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 후기
Piega Coax 711 시청회 후기
리본 유닛의 산실, 피에가
층층이 쌓아올린 콘크리트 건물,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자동차, 날씨가 거듭 추워질 때마다 도시는 점점 더 웅크러들게 됩니다. 사람들의 발길은 일찍 집으로 향하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엄혹한 추위를 피해 종종 음악으로 위로받죠. 1년이 멀다 하고 다시 시작하는 도로와 재개발, 숨 막히게 빨리 그 모습을 바꾸어가는 도시 위에서 한적한 교외로 빠져나가면 푸르른 녹음과 맑은 호수와 마주치며 힐링합니다.
▲ Piega Coax 711 셋팅 시스템
스위스 취리히라면 아마도 가장 뛰어난 힐링이 될듯합니다. 이번 시청회는 호반의 도시 취리히에서 날아온 피에가 Coax 711을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피에가는 1986년 Leo Greiner 와 Kurt Scheuch에 의해 설립된 스피커 전문 메이커입니다. 특히 Kurt Scheuch는 피에가 사운드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입니다. 바로 리본 드라이버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가 그이고 피에가에서 리본은 그들이 목표로 하는 사운드 철학과 설계의 핵심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양한 스피커 유닛에 대해 잊고 있습니다. 대부분 메이저 스피커 메이커의 경우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죠. 그러나 유닛의 종류를 살펴보면 다이내믹 드라이버 외에 혼, 리본, 무지향, 바이폴라 등 대단히 다양한 타입이 존재합니다. 그중 리본 타입 유닛은 과거부터 대단히 높은 고역 재생 능력과 대역 간 시간차 오류가 적고 다이내믹 컨트라스트가 높아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주목을 받았습니다.
▲ Piega Coax 711
아포지 같은 메이커는 리본을 채용해 대단히 다이내믹 드라이버로는 상상할 수 없는 독보적 사운드를 얻었지만 운용상 힘든 면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리본 유닛 제조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리본 유닛을 만들어냈고 훨씬 더 개선된 성능과 내구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중 AMT 계열 리본 유닛과 함께 일가를 이룬 리본 테크놀로지의 권위자가 바로 피에가의 Kurt Scheuch입니다.
동축 리본 테크놀로지의 승리
▲ Piega Coax 711 시청회 진행 모습
최근엔 그 성능을 더욱더 높여 Coax 라인업을 내놓았습니다. Coax 라인업은 총 세 개 모델로 구성되어 있으며 Coax 311, Coax 511 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 시청회는 10월 20일 토요일 청담동 하이파이클럽에서 열렸습니다. 바로 피에가 Coax 라인업의 최상급 스피커 Coax 711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Piega Coax 711 시청회 진행 모습
Coax 711은 수십 년간 피에가가 굳건히 주장해온 사운드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물론 상위 레퍼런스 라인업인 마스터가 있으나 Coax 라인업엔 상위 모델에 적용된 피에가의 핵심 기술을 축약해 그대로 녹여낸 스피커들이 포진됩니다. 또한 피에가의 특징적 사운드는 사실 Coax 라인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인업 이름처럼 ‘Coax’, 즉 동축 리본 유닛이 전격 채용되기 때문입니다.
▲ 2세대 C211 유닛
본래 기존 피에가 리본 유닛 또한 굉장히 뛰어난 사운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리본 타입 유닛은 돔 진동판을 채용한 다이내믹 드라이버에 비해 거리에 따른 음압 감쇄 특성이 균일합니다. 180도 방향으로 주파수를 방사하는 돔 진동판에 비해 평평한 스트랩 안에 놓인 자석의 자력으로 주파수를 방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작이 까다롭고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채산성 또한 낮아 제대로 리본 유닛을 만들 수 있는 메이커는 흔치 않습니다.
▲ UHQD Bass Driver
그러나 피에가는 고역에서 특히 리본을 대체할 유닛은 없다는 생각 하에 리본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오랜 연구 결과 피에가는 고역뿐 아니라 중역까지 재생 가능한 풀 리본 중, 고역 드라이버를 탄생시켜 Coax 시리즈에 탑재시켰습니다. 고역이 무려 50kHz까지 재생되는 현존 최고 수준의 고역 주파수 응답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 Coax 711 후면부
그러나 Coax 711에 탑재된 리본은 네오디뮴 마그넷의 자력을 다시 한번 드라마틱하게 상승시켰고 페라이트 구조의 고강도 강철을 사용해 폴 플레이트를 진보시켰습니다. 이로써 기존의 광대역, 고해상도 능력은 유지하면서 능률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역과 중역이 동일 축 선상에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민감한 주파수 대역 범위 안에서 주파수 간 속도 차로 인한 위상 왜곡이 현저하게 낮아졌습니다. 음질적으로 디스토션을 더 낮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Mariah Carey & Whitney Houston - When You Believe
When You Believe (From The Prince Of Egypt)
동축 리본 트위터의 성능을 감안해볼 수 있는 곡으로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듀엣 곡 ‘When You Believe’를 시청했습니다. 보컬이 과장이나 축소가 없이 소극장의 실 사이즈 음상을 펼쳐 보입니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미가 제거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소리입니다. 도회적이며 기계적인 사운드가 아니라 귀와 몸으로 젖어드는 배음이 인상적입니다. 은은한 음결이 잔잔하게 이슬비처럼 시청실 공간을 메웠습니다.
피에가 Coax 711의 인클로저는 알다시피 알루미늄입니다. 사실 요즘엔 매지코나 YG 어쿠스틱스에서 채용해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죠. 하지만 피에가는 제작 공정은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알루미늄을 캐비닛 소재로 채용한 메이커입니다. 무려 3천 톤짜리 알루미늄을 4천 톤까지 가열시킨 후 7천 톤의 압력을 가해 사출한 캐비닛은 매우 견고하고 아름다운 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Coax 711에서는 ‘TIM’, 즉 ‘Tension Improve Modules’이라는 기술을 적용해 내부 브레이싱을 설계했습니다. 이로써 알루미늄의 팽팽한 장력을 유지시키는 한편 내부에 특수 필름을 사용해 아주 미세한 진동까지 흡수하고 있습니다.
Bill Evans - Waltz for Debby
Waltz for Debby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같은 재즈 레코딩을 들어보면 배경이 매우 깨끗하면서도 배음 특성이 세밀하게 펼쳐집니다. 알루미늄 캐비닛을 잘못 설계할 경우 금속성 배음이 문제가 되어 너무 차갑고 딱딱하며 건조한 사운드가 나기 십상이죠. 하지만 제대로 컨트롤된 Coax 711의 경우 스캇 라파로의 더블 베이스에 탄력이 붙어 무척 강단이 넘치는 질감과 리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기존 Coax에 비해 양감이 늘어 담백하면서도 힘 있게 전개되는 느낌입니다. 연약한 미음 위주의 스위스 사운드를 연상하면 곤란합니다.
리본은 구조적으로 돔 타입 진동판을 사용하는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달리 모든 방사판이 시청자를 향해 동일한 지점에 출발, 도착합니다. 특히 이번 Coax 711에 탑재된 유닛은 하위급과 달리 동축 리본을 탑재해 고역은 물론 중역까지 동일한 지점에서 재생하므로 위상차로 인한 디스토션을 드라마틱하게 낮추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은 보다 투명한 음색은 물론 녹음 현장의 생생한 현장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습니다.
Espen Lind - Hallelujah
Hallelujah Live
예를 들어 에스펜 린드의 ‘Hallelujah’를 들어보면 라이브 녹음 특유의 싱싱한 현장감이 주변 공간을 완전히 장악해버립니다. 리본 드라이버의 특성상 반사음보다는 직접음 위주의 사운드로 청자에게 쉽고 빠르게 소리가 전달되어 공간에 의한 탁한 반사파 영향이 적은 만큼 소리의 순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물결처럼 찰랑거리는 기타는 폐부 깊숙이 파고듭니다. 지향성이 뛰어난 만큼 침투력이 높고 뭔가 인공적으로 채색된 사운드가 아니라 소리가 끝까지 살아서 날아오는 생명력과 그로 인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남은 저역은 리본 타입이 아니라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피에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빛나고 있습니다. 무려 네 개의 UHQD 우퍼가 도열하고 있는 이유는 마그넷과 코일로 만들어진 보편적 능동형 유닛 두 개에 패시브 라디에이터 두 발로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전면에 능동형 일반 유닛을 탑재하고 후방에 포트를 만들어 저음을 강화시키는 저음 반사형 대신 전면에 패시브 우퍼를 장착해 저역 증강을 도모하는 것이죠. 밀폐형으로 만들어 내부 에너지를 포트로 방사시키는 저음 반사형보다는 이편이 좀 더 깨끗하고 우수한 저역을 얻을 수 있다는 피에가의 영민한 판단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L'Orchestre de Contrebasses
The King of Bass
시청회에서는 [The King of Bass]에서 L'Orchestre de Contrebasses의 베이스 연주를 들어보면서 Coax 711의 저역 특성을 여실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저역에서 낮은 저역까지 뭉쳐서 나오지 않고 저역의 음계가 정확히 나누어져 재생됩니다. 리본이나 무지향성 스피커 등의 저역이 대개 조금 무르거나 추진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러나 Coax 711의 경우 밀폐형에 능동/수동 우퍼의 결합을 통해 빠르고 힘 있게 타격해주는 펀치력이 우수했습니다.
피에가의 매력을 빛낸 숨은 조력자들
아무리 뛰어난 스피커라고 해도 뛰어난 컴포넌트 및 케이블 등 액세서리 그리고 시청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겠죠. 하이파이클럽은 매 회 시청회 때마다 주인공이 되는 모델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매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피에가 Coax 711 리본 동축 유닛 스피커를 맞이해 비투스 RL-102 프리앰프와 RS-101 스테레오 파워앰프 그리고 소스 기기로 쓰랙스의 Maximinus DAC 및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라우터/W코어 등을 사용해 셋업 했습니다.
▲ Thrax Audio Maximinus DAC
소스 기기 부분에서는 이미 그 성능에서 정평이 난 쓰랙스의 Maximinus DAC가 고해상도에 더해 매우 자연스럽고 음악성 넘치는 사운드로 활약했습니다. 세계 최고가 초하이엔드 디지털 메이커 MSB의 R2R 래더 DAC 모듈을 사용한 Maximinus는 단지 고해상도로 치닫는 현재, 래더 DAC이 갖는 고유의 코히런스와 유연한 음색을 통해 소리의 입구부터 자극 없는 고해상도란 무엇인지 증명해주었습니다.
▲ Vitus Audio RL-102, RS-101
앰프 부문에서도 피에가 Coax의 곱고 은은한 배음 재생 능력을 그대로 살리면서 든든한 저역 재생 능력을 위해 고민한 결과 비투스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AB 클래스 증폭을 하지만 비투스 제품들은 아큐톤이나 베릴륨 등 녹음의 고역 노이즈까지도 모두 토해내는 초고해상도 트위터를 채용한 스피커에 제격입니다. 마치 3극관을 떠올리는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고역에 8옴에서 3백 와트, 4옴에서 6백 와트를 출력하는 선형성 등 제동력과 음악성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앰프입니다.
▲ IsoTek EVO3 Super Titan
이 외에도 50kHz 초고역까지 재생하면서 아주 작은 미세 전기 노이즈 및 물리적 노이즈까지도 소리로 토해내는 리본 유닛의 특성을 감안해 몇몇 액세서리를 활용했습니다. 특히 가장 민감한 전원 컨디션을 최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전원 장치의 끝이라고 해도 무방한 아이소텍 슈퍼 타이탄을 전격 투입했습니다. 더불어 소스 기기 쪽에는 헤밍웨이 더 크리에이션 및 얼티밋 S 등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앰프의 파워케이블 및 스피커 연결에는 쿠발라 소스나를 사용해 전체 다이내믹스와 해상력을 잃지 않으면서 동축 리본의 자연스럽고 섬세한 사운드를 살렸습니다.
하이엔드 사운드의 또 다른 봉우리
많은 하이에드 스피커 메이커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각자의 사운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매우 뛰어난 유닛이 계속해서 진보해오고 있고 여전히 다양한 로딩 방식과 함께 새로운 소재의 인클로저를 적용해오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역사가 한 바퀴 돌아 과거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추종되던 설계나 소재의 인기가 사라지기도 하고 과거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던 스피커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도 합니다.
하이엔드 스피커 또한 과거 외면받던 알루미늄 캐비닛 스피커가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아포지 등을 위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본 스피커였으나 이후에도 많은 메이커에서 그 진가를 알게 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앰프 분야에서도 D 클래스가 모든 앰프 증폭을 지배할 거라는 말은 섣부른 예측이었습니다. 여전히 AB 클래스나 심지어 A 클래스가 하이엔드 오디오의 정상에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알루미늄 캐비닛과 독자적인 설계의 리본 드라이버를 들고 나온 피에가는 어쩌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시청회에서는 오래전부터 피에가를 사용해 오신 회원분 등 숨은 피에가 애호가들까지 모여 한층 진화한 피에가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피에가가 이웃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