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얼마 전 모 수입원의 전시장에서 열린 시청회에 갔다. 단순히 음을 듣기보다 행사 주최자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 주인공은 마르텐의 메인 디자이너인 레이프와 그의 형 요르겐이다. 이미 작년에 스웨덴 예테보리에 소재한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고, 그 때 그들이 한국에 오면 꼭 만나기로 했으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반갑게 악수를 하고, 간단히 담소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되었다. 

현지에선 몰랐는데, 막상 전시회장에 놓인 콜트레인 모멘토를 보니 그 사이즈가 압권이었다. 하긴 앞뒤로 무려 8개의 우퍼를 달아놓았으니, 그 위압감이 하찮을 리 없다. 본사에서는 소출력의 진공관으로 고품위한 음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MBL의 대출력 파워를 걸어서 꽝꽝 터지게 했다. 과연 소프트한 여성 보컬의 디테일부터 광대역의 오케스트라 음향까지 거침없이 모두 소화해냈다. 빼어난 밸런스, 빠른 반응, 깊은 안길이 ... 역시 홈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세팅해서 들으니 이 제품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실감이 났다.

그런데 진행을 담당한 레이프의 설명을 들으니, 음성 신호 대부분이 프런트 배플 중앙에 박힌 미드레인지 한 발에서 나온다고 한다. 약 90% 가까이 커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려 8개에 달하는 우퍼 유닛은 무엇인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앞의 네 개는 우퍼이고, 뒤의 네 개는 일종의 라디에이터. 그렇다고는 해도 바닥 깊숙이 떨어지는 저역의 양감과 놀라운 순발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설계였다.

그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일종의 보급형으로 마르텐이 내놓은 포름 플로워를 만났다. 여기서 포름(Form)은 일종의 홈 씨어터 내지 멀티 채널을 겨냥한, 다분히 엔트리의 성격이 짙은 시리즈의 이름이고, 플로워(Floor)는 프런트 채널용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포름 시리즈엔 센터 및 서브 우퍼도 있다. 실은 플로워와는 구면이다. 본사 방문 시 꽤 긴 시간에 걸쳐 본 기를 시청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직접 리뷰를 맡게 되었으니, 어쨌든 뭔가 인연이 있기 있는 모양이다.

처음 본 기를 대했을 때엔, 약간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변이 약간 긴 삼각형 모양의 인클로저에 달랑 유닛 두 발만 달렸으니 그런 기분을 받을 만도 하다. 또 1미터가 넘는 높이를 가졌음에도 불과하고 겨우 17Kg밖에 나가지 않는 무게도 그런 인상을 굳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불 듯 산들산들 흘러나오는 음향은 꽤 기분을 좋게 만든다. 강하게 명령하듯 음악을 듣게 하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다가와 천천히 음악에 빠지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절대 강요하지 않지만, 조금씩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음이었다. 하지만 본사에는 여러 종류의 스피커들이 세팅된 터라, 포름 플로워에만 마음을 빼앗길 수 없는 처지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지만, 이제 다시 만나니 좀 더 자세히 듣고,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스펙을 보면, 본 기가 커버하는 주파수 대역이 36Hz~40KHz로 되어있다. 어지간한 3웨이 스피커도 갖기 힘든 수치다. 혹 내가 뭘 잘못 봤나 해서 이리저리 스피커를 살펴도 우퍼 유닛은 보이지 않는다. 인클로저 내에 숨긴 것도 아니다. 그냥 2웨이 스피커다. 다시 스펙을 살피니 7인치짜리 세라믹 유닛이 커버하는 주파수 대역이 36Hz~3KHz다. 다시 콜트레인 모멘토를 떠올렸다. 이 경우, 이 중저역 유닛이 커버하는 음성 신호는 95%가 훨씬 넘을 것이다. 위에 대놓은 2.2인치 구경 리본 트위터는 약간의 효과만 낸다고 할까?

사실 가장 이상적인 유닛이 풀레인지임은 주지의 사실. 그래서 그간 많은 유닛 메이커들이 이런 명제에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신통치 않다. 대신 상당히 대역폭을 넓히면서 반응 속도가 빠른 유닛들을 제작한 바, 본 기에 투입된 제품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의 유닛이 가진 장점이 시청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일단 안길이가 깊고, 악기들의 배치가 마치 단단한 석고상들을 배열한 듯 흔들림이 없다. 위상의 어긋남도 없어서 전대역 공히 흔들리는 대목이 없다. 단, 아무래도 구경의 크기 때문인지 바닥을 쿵쿵 울리는 베이스 음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통상의 가정에서 쓸 때엔 별 무리가 없는 양감은 보장한다. 

여기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하이 스피드. 원래 아큐톤 유닛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이 덕목은 특히 복잡하게 악기들이 엉킨 녹음에서 빛을 발한다. 정확하게 구분해서 정리정돈을 말끔히 한다. 일체 흐트러짐이 없다. 중간중간 돌출되는 음향의 어택감은 거의 3D 영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미인은 당연히 아무 승용차에 오르지 않는다. 여러 인티 앰프들을 걸어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놓는다. 메이커에선 홈 씨어터를 겨냥했다지만, 실제 운용해보니 본격 음악 감상용이며, 그것도 높은 퀄리티의 앰프를 요구한다. 바쿤 인티의 경우 음색은 딱 맞아떨어졌지만 어딘지 힘든 기미가 보인다. 볼륨을 12시 방향으로 올려도 마찬가지. 아쉬움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몇 개의 진공관 인티가 들락거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다가 토네의 판테온을 걸어 그럭저럭 구동이 되었는데, 물론 100%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사용자들의 도전 정신이 요구되는 스피커라 하겠다. 

본 기의 감도는 87dB. 메이커에선 최소 150W의 출력을 권장한다. 최소 100W 정도는 걸어줘야 어느 정도 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바닥에 포트를 만들어서 아무래도 단단한 대리석이나 목재를 깔아줘야 하고, 게다가 스피커 터미널도 밑에 나 있어서 연결 시 여간 불편하지 않다. 

제작 전의 컨셉은 일반 유저들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였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그리 운용이 쉽지가 않다. 아마 터미널을 밑에 만든 것은, 전체적으로 슬림한 삼각형 모양의 디자인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려면 밑 공간을 듬뿍 만들어서 크로스오버며 포트며 스피커 터미널을 설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계자의 고충은 이해하겠지만, 사용상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런 몇 가지 난점을 제외하면, 사실 본 기는 가격대비 상당히 훌륭한 제품이다. 외관은 흔히 말하는 와이프 억셉턴스 팩터(WAF)에 전혀 해를 가하지 않고, 색상도 흰색부터 블랙, 체리, 월넛, 메이플 등 총 5개의 옵션이 제공된다. 또 그간 아큐톤 유닛을 한번 써보고 싶었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부담을 느꼈던 유저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매력도 갖고 있다. 생각같아선 5.1채널로 깔아서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한데, 그럴 경우 헐리웃 블록버스터보다는 고품위한 유러피언 예술 영화가 어울릴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본격 시청에 들어간다.

전술했듯 앰프는 토네의 판테온을 사용했고, 소스는 블라델리우스의 엠블라. 참고로 시청 CD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

-조 수미 <도나 도나>

-윈턴 켈리

-핑크 플로이드

  

첫 곡을 들으면서 처음 아큐톤 유닛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마치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 일체의 장막이나 가림이 없이 모든 음성 정보가 활짝 드러나고, 와이드 레인지하며, 반응이 빠르다. 얀센의 경우, 특히 스피드가 관건인데, 여기서는 충족하고도 남는다. 단, 스케일은 그리 크지 않아 압도당하는 기분은 들지 않지만 대신 안길이가 깊어 미세하게 관찰하듯 듣고자 한다면 상당한 정보량에 놀랄 것이다.

조 수미를 들으면, 평소 들었던 시스템보다 훨씬 더 안길이가 깊고, 정위감이 빼어난 데에 놀랄 것이다. 혹시 여기서 표현하는 음장이 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이질적이다. 그러나 음색 자체가 아름다고, 멜랑콜리해서 눈을 감으면 홀로그램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본 기를 들였을 때 처음엔 인티 앰프 정도를 쓰겠지만, 차츰 분리형에 욕심내지 않을까 싶다.

위턴 켈리의 경우, 다소 거친 듯한 톤의 기타라던가 멜랑콜리한 피아노 음이 인상적인데, 여기서는 약간 순화된 느낌이다. 대신 더블 베이스의 존재감이 놀랍도록 또렷이 포착되고, 킥 드럼도 잘 잡아낸다. 그간 모던 재즈 하면 이런 대목은 아예 실종되었다고 생각했지만, 36Hz까지 떨어지는 저역의 스펙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CD 장에 쌓아둔 재즈 음반들을 다시 듣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핑크 플로이드. 현대인의 불안한 정서라던가 병적인 편집증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밴드답게 본 트랙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기분이 느껴진다. 당연히 이런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가벼운 템포로 천천히 시작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몰아치는 테너 색소폰이나 코러스의 음향이 강력하게 돌진하는데, 그 경우 이 스피커의 외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나온다. 

엔트리 클래스로 가볍게 다루는 스피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간 크게 혼쭐이 날 제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클래스의 제품조차 최선을 다한다는 면에서 과연 마르텐을 이끄는 두 주역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형제는 용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