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지난 5월 18일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진행된 275회 시청회가 끝나갈 무렵 참석자분들이 돌아가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오버볼륨을 다 받아준다.” “클리핑이 전혀 없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구석이 있다.” “사운드에 한국적 정서가 있다.” 이렇게 칭찬 일색의 시청회 소감은 간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J&A 어쿠스틱스(J&A Acoustics)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R9이었습니다.

혹시 2017년 여름 하이파이클럽 리뷰를 통해 소개됐던 독특한 모양의 스피커 Aero500을 기억하시나요? 럭비공 모양의 청동 인클로저에 6.5인치 아큐톤 미드우퍼를 장착하고 그 위에, 그러니까 트위터 온 톱(tweeter on top) 방식으로 별도 챔버에 1인치 아큐톤 트위터를 달았던 스피커였습니다. 이 스피커를 데뷔작으로 선보였던 제작사가 바로 J&A 어쿠스틱스입니다. 거의 2년 만에 환골탈태한 모습의 새 스피커를 선보인 셈인데, R9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R9, 소리가 도대체 어땠길래....?!

R9이 도대체 어떤 소리를 들려줬길래 참석자분들이 이처럼 감탄해 마지 않았던 것일까요. 제작사와 스피커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이날 시청회 초반에 들었던 곡들에 대한 인상을 선입견 없이 정리해봤습니다. 시청회에는 소스기기로 MSB 테크놀로지의 Premier DAC(+Premier PowerBase), 일렉트로콤파니에의 프리앰프 EC4.8, 스테레오 파워앰프 AW250R이 조연으로 참가했습니다. 이날 시청회는 웨이버사의 W Core와 W Router를 활용해 룬(Roon)의 타이달 음원과 NAS 음원을 주로 들었습니다.

Jane Monheit - Over The Rainbow

Live At The Rainbow

베이스와 드럼, 피아노의 생생한 감촉, 음 곳곳에 가득찬 에너지, 그뒤에 깔린 적막한 배경, 드넓은 사운드 스테이지와 또렷한 음상 등 첫 음부터 기대 이상의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소릿결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피아노 저역의 양감과 고역의 매끄러움은 취향을 떠나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확실히 지난 Aero500 때보다 대역 밸런스가 잘 잡힌 소리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6.5인치 스카닝 우퍼 2발을 통한 베이스의 바디감, 스캔스픽 베릴륨 트위터를 통한 피아노의 맑은 고역이 돋보입니다. 보컬의 매력도 잘 전해집니다. 또 하나, R9 스피커의 매력은 음이 편안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곡부터 R9이 이처럼 선전하자 참석자분들도 내심 깜짝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Eric Clapton - Layla

The Cream Of Clapton

음 끝이 살아있는데다 음수도 많아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참으로 깨끗하고 선명하며 투명한 음입니다. 음에 그 어떤 그늘이나 혼탁함이 없는 것을 보면 인클로저 내부 설계와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튜닝에도 제작자의 남다른 내공과 정성이 베풀어져 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4K UHD 및 HDR 화면을 보는 것 같은 선명한 중고역도 귀를 살랑살랑 간지럽힙니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는 그야말로 생동감이 가득합니다. 요약하면, 라이브(live), 액티브(active), 다이내믹(dynamic)한 소리입니다. 그러면서도 제인 몬하잇의 보컬 곡 때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고 차분하며 여유 있는 재생음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는 우퍼 2발 중 밑에 있는 로우어 우퍼(lower woofer)를 제외한 나머지 유닛들이 모두 밀폐형 내부 격실에 수납된 덕분으로 보여집니다.

R9, J&A 어쿠스틱스의 2.0 시대를 열다

J&A 어쿠스틱스는 모토로라(Motorola) 미국 본사에서 스마트폰 관련 제품개발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안민구 대표가 2017년 초 설립했습니다. 안 대표는 처음 2012년 한국에 돌아와 아마추어 연극배우 및 가구 작가의 길을 걷다가 ‘돌연’ 스피커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국제전자상가에서 우연히 들은 빈티지 AR 스피커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것이 그 계기였다고 합니다. 사명에 들어간 ‘J&A’는 공동 설립자인 장수홍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안 대표의 영문 이름 이니셜에서 따왔습니다.

▲ J&A Aero500

J&A 어쿠스틱스의 데뷔작은 위에서 언급한 Aero500이었습니다. 인클로저 재질로 청동, 드라이버 유닛으로 아큐톤 제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안 대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청동은 알루미늄보다 비중이 3배가량 높다. 따라서 같은 용적의 인클로저라 해도 청동이 3배 더 무겁기 때문에 유닛 진동방지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아큐톤 유닛은 해상도가 가장 높고 섬세해서 선택했다. 디지털적이고 공학적인 마인드에서 접근해봐도 아큐톤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 J&A Acoustics Aero700

J&A 어쿠스틱스는 이후 청동 인클로저 밑에 자작나무 합판으로 짠 사각 인클로저를 받친 플로어스탠딩 모델 Aero700을 내놓았습니다. 사각 인클로저에는 덴마크 스캔스픽의 10인치 알루미늄 콘 우퍼와 아큐톤 트위터를 집어넣었고, 청동 인클로저의 아큐톤 유닛은 Aero500과 달리 미드레인지 대역만 담당케 했습니다. 청동 인클로저에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가 사라지고 밀폐형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였습니다. Aero700은 공칭 임피던스 6옴에 감도 88dB, 주파수응답 특성 30Hz~30kHz를 보였습니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60Hz와 2.5kHz에서 이뤄졌습니다.

▲ J&A Acoustics R9

유선형 청동 인클로저를 주요 컨셉으로 한 Aero500과 Aero700이 J&A 어쿠스틱스의 1세대 스피커였다면, R9은 J&A어쿠스틱스 2.0시대를 여는 스피커입니다. 안 대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월 경기 판교로 작업실 겸 자택을 옮긴 이후부터 새로운 컨셉의 R시리즈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Aero 시리즈가 화려한 촉감의 스피커였다면, 새 R시리즈는 온기와 요염함, 진한 색감을 갖췄다. 이를 위해 유닛과 인클로저, 크로스오버 등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꿨다." 

▲ 2019 서울국제오디오쇼 J&A Acoustics 부스

R시리즈의 맏형은 이번 시청회 주인공인 R9이며, 그 밑으로 스탠드마운트 타입의 R5, R3가 완성됐습니다. R5, R3 모두 스캔스픽 트위터와 스카닝 미드우퍼를 갖춘 2웨이 구성인데, R5는 6.5인치 미드우퍼, R3은 4.5인치 미드우퍼를 채택했습니다. 이들 R시리즈 3형제는 지난 3월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국제오디오쇼에서 기름기가 싹 가신 깨끗한 소리, 매끄러우면서도 펀치감 가득한 소리로 관람객을 즐겁게 했습니다.

R9 본격 탐구

R9은 기본적으로 3.5웨이 4유닛 베이스 리플렉스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입니다. 트위터는 덴마크 스캔스픽의 베릴륨 트위터, 다른 유닛은 덴마크 오디오 테크놀로지 스카닝 유닛을 썼습니다. 전면을 보면 위부터 5.5인치 미드레인지, 1인치 트위터, 6.5인치 우퍼 2발이 두께 25mm의 알루미늄 배플에 장착됐습니다. MDF 재질의 인클로저 두께도 30mm에 달하는데 여기에 또 두꺼운 알루미늄 배플을 붙인 것은 물론 드라이버와 트위터 움직임에 쓸데없는 진동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R9에 베풀어진 각별한 제진 대책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작 단계 때부터 바닥면의 스파이크와 슈즈를 각종 제진 액세서리로 국내외에서 평판이 높은 하이파이스테이(Hifistay) 제품으로 특주한 것입니다. 슈즈는 다이아몬드 바이트로 두랄루민을 절삭가공한 'Flat Shoes 60'인데, 중앙의 스파이크가 놓이는 부분은 스테인레스 스틸을 써서 뾰족한 스파이크 긁힘에도 매우 강한 특성을 보입니다. R9이 들려준 단단하고 명료한 소리는 이 하이파이스테이 슈즈 득을 크게 본 것 같습니다.

한편 R9에 투입된 스카닝 유닛은 폴리프로필렌 콘을 쓴 C-Quenze 드라이버로, 스카닝에 따르면 Flex Unit보다 주파수응답 특성이 개선됐다고 합니다. 바스킷은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보이스코일은 알루미늄 재질입니다. 콘 재질로 폴리프로필렌을 쓴 것은 Q값이 낮아 그만큼 댐핑력이 높고 자연스러운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캔스픽 베릴륨 돔 트위터는 D3004/664000 유닛으로, 베릴륨답게 40kHz까지 평탄하게 뻗는 주파수응답 특성과 스위트 스폿을 벗어나도 소리가 잘 들리는, 이른바 오프 액시스(off-axis) 응답특성이 돋보입니다.

설계 면에서는 4개 유닛이 모두 각각의 챔버에 수납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미드레인지, 트위터, 어퍼 우퍼(upper woofer)는 모두 밀폐형 챔버이며, 로우어 우퍼(lower woofer)만 베이스 리플렉스형 챔버를 취했습니다. 또한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70Hz, 700Hz, 2700Hz에서 끊은 3.5웨이 구성이지만, 어퍼 우퍼 챔버가 일종의 어쿠스틱 대역폭 필터 역할을 함으로써 사실상 4웨이 구성으로 작동하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즉, 네트워크 회로를 3.5웨이로 짰다면 어퍼 우퍼가 700Hz 이하, 로우어 우퍼가 70Hz 이하 대역을 커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퍼 우퍼가 700~70Hz 대역을 커버한다는 얘기입니다.

R9의 스펙은 이렇습니다. 일단 공칭 임피던스는 4옴이고, 감도는 87dB, 주파수응답 특성은 30Hz~40kHz에 걸쳐 평탄합니다. Aero700(6옴, 88dB)보다 임피던스와 감도가 낮아진 것은 유닛 변경과 3개 유닛의 밀폐형 설계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한 베릴륨 트위터 덕분에 고역 응답특성이 30kHz에서 40kHz로 높아졌는데, 잘 아시는대로 이처럼 고역 특성이 좋아지면 저역의 해상력 또한 덩달아 높아지게 됩니다. 한편, 인클로저 내부의 별도 챔버에 마련된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회로에는 독일 문도르프 제품들을 아낌없이 투입했습니다.

본격 시청

Neeme Jarvi, 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Danse Macabre

Saint-Saens

힘차면서도 깔끔하고, 풍윤하면서도 깨끗하고 선명한 저역 사운드가 막힘없이 터져 나옵니다. 이같은 시원시원한 저역은 일렉트로콤파니에의 파워앰프 AW250R을 바이와이어링해 R9을 구동한 덕이 큽니다. AW250R은 8옴에서 250W, 4옴에서 380W, 2옴에서 625W를 내는 대출력 앰프인 데다 채널당 2조씩 마련된 스피커 터미널을 통해 바이와이어링(더블런)이 가능한 점이 특징입니다. 물론 R9의 바인딩 포스트도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합니다. 어쨌든 이 ‘죽음의 무도’를 통해 R9 스피커가 가진 저역의 다이내믹스와 해상력, 탄력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젊고 싱싱하며 혈색이 좋은 스피커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또한 스피드도 빨라 앞에 나간 음이 뒤에 그 어떤 잔상도 남기지 않는 모습입니다.

The O-Zone Percussion Group - Jazz Variants

La Bamba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서 이 곡을 재생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에너지가 어마어마한 곡이어서 자칫하면 강력한 저역의 타격음이 나오다 말거나 아주 지저분하게 나올 위험이 많기 때문이지요. R9으로 이 곡을 재생하자 마치 가수가 첫 음을 너무 높게 잡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만큼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음 한 음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들려주더니 온갖 퍼커션이 종횡무진하는 막판에서도 너무나 쉽게 음들을 터뜨려줬습니다. 그야말로 헤비복서가 크게 휘두른 훅처럼 강력하고 묵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탄력감도 거의 트램펄린 수준이었습니다. 역시 스카닝 유닛은 퍼커션 재생에서 거의 적수가 없는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진동판과 인클로저의 존재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시청이었습니다. 한 참석자분은 “용적이 아주 큰 스피커가 아닌데도 30Hz 부근이 초저역 재생품질이 아주 좋다. 볼륨이 높은데도 클리핑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며 놀라워하셨습니다.

Fiji Oue, Minnesota Orchestra

Pictures At An Exhibition: The Hut of Fowl’s Legs

Tutti Orchestral Sampler

MDF 재질의 인클로저 두께가 30mm, 전면 인클로저를 파고들어 간 알루미늄 배플의 두께가 25mm에 달하는 등 R9에 베풀어진 제진 대책은 이 스피커에서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나오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투티 앨범 중 전람회의 그림을 들어보면, 잡티나 노이즈가 전혀 없는 적막한 배경이 돋보이는 가운데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저역과 엉키거나 뭉치지 않는 깔끔한 고역이 돋보입니다. 다소 볼륨을 높여 들은 상태인데도 클리핑 하나 없이 다 받아주는 것을 보면 R9의 됨됨이가 뛰어난 것이 확실합니다. 이밖에 마리아 칼라스의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에서는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칼라스의 고음이 쭉쭉 뻗는데도 입자감이 고왔고, 에밀 길렐스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3악장에서는 맞바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매끄럽게 나아가는 음의 질주를 맛보았습니다. 피아노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표정을 보여줘 깜짝 놀랐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R9 스피커를 들으면서 내내 '한라봉'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 스피커가 들려준 각 대역의 음들이 저마다 탱글탱글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퍼커션의 스카닝'답게 중저역 유닛들이 들려준 탄력감 넘치는 사운드에서는 없던 식욕마저 생겨났습니다. 

베릴륨 트위터 덕에 막힘없이 쭉쭉 뻗는 고역은 말할 것도 없지요. 무엇보다 각 대역 밸런스가 어디 치우침 없이 잘 잡혀있는 것을 보면, 인클로저 내부 설계는 물론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튜닝에 큰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합니다. 

안 대표에 따르면 네트워크 튜닝에만 1년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밖에 4개 유닛이 달린 플로어스탠딩 스피커가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진 매직도 대단했습니다. 국산 스피커 명기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설레기까지 한 시청회였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