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회 시청회 후기
탄노이 후예들이 만든 10인치 동축유닛의 힘, Fyne Audio F1-10
오디오에는 수많은 발명품이 있습니다. 스피커의 멀티유닛을 가능케 한 크로스오버, 앰프의 출력을 비약적으로 높인 푸쉬풀과 클래스AB 증폭, ‘N+(-N)=0’ 원리를 이용해 유입된 노이즈를 없앤 밸런스 회로, 출력 신호를 입력 신호에 되먹여 왜율을 줄인 피드백, LP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이퀼라이징 커브 등이 대표적이죠.
동축(coaxial) 스피커 유닛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고역 유닛과 중고역 유닛의 중심축을 일치시켜 소위 점음원 효과를 얻는 것이 바로 동축 유닛입니다. 풀레인지 유닛의 재생 대역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멀티 유닛의 위상 및 시간 오차 문제를 해결한 기막힌 발명품입니다. 고역과 중고역 주파수가 같은 지점(축)에서 출발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 동축 유닛을 처음 선보인 제작사가 바로 탄노이(Tannoy)이고, 그 주인공이 1947년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 '모니터 블랙'(Monitor Black)이었습니다.
271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 주인공은 10인치 동축 유닛을 단 스피커였습니다. 그런데 탄노이 제품이 아닙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 본사를 둔 신생 파인오디오(Fyne Audio)의 F1-10이라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페이퍼 콘 재질의 중저역 드라이버와 그 가운데에 박힌 고역용 웨이브 가이드,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고역 컴프레션 드라이버 모습이 탄노이 스피커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과연 파인오디오는 어떤 제작사이길래 이런 동축 유닛을 자신 있게 선보인 것일까요. 그리고 이 스피커가 들려준 소리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요. 이래저래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한 시청회였습니다.
탄노이 직원 5명, 파인오디오를 설립하다
파인오디오는 탄노이 출신 직원 5명이 2017년에 설립한 스피커 제작사입니다. 탄노이 엔지어니링을 책임져온 폴 밀스(Paul Mills), 마케팅&세일즈 디렉터 맥스 모드(Max Maud) 등 5명이 탄노이에서 나와 자신들의 회사를 차린 것이지요. 파인오디오에는 이들 5명 외에도 스코틀랜드 주 정부와 중국 상하이의 한 기업도 지분 참여를 했습니다. 회사 이름에 들어간 ‘Fyne’(파인)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에 있는 유명 호수 ‘Loch Fyne’(로크 파인)에서 따왔습니다.
지난해 방한한 맥스 모드 씨는 파인오디오 설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파인오디오의 창립 멤버 5명은 모두 탄노이에서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탄노이가 다른 회사에 피인수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탄노이의 원래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에 5명이 새 회사를 세운 것입니다. 5명의 오디오업계 경력을 따지면 200년이 넘습니다.”
F1-10, 파인오디오의 플래그십
시청회 시작 전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 세팅된 F1-10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일단 위에서 봤을 때 긴 타원형 모양의 인클로저 마감이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파인오디오에 따르면 인클로저 재질은 고밀도 자작나무 합판(high density pressed birch ply)이며 마감은 측면이 하이 글로스 월넛(walnut), 전면 배플과 상판이 하이 글로스 호두나무(bur walnut)입니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모델명 'F1-10'에서 알 수 있듯, 전면 배플 위쪽에 달린 10인치 동축 유닛입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안쪽으로 들어간 중저역 콘 한가운데에 트위터가 보입니다. 그런데 측면에서 보면 동축 유닛을 수납한 섀시(바스킷)가 일부 노출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또한, 배플 아래쪽에는 탄노이 상위 프레스티지 모델들에서 보이는 고역 EQ 노브가 2개 달려 있습니다. F1-10의 스펙을 보니, 높이는 1191mm, 폭은 405mm, 안길이는 581mm, 무게는 57.7kg이라고 합니다.
바닥 지지대(플린스)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만든 티가 역력합니다. 두꺼운 알루미늄 베이스에 높이조절을 할 수 있는 원추형 스파이크 4개가 나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플린스 전면과 양 측면에 커다란 틈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중저역 유닛 후면파가 빠져나오게 됩니다.
즉, 인클로저 바닥에 나 있는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를 통과한 후면파가 뒤에서 언급할 원추형 디퓨저와 만나 자연스럽게 360도 방사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베이스 뒤쪽에는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하는 바인딩 포스트 4개와 접지 단자가 있습니다.
F1-10은 기본적으로 공칭 임피던스 8Ω에 감도가 94dB에 달하는, ‘울리기 쉬운’ 스피커입니다. 동축 유닛에서 고역을 담당하는 드라이버는 티타늄 재질의 3인치 컴프레션 돔 트위터, 중고역을 담당하는 드라이버는 멀티 파이버 페이퍼 재질의 10인치 콘입니다.
주파수응답 특성은 28Hz~26kHz(-6dB),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750Hz를 보입니다. 3인치 트위터가 750Hz~26kHz라는 넓은 대역을 커버하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네트워크 필터는 로우패스, 하이패스 모두 2차 오더(-12dB)입니다.
매칭 기기 및 첫 곡 인상
F1-10과 매칭한 기기는 노르웨이 일렉트로콤파니에(Electrocopaniet)의 프리앰프 EC4.8과 스테레오 파워앰프 AW250R입니다. 일렉트로콤파니에는 1973년 페르 아브라함센과 스베인 에릭 뵈르야가 노르웨이 오슬로에 설립한 오디오 제작사로, 마이클 잭슨의 ‘History’ 앨범 크레딧에 이 회사 이름이 들어가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이는 레코딩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이 녹음작업에서 일렉트로콤파니에 앰프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프리앰프 EC4.8은 전원부까지 듀얼 모노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며, 이 덕분에 채널 분리도가 무려 120dB 이상을 보입니다. 밸런스 입력 2조, 언밸런스 입력 3조, 밸런스 출력 1조, 레코드(RCA) 출력 1조 등 풍부한 입출력 단도 눈길을 끄네요. 이밖에 볼륨이 게인(-111dB~8dB) 조절 방식인 점과, 주파수응답 특성이 0.5Hz~200kHz에 걸쳐 플랫한 점이 돋보입니다. 입출력 임피던스는 보통 수준인 47kΩ과 100Ω을 보입니다.
스테레오 파워앰프 AW250R은 8Ω에서 250W, 4Ω에서 380W, 2Ω에서 625W를 뿜어냅니다. 비록 스피커 임피던스 변화에 선형적인 출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1Ω에서도 1100W를 내주는 점이 대단합니다. 이 회사에서 FTT(Floating Transformer Technology)라고 명명한 전원부에서 보통 앰프 전원부의 2배에 달하는 강력한 전류를 공급해준 덕분입니다. 실제로 최대 피크 전류는 무려 100A에 달합니다. 이밖에 출력 임피던스가 0.008Ω에 그치는 점, 왜율이 0.001%에 그치는 점도 파워앰프로서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Diana Krall - A Case of You
Live In Paris
우선 첫 곡으로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의 ‘A Case Of You’(Live in Paris)를 들어봤습니다. 배경이 상당히 조용하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압력이 잘 느껴집니다. 관객의 기침소리가 리얼하게 들리는 등 공간감 구현도 좋네요. 다이애나 크롤의 이미지는 흐트러짐 없이 아주 또렷이 맺힙니다. 전체적으로 2웨이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음수와 양감이 풍부합니다. 역시 음의 에너지감은 스피커 용적과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의 기본법칙은 절대 거스를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3웨이 우파가 가세했을 때의 그 도탑고 인위적인 저역의 느낌은 아닙니다. 음 끝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점, 묘사력이 기대 이상으로 출중한 점이 F1-10 사운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아이소플레어(IsoFlare), 파인오디오의 동축 유닛
본격적으로 F1-10의 동축 유닛을 살펴봤습니다. 파인오디오에서 ‘IsoFlare’(아이소플레어)라고 명명한 이 동축 유닛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3인치 티타늄 컴프레션 돔 트위터가 10인치 멀티 파이버 페이퍼 콘 미드우퍼 한가운데에 박힌 구조입니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가운데 웨이브 가이드를 통과한 고역 주파수는 미드우퍼 콘을 타고 중저역 주파수와 함께 방사됩니다. ‘아이소(isotropic. 같은 방향의)+플레어(flare. 나팔모양)’라는 이름도 이래서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동축 유닛의 장점은 무엇보다 점음원에서 각 대역이 방사되기 때문에 위상 불일치라든가 시간 오차 등이 발생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 대역이 동일한 나팔 모양 콘을 타고 방사되기 때문에 스위트 스폿에서 벗어나도 깨끗한 스테레오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더욱이 각 대역 주파수의 에너지가 크로스오버 주파수(750Hz) 부근에 집중되기 때문에 룸 환경으로부터도 덜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깥쪽 10인치 미드우퍼는 주조 알루미늄 섀시(배스킷)에 담겼는데 측면에 노출된 섀시는 가죽을 둘렀습니다. 미드우퍼 콘 재질은 자연스럽고 깨끗한 물성을 보이는 멀티 파이버 페이퍼(multi-fibre paper)이며, 서라운드(엣지)는 패브릭 재질인데 2중으로 나 있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미드우퍼 진동판이 더욱 깔끔하게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한 설계로 보입니다. 모터 시스템은 ‘동 보이스 코일 + 알루미늄 포머 + 페라이트 마그넷’ 구성입니다. 폴 피스에 동 재질의 링을 달아 와전류(eddy currents)를 줄이는 등 세심한 설계가 돋보이네요.
컴프레션 드라이버 타입의 고역 유닛은 티타늄 진동판에 마일러(Mylar) 서라운드를 달았고, 모터 시스템은 ‘알루미늄 보이스코일 + 캡튼 포머 + 네오디뮴 마그넷’ 구성입니다. 고역 유닛을 별도 챔버에 수납, 중저역 유닛의 후면파로부터 강제 격리시킨 점도 눈길을 끕니다.
또한, 컴프레션 드라이버 앞에 붙은 웨이브 가이드는 앞이 조금 더 넓은 형상인데, 이는 일자형의 경우 음의 반사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50Hz 이상 대역이 플랫하게 뻗도록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베이스 트랙스(Bass Trax),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의 확장
F1-10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저역 후면파에 대한 독특한 컨트롤 방식입니다. 일단 F1-10은 저역 보강 및 컨트롤을 위해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을 취했는데, 포트는 인클로저 바닥면에 큼지막하게 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바닥 지지대(플린스) 가운데에 ‘베이스트랙스 트랙트릭스’(BassTrax Tractrix)라는 일종의 원추형 디퓨저를 설치, 바로 위에 있는 스피커 포트에서 빠져나오는 저역 후면파를 360도로 방사시킵니다. 한마디로 포트를 빠져나온 음파가 자연스럽게 90도로 꺾여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설계이죠.
이 같은 독특한 저역 컨트롤 방식은 여러가지 이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정면파를 교란시키는 후면파를 바닥 쪽에서 매끄럽게 분산시킬 수 있고, 동시에 스피커 세팅도 훨씬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같은 여러 장점 때문인지 파인오디오에서는 베이스트랙스 디퓨저를 F1-10 뿐만 아니라 F700 시리즈, F500 시리즈에도 모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크로스오버 네트워크에는 적층 실리콘 스틸 인덕터(코일) 및 클래어리티캡(Claritycap)의 폴리프로필렌 필름 커패시터 등 고급 부품을 호화롭게 투입했습니다. 내부 배선도 네오텍(Neotech) PC-OCC 선재를 사용했으며, 신호 전송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완성된 네트워크 회로를 극저온 처리하는 수고까지 마다치 않았습니다. 한편 바이와이어링에 대응하는 스피커 터미널은 금도금 WBT 넥스트젠(Nextgen)입니다.
시청
F1-10은 전체적으로 맑고 깨끗하며 해상도가 높은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곡에 따라서는 양감과 질감을 모두 갖춘 힘 있는 저역도 마다치 않더군요. 하지만 음원이나 녹음 상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주 예민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Michael Jackson - You are not alone
History :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You’re Not Alone’은 풍성한 음수와 단단한 밀도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페이퍼 콘 특유의 섬세함과 탄력감이 돋보였습니다. 약간은 온기가 있고 포근한 감촉입니다.
Carlos Kleiber - Beethoven Synphony No. 5
Beethoven Symphonien Nos. 5&7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필 연주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어보면 사운드의 당당함과 늠름한 모습이 압권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악기들도 음상이 흐트러지지 않더군요. 매끄러운 대역 간 이음매와 일체의 예비동작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탄력감과 스피드도 대단합니다. 피아니시모 파트에서는 여린 음들을 알뜰하게 보살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성미보다는 남성미가 도드라지는 스피커인 것 같습니다.
Lady Gaga - Always Remember Us This Way
A Star is Born Soundtrack
2부 첫 곡으로 들은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Always Remember Us This Way’에서는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예리하고 선명한 고역이 일품이었습니다. 시청회 당시 F1-10의 고역 EQ 노브는 에너지(Energy)가 최대, 심도(Presence)가 9시 방향에 있었는데, 직접 건드려보지는 못했지만, 이 영향도 크게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 EQ 노브는 트위터 대역(750Hz~26kHz)의 음압을 최대 3dB에서 최저 -3dB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심도 EQ 노브는 낮은 고역(2.5~5kHz)의 음압을 역시 최대 3dB에서 최저 -3dB로 조절하는데, 이 값이 높을수록 보컬의 선명도는 올라가고, 낮을수록 심도가 깊어진다고 합니다.
Paavo Järvi - Beethoven Symphony No. 4
Beethoven: Symphonies Nos. 4&7
한편 F1-10의 뛰어난 중역대 해상력과 질감 표현은 파보 예르비 지휘, 연주의 베토벤 교향곡 4번 2악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풀레인지 스피커처럼 맑고 선명하며 SNR이 무척 높은 사운드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어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의 ‘Handy Man’에서는 드럼의 에너지감과 펀치감, 보컬과 코러스의 앞뒤 레이어감이 잘 그려졌습니다. 여러 명이 한 무대에서 함께 노래한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기가 쉽지 않은데 F1-10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습니다. 역시 탄노이 후예들이 만든 동축 아이소플레어 유닛의 탁월한 물성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직접 보고 들은 파인오디오의 F1-10은 탄노이 듀얼 콘센트릭 동축 유닛과 닮은 듯 다른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고역 쪽은 더욱 예리하고 선명하며 엣지가 있었고, 저역은 단단한 밀도감과 풍성한 에너지감이 돋보였습니다. 동축 유닛의 최대 매력이라 할 중역대는 여지없이 사실적이며 싱싱한 감촉이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만든 매끈한 인클로저 마감은 파인오디오가 작정하고 만든 플래그십 스피커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디오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동축 유닛은 또 이렇게 신생 제작사에 의해 계속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