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모든 것은 아주 조그만 것,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파워앰프를 켜고 프리앰프의 볼륨을 높였다. 그날따라 리모컨이 어디 갔는지 몰라 허둥대다가 그냥 손으로 볼륨을 돌리려는 순간. 팔의 솜털이 사자 갈기처럼 솟아오르는 전율(?)을 체험했다. 아니 그것은 전율이 아니라 전기였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가끔 경험하지만 실제 그리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다. 이런 현상이 있다고 해서 선풍기 바람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냉장고 온도가 낮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디오는 다르다. 프리앰프에서 느꼈던 전기는 다름 아닌 접지전류다. 접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람의 몸을 통해 바닥으로 전달, 소멸시키는 현상이다. 오디오의 주인은 그 찰나의 순간 전기를 땅으로 전해주는 전도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단지 이런 현상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접지를 제대로 해주었을 경우 음질은 드라마틱하게 상승한다. 과거 오디오를 처음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런 현상을 없애버리려 집 마당에 접지봉을 박는 공사까지 단행한 적도 있다.

우리가 사는 가정환경, 사무실 환경에서 사용하는 많은 가전제품 중 유독 오디오는 전기에 민감하다. 번개가 쳤을 때 피뢰침이 낙뢰의 전율을 땅으로 흘려보내는 단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누설 전류만으로도 음질은 크게 왜곡되고 흐려지며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접지 전류는 고약해서 동일한 전기 공급망 안에 있는 모든 컴포넌트를 배회하며 음질을 훼손하기도 한다. 때로는 기기의 수명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접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접지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서 그곳에 벽체의 접지나 기기를 연결시킨다. 어떤 물체나 단자가 되었든 접지가 되지 않아 누설된 전류를 지구 대지에 흘려버려 전위차를 0V로 만들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한 가옥 구조에서 이런 일은 때로 쉽지 않다. 더불어 모든 컴포넌트의 전위차가 0V가 되도록, 완전무결한 접지 방법은 가정 내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가상 접지의 소구 그리고 한계

이런 홈 오디오의 실정을 간파한 제조사는 과거부터 여러 형태의 가상 접지 제품을 내놓았다. 때로는 개인이 금속 박스에 특정 물질을 가두어놓고 접지선을 연결해 수백만 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 획기적인 접지 관련 제품은 전문 메이커에서 제품화하기 전이었다. 이런 제품들은 대개 패시브 접지 박스였다. 구리, 동판, 미네랄 파우더 등 전도성이 높은 재료를 사용해 매우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패시브 형태 접지 제품은 기준 접지 전압 하강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전지 전압는 각 컴포넌트마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다양한 전위차를 만들어낸다. 이를 시시각각 신속하고 균질하게 안정화시킬 수 없다. 패시브 접지 박스의 태생적 한계다.

텔로스 GNR

이 와중에 대단히 획기적인 가상 접지 제품이 최근 출현했다. 바로 텔로스(Telos)의 GNR, 즉 ‘Ground Noise Reducer’라는 제품이다. GNR은 단순히 광물질이나 구리, 동판 등을 사용해 접지 전압을 하강시키지 않는다. 내부에 액티브 회로를 내장시켜 매우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논리 회로 위에서 접지 전압을 최하 수준으로 낮추어준다.

이것은 마치 천천히 흐르는 바다 위 배들의 모습과 같다. 예를 들어 패시브 접지 장치들이 바닷물의 수위를 낮추어 엇비슷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텔로스 GNR이라는 액티브 접지 장치는 바닷물의 수위를 낮추는 것은 물론 모든 배들을 특정 수위 기준점 위에 균질하게 떠 있도록 통일성을 부여해준다. 패시브 장치처럼 전해질의 변화가 없으며 재료 교체 등의 필요가 없다. 텔로스 GNR 한 대만 있다면 가정내 인입되는 배전반 교체 등 큰 공사 없이도 오디오 컴포넌트에서 접지만큼은 거의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텔로스 GNR은 단지 내부에서 접지 전압을 낮추어주는 간단한 기능만 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한 접지 전압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연결된 모든 컴포넌트의 접지 전압을 균질하게 조정해준다. 최상의 목표는 전위차 0V를 만드는 것이지만 실제 이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앰프의 전위차는 5V일 때 DAC는 1V,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2V, 이런 식이다. 텔로스 GNR은 이런 불균질한 접지 전위차를 균질하게 만들고 접지 전압을 극단적으로 낮춰준다.

이를 위해 텔로스는 CPU를 도입, 접지 전압의 기준점을 마련하고 컴포넌트가 작동하는 내내 지속적으로 전위차를 가장 낮은 지점에 유지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술과 설계를 적용해 제품화한 것이 바로 GNR이라는 제품이다. CPU 내부에는 전위차 계산 및 정정을 위한 연산 모듈이 탑재되어 있으며 이 외에 전기 노이즈 제거 장치 등 다양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 이 전례없는 혁신적 액티브 접지 제품 GNR은 굉장히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통해 선택한 부품만 사용한다. 실제 오디오를 테스트하는 측정장치가 THD 수치를 높여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문 연구기관이 아닌 곳에서 자랑스레 공개하는 측정치를 완벽히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만큼 측정 장비는 측정 대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전기적, 물리적 완성도를 가져야만 한다. 텔로스의 경우 엄청난 양의 부품 중 정밀도가 높은 제품만을 선별 적용하며 기기 자체적으로 전기적 노이즈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는 마치 FM 어쿠스틱스를 연상시키는 제조 공정이다.

셋업

텔로스 GNR의 전면 사이즈는 390 정도며 깊이는 240mm, 높이 60mm 정도로 일반적인 오디오 랙이나 바닥에 놓기 좋을 정도로 앙증맞지만 무게는 7.5kg 정도로 묵직하다. 후면은 매우 간단하다. 정 중앙에 AC 전류 인렛 한 개가 마련되어 있으며 양 쪽으로 총 여섯 개의 접지단이 마련되어 있다. GNR의 내부를 보면 중앙에 프로세서가 내장되어 있고 양 쪽으로 모듈이 듀얼 모노 형태로 탑재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단자를 세 개씩 좌/우로 분할해놓은 모습이다. 이런 배치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후면에서 보았을 때 좌측의 세 개 단자는 디지털 장비에 적용하는데 사용하도록 설계했고 우측은 아날로그 컴포넌트에 최적화된 회로에 연결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CDP, DAC, 뮤직 서버나 스트리머는 좌측 세 개 단자에, 프리/파워앰프, 턴테이블 등은 우측 세 개 단자에 연결해야 최상의 음질적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용하고 있는 각 컴포넌트와 GNR의 연결은 텔로스에서 제공하는 전용 케이블로 연결 가능하다. 텔로스 GNR에서 사용한 단자는 WBT-0703nextgen™로 단자 하나도 음질적, 물리적으로 고품질을 지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이 단자에 접지 케이블을 연결해야한다. 텔로스에서는 RCA 입력단이나 AES 입력단 또는 접지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앰프와 연결하기 위한 접지단자 등 무척 다양한 케이블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말굽형태의 접지단자로 마감된 텔로스의 접지 케이블을 활용했다.

이 외에 스피커는 YG 어쿠스틱스 Hailey, 앰프는 비투스(Vitus)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그리고 DAC 입력을 활용 가능한 비투스 CDP를 사용했고 이들 비투스 제품들은 모두 세심하게도 별도의 접지단이 마련되어 있어 테스트에 용이했다. 이 외에 룬(ROON)을 사용한 음원 재생을 위해 앞단에 웨이버사 시스템즈 Wcore와 Wrouter를 셋업했음을 밝힌다. 테스트는 우선 디지털 기기들과 GNR 연결 전/후 변화 그리고 두 번째로 아날로그 기기 연결 전/후 변화 양상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리스닝 테스트

IU - 가을아침

꽃갈피 둘

1차로 디지털 소스기기에 텔로스 GNR을 연결하면 가수의 음상, 포커싱이 더욱 뚜렷해지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따. 예를 들어 아이유의 ‘가을 아침’을 들어보면 보컬의 위치를 뒤로 쭉 물러나 바싹 붙어 꼼짝하지 않는다. 백그라운드가 매우 차분해지며 극도로 정돈된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마치 디지털 소스기기에서 지터 수치가 급격히 내려갔을 때 변화와 유사하다. 다름 아닌 고정밀 마스터 클럭을 적용한 것과 거의 유사한 음질적 변화가 관찰된다.

Trondheim Solistene - Holberg Suite

in folk style

이어 트론트하임 졸리스텐이 연주한 그리그의 ‘홀베르크 모음곡’을 들어보면 입자가 한올 한올 더욱 미세하게 피어오른다. 요컨대 악기의 세부 표현력,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상승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소리가 더욱 정확한 타켓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기음과 배음의 대비가 분명해지며 페시지가 선명하게 표현된다. 이는 마치 OFC 케이블과 OCC 도체의 성능 차이 또는 케이블의 극저온 처리 전/후 사운드 대비를 연상케 한다.

John Eliot Gardiner - Cum sancto spiritu 

Bach Mass in B minor

2차로 아날로그 장비인 앰프에 연결해 테스트해보면 이번엔 좀 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체적인 다이내믹스 증강폭 등 에너지의 강약 대비가 더욱 상승한다. 예를 들어 바흐 B단조 미사 중 ‘Cum sancto spiritu’에서 사방은 새벽 바다처럼 고요하며 각 성부의 옥타브, 목소리의 배음 구분이 더욱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한 무대 사이사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되어 우아한 홀 톤을 풍부하게 형성한다.

Jan Kraybill - Symphony No.6 Mov.1

Organ Polychome

마지막으로 주목해야할 지점은 저역 부근이다. 드럼이나 팀파니 등 저역 구간을 오가는 악기의 밀도감이 상승하며 펀치력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한다. 예를 들어 얀 그레이빌의 ‘Organ Polychrome’ 앨범 중 교향곡 6번 1악장을 들어보면 파이프 오르간의 낮은 저역은 매우 투명하며 긴 저역 노트를 끈질기고 심도 깊게 끌고 간다. 마치 1급 지하수 같은 저역 해상력과 롤오프 없이 이어지는 추진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총평

전통적 오디오 시스템엔 매우 많은 변인들이 뒤섞여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각의 기능과 효과를 가지며 각 객체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게다가 이들은 단지 수학식처럼 소수로 떨어지지 않은 결과식을 갖는다. 서로 맹렬히 결합, 융합하며 해체하여 음악이라는 대중예술을 표현해낸다. 하지만 이런 액세서리의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사운드에 개입한다. 과연 이런 음질적 개선 효과가 텔로스 GNR의 것인지 재차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종속 변인은 독립 변인에 의해 수없이 다양한 결과 값으로 변화한다. 게다가 텔로스 GNR의 경우 디지털과 아날로그 전용 회로 등 두 개의 독립 변인이 존재하고 각각의 음질적 변화 추이는 공통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각각의 효과에 의한 상호작용도 포함되어 표출된다. 종속 변인에 영향을 주는 독립 변인의 추이를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으나 이번 짧은 테스트 시간 동안 얻은 결과를 볼 때 GNR은 뚜렷한 음질적 이익을 만들어낸다.

변화 양상을 살펴볼 때 두 개의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는 충분한 인과관계를 획득하고 있다. 태풍 속 넘실대는 바다 위에서 술렁대던 위기의 유람선은 태풍이 지나간 후 맑게 갠 하늘 아래 잔잔해진 바다 위에서 나란히 떠가고 있다. 드디어 우리는 평화를 찾았다. 텔로스 GNR은 내가 경험해본 그 어떤 접지 액세서리 중에서도 최고다. 요컨대 가상 접지의 신화라고 할 만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