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집에 도착한 큼직한 박스를 열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고급 벨벳이다. 면장갑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박스에서 들어 올리다가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무게가 상당한데, 30킬로그램이 넘는다. 방으로 가져와 먼저 대리석을 곱게 깔아놓고 그 위에 잘 모셔둔다..

첫인상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생각보다 부피가 크고 한 눈에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마음을 잡아끈다. 과거의 판테온 디자인과 너무도 차별되는 고급스러움. 기술개발과 디자인 담당자가 완전히 분리되어 이들 간에 유기적인 협조가 잘 이루어진 느낌이다. 현대적이고 모던하며 군더더기 하나 없다. 과거 필자가 애용하였던 골든 튜브 오디오의 크기를 생각하였고 유니슨 리서치의 고급스런 상판이 연상되기도 한다.

모아둔 케이블 박스에서 굵은 것 하나를 꺼내들었다. 접속력이 깔끔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소스를 연결하는 뒷면 입력 단자들도 하나같이 결속이 힘들지 않고 바로 고정이 된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전면 중앙의 심플하면서 깔끔한 'T'자 형태의 레벨미터에 이퀄라이저 형태의 전원이 들어온다. 제작사의 새로운 로고를 상징하는 듯하다. 싱싱한 느낌이다. 셀렉터도 부드러워서 막 돌리다가 고장 나는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을 듯하다.

비즈니스코리아는 1996년 2월에 설립되어 그동안 진공관을 전문으로 한 여러 종류의 앰프를 제작, 판매해온 업체다. 하이엔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업체이고 상당한 마니아층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10월에 회사명을 'TONE'으로 정식 변경하고 홈페이지도 세련된 디자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비즈니스코리아에서 그동안 출시된 앰프들은 줄리어드 프리앰프, 파워 앰프, 인티 앰프 및 진공관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볼란테 앰프, 그리고 본 앰프의 모체가 되는 판테온 2 등이 있다.

앰프가 예열되는 시간 동안 판테온 3의 스펙을 살펴보았다. 사용 진공관은 출력관으로 KT88(6550), EL34가 병용으로 사용되고, 초단에 12AU7가 4개, 6922가 2개, 정류관으로 조금 생소한 OB2와 6C19Pi가 각각 하나씩 채용되었다. KT88(6550) 사용시 채널당 70W, EL34 사용시 35W의 구동력을 갖는다.

본기의 특징으로는 출력관 보호 및 대편성에서의 구동력 향상을 위해 고정 바이어스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UL 접속이다. 내부 배선재는 테플론 피복의 은도금 선재를 100% 하드와이어링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이쯤 되면 제작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될 거라는 판단이 든다. 파워단과 별도로 프리단에도 정전압 회로를 채택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상당한 물량 투입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전원부에는 요즘 보기 힘든 진공관이 채택되어 있다. 외부에 6C19Pi라는 관이 있어 정전압 도입부의 정전류관으로 사용하고, 내부에 OB2라는 진공관으로 여분의 전압을 방전시키는 타입이다. 이 방식은 항상 일정량의 전압이 흘러 출력관의 바이어스가 틀어질 경우가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정 바이어스 방식이라고 제작자가 명기한 것 같다.

기존의 TR 정전압 방식의 전원부에서 진공관 정전압 방식으로 변경하여 음색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점에서 진공관적인 음색이 많이 날 것으로 짐작된다. 리모컨이 구비되어 있다는데 사용은 하지 않았다.

입력단은 튜너, CD, 라인1, 라인2, 포노(MM Only)의 총 5계통인데, 특히나 포노단의 구비가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또 궁금했다. 전체적인 무게는 34킬로그램으로 꽤 무거운 편이다. 방심하고 들다가는 몸에 무리(?)가 약간 생길 정도이다.

에이징 시간도 거치기 전에 조급하게 먼저 몇 곡을 들어보았다. 여기서 머릿속에 많은 선입관이 있었다. 현대 진공관에 대한 선입관이다. 구관에 비해 거칠고 질감이 많이 빠지는 등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음색은 구관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런 생각으로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부터 들어보았다. 참으로 리얼하다. 이거 진공관 소리 맞아? 라는 생각이 든다. 노르웨이 성가곡 중 '예수의 사랑 속에서 강은 깊이 흐른다' 라는 곡을 스크루크 합창단의 노래로 들어 보았다. 수백 번도 넘게 들었던 곡인데, 이상하게 안 들리던 굵직한 테너 목소리가 들린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Op.100 2악장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어보았다. 이렇게 해상력이 좋으면 반대로 음악성 면에서 좀 부족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의외였다. 전기를 계속 먹이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가족들을 재우고 내 방에 다시 돌아왔다.

아치 쉡 쿼텟의 'True Ballads' 중 'The Thrill Is Gone' 에서는 도입부의 육중하고 두꺼운 테너 색소폰이 압도적이다. 스피커를 확실히 구동한다. 두스코 고이코비치의 'Samba Do Mar'의 타이틀곡 'Samba Do Mar'에서는 저역이 과하게 느껴진다. 내 방의 환경상 세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은 스튜디오에서 B&W 스피커로 녹음된 음반이라 다른 시스템에서는 저역 구동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대역의 과잉이나 모자람 없이 무난하게 울려준다.

본기에 탑재된, 특히나 요즘에는 보기 드문 포노단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기본 사양으로 MM단이 들어 있는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 어떤 회로를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근래 가끔씩 눈에 띄는 이른바 마란츠 7을 기본 회로로 만들어진 그 어떤 제품보다 밸런스가 좋다.

고역 개방감이 훌륭하고 라인단과 마찬가지로 해상력도 대단하다. 저역의 밸런스는 적당하고 중역대는 두툼하나 빈티지 제품의 그것처럼 전 대역이 중역대에 머물러 있질 않다. 결국 밸런스가 좋다는 이야기이지만 아마도 제작자의 튜닝의 결과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훌륭한 승압트랜스만 있으면 MC 카트리지의 묘미를 잘 살려줄 것 같다.

그라시엘라 수잔나의 'Adoro'에서는 도입부의 정확한 발음과 순간적인 다이내믹이 굉장히 우수하다. MM치고는 고역이 많이 올라간다. LP판의 잡음이 더 많이 들린다. 짐 홀의 아랑훼즈 협주곡에서의 아련한 남미풍의 오르간 냄새가 참으로 음악적이다. 중역대가 옛날 앰프에 비해 빠지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야노스 스타커의 무반주 첼로, 메뉴인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브람스 교향곡 3번, 브루노 발터의 말러 교향곡 등 결국 즐겨 듣는 모든 음반들을 끄집어내어 기어이 다 듣고야 말았다.

필자는 사실 KT88 출력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 현대 스피커는 음장감이나 입체적인 표현을 위해 필요악으로 출력 음압 레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응하는 진공관 앰프군은 열에 아홉은 출력관을 KT88(6550)로 채택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구동력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KT88은 두툼한 중역대와 다른 5극관과 비교되는 빈약한 고역으로 재즈에는 발군이지만 클래식 등에서는 꽤 부족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본기는 고역 특성이 많이 좋다. 어떤 점에서는 EL34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고역이 많이 올라간다. 또한 본기는 EL34까지 별다른 바이어스 조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니 향후 좋은 관을 여벌로 구하여 관 특성에 따라 바꿔서 음악을 들을 경우, 앰프를 두 대 이상 사용하는 듯한 느낌도 들 것이다.

육중하고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세련된 디자인의 외관, 그에 걸맞는 음색을 갖춘 보기 힘든 앰프다. 꽤 높은 가격이 유일한 단점이긴 하나 새시 가격에만 280만원이 소요되었다 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진공관 앰프 기술은 이미 20년 전에 완성되었다'는 말은 이 기기를 접하면서 '아직도 발전하고 있다'라고 바뀔 것 같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