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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오디오의 카리스마와 카라를 처음 시청했던 때가 벌써 5~6년 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싱싱하게’ 남아 있다. 워낙 깔끔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정수’만을 남기고 군더더기를 모두 쳐낸 듯한 분위기는 외모뿐만 아니라 사운드에도 연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카리스마와 카라는 지금껏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는 사이, 몇 가지 제품들이 이어졌으나 이러한 고유 컨셉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라’를 시청하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카리스마 때와 비교해보면 인클로저의 적층 무늬가 가로에서 세로로 바뀐 것(키가 커 보이려고 그랬을까?), 그리고 미드베이스 유닛에서 페이즈 플러그가 사라지고 더스트캡 타입으로 바뀌어 있는 등의 마이너한 모습 이외에는 여전하다. 촘촘하고 야무진 스트라이프 인클로저, 시어즈 유닛, WBT의 플래티넘 시그너춰 단자 등 펜오디오만으로 대표되고 연상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다.
 
더블 우퍼를 사용하고 있는 이 톨보이 스피커는 혹시 둘 중 하나가 패시브 유닛이 아닐까 했는데 둘 다 액티브, 독특하게도 2.5 웨이 유닛 구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두 유닛의 크로스오버가 낮은 대역 쪽에서 중복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나는 35Hz~300Hz까지, 다른 하나는 35Hz~5KHz까지의 대역을 재생하게 해서 저역의 양감을 늘리도록 한 것 같다. 
 

하지만 펜오디오의 제품을 잠깐이라도 시청해본 경우라면 알 수 있듯이 이 회사의 제품에서는 풍성하거나 오동통한 저역을 취급하지 않는다. 이전에도 느껴오는 바, 이런 모습들에서는 설계자의 성격이나 사운드 철학이 잘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에어(Ayre)의 찰스 한센이나 제프 롤랜드처럼 채식주의자이거나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주의가 제품 곳곳에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펜오디오는 사운드적으로 보아 캐나다의 베리티오디오처럼 재즈 모니터에 적합한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실제로 다양한 악기를 연주해온 설계자 새미 펜틸라가 지향하는 사운드가 그대로 구현된 결과이다.
 

'사라'의 사운드를 일괄하자면 뛰어난 포커싱의 달인, 웬만한 상황에서는 흔들림이 없는 전천후 스테이징,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는 자기 통제력 등이 될 것이다. 토인을 약간만 준 상태에서 시청했을 경우, 상체를 전후간으로 조금만 이동해도 스테이징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대역간 밸런스도 급격히 변한다. 실제로 시도할 생각은 못했는데,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곳에서는 토인을 많이 주고 시청을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여하튼 두 스피커와 시청자가 정삼각형이 되는 지점에서 스윗 스팟을 찾을 수 있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의 경우 소파에서 상체를 수직으로 반듯이 일으켰을 때의 지점이 된다. 이 지점에서 시청한 바칼로프의 <미사탱고> 인트로는 근래 시청했던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권토중래’라고 했던가? 마치 조용한 먼지를 일으키며 박두해오는 대군들처럼 에워싸는 앰비언스는 실로 일품이다. 위치별로 다양한 원근감, 벽면 가득 뿌려지는 코러스 등은 시청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서 야단법석이 되지 않고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한 동작들이 되어 드러난다. 실로 리얼하다.

 

브루크너의 9번을 이어서 시청해보면, 스테이징이 장대하다거나 하는 성향이 아닌 채로 순간 대형기로 변신을 한다. 저음량에서는 얼핏 소극적인 듯하다가 에너지가 늘어나면서 대단히 다이내믹하면서도 극명하게 연주장의 모습을 재현해준다. 전술했듯이 투티에서의 분해력이 뛰어나면서도 순간 후련한 한 방을 안겨준다.
 
‘머룬 5’로 장르를 바꾸어 본다. 예상대로이다. 이 곡에서 또한 칭찬일변도가 될 수 밖에 없는 건 펜오디오는 이런 말쑥하고 깨끗한 배경의 녹음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비 갠 아스팔트처럼 청명하고 에지 있는 리듬 앤 페이스이다. 도드라진 보컬의 포커싱과 단정하게 마무리되는 드럼비트, 낮은 저역에서의 해상도 등 필자가 아는 이 곡의 재생에서 사실 거의 흠잡을 곳이 없다. 녹음의 품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 스피커의 이런 모습이 만능이 되는 것은 아닌데, 절도 있는 표현과 엄격한 통제력으로 인해 다소 담담하게 지나치는 곳도 발견이 된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무표정하게’ 처리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 같은 ‘고전’을 들어보면 적당한 융통성을 호소하는 부분들이 감지된다.
 
적당한 두터움과 포만감으로 안겨와야 하는 부분들이 살집이 빠진 채로 다소 건조하게 들리기도 한다. 페이퍼 콘이나 통제가 약간 덜 된 채로의 대구경 우퍼에서 듣던 풍만함을 기대한다면 허전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매시브한 록 비트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헤비함 또한 이런 모니터에서는 다소 다른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그게 원래의 녹음이겠지만 말이다. 
 

펜오디오의 ‘사라’는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스피커이다. 입력된 소스를 작동자가 지정한 그대로 눈 앞에 뿌려주는 냉철함을 가진 한편, 신파조로 흐르지 않은 채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일급 모니터이다. 불필요한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있는 말쑥한 외모는 어느 공간에서도 밝고 맑은 분위기를 연출해줄 수 있는 인테리어적인 장점도 클 것이다.
 
크게 분류해보면 소스의 재생에 충실한 모니터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하겠지만, 시청을 거듭할 수록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이 스피커의 컨셉은 솔직한 강렬함이라고 생각한다. 해상도를 빙자해서 경박하게 멋을 부리거나 하는 부류와는 다른 차원의, 통렬하고 선열한 감동이 있는 제품이다. 이런 호리호리한 디자인과 사이즈에서 구사되기 어려운 넓은 대역도 장점이다. 주거공간, 사무공간 구애 받지 않고 정돈이 잘 되어 있는 공간에 대충 던져 놓아도 공간 속에 스며들어 갈 정갈한 모습도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