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요즘 오디오의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새로운 유닛 개발의 역사로 수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마란츠 7이라던가 린의 LP12, 푸터만 OTL 앰프, 와디아의 CDP 등 역사적인 명기들이 즐비한 형국이라 굳이 스피커, 그것도 유닛에 오디오사를 한정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큰 흐름을 보면 역시 이쪽이라 생각한다.

혼의 개발이나 감도가 뛰어난 페이퍼 콘의 등장이라든가 이이서 밀폐형에 적합한 소구경 유닛이 나타났다가 북구 쪽의 유닛 전문 메이커들의 약진으로 인한 본격 하이엔드의 전개 등 이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결국 오디오는 이 유닛들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 그러니까 앰프, 소스, 케이블 등이 뒤따라오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그 중에서 아직도 많은 애호가들의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혼의 존재는 논외로 한다고 치고, 여기서는 풀레인지 유닛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물론 어떤 면에서 이것은 비슷한 논의가 될 수 있는 게, 결국 스피커의 감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대 스피커의 큰 혁신 중의 하나는, 일체의 통울림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유닛의 소리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약적인 유닛 개발 및 인클로저 소재의 혁신으로 이뤄진 성과이지만, 동시에 감도의 희생이라는 큰 손실도 가져왔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요즘 제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거 좋았던 시절의 유닛을 사용한다고 해서, 하이엔드 쪽 성향으로 귀가 발달한 분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란 무리가 있다. 아무리 당대의 명기라 해도, 역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PR4라 명명된 본기의 존재가 상당히 유니크하게 다가온다. 간단하게 말하면 온고지신이고, 자세히 설명하자면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규격과 스펙을 만족시키면서도 높은 감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 본기의 탄생은, 이 제품을 제작한 WHT의 오너이자 설계자인 마크 모즈가와(Mark Mozgawa)의 인생 전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 마크는 뮤지션이다. 솜씨가 좋아 연주 외에도 고급 PA 제품을 제작하고 스튜디오용 스피커도 만들었다. 그러나 기본은 연주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소를 방문해서 무대에 올랐다. 당연히 많은 스피커를 접하게 되었다. 하루는 투어 중간에 스피커를 분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마침 사운드 엔지니어가 'J Bin'이라는 커다란 스피커 박스를 빌려줬다. 혼 타입의 스피커로, 백 로드 혼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물론 마크는 이전에도 혼 스피커를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터였다. 한데 이번에는 달랐다. 놀랍도록 스피디하고, 명확한 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는 혼 타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는, 앞서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유닛 중심으로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완전 밀폐형이 아닌 다음에야 앞이건 뒤건 혹은 밑에건 포트를 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트형 스피커보다 백 로드형이 더 장점이 많다는 것을 마크는 깨달은 것이다.

또 하나는, 과거 명 유닛에 대한 문제점이다. 물론 발매 당시에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할 만큼 가격도 비싸고, 퀄리티도 뛰어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술력의 한계를 들지 않을 수 없고 또 기본적으로 PA용으로 제작되어 2~6미터 내외의 청취 공간을 갖는 일반 오디오 애호가들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이런 스피커를 잘못 들으면 괴조가 울부짖고, 귀에서 피가 난다는 극악의 표현도 등장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튼 마크는 연주인의 생활을 줄이고 이후 하이파이 제품의 마케팅에 참여하게 된다. 덕분에 150여 개의 스피커를 판매하면서 집중 시청하게 되었는 바, 여기서 실제로 얻은 지식이 상당하다. 이 많은 제품 중 그의 귀를 만족시킨 것은 약 3개 정도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흡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어떤 스피커는 아예 스네어 소리가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또 그의 다양한 라이브 경험에 비춰볼 때 확실히 바이올린과 더블 베이스의 음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식의 혼 리플렉스 스피커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지만, 결국 PR1이 나올 때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닛의 개발부터 인클로저를 완성시키기까지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PR4는 WHT의 플래그십 모델로, PR1에서 쌓은 기술력을 보다 극대화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른바 풀레인지와 혼 타입 스피커의 장점을 골고루 믹스한 제품으로, 오랜 기간 염원해온 그의 열망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일단 중앙에 차지한 풀레인지 유닛을 보자. 이는 WHT에서 자체 개발한 12인치 구경으로, 이를 감싸는 브래킷을 순금으로 도금할 만큼 아낌없는 정성을 기울였다. 이 유닛이 담당하는 대역은 어마어마하게 광대하다. 저역은 무려 35Hz까지 떨어지고, 위로는 1.2kHz에 이르기 때문이다. 고역의 일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음성 신호를 커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편 이에 커플링되는 리본 트위터는 일종의 혼 역할을 한다. 마크에 따르면 현대의 유닛 기술이 엄청 발전해서 이 유닛으로도 얼마든지 혼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리본은 무려 40kHz까지 뻗는다. 그러고 보면 일종의 슈퍼 트위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거 JBL이나 알텍, 바이타복스 시절 혼과 우퍼로 이뤄진 2웨이에 비해 얼마나 사양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본기에 투입된 인클로저는 호주산 자라나무를 사용했다. 단단함과 음악성 모두 뛰어난 자연 소재인 것이다. 게다가 WHT는 잘 알겠지만 고가의 PSC 케이블을 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동사가 제작한 6N 순은선인 커스텀(Custom)이 동원되었는데, 이는 미터당 약 4천불을 받는 제품이다. 이를 아낌없이 투입해서 내부 배선재로 사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납땜 방식으로 연결했다. 납땜의 해악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최대한 음질을 저해하는 요소를 피했다고 보면 좋다.

마크에 따르면 왜 고감도 스피커가 뛰어난지는 바로 저감도 스피커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94dB와 87dB짜리를 비교하면, 일단 아주 작은 신호가 흐를 때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94dB는 아예 무신호에 가까운 음이 흘러도 반응하는 반면, 87dB는 유닛 자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는 음악의 아주 미세하고 디테일한 부분에 관계되어 있는 만큼 그냥 넘길 사양이 아니다.

또 중간 정도 세기의 신호가 갔을 때 87dB짜리는 세 가지 정도의 강약으로 표현하는 반면, 94dB는 무려 8가지의 강약을 커버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본기의 102dB가 갖는 디테일하면서도 다이내믹스가 풍부한 음에 관해서는 따로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듯싶다.

사실 본기는 3극관 싱글과 솔리드스테이트 두 종의 앰프를 물려서 들어야 마땅하지만, 아쉽게도 진공관 앰프가 없어서 솔리드스테이트만 사용했다. 단,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은 따로 리포트할 것을 약속한다. 아무튼 이번 시청에는 다질 프리 및 테너 175S 파워가 동원되었으며, 소스는 골드문트 20A가 활약했다. 참고로 시청 CD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17번 폴리니(p) &빈 필

- 드보르작 - 피아노 트리오 둠키 보자르 트리오

- 캐논볼 애덜리 - Waltz for Debby

- Beatles -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우선 첫 곡을 들으면,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음이 쓱 밀려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감이 좋다는 것인데, 역시 고감도 스피커가 갖는 매력이다. 당연히 출중한 해상도를 만끽할 수 있다. 악단의 멤버 하나하나의 얼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악기들의 음색이며 존재감, 위치 등이 명확하게 포착되고, 전체 앙상블도 상당히 훌륭하다. 이를 백업으로 유려하게 펼쳐지는 폴리니의 피아노는 우아함의 극치. 눈을 감으면 무지크페라인의 황금의 방에 온 듯하다. 노년의 대가 폴리니가 젊고 재기발랄한 모차르트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감격할 만한 재생이다.

둠키에서 주목하는 3악장은, 세 개의 악기가 천천히 등장하며 조금씩 잽을 주고받다가 점차 난타전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그런데 각 악기의 음색이며 위치가 정교하고, 클라이맥스로 몰아칠 때의 기세와 에너지 또한 대단하다. 무엇보다 잔향이 길고, 미묘한 부분까지 모두 드러내기 때문에 상당히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왜 고감도를 위해 많은 개발이 이뤄졌는지 이해되는 부분이다.

빌 에반스의 익숙한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되는 는 본격 연주가 시작할 때 점차 본령을 과시한다. 특히, 드럼이 나올 때 스네어를 연타하며 질주하는데, 그 대목이 마치 스피커를 뚫고 나올 듯 기세가 좋다. 베이스도 상당히 밑으로 뻗으면서 선명하게 라인을 그어 움직이고, 약간 구수하면서도 날렵한 애덜리의 알토색스 역시 가벼운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가 있다.

필자는 재즈에서 상당히 리얼하면서 또 기백이 좋은 음이 나와 특히 감동을 받았는데, 최적의 컨디션일 때 들은 알텍이나 JBL과 통하는 구석도 느꼈다. 따지고 보면 그들 역시 기본은 2웨이에 혼+우퍼(실은 풀레인지에 가까움) 포맷이 아닌가. 과연 온고지신의 미덕을 갖고 있는 제품이다.

마지막으로 비틀즈의 9월 9일자 리마스터 CD. 기타를 긁는 음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심벌즈를 연타하는 링고의 손놀림은 현란하기만 하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대목이다. 또 존과 폴의 이중창은, 둘의 목소리가 확연히 구분되어, 화음을 넣는 폴의 목소리만 따로 구분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해상력이 좋다. 베이스나 킥 드럼의 존재감도 풍부해서, 전체적으로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다이내믹스와 해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포획하고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