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친자연주의

소리는 공기의 파동이다. 어려서 뛰어놀던 뒷동산 숲 한가운데에 다시 올라가 목청 높이 소리를 질러보자. 그 파동은 숲을 휘돌아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멀리 퍼져나가게 하는 매질은 공기고 바람이며 나무고 이파리들이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의 목과 몸은 발음원이자 소리의 출발점이며 그 소리가 더 많은 파동을 일으켜 전달되게 하는 것은 숲이다. 리플 포레스트. 매우 자연스러운 소리의 콘서트 홀로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것이 녹음한 마스터를 전기적 장치로 재생할 땐 단지 숲 같은 모습이 아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 마스터든 녹음된 포맷과 이를 재생하고 변환할 장치를 통해 전이된다. 맨 마지막 전이 장치인 스피커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음원을 어떤 표정으로 전달하는가에 대해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때때로 최근 스피커는 마스터 음원의 올바른 재생에만 목메는 경향이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유닛의 운동으로부터 출발한 파동이 오직 유닛의 소리로만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설계한다. 인클로저는 필요악으로 생각하며 오직 유닛을 단단히 고정하고 후면 방사파를 소멸시키거나 후면 방사를 통한 저역 증강 정도의 용도로만 활용한다. 때로 밀폐형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터 음원의 정확한 재생에만 매력을 느끼지 않는 데에 있다. 일부 하이엔드 메이커 외에 대다수 스피커 메이커는 설계자의 음악적 성향과 음질에 대한 저마다의 개성을 피력하고 있다. 싱싱한 현장음과 유사한 울림을 원하기도 하며 꽤 많은 착색이 가미된 울림을 원한다. 요즘 같아서는 스피커를 분류할 때 “캐비닛 울림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로 나누고 싶다. 펜오디오는 바로 자연에서 곧바로 잡아 올린 싱싱한 나무의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도 침엽수림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핀란드의 자작나무에서 들려오는 울림을.

되찾은 카리스마

여기 카리스마로 번뜩이는 스피커가 있다. 바로 펜오디오의 신제품으로 작은 사이즈에 데스크탑 용도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콤팩트하며 깍듯한 외모가 아름답다. 자작나무 합판의 단층이 마치 나이테처럼 퇴적물의 나이를 연상시키곤 해서 눈길을 끌기도 한다. 마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같은 책에서 등장할법한 주인공이 산으로 들어가 나무를 직접 기르고 잘라 만들어낸 친환경 수공예품 같은 이미지다.

그렇다. 이 앙증맞은 스피커는 핀란드의 이위베스퀼레(Jyväskylä)로부터 시작되었다. 빙하 밑의 융빙수를 따라 쌓인 퇴적물로 만들어진 제방 모양의 에스커(esker)로 이루어진 마을. 핀란드를 대표하는 침엽수로 가득 둘러싸인 곳에서 펜오디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스피커로 발돋움했다. 추운 날씨와 별달리 내놓을만한 자원이 없는 환경 하에서 산림은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소재 중 하나였다. 대표 샘 펜틸라의 음악사랑은 곧 스피커 제작으로 이어졌고 그의 열정이 펜오디오를 나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출세작이 바로 카리스마(Charisma)다. 수공으로 스피커를 만들어 즐기다가 급기야 1990년대 후반 공식적으로 펜오디오를 설립하고 판매용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다. 디자인은 매우 간단하다. 당시만 해도 자작나무로 스피커 인클로저를 만드는 업체는 내 기억에 없었지만 펜오디오는 과감했다.

핀란드산 자작나무 합판과 MDF 등을 조합해 마치 가구 같은 느낌의 캐비닛을 만들어냈고 시어스(SEAS) 유닛 및 WBT 등 뛰어난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특히 카리스마는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베이스 모듈 카라(Chara)와 결합할 경우 분리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 변신한다. 몇 년 전 다시 들어봤을 때도 여전히 매력적인 자연스럽고 싱싱한 울림은 매력 만점이었다.

시그니처 에디션

다시 찾은 카리스마는 펜오디오의 첫 번째 모델에 시그니처를 부여하고 여러 면에서 일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그니처는 단지 후면 명판에 대표 샘 펜틸라의 사인을 넣었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시그니처 에디션의 정체성은 카리스마의 완전한 리노베이션이다. 실제로 겉으로 보아도 유닛이 모두 바뀌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라인업을 모두 바꾸어가면서 새롭게 디자인한 캐비닛 디자인은 초창기 펜오디오 제품에 비해 훨씬 더 우아하고 미려해졌다.

이번 테스트에서 만난 카리스마 시그니처는 카렐리야 버치(Karelian Birch) 마감이다. 캐비닛 양 사이드 마감이 마치 과거 다인오디오 25주년의 인클로저를 보는 듯 아름다운 천연 나무의 그것을 살렸다. 그러나 외관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외관일 뿐이다. 내가 아는 선에서 펜오디오는 단지 예쁜 마감으로 제품을 마케팅하는 메이커가 아니다.

오리지널 카리스마를 잇는 카리스마 시그니처 에디션은 2웨이 2스피커의 전통적인 설계 방식을 따르고 있다. 유닛부터 살펴보면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로 노르웨이 시어스(SEAS)의 29mm 소프트 돔 유닛 ‘크레센도’를 사용하고 있다. 헥사다임(Hexadym) 마그넷을 적용한 유닛으로 사라 S 시그니처 등 훨씬 더 상급 모델에도 동일하게 사용하는 유닛이다. 미드/베이스 유닛 또한 시어스 제품으로 익숙한 신형 엑셀(Excel) 드라이버로 120mm 구경에 번뜩이는 구리 소개 페이즈 플러그를 장착하고 있다.

용적은 구형에 비해 약간 늘렸지만 여전히 북셀프 타입으로 42Hz에서 30kHz 범위만 재생 가능하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4.4kHz. 제조사에서는 감도가 높다고 하지만 공개한 스펙에서는 1m/2.83V 기준 85dB로 꽤 낮은 편이며 공칭 임피던스는 8옴으로 보편적인 수준이다. 후면에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포트가 설치되어 있는 저음 반사형 타입이며 WBT Nextgen 0705AG 바인딩 포스트가 보인다. 이 외에도 내부 크로스오버도 폴리프로필렌 커패시터, 공심 인덕터 등 선별된 부품들만 사용해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마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Susan Wong - You've Got a Friend

My Live Stories

레가 오시리스 인티앰프 그리고 얼마 전 리뷰한 스포르자토 DSP-050EX 로 매칭한 카리스마 시그니처는 그 특유의 상쾌하고 화사한 중고역 음색이 여전히 빛난다. 8옴 기준 162와트, 4옴 기준 250와트 출력을 가진 레가 오시리스는 여타 앰프들보다 카리스마 시그니처와 좋은 매칭을 보인다. 카리스마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자 마치 수십 년 동안 숙성된 술처럼 독특한 음색적 빛깔이 배어 나온다. 예를 들어 수산 웡의 ‘You've Got a Friend’에서 그녀의 보컬은 평소보다 더 산뜻하며 상쾌하게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한다. 저역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그 때문에 중역과 고역의 찰랑거리는 피아노, 심벌 소리까지 생생하게 귀를 파고든다.

김수연, 임동혁

Schubert For Two

임동혁과 김수연의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어보면 특히 피아노 타건의 배음 특성이 매우 돋보인다. 통울림은 거의 없지만 자작나무의 음색이 묻어나와 특히 피아노 타건이 이슬처럼 투명하고 깨끗하다. 무척 달콤한 고역 특성에 더해 물리적 촉감은 마치 손안에 피아노 사운드가 잡힐 듯 또랑또랑하며 방울방울 맺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상케한다. 약간의 착색을 곁들였을 때 음악은 맛있는 양념을 곁들인 음식처럼 신선한 사운드 스펙트럼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색상과 표정으로 머리가 아닌 감정을 흔들어놓곤 한다.

Misha Mullov-Abbado - Shanti Bell

Cross-Platform Interchange

저역은 어느 정도 한계가 뚜렷한 편이다. 그러나 자체적인 부스팅은 없고 재생 가능한 대역까지만 깔끔하게 재생해주는 편이라서 저역으로 인한 피로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리어 청취 거리 약 2미터 정도의 니어필드 리스닝 셋업 환경에서 청취 테스트를 진행했을 경우 첼로나 더블베이스 울림은 딱 적당한 선을 유지해준다. 예를 들어 미샤 뮬로바 아바도의 ‘Shanti Bell’에서 그의 더블 베이스의 중, 저역은 역동적으로 힘차고 빠르게 꿈틀거린다. 센야 등 상급에 비해 양감은 조금 부족하지만 니어필드 환경이라면 오히려 적당한 밸런스 외에 또렷한 포커싱 등 기민한 반응 속도 등에서 음향적 쾌감과 음색적 특색을 골고루 즐길 수 있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4

Shostakovich: Symphonies Nos.4 & 11 "The Year 1905"

사실 이런 사이즈의 북셀프에서 대편성 교향곡을 웅장한 스케일로 감상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환경에 따라서는 스케일과 관계없이 축소된 사운드 스테이징을 정교하게 감상할 때의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무심코 재생한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연주로 들어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은 이를 증명한다. 마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잿빛 드라마처럼 순간순간 작렬하는 타악과 현악의 치밀한 표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매우 민첩하고 선명하게 강, 약 대비를 이루며 눈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총평

이번 리뷰는 도톰한 두께에 마치 순면처럼 부드러운 중역에 온기 넘치는 음색을 가진 레가 그리고 반대로 매우 높은 해상력과 분해력에 광대역을 내세운 스포르자토 네트워크 스트리머와 매칭이다. 게다가 케이블은 헤밍웨이와 체르노프 등을 사용해 니어필드 환경에서 테스트했다. 전반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레가 오시리스의 역할이다. 여타 제품이나 케이블이 굉장히 빠르고 선명한 소리에 쾌감이 뛰어난 사운드 특성을 지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가는 카리스마 시그니처의 음색에 온기와 코히어런스를 듬뿍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특한 음색과 울림을 가진 음결이 빠르고 명쾌하게 질주한다. 광대한 규모에 거대한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묵직한 쾌감보다는 세밀하고 아늑하게 순도 높은 사운드를 섬세하게 즐기기 좋은 스피커다. 북구 천연의 풍광을 배경으로 잔잔히 전해오는 수풀 사이의 바람. 카리스마 시그니처의 사운드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여기까지다. 이보다 더 정확한 주파수 특성을 보여주는 스피커는 많을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사운드로 음악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피커는 흔치 않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