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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다질, CH Precision, 댄 다고스티노, 크렐, 마크 레빈슨, 스텐하임, 오션웨이, 매지코, 솔루션, JBL, KEF ... 정말 많은 브랜드의 이름이 나오는데,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정답은 바로 젠사티(Zensati)! 덴마크에서 나와 요즘 무섭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케이블을 사용하는 메이커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다른 업계와 달리, 케이블의 경우, 상당히 유행에 민감한 편이다. 아무래도 새로운 소재나 이론이 나올 때 가장 적용이 쉽고 또 그 결과물이 즉각 즉각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B 비교 테스트에서 그 성능을 파악하기가 무척 쉽다. 즉, 매번 더 빠른 총잡이가 나오는 분야인 셈이다.

따라서 케이블쪽 전쟁은 다른 컴포넌트보다 무척 치열하다. 실제로 세계적인 오디오 쇼에 가보면, 숱한 케이블 메이커를 만날 수 있다. 저가에서 고가까지 제품군도 다양하고, 만듦새도 제각각이다. 또 제작자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자기 제품이 최고라고 한다. 아마도 오디오 제작자 중에 케이블쪽이 가장 말이 많고 또 그럴싸하다.

그런 와중에 오로지 실력으로 조용히 이쪽 판도를 장악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젠사티다. 자신의 제품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일절 소재나 제조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냥 가져다가 들어봐라. 그게 전부다. 타사의 홈페이지를 채운, 거의 학술 논문에 가까운 기법이나 제조법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냥 제품명과 사진이 전부다. 말하자면, 인터넷이나 무슨 무슨 설(說)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정면승부하겠다는 쪽이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메이커들 뿐 아니라, 숱한 평론가와 애호가들의 찬사를 모아놓는다면, 본고의 지면이 꽉 차고도 남을 정도다. 대체 젠사티에는 무슨 특별한 마법이 있단 말인가?

참고로 젠사티라는 말이 재미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몸으로 체득한 지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 케이블의 제조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확립이 되었다고 해도 숱한 테스트와 교정이 기다리고 있다. 실전을 통해 감각적으로 연마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고행을 통해 만든다는 의미로 젠사티를 갖다 붙인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젠사티를 주재하는 마크 요한센(Mark Johansen)씨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젊었을 때 상당히 미남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지금도 쇼장에서 만나면 늘 멋진 패션으로 치장하고 있다. 매너도 좋고, 말도 아낀다. 그래도 자기 제품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해서, 이 부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래서 매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케이블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또 젠사티라는 브랜드 명에서 알 수 있듯, 개인적으로 동양의 철학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인도 음악과 뉴 에이지 뮤직을 전문으로 하는 카루네쉬라는 음반사와 협약을 맺을 정도다. 주로 덴마크에서 일하지만, 태국에 별도의 주택을 갖고 있으며, 중국이나 홍콩에서 쇼가 있으면, 태국을 경유해서 쉬거나 혹은 구상을 한다.

참고로 동사가 소재한 곳은 덴마크의 블리스트럽이라는 곳이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55Km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도시다. 개인적으로 덴마크의 오르토폰, 달리 등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이 지역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인구 밀도가 극히 낮지만, 목가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묵묵히 장인 정신을 추구해가는 회사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골똘히 만들고자 할 때, 이런 지역은 매우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만난 제품은 실렌치오(Silenzio)라고 부른다. XLR 타입을 골랐다. 참고로 실렌치오는 이태리어로, 영어로는 사일런스(Silence)에 해당한다. 실은 이 단어는 니니 로소라는, 이태리 출신의 세계적인 트럼펫 주자의 연주곡으로 유명하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약간은 장송곡과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주는 곡이다. 유튜브 같은 데에서 찾아 듣는다면 금세 아, 라고 탄성을 지를 만큼 익숙한 곡이다.

참고로 본 기의 성능 점검을 위해 동원한 것이 실렌치오의 하위 모델, 즉 본 기가 출현하기 전에 동사의 플래그쉽이었던 세라핌(Seraphim)이다. 세라핌은 세라프(Seraph)라는 단어의 복수형으로, 성경에서 나오는 천사, 그중에서 구품 천사의 으뜸인 치품천사를 뜻한다. 중세나 르네쌍스 시대의 회화를 보면, 천상에서 내려오는 세라프의 묘사가 의외로 많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세라핌은 이른바 천상의 소리. 반면 실렌치오는 침묵의 소리다. 침묵은, 말하자면 조용한 배경과 관련이 있고, 정숙성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천상의 소리를 넘어서서 정숙성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제품명만 갖고도 일종의 고독한 수행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한편 세라핌의 실력 점검을 위해 이와 비슷한 제품이지만 성격이 다른 스탤스의 사크라 V12를 골랐다. 사크라는 불교 용어로, 제석천이라고 한다. 이 제석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의 주인으로,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다소 난해한 용어를 붙일 정도로, 사크라에 대한 스탤스의 자부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치면 일종의 “신”(God)이라 붙인 것이니까.

실제로 스탤스 케이블은 젠사티와 전혀 딴판의 개성과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애호가의 취향에 따라 선택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그런데 이해를 빠르게 하자면, 세라핌과 사크라 V12의 장점을 골고루 갖고 있으면서 한 차원 위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실렌치오다. 너무 결론이 빨라서 미안하지만, 이런 느낌은 AB 테스트를 통해 쉽게 판별이 되었다.

이번 시청에 동원된 기기를 소개하면, 앰프는 다질의 프리 파워인 NHB-18NS와 108을 사용했다. 거기에 웨이버사의 DAC3를 소스기로 활용하고, 스피커는 포컬의 스칼라 V2를 채택했다. 모두 한 가닥 하는 기기들이어서 이 케이블의 향연에 매우 유용했음을 밝힌다. 시청곡목은 두 개. 이것을 차례차례 케이블을 교체하면서 들었다.

비교 청취 곡목 리스트

- Art Pepper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 Jennifer Warnes 'First We take Manhattan'

Stealth Audio Cables SAKRA XLR Cable

우선 사크라 V12. 아트 페퍼를 들으니, 전대역의 밸런스가 좋고, 특히 저역의 해상도가 눈부시다. 리듬 섹션이 기분좋게 넘실거리는 가운데, 에너지와 기교가 충만한 페퍼의 모습이 제대로 떠오른다. 알토 색소폰 특유의 음색과 잔향도 괜찮다. 전체적으로 혈기왕성하며, 열기가 충만하다. 딱히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중립적이면서 충실하게 음을 내고 있다.

이어서 제니퍼 원즈를 들으면, 녹음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터라, 약간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보컬의 경우 특유의 코맹맹이 음색이나 존재감이 다소 희석되었다. 물론 전반적인 해상도는 수준급이고, 크게 흠잡을 구석은 없다. 그러나 여성 보컬의 개성이 좀 약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Zensati Audio Cables Seraphim XLR Cable

이어서 세라핌으로 바꿨다. 일단 음색이나 분위기가 싹 일변한다. 페퍼의 경우, 좀 고상해졌다고나 할까? 대신 알토 특유의 톤은 더 살아난다. 악기 자체의 음색은 더욱 진해지고, 중고역의 질감도 향상이 된다. 대신 저역의 양감이 좀 줄어든다. 스피드의 경우, 눈부시게 발전해서, 마치 F1 그랑프리 머신을 보는 듯하다. 쾌속질주, 시원시원한 고역, 엘레강스한 질감 등, 여러 면에서 사크라 V12와 다르다.

제니퍼 원즈를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사크라 V12가 군데군데 공간이 비고, 악기와 악기 사이의 연결성이 부족한 데 반해, 여기서는 거의 빈틈이 없다. 백업을 하는 악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운데, 제니퍼 원즈의 여성적인 매력이 물씬 우러나는 보컬이 강력한 존재감을 갖고 등장한다. 아트 페퍼의 경우, 사크라 V12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제니퍼 원즈는 이쪽이 한결 낫다.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참 흥미로운 시청이 되고 있다.

Zensati Audio Cables Silenzio XLR Cable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의 주인공인 실렌치오의 등장. 역시 전술한 대로, 양쪽 케이블의 장점이 두루두루 망라되어 있다. 특히, 스피드와 저역의 양감이 함께 재생된다는 점에서 정말 놀랐다.

우선 아트 페퍼를 들어보면, 찰지고, 쫄깃쫄깃한 음이 나온다. 심벌즈의 타격감이 뛰어나고, 킥 드럼의 어택은 빠르면서 폭발적이다. 알토 색스의 다소 여성적이면서 화려한 면모가 충분히 포착되는 가운데, 리듬을 따라 넘실넘실 애드립이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기분이 좋은 음이다. 또 약간 스위트한 맛도 있어서, 이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어서 제니퍼 원즈의 차례. 역시 여성 보컬의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 다소 코맹맹이에 막힌 듯한 음성이지만, 이게 바로 원즈의 매력. 그 부분이 충실하게 드러난다. 배후의 악기군은 촘촘하게 엮여서 일체의 틈이 없고, 드럼과 베이스의 폭주는 귀를 일체 자극하지 않는다.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사실 V12나 세라핌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이렇게 여러 상반된 요소를 확실하게 아우르는 케이블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 경쟁자들이 잔뜩 긴장할 순간이다.

이 종학 (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