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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클럽 기획특집리뷰 - 인티앰프 5종 집중 시청 2부   Melody H88A Signature VTL IT-85 Pathos Ethos Ayre AX-5 Simaudio MOON 700i
프롤로그. 인티앰프 집중 시청을 시작하며 - 이종학
01. Melody H88A Signature - 이종학, 허영호
02. VTL IT-85 - 이종학, 허영호
03. Pathos Ethos - 이종학, 허영호
04. Ayre AX-5 - 이종학, 허영호
05. Simaudio MOON 700i - 이종학, 허영호
에필로그. 집중 시청을 마치며 - 허영호

 

 

 

 

과거와 현대의 완벽한 조화

이 종학(Johnny lee)

 

그간 VTL의 제품을 여럿 평한 바 있는데, 이렇게 비교 청취로 본 기를 들으니 확실히 VTL의 아이덴티티가 충분히 포착된다. 어메리컨 사운드의 장점을 잘 계승해서 스케일이 크고, 에너지가 넘치는 음을 만끽할 수 있다. 단단한 저역을 바탕으로 한 근육질 음이지만, 디테일 묘사도 탁월해 VTL의 내공이 충분히 느껴진다. 어쨌든 바로 이런 면에서 호불호가 갈릴 듯도 싶다.

 

1993년, VTL이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암담했다. 당시엔 말도 안되는 출력을 요하는 떼쟁이 스피커들의 시대로, 어지간한 대출력 TR 앰프로도 힘에 부쳐 헉헉거렸다. 또 진공관에 대해선 터무니없는 선입견이 많아, 시장 상황도 적대적이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컴퓨터를 동원한 설계라던가 정확한 계측 장비를 동원한 제조 등, 다양하고 현대적인 시도가 이뤄져 결국 오늘날의 VTL이 이뤄진 것이다. 어쨌든 리모콘을 사용하고, 대출력에도 일체 험이나 트러블이 없고, 심지어 알아서 바이어스를 조절하는가 하면, 자가 진단 시스템까지 갖춰서 미리미리 고장을 체크해주니, 보면 볼수록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들은 IT-85는 그런 기술력이 잘 녹아있는 인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EL34라는 관을 썼는데, 무려 60W의 출력을 낸다는 점이 놀랍다. 알고 보니 3극관 및 5극관 모드로 설정을 바꿀 수 있단다. 이번에는 5극관 설정으로 들었으나, 기회가 되면 3극관의 음도 듣고 싶어진다. 어쨌든 매우 개성적이고, 호방하면서 디테일한 음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리고 그 부분이 장점으로 혹은 단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재즈와 록에서는 이런 개성이 장점으로 드러난다. 5극관의 남성적이고, 파워풀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음이기 때문이다. 마치 피가 통하는 듯, 혈기왕성한 연주인들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하고 격정적인 심벌즈, 바닥을 흔드는 킥 드럼의 어택, 거칠면서 야성적인 보컬이나 트럼펫 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록이나 재즈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구매해도 좋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반면 클래식에 있어서는, 디테일이 풍부하고, 감촉이 좋지만, 약간 무덤덤한 느낌도 있다. 물론 이런 음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오로지 음색에 치중하는 분들이라면 낯선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를 재현하는 약동감 넘치는 재현력은 과연 이게 인티 앰프가 맞는가 놀랄 정도. 이번에 동원한 B&W가 아닌 다른 계열의 스피커를 동원한다면 클래식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목적하는 바가 뚜렷한 이런 앰프의 존재는 귀중하다고 생각한다.

 

허 영호

 

미국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Vacuum Tube Logic사의 인티앰프 제품이다. 진공관 설계의 귀재라고 인정받는 데이비드 맨리가 디자인한 제품으로서 미국 오디오 업계에서는 콘래드 존슨, 오디오 리서치와 함께 진공관 오디오의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브랜드 기기이다. 과거 VTL 제품 디자인은 실로 추하기 그지없었다. 미국 기기 특유의 투박함과 더불어 좋은 소리를 위해서라면 다른 어떤 모든 것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데이비드 맨리의 철학도 한 몫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본 제품은 적어도 그런 선입견을 벗어나기에 충분하다.

 

나름대로 세련된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있고 전체적으로 마무리가 고급스럽다. 게다가 리모컨도 제공된다. 본기기의 설계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의 분리형이고 이를 한 새시(chassis)에 집어넣었을 뿐이라고 보면 된다. 향후 업그레이드를 위한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고 있다. 파워부는 EL34 진공관 푸시풀 방식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8옴에서 60와트, 4옴에서 80와트의 출력을 내어준다. EL34 증폭관으로는 교과서적인 설계라고 하겠다.

마일스 데이비스 “So What"의 인트로 부분에서 다소 분석적일 정도로 디테일을 드러내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진공관 소재의 앰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반응도 들려준다. 진공관의 향취를 강조하며 풍부한 울림을 펼쳐내기 보다는 본래의 소노리티를 조여가면서 표정을 만들어내는 ”조각“ 형식의 어프로치라고나 할까. 피아노 연주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전면으로 나와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리듬섹션의 비트는 적당히 과장되어 있어 나쁘지 않다. 베이스의 펀치력은 매우 좋지만 데피니션이 명료한 연출법은 아닌 듯하다.

 

아쉬케나지가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 2번 교향곡 4악장 투티에서는 실로 콘서트헤보 연주 홀의 분위기가 충만하게 들려주고 있고 현악 앙상블의 다채로운 표정도 풍부하다. 고전음악의 재생에 한해서 VTL은 악상의 굵은 가지를 드러내주면서 음악을 굵은 필체로 써내려가는 앰프라고 하겠다. 튜바의 멜로디 연주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명료하게 들려오는데 아마도 특정 중역대 주파수를 강조하여 튜닝해 놓은 듯하다. 화장기가 있다는 소리인데, 나쁘지 않은 연출이다.

레드 제플린 “All My Love" 인트로 부분에 존 본햄의 드럼연주가 시작되는 대목을 잘 들어보면 VTL 앰프가 전자음악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앰프라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자유자재로 강약을 조절하는 존 본햄의 천재성이 새삼 존경스럽다.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도 생동감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록음악을 록음악답게 들려주는 능력이 있다. 조금 시끄러운분위기로 음악을 재생하는데 아마도 이러한 거친 분위기가 음반 프로듀서 지미 페이지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VTL 사운드를 다시 회고적으로 듣게 되는 계기가 되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업그레이드된, 현대화된 VTL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다운 개성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었는데 어쿠스틱 음악보다는 전자음악, 즉 팝이나 록음악 재생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B&W 스피커와도 나쁘지 않은 매칭이었지만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JBL, 알텍 계열의 빈티지 스피커와 매칭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