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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석상에서 내 놓고 떠들 만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1980년대 중반 이래 지금까지 필자는 진공관 앰프 외에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포노 이퀄라이저까지도 진공관 기기와 함께해온 것이 필자의 오디오 인생이다. 쉽게 말해서 호기심과 혈기가 넘치는 20대 중반부터 필자의 오디오 인생 30년을 지켜 온 유일한 증폭 소재가 바로 진공관인 것이다. 이만 하면 골수 진공관 애호가 또는 진공관 편식증 환자로 자처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진공관 앰프가 필자의 메인 시스템에 오른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디오 평론가로서 위태롭기 짝이 없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리고 극소수의 브랜드와 기기를 제외하고 필자의 시선을 잡아 끈 1990년대 이후의 진공관 앰프 또한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빈티지 오디오 애호가일까? 파워 앰프에 한정하면 1980년대 후반에는 구형 마란츠, 그리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웨스턴 일렉트릭을 메인 앰프로 써 왔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취급 품목이 아니기는 빈티지 진공관 앰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것 또한 위태로운 발언이 아닐 수 없을 듯한데, 빈티지 오디오 애호가들이 신주 단지처럼 모시는 진공관 앰프들 또한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진공관 앰프들이 반도체 대신 진공관을 쓸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침함과 둔중함으로 일관하는 빈티지 앰프 또한 유연한 선율미와 온화한 색채 표현 외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미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서론이 길어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여기서 아리송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톤(Tone)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판테온 MK IV가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는 절박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오디오 출력관의 대명사 KT88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KT88을 푸시풀 방식으로 구동하여 채널당 80와트라는 엄청난 출력 ― 트랜지스터 앰프로 치면 채널당 250와트 이상의 출력이라고 보면 된다 ― 을 이끌어 내는 판테온 Mk IV는 조금 전에 필자가 제기한 진공관 앰프에 대한 딜레마를 진지한 태도로 끌어안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해상도 디지털 다매체 시대와 보조를 함께하고자 하는 도전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쯤 되면 ‘아! 정말 대단한 앰프인가 보군!’이라는 찬사를 필자가 쏟아낼 것으로 예상하는 애호가가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필자의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테온 Mk IV 또한 진공관 앰프에 대한 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는 것이 솔직한 입장이다.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필자는 이 앰프에 80점 정도를 주고 싶다.
 
하이엔드를 표방하는 앰프에 대한 점수가 고작 80점이라! 평가가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쏟아질 것 같다. 불과 한두 시간 남짓 시청 작업을 진행하고 혹시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가? 특정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얻은 결과를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국산 앰프에 대한 모종의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는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오디오처럼 다면 평가가 중요한 분야가 없으므로 판테온 Mk IV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국산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필자가 이 앰프를 혹평했다는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무엇보다 먼저 필자 개인의 평가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리 대단한 권위를 인정받는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 사안이지만, 국내산과 외국산 기기, 그리고 빈티지와 최신 기기를 막론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시청한 수많은 진공관 앰프 중에서 필자가 70점 이상을 준 경우 또한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판테온 Mk IV는 대체 어떤 앰프인가? 그리고 이 앰프를 내 놓은 톤은 어떤 회사인가? 그리고 이 앰프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는가?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공관 앰프 전문회사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옛 이름이 비즈니스코리아인 톤은 열혈 팬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일반 애호가들 사이에서까지 지명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솔직히 필자만 해도 주로 외국 기기들을 접하는 까닭에, 그 동안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톤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이번에 시청한 판테온 Mk IV가 처음이다. 홈페이지(www.vacuum-audio.com)에 따르면, 톤은 정진수 씨가 1996년에 설립한 회사로서 진공관 앰프 특유의 ‘Warm Tone’, 즉 ‘따뜻한 음색’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판테온 Mk IV는 어떤 앰프인가? 그런데 여기서 애호가 제현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다. 모델명 말미에 Mk IV라는 붙어 있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판테온은 연조가 그리 녹록지 않은 앰프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 등장한 판테온 Mk III에 대한 애호가들의 평가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 조금 전에 언급한 대로 선행 버전들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Mk IV 버전이 들려주는 음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판테온 Mk IV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세련미 넘치는 디자인이다. 열악한 시장 환경 때문에 디자인에 큰 공을 들이지 못하는 공방 수준의 국내 앰프 전문회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면 폭이 460밀리미터, 높이가 220밀리미터, 그리고 깊이가 420밀리미터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규모이지만, 회사명인 톤을 뜻하는 T자 로고를 정중앙에 배치한 후 전원과 셀렉터 노브를 좌우에 배치한 검정색 패널, 그리고 피아노 마감으로 처리한 검정색 섀시와 절묘한 대비를 이루는 은색 새시 상판 등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곳 하나 허술함을 허용하지 않는 깔끔함과 안정감까지 한 데 아우르는 미감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앰프의 스펙은 어떠한가? 이 앰프는 KT88 4개, 12AU7 4개, 6922 4개, OB2 1개, 6C19Pi 1개의 진공관을 사용하여, 채널당 80와트의 출력을 이끌어 내며, 주파수 응답특성은 15Hz에서 35kHz에 이르고, 프리앰프 파트를 살펴보면, MM 포노 입력을 포함하여 아날로그 입력 5계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하드와이어링 방식으로 제작한 이 앰프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과 UL 접속으로 출력관을 보호하고 대편성 음악 재생에 필요한 강력한 구동력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판테온 Mk III에서 채택한 고정 바이어스를 업그레이드하여 푸시풀 진공관의 바이어스 조정을 5만분의 1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프리앰프 파트에는 별도의 진공관 정전압 회로를 채택하여 한층 안정된 전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앰프는 어떤 음향을 들려주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판테온 Mk IV는 KT88에 대한 고전적인 시각과 현대적 관점의 조화를 추구하는 앰프라는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MC275를 비롯한 매킨토시의 구형 진공관 앰프들이 들려주는, 장쾌함과 온화함이 조화를 이룬 KT88 푸시풀 앰프의 고전적인 음향을 계승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오디오가 추구하는 명쾌함과 정교함을 아우르는 정연한 선율선, 그리고 화사하지만 번지는 법이 없는 색채 표현, 그리고 언제나 적절한 온기를 머금고 있지만 청명함이 살아 있는 공간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혼탁함과는 거리가 먼 절제된 저음을 기반으로 한 깔끔한 다이내믹 등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룬 음향을 지향하는 앰프가 바로 판테온 Mk IV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럴 때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 앰프가 보여 주는 신구 스타일의 배합 비율은 어떠한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바로 이 대목이 판테온 Mk IV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급 기종에 속하는 KT88 푸시풀 앰프와 판테온 Mk IV가 지향점과 행로를 완전히 달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하이엔드 오디오를 지향하는 판테온 Mk IV는 중후함에 토대를 두고 있는 고전주의 스타일과 정묘함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스타일의 대등한 통합을 추구하는 음향을 들려준다. 
 

이번 시청 결과를 종합하면, 판테온 Mk IV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KT88 푸시풀 앰프들이 들려주는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음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후함과 펀치력, 그리고 절제력을 아우르는 장쾌한 음향, 그리고 세련미 넘치는 깔끔하고 명쾌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한 마디로 서로 목표를 달리하는 이들 두 스타일이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공존하는 음향을 필자 자신의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면모는 아토라의 아토플레이어 1000과 록포트 테크놀로지의 초대형 스피커인 알테어로 구성된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아날로그 LP에서 24/96 포맷으로 직접 리마스터링한 CD를 사용한 이번 시청에서 판테온 Mk IV는 고전적인 빈티지 앰프와 중급 기종의 KT88 앰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독특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스틸리 댄의 에서는 KT88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과 풍성한 저역을 바탕에 깔고, 특정 대역을 강조하지 않고 상하 대역의 자연스러운 펼쳐짐과 편안한 균형을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보컬의 표정이 다소 여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음악을 강박하기보다는 그리 힘들이지 않는 유연한 발성으로 섬세함과 명쾌함을 동시에 이끌어 내고자 하는 시각이 돋보였다.
 
이러한 면모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노래하는 , 잭슨 브라운의 , 리키 리 존스의 , 에른스트 보우어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생상스의 <교향곡 제3번> 등을 재생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떠올랐다. 저역의 몸체와 윤곽이 조그만 더 견고하고 또렷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 이 앰프가 록포트의 알테어라는 괴물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장대함과 정교함, 섬세함과 명료함, 그리고 화사함과 청명함이 독특한 조화를 이룬 음향은 판테온 Mk IV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결국 이러한 음향 스타일은 KT88 고유의 음향 특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여기에 현대적 스타일을 용해하려는 설계자의 치열한 고민을 반영한 결과라는 느낌이 든다. KT88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과 중후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음악의 특정 국면을 과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정묘한 세련미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스타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앰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판테온 Mk IV가 이들 두 스타일의 어정쩡한 봉합보다는 대등한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것이 이 앰프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