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언젠가 모 오디오 회사의 오너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앰프와 스피커, CDP 등 여러 오디오 컴포넌트 중에서 뭐가 제일 만들기 힘듭니까?'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파워 앰프라고 말했다. 통상 스피커가 아닐까 싶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더니 이런 설명이 이어졌다. '파워 앰프, 그것도 대출력을 설계하기가 힘듭니다. 아주 작은 노이즈나 왜곡이라도 이렇게 대출력이 되고 보면 그것들도 똑같이 커지니까요.' 일리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럼 이번에 소개할 지그프리드는 어떨까? TR도 아닌 진공관 방식으로 무려 800W까지 낸다. 소출력 진공관 파워도 그 노이즈나 험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분들이 많은 현실을 보면, 800W의 경우 음성 신호 자체를 해칠 만큼 심한 잡음들이 섞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음을 들어보면 적막강산이다. 믿을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일까?

 

 

당초 류크 맨리가 진공관 설계의 달인인 부친과 결별한 후 1993년, 새롭게 VTL을 시작할 때 내세운 모토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강력한 출력을 내는 파워 앰프를 제조하는 것이었다. 당시 하이 엔드 오디오 시장을 보면 종래에 상상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스피커들이 만들어졌고, 당연히 대출력 파워 앰프를 원했다. 진공관 메이커로서 어쨌든 이런 시대의 부응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래서 수년간의 개발 끝에 나온 것이 채널당 1250W를 내는 괴물 보탄(Wotan)이다. 보탄이라는 이름은 독일 및 북구 지역의 신화에서 따온 이름으로, 흔히 알려진 오딘과 같은 의미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 정도의 출력을 내는 진공관식 파워 앰프는 본 적이 없다. 이 모델로 VTL의 기술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충분히 세상에 증명되었으리라 보인다.

 

하지만 시장의 상황은 계속 변하고, 특히 홈시어터를 중심으로 한 홈 엔터테인먼트의 유행은 정통파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른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기획된 것이 바로 본 기 지그프리드(Siegfried)이다. 지그프리드라는 이름을 보면 역시 독일 및 북구 신화에 근거한 불멸의 용사를 일컫는 것으로, 여기서 지그(Sieg)는 영어로 “빅토리”(Victory), 그러니까 승리를 뜻한다. 프리드(Friede)는 “평화”(Peace)를 의미한다. 둘을 합치면 평화의 승리라 보면 된다.

 

 

 

실제로 지그프리드는 보탄의 손자로서, 부친이 준 명검을 부러트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전설의 용과 전투를 벌이고, 이때 승리하면서 용의 피를 뒤집어 쓴 결과 불멸의 존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는 법도 얻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향후 지구의 지배자가 되도록 도왔다. 그러므로 보탄을 만들어본 VTL로서는 본 기에 지그프리드를 붙인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역시 홈시어터다 뭐다 해서 진공관 메이커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개혁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럼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800W나 내는 진공관식 파워 앰프에서 이토록 소음이나 험이 없고, 완벽하게 스피커를 장악할 뿐만 아니라, 현기증이 나도록 빠른 스피드를 구현할 수 있을까? 지금 음을 듣는 순간에도 믿어지지 않는 퍼포먼스에 마냥 입을 벌릴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몇 가지 해법이 떠오르는데, 제일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이 완벽한 “자가 진단” 시스템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오토 바이어스와 관련된 것인데, 실제 그 내용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일단 본 기를 보면 채널당 6550C라는 출력관이 무려 12개나 투입된다.(옵션으로 KT88도 가능하다.) 당연히 그 중에 어떤 관은 트러블이 있을 수 있고, 빠르게 수명이 다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페어 매칭을 통해 각 관들의 상태가 일정해야 좋은 소리를 낸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2채널 도합해서 24개의 관을 완벽하게 페어 매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오토 바이어스 기술이 개입되면, 각각의 상태에 따라 바이어스가 조정되면서 전체 관들이 일정한 동작을 하도록 만든다. 이를 테면 천지가 진동하도록 엄청난 음량일텐데 이 바이어스라는 것이 늘 고정된 것은 아니라 터졌다가 이후 잔잔한 가운데 솔로 악기가 나오는 상황도 상정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변화의 순간에 신속하게 오토 바이어스가 작동해서 항상 모든 관들이 최상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것은 최고의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자가 진단은 곧 자가 통제를 의미한다. 앰프의 오퍼레이팅 타임을 지킨다거나 각 관의 수명을 체크해서 교체를 지시한다거나 실시간으로 AC 전압의 흐름을 체크하는 등, 진공관 앰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트러블을 사전에 진단해서 고장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특정 관의 수명이 다하면 이를 지적해서 교체 사인을 내는 것이다. 만일 본 기를 하나의 야구 팀으로 본다면, 이 전체를 총괄하는 토니 라루사와 같은 명감독이 존재해서 본 기를 소유한 구단주에게 새 선수를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하라는 리포트를 올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기만 했다. 우선 미국 전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결과 파워 서플라이 기술자, 소프트 웨어 제작자, 콘트롤 회로 전문가, 진공관 앰프 회로 설계자, 산업 디자이너 등등 커버해야 할 분야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동사의 CEO인 류크 맨리는 일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또 VTL은 실제로 오디오 경력이 풍부한 패널들을 모셔다가 수도 없이 리스닝 테스트를 시행한다. 거기서 나온 지적 사항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바로 수정 작업을 한다. 이를 테면 관례적으로 이러 이러 했으니 이렇게 가야 한다거나 대충 짐작해서 손을 대는 일은 일체 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내세운 몇 가지 테마가 있다. 우선 새로운 음향의 스탠다드가 되자. 다시 말해 '출력만 높이고, 가격만 비싸게 받는 앰프가 아니라 이 시대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레벨로 만들어 보자' 라는 것이다.

둘째는 광대역을 커버하는 스피커를 구동하자. 스피커가 커지고, 대역이 넓어질수록 앰프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당하며, 특히 피크에서 전체 주파수 대역에 모두 대응한다는 것은 엄청난 과업이다. 이 부분을 극복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이 편리하도록 만들자. 사용자가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버튼 조작이며 타 기기와 연결을 용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냥 전원을 켜면 아무런 걱정 없이 소파에 앉아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 하겠다.

 

본 기의 출력은 엄청나지만, 의외로 신호 경로는 심플하다. 그래서 하이 스피디한 음이 가능하고 또 음성 신호의 순수성이 최대한 보장된다. 그러므로 소스에 담긴 다양한 정보가 일체 누락 없이 증폭되어 스피커를 구동하는 것이다.

본 기의 외관을 보면 일종의 타워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두껍고 단단한 섀시는 진동 및 자성의 간섭에서 자유롭고, 매끈한 커버는 그 자체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와 커플링되는 동사의 TL 7.5 레퍼런스 프리와 좋은 짝을 이루도록 완성도를 높였다. 최근 불황의 여파로 오디오파일들이 염원하고 또 꿈에 그릴 수 있는 제품의 발표가 그리 많지 않은 형국인데, 이 시점에서 소개된 본 기의 존재는 매우 신선하기만 하다. 본 기가 선사하는 새로운 지평의 음은 과연 이 시대의 스탠다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겠고 그 점에서 류크 맨리의 위대한 승리라 평가할 만하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동원한 기기는 일단 소스에 린데만의 825를 썼고, 프리는 역시 동사의 TL 7.5 레퍼런스, 스피커는 JBL 4365와 다인오디오의 포커스 340 등을 골고루 썼다. 시청 트랙은 필자가 편집한 음반에서 골랐으며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바이올린)
-비제 <카르멘 환타지> 안네 소피 무터(바이올린)
-오스카 피터슨
-Led Zeppelin

 

우선 멘델스존에서 놀란 것은, 빠른 스피드와 풍부한 저역 그리고 광활한 사운드 스테이지가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음이 가능할까 싶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향이 룸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탄력 있는 저역이나 생동감 넘치는 고역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하늘 높이 치솟는 바이올린의 음은 날렵하면서 찰기가 넘쳐, 과연 젊은 여류의 신선한 감각이 물씬 살아 있다 하겠다.

 

 

 

비제의 경우, 초반에 쏟아지는 오케스트라의 포효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우렁차고,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현란한 솜씨는 스페인의 어느 투우장에 온 듯하다. 이런 이국적인 정서와 열정 등이 골고루 혼합된 연주인데, 그 열기가 정말로 고품위하게 승화되어 전달된다. 다인오디오의 경우, 탁월한 3D 이미지가 좋아, 오케스트라의 펼침, 솔로 주자와의 거리 등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오스카 피터슨은 JBL로 들었을 때 정말로 감격했다. 일단 오른쪽 채널에 등장하는 더블 베이스는 그 음의 폭과 양이 놀라우며, 본격 연주 시 손가락으로 뜯는 음 하나하나가 또렷이 각인된다. 왼쪽 채널에 자리한 드럼, 특히 브러쉬로 치는 스네어가 명쾌한 움직임을 보이며, 사각사각 긁는 소리가 더 없이 기분 좋다. 가운데 놓인 피아노의 경쾌한 맛은, 오스카의 유머러스한 면을 반영하며, 점차 열기를 더해갈 때의 손놀림은 과연 비르투오조의 솜씨라 칭찬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을 켜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로 바닥을 두드리는 킥 드럼의 기세가 놀랍다. 그냥 풀 세트의 드럼을 가져다 놓은 듯하다. 한편 나긋나긋 깔리는 오르간을 배경으로 천천히 노래하는 보컬엔 상실감이 가득하며, 마치 텅 빈 바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연상된다. 중간에 나온 기타의 거친 톤은 고독을 참지 못해 괴로운 심정을 피력하는 듯해서 가슴이 아프다. 네 명의 멤버들이 보인 완벽한 앙상블과 빼어난 스튜디오 작업이 록의 위대했던 한 시절을 회고하게 하는데, 마치 그때 그 자리에 함께 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Specification
진공관 구성	1 x 12AT7, 2 x 6350, 12 x 6550C
파워출력: 20Hz-25KHz +-0.1dB <1.5% THD (stable to 2 ohms)	Into 4 ohms Tetrode 800W, Triode 400W Into 8 ohms Tetrode 600W, Triode 300W
최소주파수응답 (< 0.2% THD @ 1W)	1 Hz – 75KHz - 3dB
입력단자	Balanced XLR, Single ended RCA
출력단자	Binding post (1pair vtl custom 5 way)
출력동작	Class AB1
최적 로드 셋팅	5 ohms
Input Sensitivity for Full Output	1 Volt
입력임피던스	50K Ohms
소비 전력	Idle 480W Full Power 1300W
신호대 잡음비	> 100 dB
규격	11.5" x 25" x 27" / 29 x 63 x 65 cm
중량	Net : 175 lbs / 80 Kg
팩킹 중량	450 lbs / 204 Kg packed in one crate for the pair of monoblocks

Siegfried Reference Monoblock Amplifier
수입사	코포사운드
수입사 연락처	02) 2157-1501
수입사 홈페이지	http://www.kophosound.co.kr/
소비자가	7,800 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