독보적 연구, 설계로 태어난 P.D.D.A. 즉 ‘Programmable Digital Analogue Attenuation’을 적용하고 있다. 이 덕분에 본 프리앰프는 0dB에서 –127dB까지 0.5dB 스텝씩 굉장히 정교한 볼륨 컨트롤이 가능하다. 대음량은 물론 모두 잠든 적막한 새벽에도 미세 레벨 조정이 가능한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모든 기기의 심장인 전원부는 기계적인 소음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출력 임피던스가 낮게 설계한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사용해 리니어 타입으로 디자인했다. 더불어 프리앰프로서는 차고 넘치는 51.000uF 커패시터 뱅크를 설계했고 총 23개의 커패시터를 투입하고 있다. 이 또한 전기적으로 매우 낮은 임피던스를 특징으로 한다. 이로써 SC-2 프리앰프는 무려 2Mhz에 이르는 광대역, 저노이즈, 초스피드 회로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가지 모드, 즉 액티브 모드를 기본으로 하되 패시브 모드를 추가로 구현해 녹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변환시켜 듣는 재미를 부여했다. 만일 패시브 모드로 전환하면 셀렉터 및 볼륨 회로만 거쳐 출력되므로 상당히 순도 높은 음질을 즐길 수 있다. 볼륨과 셀렉터 등 중요 시그널 통로에 쓰이는 소자의 퀄리티는 물론 설계에 있어 커다란 자신감이 없으면 구현할 수 없는 게 패시브 프리앰프라는 상기하면 대단한 자부심의 발로다. 참고로 전설의 첼로 Etude를 상기해보라.

SC-2 프리앰프와 커플을 이루는 파워앰프 REVO PA160MR이다. 이 앰프는 일단 좌/우 채널을 별로도 구동하는 모노블럭 파워앰프 타입이다. 파워앰프도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특히 전원부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게인단과 드라이브단 그리고 출력단에 각각 별도의 전원부를 구성한 모습이다. 물론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초스피드에 2Mhz 광대역 그리고 대전류 특성을 가지며 저노이즈, 저 임피던스 설계가 기본이다. 트랜스포머 또한 기계적 노이즈를 최소화하고 출력 임피던스가 낮은 400VA 용량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두 개씩 투입하고 있다. 더불어 총 24개 커패시터를 투입해 70.000 uF 커패시터 팽크를 구축하고 있다.

아마도 REVO PA160MR 모노블럭 파워앰프의 가장 큰 음질적 이슈는 출력단의 영향일 것이다. 본작은 MOS-FET를 출력 트랜지스터로 활용하고 있다. 보편적인 트랜지시터에 비해 출력 전류가 높아 마치 A 클래스 증폭 앰프같은 소리를 내며 실제로 A 클래스 앰프에 자주 사용했던 소자다. PA160MR에는 순간 피크 전류가 무려 200A에 이르는 MOS-FET 소자를 총 16개를 사용하고 있다. 스피커 제동력은 물론 음질적 순도, 진공관에 버금가는 풍부한 하모닉스 특성을 최대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로써 출력은 8옴 기준 RMS 160와트, 4옴에선 300와트를 실현하고 있으며 저노이즈, 초스피드 토폴로지에서 광대역 특성을 완성하고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테스트는 소스기기로 노르마 DS-1 시디피의 USB 입력단을 활용해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 라우터 및 W 코어와 엮어 소스기기로 셋업했다. 그리고 스피커는 이글스톤웍스의 안드라 III 시그니처 스페셜 에디션을 사용했다. 기존 이글스톤웍스 III 를 몇 년 전 테스트하고 리뷰한 적이 있지만 과연 부드러운 음색과 영롱한 음결의 노르마가 예전에 스펙트랄오디오 앰프로 매칭했을 때와 얼마나 다를지 궁금증이 밀려왔다.

Shelby Lynne - Just A Little Lovin'

Just A Little Lovin'

사운드의 전체적인 뉘앙스는 과거 경험했던 안드라 3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패시브 모드가 아닌 액티브 모드에서 음결 자체가 마치 온 시스템의 케이블은 은선으로 도배한 듯 기분 좋은 윤기와 화사한 토널 밸런스가 지배한다. 셸비 린의 ‘Just a little lovin’을 들어보면 온통 물결치는 파도처럼 소리는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흘러간다. 대체로 전체 대역 밸런스는 화사하고 밝은 톤으로 흘러가지만 절대 탈색되거나 그레인이 느껴지지 않는 고순도 음색을 만들어낸다. 마치 AB 클래스 증폭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A 클래스 앰프나 진공관 앰프의 풍부한 하모닉스가 벨벳처럼 온화한 물리적 촉감을 형성한다.

Paul Simon - Graceland

Graceland

동적인 움직임은 활달하며 예쁜 제스처를 보여준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를 들어보면 매우 호방하고 윤곽이 분명한 아메리칸 사운드의 상징 이글스턴웍스의 그것을 조금은 더 차분하고 유연하게 재구성해낸다. 더블 베이스 기타는 마치 현에 기름을 살짝 친 듯 매끄럽고 유연하며 순발력 좋은 흐름을 보인다. 매우 정적인 경향이 아니고 부드럽게 음악으로 밀려들어가듯 매끄러운 추진력을 발휘한다. 잔향이 길게 이어지는 기타 사운드는 공간을 사운드의 안개로 덮어버린 듯 몽롱함마저 느껴진다. 기존에 들었던 안드라3에 비하며 무척 로맨틱한 사운드로 노르마의 특색이 혈기 왕성한 안드라를 포근한 온기로 감싸주고 있는 모습이다.

Robert Len - Fragile

Fragile

로버트 랜의 ‘Fragile’같은 곡은 액티브보다 패시브 모드로 들을 때 순도 높은 음결로 듣는 맛이 살아난다. 매우 폭신하고 섬세한 중고역 특성은 마치 진공관의 그것처럼 맑고 담백하다. 아주 선명하고 짜릿한 느낌의 현대 하이엔드 트랜지시터 앰프보단 따스하고 잔잔한 뉘앙스로 음악에 포위당한 듯한 느낌이다. 패시브 모드에서는 추진력이나 윤곽이 줄어들지만 대신 어깨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주하는 뉘앙스를 맛볼 수 있다. 마치 진공관 앰프를 5극관에서 3극관으로 바꾼 듯한 효과를 거둔다.

Oscar's Motet Choir - Christmas Song

Cantate Domino

노르마 앰프는 매우 깨끗하며 순도 높은 소리지만 반대로 힘으로 밀어붙이며 진군하는 이글스톤웍스의 기개를 조금 부드럽게 포옹한다. 청취자를 향해 윽박지르며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대신 멀찌감치 음악을 편안히 조망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Cantate Domino] 앨범 중 ‘Christmas song’같은 성악 레코딩에서 무대는 후방으로 깊게 형성되며 각 성부의 화성이 매우 풍부하게 표현되어 포만감이 좋다. 특히 약간 안개가 낀 가을 새벽 공기를 연상시키는 홀톤 풍만한 중, 고역은 조화롭고 아름답게 재생해준다. 대신 중간 저역 이후 낮은 저역에선 감쇄가 빠르게 이어져 대형기의 포만감은 작은 편이다.

총평

노르마의 이번 프리, 파워 조합은 그들이 음악적 목표로 생각했던 요소들을 면밀히 갈고닦아 충실히 내면화하고 있다. 단지 선형적인 증폭과 바닥을 갈라버릴 듯 강력한 힘과 스피드로만으로 승부하려는 과욕이 없다. 꽤 오랫동안 앰프를 만들어오면서 그들이 결과물로 내놓은 본작은 그들이 나고 자란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음악적 유산을 아름답게 복원, 재생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음질적으로 마치 넬슨 패스의 초창기 제품이나 뮤지컬 피델리티나 EAR로 기억되는 파라비치니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시간의 쾌감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쾌감보단 오랜 시간 들어도 피로가 없는 음질적 특성과 기술적 정교함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예술적 토양과 노르마의 이탈리아답지 않은 공학적 정밀도가 노르마의 특별한 설계 철학 위에서 이상적으로 화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경험해본 이탈리아 제품 중 노르마보다 더 매력적인 앰프는 없었다. 혁신적 이탈리안 프레스티지의 탄생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