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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IT 장비는 설치방법에 따라 연결하기만 하면 제품이 의도한 대로 성능을 발휘하지만, 오디오 시스템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장만한 오디오 제품이 의도한 성능을 발휘하고 안하고는 전적으로 연결한 케이블과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많은 오디오 애호가들이 파워코드, 케이블, 오디오 랙, 멀티탭 그리고 벽체 콘센트에 이르기 까지 신경을 써서 오디오 제품이 의도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오디오 애호가는 오디오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도록 돕는 산파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런 정통 오디오 구사 방법은 수십 년에 걸쳐 국내외의 각종 비법들을 참고하고 평가하여 집단적인 지성을 축적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서 소리가 나온 이후에 공간의 상대 거리와 표면 재질에 의해 지배되는 룸 어쿠스틱 운용법은 그렇지 못하다. 성공한 사례를 보기도 어렵고, 원하는 위치를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고, 우리가 접하는 정보 중에는 가정환경에 적용하기 부적합한 것들도 많다. 게다가 제작자의 얄팍한 지식으로 개발해 낸 제품의 실상을 알고 보면 위상을 건드려서 원 신호를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함부로 손대기가 어려운 룸 어쿠스틱 분야에서 새로운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는 룸 어쿠스틱 현상을 개선시키거나 공간지각을 보조해주는 액세서리 분야가 매우 왕성하게 개발되고 있는데,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담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기 발진원리는 간단하지만 만들기에 따라서 완성도는 많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어쿠스틱 리바이브 RR시리즈 제품을 불법카피한 해적판 전자기 발진기를 접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오리지널의 이름에 먹칠을 할 정도로 한심할 수준이었다. 해적판 전자기 발진기를 사용하면 마치 모노럴을 듣는 것처럼 사운드 스테이지가 중앙부로 축소된다. 

어쿠스틱 리바이브에서 처음 만든 오디오용 전자기 발진기 모델은 RR-77이며, 이 것을 개선 시킨 후속 모델이 RR-777이다. RR-888은 RR-777의 회로와 소자를 개량해서 결과적으로 두 배 이상 성능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RR-888은 수출 전용 스페셜 버전 제품으로 보시면 될 것 같다.

 

제품을 리뷰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전자기적인 발진기가 오디오의 재생이나 사람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한 메커니즘을 알려주고 싶지만 업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밝히고 있지 않다. 제품을 설명할 자료가 없어 난감해 하던 중, 얼마 전 시너지스틱 리서치사의 사장이 슈만 레조넌스를 만들어내면 주변 공간의 RFI의 영향을 줄여주는 것처럼 설명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 설명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는 어렵지만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을 사용했을 때의 발생하는 고유의 특성은 오디오 시스템을 RFI로부터 쉴딩한 것 같은 효과와 일정 부분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어쿠스틱 리바이브사는 RR-888이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RR-888의 설치 위치를 방바닥에서 1.5미터 이상의 높이에 올려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마도 스피커까지 RFI의 영향으로부터 커버해 주기 위해서는 그 높이를 두라는 얘기인 듯 하다. 그에 비해서 설치 각도는 덜 중요한 모양이니 반드시 중앙에 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제품에 포함한 아답타 보다 좋은 전원장치를 사용할 경우 성능이 더 향상된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을 사용했을 때 제일 먼저 느껴지는 특성은 차분해지고 어둡게 들린다는 느낌이다. 마치 흡음이 많이 된 공간에서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는 전자파 차폐 기능이 있는 매트를 오디오 제품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특성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 느낀 특성은 시청공간의 실제 앞뒤 거리보다 대폭 늘어난 팬텀 공간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피커가 놓여져 있는 뒷쪽 벽을 뚫고 사운드 스테이지가 형성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팬텀 공간은 모든 레코딩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팬텀 공간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것은 레코딩의 제작방식과 관련성이 있는 것 같은데 멀티채널로 녹음하고 에디팅하고 마스터링한 레코딩인 경우 팬텀 공간이 잘 느껴지는 편인데 비해, 녹음공간의 어쿠스틱을 많이 이용하고 마이크의 갯수를 최소로 사용한 레코딩에서는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로 만들어내는 팬텀 공간이 잘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대중음악은 멀티채널로 녹음한 후 프로툴스와 다재다능한 플러그인으로 뚝딱뚝딱 레코딩을 생산해 내고 있어서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의 팬텀 공간 생성 효과를 보기에 좋다. 오케스트라의 경우도 24채널로 녹음하고 믹싱 작업을 통해서 밸런스, 음색,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밟고 있어서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의 팬텀 공간 생성 효과를 보기에 좋다. 그렇지만 마이크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소규모 실내악이나 기악곡, 소편성의 독주 성악곡 같은 경우에는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의 팬텀 공간 생성 효과의 혜택을 보기는 어려우며 그 대신에 차분해지고 어둡게 들리는 효과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디오 시스템의 튜닝에 따라서 민감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둔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의 오디오 시스템과는 달리 밝은 소리가 나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 수입원의 시청실에서는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가 어둡게 만드는 영향이 그다지 민감하게 느껴지지 않는 편이었다. 

필자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수입원의 시청실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 QRT사의 QX4를 투입해 봤다. 이렇게 하자 그저 앞뒤 공간의 거리가 늘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위아래 공간도 늘어난 것처럼 들리게 된다. QRT사의 QX4와 어쿠스틱 리바이브사의 RR-888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 내어서 어쿠스틱 리바이브사의 RR-888를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밋밋한 부분, 그리고 QRT사의 QX4를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의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는 조증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극복하고 두 장치의 장점만 나타나게 된다.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과 QRT사의 QX4 콜라보레이션이 가장 빛났던 레코딩이라면 OPUS 3 Test CD 첫번째 트랙에 실려있는 I Can't Get Started를 꼽을 수 있겠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어느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이처럼 홀로그램처럼 표현되는 극강의 3차원 공간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이 콜래보레이션은 수입원 시청실에서도 제대로 먹히는 것을 확인했으나 필자의 오디오 시스템 보다도 조금 더 어둡게 튜닝이 되어 있는 다른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고역을 어둡게 만드는 어쿠스틱 리바이브 RR-888 보다는 소리를 까스러지게 만들고 아드레날린이 돌게 만드는 QRT QX4를 사용하는 편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어두운 소리로 튜닝되어 있는 오디오 시스템을 밝은 소리로 튜닝하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지금 시스템이 어떠하니 나에게는 이것이 맞고 저것은 시도해 보지 말아야겠다며 선을 긋거나 움츠려들 이유는 없다.

 

패시브 소자나 기계적인 공명을 이용한 액세서리로 공간감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면이 있다. 패시브 소자를 신호경로에 투입할 경우에는 위상을 망가트릴 위험성이 높고 기계적인 공명을 이용하는 경우 얻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인 공명을 이용하는 경우, 찰현악기의 몸통 울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여 미끌거리듯이 들리게 하며 성악의 소리가 들뜨게 들리게 한다. 그렇지만 액티브 액세서리는 필요하거나 적합한 부분에서만 켜서 기능을 사용하다가 필요하지 않게 되거나 어색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생기게 되면 꺼서 기능을 정지시키면 된다. 

어쿠스틱 리바이브는 액티브 방식의 룸 어쿠스틱 액세서리를 만든 원조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튜닝해 와서 이질감이 적은 공간감을 형성하도록 했다. RR-888은 그 진화의 현재진행형 제품이며, 이후에 나오게 될 유사한 제품들에게 영감을 주며 딛고 극복해야 할 기준이 되는 레퍼런스 제품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