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요 근래 겨울마다 L.A.에 가다보니 알게 모르게 이 도시에 정이 많이 들었다. 재즈를 좋아하고 유럽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동부쪽이 내 취향이지만, 뉴욕이나 보스턴은 일없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데도 아니고, 또 주로 CES를 끼고 겨울에 방문하다 보니 여간해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이래저래 라스 베거스와 L.A를 주력으로 삼게 되었다.

처음 L.A.에 갔을 때엔 도로 양쪽에 가득한 야자수에 놀랐다. 얼마나 높은지 한 2~3층 건물 높이는 족히 되어 보였다. 한겨울에도 햇살이 따뜻하고 또 밝아서 가끔 여름이 아닐까 싶은 순간도 있고, 새로 지은 어마어마한 건물들의 규모나 스케일은 과연 대국이 다르구나 기가 죽게도 만든다. 다행히 L.A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물가가 싼 편이며, 헐리웃이며 유니버설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지역이 많아 하루 종일 쏴돌아 다녀도 심심치 않다.

 

개인적으로 즐겨 가는 데는 가든 그로브. 여기엔 파머스 마켓이라는, 미국 전역에서 올라온 싱싱한 농산물을 갖고 만든 맛집들이 가득하며, 반즈 앤 노블에서 잡지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변에 CVS니 월마트니 홀 푸드니 어마어마한 쇼핑 몰이 많아, 한 일 주일은 다녀야 모두 볼 수 있다. 또 카페며 레스토랑이 즐비한 멜로즈 거리도 좋고, L.A 레이커스의 아지트인 라이브 지역 그리고 코닥 극장, 차이니스 씨어터 등이 위치한 헐리웃 그 자체도 볼거리가 많아 즐겁다.

그러다 보니 흔히 웨스트 코스트, 웨스트 코스트 하는 말의 의미가 조금씩 실감이 되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이지 고잉”쯤 될까? 좀 낙천적이고, 너무 심각하게 따지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말인데, 결코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웨스트 코스트 재즈니 록이니 사운드와 같은 단어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글스, 두비 부라더스, 쳇 베이커, 게리 멀리건 등과 함께 알텍, JBL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사실 웨스트 코스트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는 JBL이다. 오렌지색 바탕에 떡하니 떠 있는 이 세 글자는, 늘 오디오 애호가들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일본에서는 "JBL=Jazz=Blue Note"라는 공식으로 지금도 수많은 재즈 클럽과 카페에서 JBL이 활동중이며, 아마도 JBL의 컨슈머 파트만 따진다면 일본 시장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다. 단, 한국에서도 JBL 팬이 많지만 재즈 애호가가 적은 탓에 일본만큼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 감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아직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브랜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쯤에서 많은 애호가들은, JBL하면 어느 정도 사운드가 완성된 브랜드인 만큼, 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무척 다르다.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4344와 같은 스튜디오 시리즈나 이전의 L 시리즈에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일단 장르로만 말한다면, 현재 생산되는 JBL의 제품들은 클래식에도 능하다. 이전에 문제되었던 현의 부족한 울림이 개량되어 어느 스피커 못지 않게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좋다. 또 보컬이나 피아노 등 두루두루 상당히 양호해졌다. 그러면서 JBL 특유의 야성적인 면도 죽지 않았으니, 그 점에서 참 불가사의하고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으면서 개량을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노하우에 속한다. 한번 이런 예를 들어보겠다. 소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좀 도수를 낮추기 위해서 약간 물을 타보자. 대번에 소주 맛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소주 기술자란 분들은, 고작 1도를 낮추면서 맛이 변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수많은 시행 착오와 실험을 거친다. 그런 면에서 뭘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장점을 지키면서 개량하는 게 훨씬 어려운 것이다. 이 점에서 JBL의 신작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번 JBL 본사를 방문하면서 나는 그렉 팀버스라는 전설적인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다. 이 분은 말하자면 골수 웨스트 코스트 사람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고 일한 곳이 다 이 지역이며, 심지어 그의 조부며 친척이며 아내 등 대부분 이곳 출신이다. 동부에 비해 역사가 짧은 서부인 만큼, 이런 점에서 전형적인 서부 지역 사람이라 해도 무방하다.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가 뭔지 이 분만큼 몸으로 아는 분이 또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분을 만나서 배운 게 많지만, 확실히 JBL에는 두 가지 계통의 제품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하나는 이른바 블루 배플 시리즈. 잘 알다시피 4344를 위시한 일련의 제품들로, 3웨이 혹은 4웨이를 지향한다. 와이드 레인지하면서 가볍고 경쾌한 전형적인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다.

 

또 하나는 K2 혹은 그렉 팀버스 라인이라고 해도 좋을 K2 시리즈를 위시한 2웨이 지향의 제품들이다. S9500, M9500, S5500 등이 이에 속한다. 여기에 수퍼 트위터를 더한 포름이 바로 S66000, S9800, S9900 등이다. 이번에 만난 S4700은 바로 팀버스 라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같은 JBL 제품이라고 해도 두 라인은 좀 다르다. 블루 배플이 멀티 웨이쪽이라면 팀버스 라인은 2웨이 지향이다. 따라서 혼이 하는 역할이 매우 다르며, 후자가 보다 혼 사운드에 가깝다고 하겠다. 또 너무 밝지 않고 적당히 음영을 지닌 점도 후자만의 매력이다. 그래도 블루 배플의 싱싱하고 준민한 사운드도 거부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 일단 S4700의 리뷰인 만큼, 본 기의 장점을 알리는 데에 주력하겠다.

우선 혈통을 보면 S9900의 직계다. 아무래도 S9900의 가격이 있는 만큼, 그에 못지 않은 성능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컨셉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상위 기종의 노하우가 풍부하게 투입되어 있다.

 

 

 

 

외관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혼 +우퍼”의 2웨이 포름에 수퍼 트위터가 얹혀진 컨셉이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미드레인지 혼의 경우, 담당 주파수 대역이 800Hz~12KHz 사이다. 블루 배플 라인과 비교하면 좀 더 넓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팀버스의 말을 빌리면, 혼이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우퍼에 할당하는 대역을 줄일 수 있어서 설계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팀버스가 본격적으로 하이엔드 스피커 업계에 주목을 받은 에베레스트 이후 JBL의 혼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서 등장하는 것이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커플링되는 혼 재질의 개선이다. S9500과 같은 경우 아크릴 재질을 썼지만, 최근에는 소노글래스(SonoGlass)를 채용하고 있다. 이것은 우주선과 같은 첨단 기기에 사용하는 최고급 소재로, 단순히 강도만 높은 것이 아니라 공진을 줄이고, 지향각도 넓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본 기의 미드레인지가 방사하는 각도는 좌우 90도, 상하 60도에 이른다. 그 경우, 서비스 에어리어가 넓어져서 보다 많은 이들이 스위트 스폿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또 드라이버의 경우, 순도가 높은 티타늄 소재를 썼다. 이 경우 반응이 빠르고, 강도가 높은 장점을 갖는다. 여기에 아쿠아 플라스라는 특수 코팅을 더했으므로, 공진을 억제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미드레인지 유닛의 형번을 보면 175Nd-3로 되어있다. 175Nd는 K2 시리즈를 비롯, 팀버스 라인의 핵심 유닛으로, 이번에 3세대째 진화된 모델이 채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커플링되는 우퍼는 당연히 펄프 소재로, 여기에 복합 물질을 섞어서 가볍고, 튼실한 소재로 만들었다. 대략 15인치 사이즈의 우퍼가 되면 반응이 느리기 마련인데, 혼의 스피드를 따르려면 펄프밖에 없다는 점과 최대한 반응력을 높인 점 등은 확실한 개선이라 하겠다. 여기에 무려 3인치 길이의 보이스 코일을 더블로 감은 바, 그 재질이 알루미늄을 기초로 한 특수 소재여서 가볍고, 스피디한 반응을 보인다. 게다가 네오디뮴 자석을 동원해 보다 피스톤 운동을 원활하게 한 점도 돋보인다. 모델 형번은 2216Nd. 참고로 저역은 38Hz까지 커버한다.

마지막으로 수퍼 트위터 역할을 하는 138Nd의 차례. 역시 미드레인지처럼 티타늄 소재의 진동판을 동원했고, 유닛 뒷부분을 틀어막아 일종의 챔버로 꾸민 점도 돋보인다. 혼 타입답게 수퍼 트위터치고 방사각이 넓어서 좌우 60도, 상하 30도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 캐비넷에 쏟은 정성도 대단해서, 무려 1인치 두께의 MDF가 동원되었고, 프런트 배플의 경우 알루미늄 헤어라인으로 가공해서 총 15mm의 두께를 확보하고 있다. 내부에는 두 개의 브레이싱이 튼실하게 배치되어 일체의 공진을 배제하고 있으며, 뒤쪽으로 커다란 덕트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저역이 빠지도록 설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외관 역시 고급 가구의 느낌이 나서 사이즈가 크지만 다소 컴팩트한 감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본 기가 S9900의 직계라고 했지만, 굳이 이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품으로서 본 기가 갖는 매력이 상당하다. 특히 음량을 높였을 때 쏟아지는 에너지는 여느 대형기 못지 않아, 그야말로 막힌 속이 펑펑 뚫리는 쾌감을 준다. 마치 랜디 존슨이 꼽는 160Km대의 강속구를 방불케하는 이런 시원스러움은 JBL의 핵심 아이덴티티중의 하나로,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준다.

 

 

 

 

JBL 방문 당시 팀버스에게 JBL에서 만든 앰프가 어떠냐 물었더니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같은 하먼 카든 그룹에 마크 레빈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나오는 JBL의 경우 마크 레빈슨과 찰떡 궁합이다. 예전 모델의 경우 어딘지 지나치게 신경질적이고, 메마른 느낌을 줬는데, 요즘은 풍부한 저역을 중심으로 혼 사운드의 날카로운 면을 어느 정도 다듬어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음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본 기의 구입을 희망한다면 앰프쪽은 마크 레빈슨을 생각할 만하며, 실제로 이번 시청도 그런 조합으로 이뤄졌다. 정확히는 326S 프리에 531H 파워 그리고 512 SACD의 라인업이다. 시청곡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토] 카라얀, 오이스트라흐, 리히테르
-폴 매카트니 [I'm Gonna Sit Right Down and Write Myself a Letter]
-듀크 엘링턴 [Mood Indigo]
-트래픽 [John Barleycorn]

 

 

 

 

우선 베토벤을 들으면, 당시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모두 모인 만큼,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기나 에너지가 가감 없이 표현된다.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하나씩 솔로 주자들이 합류해서 가대한 폭풍우로 몰고 가는 일련의 과정에 진땀이 배게 한다. 확실히 이런 마성이 강한 연주를 담으려면 스피커의 사이즈나 스케일도 중요하지만, JBL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캐릭터의 장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대는 소를 점한다고, 이처럼 스케일이 크고 격정적인 연주에도 중간중간 잔잔하고, 서정적인 대목이 있는데, 결코 이를 놓치지 않는다.

늘그막의 폴이 소박한 마음으로 부른 이 노래는, 실제로 비틀즈 시대 때의 녹음 기재를 사용했다. 그 정겹고, 소박한 맛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다. 가볍게 발장단하게 만드는 리듬감 위에 쉽게 쉽게 부르는 듯한 보컬 그리고 중간에 간결하게 펼쳐지는 피아노 솔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생이다. 디테일이 어떻고, 음장이 어떻고 하는 분석 자체를 중지하고, 음악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듀크 엘링턴의 악단에 콜맨 호킨스가 초대 손님으로 왔다. 테너 색소폰의 제왕다운 여유와 품격이 솔로에 가득한데, 그 진한 맛이 당연히 잘 표현된다. 나른하게 펼쳐지는 혼 섹션의 앙상블 위해 느긋하게 블로잉하는 호킨스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중간중간 간결하게 더해지는 듀크의 피아노 역시 감칠 맛이 있다. K2 시리즈를 들으며 놀란 것은 무엇보다 빅 밴드의 재생으로, 그 박력과 에너지는 어디에도 들을 수 없었다. 그 혈통을 잘 이어받은 재생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트래픽을 들었다. 명징한 어쿠스틱 반주 위에 하이 톤으로 펼쳐지는 스티브 윈우드의 보컬은 늘 가슴 설레게 한다. 중간에 나오는 크리스 우드의 플륫은 곡을 더욱 환각적으로 몰고 가며, 이런 음악에 열중했던 젊은 시절로 시간을 되돌린다. 록, 특히 60년대 록은 어딘지 거칠고, 몽환적인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덕분에 시청 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여러 장의 록 음반을 듣고 말았다.

 

이 종학 (Johnny Lee)

 

Specification
형식	380mm 지름 3 웨이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사용 유닛	LF 380mm 지름 퓨어 펄프 콘 NDD (네오 쥬무 · 디퍼렌셜 · 드라이브) 저음 용 스피커 <2216Nd> HF 50mm 지름 아쿠아 플러스 코팅 퓨어 티탄 · 다이어프램 컴프레션 드라이버 <175Nd-3> +38 mm 지름 스 로트 바이 라지 아르 혼 UHF 19mm 지름 퓨어 티탄 다이어프램 컴프레션 드라이버 <138Nd> +10 mm 지름 스 로트 바이 라지 아르 혼
혼 지향 특성	HF 수평 90 ° × 세로 60 ° UHF 60 ° × 세로 30 °
임피던스	6Ω
허용 입력	300W (RMS)
출력 음압 레벨	94dB (2.83V/1m)
주파수 특성	38Hz ~ 40kHz (-6dB)
크로스 오버 주파수	800Hz, 12kHz
치수 (W × H × D)	전폭 : 500mm
전고	1,068 (스파이크 제외) mm
깊이	371mm
무게	54.5kg

JBL STUDIO 590CH
수입사	소비코AV
수입사 연락처	02-525-0704
수입사 홈페이지	http://www.sovicoa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